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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3일 수요일

호로고루성에서

경순왕과 마의태자의 이름은 둘다 ‘김부’로 같다. 아버지 경순왕은 스승 부(傅)자를 쓰고, 아들 마의태자는 가멸 부(富)자를 쓴다.

인제군 상남면에 김부리(金富里)라는 마을이 있다. 경주를 떠나 북상하던 마의태자가 양평 용문사에 지팡이 하나를 꽂고, 홍천 지왕동(至王洞)을 지나 김부리에 머물면서 천년사직을 다물하고자 양병(養兵)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종내는 금강산으로 들어가고 만다는 옛이야기를 떠올린다.

통일바라기 축제가 끝난 연천 장남면 원당리 해바라기공원에서 호로고루성을 바라보며 셔터를 눌렀다.

https://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34

2025년 7월 27일 일요일

휴전·종전은 휴화산·사화산으로 비유 가능

성인문해 중2 사회시간. 망팔, 망구의 비문해 학습자분들이 내용을 정확하고도 쉽게 알아들을 교수법을 고민하곤 한다. 1학년 때 공부한 화산지형에 빗대어 휴전(정전)과 종전의 차이점을 나누었다. 
휴지기(쉬는 시간)일 뿐… 언제 다시 분출할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이 있어서 사실상 활화산(活火山)으로 분류되는 휴화산(休火山)과 같이, 휴전(休戰) 역시 언제든 전쟁이 개재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으니, 분출(전쟁)될 여지가 최소화되는 사화산(死火山) 상태처럼 종전(終戰)을 선언하고 평화협정 체결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나. 우리가 뿌리내리고 있는 이 땅에서 어떠한 생명도 다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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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관잡록](39)휴전과 종전은 휴화산·사화산 같은 것
종전선언으로 평화시대 열어나가기를
https://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30

어머님들, 1학년 사회시간에 배웠던 ‘화산지형’을 기억하시지요?

화산은 일반적으로 지표면 아래 수십 킬로미터 지점에서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면서 최종 생성된 마그마가 지각의 갈라진 틈을 타고 지표로 분출하면서 폭발합니다. 이러한 화산은 그 활동성에 따라 2~3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 활화산(活火山, Active Volcano)은 현재 분출 중이거나 최근 약 1만 년 이내에 분출한 경험이 있는 화산을 말합니다. 여기서 ‘1만 년 이내’라는 기간은 약 11,700년 전의 홀로세(Holocene, 충적세)부터 현재까지의 지질 시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마지막 빙하기 이후의 따뜻한 간빙기를 뜻합니다.

휴화산(休火山, Dormant Volcano)은 과거에 분출한 기록은 있는데 현재는 활동이 없는 화산입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분출할지 모르는 잠재적 위험이 존재합니다. 휴화산은 지하에 마그마방(Magma Chamber)이 살아있기 때문에 잠재적 분출(potentially active) 가능성이 상존합니다. 그래서 현재 화산학에서는 휴화산을 활화산에 포함한다고 합니다.

끝으로 사화산(死火山, Extinct Volcano)은 화산활동의 기록이 없고, 지하의 마그마방이 소멸하여 분출할 가능성이 없는 화산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7월 27일 오늘은 6.25전쟁 휴전협정이 체결된 지 7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협정문 영문본은 ‘armistice’로, 중국어본은 ‘停戰’, 북측 한국어본은 ‘정전’이라 기록한 것을 남측이 ‘휴전’으로 번역하여 뉘앙스가 다소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쉬는(休)’ 것이든, ‘멈춘(停)’ 것이든 휴전은 휴화산처럼 언제든 폭발(전쟁)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국제련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이름처럼 반목과 적대의 시간이 너무 길어지고 있습니다. 종전 선언을 거쳐 평화협정으로 나아가 마침내는 한반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모든 존재가 안녕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현재세대나 미래세대나 전쟁을 겪는 일이 없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Volcanoes can be divided into Active, Dormant or Extinct depending on the nature of eruption. (이미지 = meritpath.com)

2024년 12월 31일 화요일

독립기념관에서 아우내 거쳐 청남대로

지난 11월에 연구원 12월 소풍지로 청남대를 선정했었다. 그런데 12월 3일(火) 밤, 야저가 돌연 GR발광을 시전했다. 다행+자랑스러운 시민들의 도움을 받은 국회가 무도한 계엄을 해제시키고 탄핵소추를 가결한 후여서 20일(金)에 예정대로 나들이를 다녀올 수 있었다.

