신종플루 공포가 현실화되고 있다. 곳곳에서 집단감염 사례가 속출하며 대유행할 조짐이다. 당국은 전염병 확산을 통제하는데 필요한 역학조사도 불가항력으로 포기했다. 사실상 통제불능 상태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인구의 20% 이상이 전염병에 걸리면 ‘대유행’ 단계로 구분한다는데, 이렇게 따져보면 우리나라 인구를 4천 8백만으로 봤을 때 960만 이상이 환자가 되는 셈이다. 환자발생 2000명을 넘어선 시점에서 2명의 사망자가 나왔으니, 사망률은 1/1000 이 된다. 산술적으로 9천 6백명의 사망자가 나올 수 있다는 얘기다. 이제 더위가 물러가면 바이러스 생존기간이 길어져 가을·겨울철 대유행으로 번질 거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뒷북치는 격으로 질병관리본부 관계자가 유럽으로 출국하여 백신 제약회사와 협상을 벌일 예정이라지만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가장 단순한 시장원리로 볼때, 엄청난 출혈구매를 감수해야 하며, 그 시기도 앞당긴다고 장담할 수 없다. 도대체 시장원칙을 중시한다는 현 정부의 슬로건은 어디에 쓰는 것인가.
이 시점에서 내가 궁금한 것은 정말 잔인한 위기의 상황이 온다면, 현재 절대적으로 부족한 신종플루 백신의 접종에 대한 우선순위다.
당연한 얘기로 (자신의 책무을 다하고 있는 정직한) 의료진들에게 우선적으로 접종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다음부터가 문제다.
미국에서는 임신부와 보모, 어린 아이와 청소년, 만성질환자와 의료진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방침이라고 하는데, 일각에서는 학교에서 신종플루가 만연하면 학생을 통해 학부모에게 옮겨지고 이들이 직장에서 동료들을 전염시켜 무차별적으로 확산된다는 이유로 학생들과 그 학부모에 대한 접종 우선순위를 주장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임신부와 비만·당뇨병 환자를 중심으로, 일본에서는 지병이 있는 환자, 임신부, 영·유아, 청소년에게 우선권을 준다고 한다.
대체로 합리적으로 보이기는 하는데,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까.
일단, 대한민국엔 60만 대군이 있다. 혹, 공무원·검찰·정치권 등에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파워를 이용해 어떤 식으로든 우선접종을 하지는 않을까. 신체 저항력이 떨어지는 노년층은 가만히 바라만보고 있을까. 흔히 사회적 약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간적인 배려는 지켜질 수 있을까.
군복무를 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 군장과 관련하여 A급 보급품이 나오면 제일 먼저 보급되는 곳이 실제 전투와는 무관한 ○○ ‘사령부’라고 칭하는 곳들이다. 전방 땅개들(특히 쫄병들)은 탁한 연두색 비스무리한 B급·C급 군장을 사용한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잔칫날(전쟁) 잡아먹는 돼지(총알받이) 취급인 것이다.
당국에서는 감염자 대다수가 경미한 감기증상을 앓은 뒤 완치됐고, 치료방법도 간단해 지나친 공포심은 갖지 않아도 된다면서 “손을 깨끗이 하라”는 구호를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불안과 불신은 가시지 않는다. 나만의 기우일까.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는 피하라”는 친절한 안내에서는 왠지 정치적인 구린내까지 풍긴다.
4대강 정비니 뭐니 제발 삽질 좀 그만하고, 그 돈으로 어떻게든 충분한 백신과 치료제부터 확보했으면 좋겠다. 또한, 일부이긴 하지만 의료계 역시 <동의보감>이나 까대는 헛발질 좀 그만하고, 환자와 치료를 거부하지 마라.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지켜라. 그것이 의료진에게 백신 접종 우선순위를 주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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