독립기념관 ‘겨레의 시련관’에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아우내(병천)장터에서 순대국으로 점심을 나누었다. 청남대 산책길에서는 사무라이 조직에서 건너온 ‘大統領’ 직함과, 폐하-전하-저하-합하 아래의 ‘가카閣下’ 용어에 대해 얘기하며 민주제의 3권분립을 되새겼다.

送(보낼 송) 故(옛 고) 迎(맞이할 영) 新(새 신)…

송구영신은 송고영신에서 유래했다. 이전의 관리(舊官·전임자)를 보내고 새로 부임하는 관리(新官·후임자)를 맞이한다는 뜻이니 오늘같이 해넘이 수세(守歲)하는 밤에 딱 어울리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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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생활연구원, 독립기념관·청남대 나들이

참가자 “독립의 의미, 삼권분립의 가치 되새겨 뜻깊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61


한국여성생활연구원(교장 정찬남)이 현장에서 우리나라 현대사를 배우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여성생활연구원 문해 학습자와 교·강사는 지난 12월 20일(금) 천안 독립기념관과 청주 청남대 나들이를 다녀왔다.

오전 10시경, 천안시 목천읍 독립기념관에 입장한 학습자들은 해설사의 전시 설명을 들으며 교과서에서 배운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동을 되새겼다.

이어서 유관순 열사가 활동했던 아우내장터 인근의 순대국 전문점에서 점심을 나눴다. 아우내는 “2개의 내가 아울러 합쳐지는 곳”이란 우리말이다. 현재는 아우를 병(竝)에 내 천(川)자를 쓴 병천(竝川)이란 지명으로 더 알려져 있다.

<>20일 현장 체험학습에 나선 한국여성생활연구원 학습자들이 천안 독립기념관 들머리에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오후에는 청주시 상당구의 청남대로 이동하여 본관동을 견학하고 대청호변을 산책했다. 청남대는 1983년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춘재(迎春齋)로 준공됐다가 1986년에 현재의 청남대(靑南臺·남쪽 청와대)로 개칭되었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일반에 개방한 것을 기준으로 권력의 공간으로 20년(1983~2003)을 보내다가 시민의 공간으로 21년(2003~2024)을 지내왔다.

나들이에 함께한 한 학습자는 “대통령이란 말이 일본 사무라이 용어에서 온 말이라는 걸 처음 알게 됐다”면서 “포근한 날씨에 알찬 공부가 된 보람찬 나들이였다”고 소감을 전했다.

2024년 12월 22일 일요일

기나긴 밤이었거든

남도에서 Tractor 몰고 상경한 농민과 이에 합세한 응원봉 시민이 혹한의 겨울밤을 새워 차벽을 물러서게 하고, 남태령을 넘어 한남동 레지던스로 향하고 있다.

오랜만에 기타를 꺼내 민중가요를 읊조리며 현장에 함께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치른다. 노래는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다. “다시 만날 세계”가 멀지 않았다.

악보는 노찾사 노래모음집(1989·도서출판 새길)에 수록된 「이 산하에」(문승현 사·곡)다.


1.기나긴 밤이었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우금치 마루에 흐르던 소리 없는 통곡이어든

불타는 녹두 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굽이치는 저 강물 위에 아침햇살 춤춘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2.기나긴 밤이었거든 죽음의 밤이었거든

저 삼월 하늘에 출렁이던 피에 물든 깃발이어든

목메인 그 함성소리 고요히 어둠 깊이 잠들고

바람부는 묘지 위에 취한 깃발만 나부껴

나는 노여워 우노라.


3.기나긴 밤이었거든 투쟁의 밤이었거든

북만주 벌판에 울리던 거역의 밤이었거든

아아 모진 세월 모진 눈보라가 몰아친다 해도

붉은 이 산하에 이 한목숨 묻힌다 해도

나는 쓰러지지 않아라.


폭정에 폭정에 세월 참혹한 세월에

살아 이한몸 썩어져 이 붉은 산하에

살아 해방에 횃불아래 벌거숭이 산하에

2024년 11월 4일 월요일

남양주에서 교차한 조선후기 사람들

「남양주에서 교차한 조선후기 사람들」 학술대회 성료

2024년 남양주시 지원 ‘다산 정약용 학술연구 및 인문학 사업’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36


2일(토) 경기시청자미디어센터 다목적홀에서 「남양주에서 교차한 조선후기 사람들」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렸다.

‘2024년 다산 정약용 학술연구 및 인문학 사업’의 일환으로 동국대학교 문화학술원과 남양주시가 공동으로 주최한 학술대회는 정약용을 비롯한 김창협·남병철·홍만선 등 남양주를 거쳐간 인물들을 재조명하고, 남양주에서 시작된 다양한 문화유산을 폭넓게 이해하고자 기획됐다.

노대환 동국대 문화학술원장의 개회사로 문을 연 이번 대회는 총 2부, 8건의 주제발표와 조합토론으로 나눠 진행됐다.

<>2일 열린 「남양주에서 교차한 조선후기 사람들」 학술대회에서 김충현 연구원(한국국학진흥원)이 ‘정순왕후의 복위와 왕릉 조영’을 발표하고 있다.

1부 ‘남양주의 길’은 김인경 교수(선문대학교)의 사회로 △정순왕후 사릉의 조성과 운영(김충현, 한국국학진흥원) △남양주의 사찰과 왕실 발원 불화(유경희,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양주 도로 체계의 재현연구(양정현, 순천대학교 지리산권문화연구원) △농암 김창협의 석실서원 강학 활동(김자운, 공주대학교)으로 구성됐다.

이어 2부 ‘남양주의 사람들’에서는 윤승희 동국대학교 HK연구교수가 사회를 맡아 △정약용과 마재: 정체성의 상호 형성 과정을 중심으로(윤석호, 부산대학교) △조선 후기 장동김문의 남양주 세거와 그 의미(김세호, 경상국립대학교) △19세기 천문학자 남병철: 「의기집설」을 중심으로(남경욱, 국립과천과학관) △18세기 산림처사의 향촌생활 지침서: 홍만선의 「산림경제」(염정섭, 한림대학교) 등 발표가 이어졌다.

<>2일 열린 「남양주에서 교차한 조선후기 사람들」 학술대회에서 유경희 연구원(국립중앙박물관)이 ‘남양주 불암사의 불화’를 소개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에는 다산학 관련 전문가 등 20명의 연구자가 모여 남양주의 역사문화유산을 연구한 결과물을 공유하며 심도 있는 발표와 열띤 토론을 펼쳤다.


2024년 10월 31일 목요일

단풍의 이유

시월의 첫날, 임시공휴일에 소요산 자재암에 올랐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옛일을 떠올리거나, 국가 보물로 지정된 「반야심경」 언해본을 만나거나, 한가로이 슬슬 거닐며 소요(逍遙)할 생각으로 산행에 나선 것이 아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를 보존하고자 애쓰는 분들과 잠시나마 함께하기 위해 몇몇 지인과 미리 날을 잡았었다.

그동안 동두천시는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에 궤도굴삭기를 동원하여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쪽으로 돌아서 진입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철수했고, 철거를 지지하는 관제데모를 동원하기도 한 모양이다. “미국이 도와줘서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성병관리소는 철거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공대위 전언)는 시의장의 속내는 차라리 솔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성병관리소의 평화적 전환과 활용을 지지하는 이들의 “당시엔 달러벌이 애국이고, 지금은 감추고픈 수치인가”란 피켓문구가 상황을 요약해 준다.

지난 구월에 만난 남악의 金선생은 공무원=禁治産者로 규정해서 나를 놀래켰었다. 저 선홍색 조끼 입은 사람들의 무지하고 막지한 죄과를 어이해야 할까. 홉스의 말대로 국가는 거대한 폭력, 리바이어던이다.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이원규, 「단풍의 이유」


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파주삼릉 탐방

지난 9월말 파주 홍원연수원으로 워크숍을 갔었다. 200m 거리에 파주삼릉(坡州三陵)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교통 등의 여건상 다시 찾아오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욕심을 내어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 살짝 빠져나와 50분 정도 나홀로 탐방을 나갔다.


파주 삼릉은 능역 왼편부터 공릉, 순릉, 영릉이 있는 곳이다.

공릉(恭陵)은 8대 예종의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 한씨의 묘로 조성되었다. 무석인이 없고, 지형 문제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는 ㄱ자로 꺾여 있다.

순릉(順陵)은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공혜왕후는 세조의 장자방 한명회의 넷째딸로 셋째딸인 장순황후와 자매지간이다.

영릉(永陵)은 21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진종)와 며느리 효순현빈(효순황후) 조씨의 묘로 조성되었다. 이후 양자인 정조가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순종이 다시 진종소황제·효순소황후로 추존하였다. 세자묘로 조성된 이후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세웠기 때문에 영릉에는 비각 2동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각 표석 전면에는 △조선국 효장세자묘 효순현빈 부좌 △조선국 진종대왕 영릉 효순왕후 부좌 △대한 진종소황제 영릉 효순소황후 부좌…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파주삼릉은 크게 눈여겨볼 것은 없었다. 다만 당대의 척신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리고, 정희왕후 윤씨와 결탁하며 예종과 성종의 장인으로 국정을 농단하다가 마침내 탄핵당한 옛일을 떠올리며 현 시국과 겹쳐본다. 한명회가 갈매기(鷗)를 길들이며(狎) 소일했던 한강 남쪽의 압구정(狎鷗亭)은 오간 데 없고 지금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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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순릉·영릉이 모인 파주삼릉 걸어보자.

추존 진종의 영릉은 비각 2동에 표석 3기 세워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25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파주삼릉(坡州三陵)은 공릉·순릉·영릉이 모여 있어 ‘공순영릉’이라고도 부른다.

가장 왼편의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이 세자(해양대군)였을 때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장순왕후는 세조의 장자방 ‘한명회’의 셋째딸이다. 1461년(세조7)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얼마 후 숨을 거둬 묘소를 장순빈묘(章順嬪墓)라 불렀다. 이후 1470년(성종1)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공릉은 세자빈의 묘로 조성되었기에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석양과 석호 각 1쌍만 배치하여 간소한 모습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1445∼1461)의 무덤이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딸로 1460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죽었다. 처음에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무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은 없다. 다만 양석과 둘레돌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가운데의 순릉(順陵)은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딸로 공릉에 안장된 장순왕후의 동생이다. 1467년(세조13) 잘산군(성종)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에 올랐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공혜왕후는 1474년(성종5)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중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능침이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우편의 영릉(永陵)은 21대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진종)와 효순현빈(효순황후) 조씨의 쌍릉이다. 효장세자는 1728년(영조4) 창경궁 진수당에서 10세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들어가 왕위를 이으면서 진종(眞宗)으로 추존되었다. 이어서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융희2)에 다시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로 추존되었다.

영릉에는 두 비각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이는 진종이 왕과 황제로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효장세자묘, 두 번째는 진종대왕 영릉, 세 번째는 진종소황제 영릉의 표석이다.

파수삼릉은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둘러보면 60분 정도 소요된다.

<>파주 영릉(永陵)에는 비각 2동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이는 세자 시절에 세상을 떠난 진종이 왕과 황제로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효장세자묘, 두 번째는 진종대왕 영릉, 세 번째는 진종소황제 영릉의 표석이다.

2024년 9월 30일 월요일

2024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위한 워크숍 참가

경기평교협, 2024 평화통일교육 활성화 위한 워크숍 열어

평화통일교육 사례 공유, 활성화 방안 모색


경기도평화통일교육단체협의회(회장 이바다)는 9월 28일(토), 29일(일) 양일간 파주시 홍원연수원에서 「2024년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을 개최했다.


28일(토) 첫날에는 1, 2, 3부로 나눠 평화통일교육과 관련한 최근 동향을 전달하고 공유했다.


1부 1섹션에서 강연에 나선 김성우 교수(한림대 미래융합스쿨)는 ‘AI기반의 통일교육 사례분석’을 발표했다. 김 교수는 △식상한 소재의 사용을 배제하고 △개인이 아닌 팀의 협업을 중시하며 △이미지 생성형 AI를 활용한 참신한 통일 포스터를 제작한 대학생 사례를 소개했다. 김 교수는 “당분간 아날로그식 물리적 통일이 어렵다면, 가상세계에 디지털 통일 한반도 국가부터 먼저 건국해 본다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해본다면서 “AI와 같은 혁신적인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 교안을 잘 설계하면 젊은 세대도 통일문제에 흥미를 느끼고 과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28일(토) 오후, 「2024년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에서 김성우 교수가 ‘평화통일 포스터 디자인 공모전’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2섹션에서는 변학문 소장(겨레하나 평화연구센터)이 ‘기후위기 시대의 평화통일교육’에 대해 들려주었다. 변 소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북의 국정기조와 △기후위기에 대한 남북 공동대응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짚으면서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곧 기후정의의 실현임을 강조했다.


2부 순서에서 참여자들은 지역참여형, 토론형 평화교육 사례를 나누었다.


1섹션에서 김학규 소장(동작역사문화연구소)은 1950년 8월 ‘포항여중전투’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실제 주인공인 동성중 출신의 ‘이우근 학도병’과 관련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충비가 6·25전쟁 때 전사한 학도의용병을 전쟁영웅으로만 부각하고 있는 것에 지역의 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가졌다. 경문고를 주축으로 한 학생들이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설치를 결의하고 1천여 학생·지역주민의 서명을 받아 2022년 11월, 서울시교육감(조희연)에게 청원서를 전달하고 모금운동을 벌였다. 1년 뒤인 2023년 11월 3일,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하지만 행정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여태껏 정식으로 설치되지 못하고 있다.

“동일한 학도의용병 이슈지만,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따라 강조점이 바뀔 수 있다”고 소개한 김 소장의 사례발표에 워크숍 참여자들은 “청소년들이 이루어낸 의미 있는 성과”라며 박수를 보냈다.


<>28일(토) 오후, 「2024년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에서 김학규 소장이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제작’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같은 시간, 2섹션에서는 이지혜 교사(미동초)가 ‘공존형 토론을 활용한 평화통일교육’ 사례를 발표했다. △내가 받은 통일수업(학창시절)과 △내가 가르쳐야 하는 통일수업(6학년)으로 서두를 연 이 교사는 △기존 통일수업의 미비점을 꺼내고 △초등학생들의 통일인식을 전해주며 맥락 없는 활동은 공감과 필요를 불러오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이 교사는 2022년 서울시교육청의 역지사지 공존형 토론수업 사례를 통해 △교실이라는 문화에서 △배울 것으로 기대되는 것 △토론상황에서 경험하는 것을 고려하여 수업 구성의 방향을 설정하고 수업 기반을 조성하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현상과 학습 주체들을 의미 있게 연결할 수 있다고 풀어나가 참여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3부 시간에는 ‘앞으로의 평화통일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박미자 연구교수(성공회대)가 발제하였다. 박 교수는 미래교육의 본질을 언급하며 평화통일교육에서 우리가 △계속해야 할 일 △버려야 할 일 △새롭게 해야 할 일을 꼽으며 역상정의교육과 민주시민교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박 교수는 현재 전국의 평화통일교육단체를 연결하는 평화통일교육전국네트워크 상임대표를 겸하고 있다.


계속해서 8개 소모둠으로 나누어 배정된 참여자들의 원탁토론회가 이어졌다.

각 모둠은 △전쟁반대, 평화감수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전국(지역)의 평화통일 기행장소 소개 △통일 관련 가짜뉴스의 사례 소개 △전국 또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반평화, 반통일교육 사례 소개 △대전환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평화통일교육 이슈 제안 등 4개 주제로 모둠토의를 갖고 발표하는 시간을 통해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무관심이 늘어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통일인식을 제고할 새로운 교육콘텐츠를 탐구하였다.


<>28일(토) 저녁, 「2024년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 참여자들이 4개 주제에 대한 원탁토론에 임하고 있다.


29일(일) 둘째 날에는 해병대 2사단이 관할하는 김포시 하성면의 애기봉평화생태공원을 견학하며 분단의 아픔과 불편함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분단의 폐해를 인지하게 할 새로운 교육콘텐츠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29일(일) 오전, 「2024년 평화통일교육 활성화를 위한 워크숍」 참여자들이 북한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조강전망대에서 단체 촬영하고 있다.


부천대학교 평생교육원(원장 김형렬)과 함께 이번 워크숍을 주관한 경기도평화통일교육단체협의회 이바다 회장은 마무리 인사말을 통해 “어려워진 평화통일교육의 주·객관적 상황을 공유하고,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를 위한 방안을 함께 모색하는 일에 계속해서 매진해 나가겠다”고 전했다.

2024년 9월 17일 화요일

원서동길 걸어보기

연휴 사흘째인 어제는 원서동길을 걸었다. 창덕궁 서궁장을 따라 송학선 의사와 인현왕후의 그날을 떠올려 보고, 창덕궁길 건너편으로는 나철, 김태준, 이종훈, 김연수, 노무현, 송진우, 고희동, 백홍범, 조창걸의 자취를 살펴보았다.

북촌창우극장 들어가는 골목 왼쪽에 ‘개천절 행사 발상지’ 푯말이 있다. 1909년 대종교에서 음력 10월 3일을 환웅이 지상에 내려왔다 하여 개천절로 정하고 이곳에서 첫 행사를 치른 것을 알리는 내용이다. 일제는 1920년 관제를 모신 동묘를 불하받아 일본의 건국시조인 아마테라스 오오카미(天照皇大神)와 조선건국주 단군(檀君)을 합사하려고 시도했었다. 그런 일제가 남긴 경성부 제2기 휘장(1925.11)이 오목한 채수구 덮개(맨홀 뚜껑)가 경추문 맞은편에 있다.

만남을 위해 종삼으로 남향하는 서피마골에서 조선형평사 총본부터와 홍명희 선생 집터를 확인하는 수고는 소소한 기쁨이다.


2024년 6월 23일 일요일

‘거꾸로 읽는 동두천사’ 전시연계 역사유적탐방

어제는 동두천시 지행동, 광암동, 보산동, 상봉암동 일대를 탐방했다.

지행역 인근 동두천생태평화갤러리 더꿈에서 파견작가들의 동두천역사문화공원추진을 위한 기금마련展 작품을 감상했다. 「숲은 어린 짐승들을 기른다」라는 전시 표제에서 얼마전 읽은 유키코 노리다케의 키큰이 책 「형제의 숲(Forêt des frères)」을 떠올렸다.

광암로17번길을 달려 턱거리마을로 이동했다. 캠프 호비 정문 왼편의 담벼락길에서 1971년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 여성의 묘 앞에 섰다. 비문은 글자가 흐릿하고 띄어쓰기도 이상한데 대략 이런 내용이다. 가독성을 위해 임의로 마침표를 넣어 보았다. “SOONJA REYNOLDS DIED 7 FEB 1971. MY LOVE REST IN PEACE AND THINK OF ME FOR. I AM THINKING OF YOU FOREVER. AND OUR HEARTS ARE JOINED TO GET HER. 박순자 가지 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힘겨운 기지촌을 떠나 미군병사 레이놀즈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꾸던 순자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 한 군인의 애달픈 순애보가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마음을 적신다.

단일 궁궐로 보면 경복궁이 가장 규모가 크지만, 창덕궁과 창경궁을 합한 동궐의 면적은 북궐을 넘어선다. 순자묘소 앞 담장 너머는 430만평을 자랑하는 캠프호비(Camp Hovey)다. 인근의 캠프케이시(Camp Casey) 역시 430만평 규모로 이 둘을 합치면 무려 860만평이 된다. 미군의 해외 단일기지 가운데 세계 최대규모로 알려진 평택 캠프험프리스(Camp Humphreys)의 450만평 규모를 가뿐히 압도한다. 동두천시는 현재 시 전체 면적의 42%인 40.63㎢(1천2백3십만평)를 미군측에 공여하고 있다.

캠프호비 동편의 순자묘(광암동 산 92-8). 50여년 전의 사부곡(思婦曲) “순자 레이놀드 1971년 2월7일 사망하다. 내 사랑 평화롭게 쉬기를, 그리고 날 기억해 주오. 우리의 마음은 결합돼 있고 나는 영원히 당신을 생각하고 있으니, 박순자 가지 말아주오. 1971年 2月 9日.”

길을 돌아 나와 쇠목교4거리에서 쇠목계곡으로 향했다. 산촌농원으로 들어가는 작은 삼거리에 ‘주한미군 공여지 반환운동 기념비’가 있다(광암동 87-7). 1996년 3월에 주한미군이 사유지에 어떤 협의나 동의도 없이 미8군 탱크사격장으로 사용하겠다며 과녁용 구형탱크를 밭에 가져다 놓았다. 이에 쇠목마을 주민과 동두천민주시민회의 격렬한 저항을 초래했고 결국 1998년 우리나라 최초로 600만평의 공여지를 반환받게 된다. 이를 계기로 전국의 주한미군기지가 있는 지역마다 공여지 반환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쇠목길을 따라 ‘쇠목마을 미군공여지 반환운동’ 당시 미군탱크의 마을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들이 쌓아 만든 몇 기의 돌탑(해원비)이 주욱 서 있다.

쇠목 공여지 반환기념비(동두천시 광암동 87-7). 이곳은 1996년 우리나라 주한미군공여지 반환운동의 시발점이다. 2005년 7월16일 세워진 기념비는 새의 등에 촛불이 올려진 형상이다. 불꽃의 세로글씨는 故신영복 교수의 쇠귀체.

1992년 10월28일, 26세의 기지촌 여성이 미육군 제2보병사단 케네스 마클(Kenneth Lee Markle Ⅲ) 의무이병에게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윤금이의 죽음으로 미군범죄와 불평등한 사법처리 문제가 불거지며 사회일반의 인식전환을 가져오고 SOFA를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동력을 얻게 되었다. 2001년 4월, 결코 충분하지 않지만 살인, 강간, 유괴, 마약거래, 마약생산, 방화, 흉기휴대 강도, 폭행·상해 치사, 음주운전 치사, 뺑소니 등 12개 중대범죄를 저지른 미군 피의자의 신병인도 시점이 재판종료 후에서 기소시점으로 앞당겨진다는 내용을 포함한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개정이 이루어졌다.

30여 년 전 사건현장(보산동 431-50)은 현재 철공방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 사찰 아래에는 사하촌(寺下村)이나 절골, 사동(寺洞), 탑동(塔洞) 등이 번창하고, 향교나 서원 소재지에는 향교촌(鄕校村), 서원촌(書院村)이 들어서는 것이라면 軍기지 주변에 기지촌(基地村, military camp town)이 생활권을 형성하는 것은 지극히 기계적인 물리현상인지도 모르겠다. 미군뿐만 아니라 문무 신라와 연합했다는 정방 당군이나 선조 조선을 원조왔다는 天兵 명군처럼 어쩌면 이 땅에 외국군대가 주둔한 자리는 대개 그러했을 터. 일본군위안부만 생각해 오다가 대뜸 미군위안부라는 개념을 맞닥뜨린 충격이 크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동두천시 상봉암동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쪽에서 바라본 옛 성병관리소. 본관 앞쪽에 감시용 초소가 보인다.

소요산역 1번출구를 나와 ‘홍덕문 추모비’가 있는 5거리를 지나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으로 향하는 우측(남쪽) 도로를 올라가기 전에 철망 등으로 통행을 봉쇄한 곳을 만나게 된다. 구역 안쪽으로는 천막과 차양막 등으로 덮어놓은 건물이 보이는데 얼핏 봐서는 용도를 짐작할 수 없다. 이 수상한 건물의 이름은 옛 성병관리소다. 멀리서나마 정면으로 보기 위해선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 데크길을 이용해야 한다.

1965년 양주군 조례에 따라 동두천에 처음으로 설치된 성병관리소가 1973년 2,000평 부지의 현 위치로 이전하며 2층 막사가 세워졌다. 이 ‘언덕 위의 하얀 집’의 성격은 성병검진에서 양성판정을 받은 기지촌 여성들을 끌고와 감금하고 학대했던 ‘낙검자수용소’다. 미군들은 ‘Monkey House’로 불렀다는데, 다분히 동양인 폄하적인 시각이라고 할 수 있다. 과도한 페니실린 투여량으로 사망한 여성이 많았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1996년 3월 폐쇄된 이곳은 동두천시가 신한대학(구 신흥대학)으로부터 부지를 매입하면서 현재 철거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경기북부평화시민행동은 옛 성병관리소의 평화적 전환과 활용을 위한 아이디어를 공모하고 학계·문화계 전문가의 의견을 모아 근현대사의 비극을 기억하기 위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거꾸로 읽는 동두천사’ 전시연계 역사유적탐방 참가자들(2024.6.24. 오후 2~5시). 참 열정적인 사람들이다.

김대용 대표님은 學자나 勝자, 官이 아닌 저항하고 기억하는 民에 의해서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고 있다. 기억되지 않은 일들은 일어나지 않은 일과 같으며 다시 반복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우중에도 차량 운전을 해주신 고경환 선생님과 연대의 힘을 보여준 여러 작가분들께 고마움 전한다. 역사의 필연은 종종 우연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 그러하다.

2024년 5월 28일 화요일

‘독립’ 위해 하나된 종교 화합의 장을 돌아보다

‘독립’ 위해 하나된 종교 화합의 장을 돌아보다
공원이 된 학교와 신문사 자리엔 표석만 남아


(협)마을대학종로는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에 선정된 ‘종로, 역사의 라이벌’ 프로그램을 5월부터 10월까지 4차례에 걸쳐 운영한다. 그 첫 순서로 지난 5월 18일(토) 수송동, 견지동, 인사동, 경운동 등을 탐방하며 천도교를 중심으로 선조들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이날 탐방은 증조할아버지(김승학)와 아버지(김계업)에 이어 3대째 독립운동사의 가학을 잇고 있는 김병기 선생이 해설을 맡아주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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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69

①수송공원(壽松公園)

명종의 며느리이자 순회세자의 세자빈인 공회빈 윤씨가 머물던 종로구 수송동 옛 용동궁 자리에 천도교 인쇄소인 보성사(普成社) 표석이 있다. 1919년 2월27일 밤, 보성사에서 최남선이 쓴 독립선언서를 인쇄하던 중 종로경찰서 소속의 조선인 형사 신승희(일명 신철)가 들이닥쳤다. 이종일 사장으로부터 상황의 심각함을 전해들은 손병희 교조가 급히 거금 5천원을 준비했고, 이를 건네받은 신철은 만주로 떠났다. 이렇게 하여 독립선언서 3만5천부 인쇄가 무사히 완료됐다.
1914년 4월1일, 일제는 중부 수진방(壽進坊)의 수동(壽洞)과 송현(松峴·솔고개) 등을 병합해 새로이 수송동 이름을 작명했다. 1980년대 초 숙명여고(1981)와 중동고(1984)가 강남으로 이전한 공간에 빌딩들이 들어서고 자투리에 다양한 수종의 나무를 심어 공원을 조성했다.
보성사 표석은 현재 수송공원 안에 있지만, 보성사는 원래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앞 회화나무 언저리에 보성전문학교와 함께 있었다. 공원 내에는 보성사 터 표석과 기념탑, 옥파 이종일 동상, 중동학교 옛터, 숙명여학교 옛터, 신흥대학 터를 알리는 표석이 세워져 있다. 또한 대한매일신보 창간사옥 터, 화가 심전 안중식과 고희동 등의 활동지임을 알리는 표석이 좁은 공간에 산재해 있다. 시간적 배경을 달리해 여러 학교와 인쇄시설이 있던 곳임을 알리는 종합 안내판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5월18일(토) 오전, 종로구 수송공원 내 이종일 동상 앞에서 ‘종로, 역사의 라이벌’ 참여자들이 기념촬영 하고 있다.


②우정총국(郵政總局)

금석 홍영식은 1881년 신사유람단, 1883년 보빙사의 일원으로 일본과 미국을 방문하고 고종에게 근대 우편제도의 필요성을 건의했다. 고종은 건의를 받아들여 1884년 3월27일, 우정총국을 설치하고 홍영식을 초대 우정총판으로 임명했다. 1884년 12월4일 밤 우정총국 낙성식에서 김옥균, 홍영식,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개화파는 정변을 일으키고 왕과 왕후의 신변을 확보해 경우궁으로 모셨다. 그러나 12월5일, 고종 내외가 창덕궁으로 환궁하면서 수구파의 반격이 본격화됐다. 12월6일, 위안스카이가 지휘하는 청군이 창덕궁으로 들어가면서 개화파를 지원하던 일본군이 철수했고, 개화당의 갑신년(1884) 정변은 3일 만에 종말을 고했다.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은 일본 망명길에 오르고 홍영식은 고종을 수행해 북묘(北廟)까지 갔다가 청군에 살해되었다.
본채를 제외한 건물이 소실된 우정총국은 개국 20일만에 폐쇄되고 1893년에야 전우총국(電郵總局)이란 이름으로 우편업무를 재개했다. 1905년 이후에는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광복 이후엔 개인주택이었다가 1956년 체신부에서 매입해 1972년부터 ‘우정총국체신기념관’으로 사용했다. ‘14개조 개혁정강’에서 보듯이 갑신정변은 자주적 근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 최초의 정치개혁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③태화관(泰和館)

우정국로 건너편 인사동5길로 나아간다. 헌종 임금이 총애한 후궁 경빈김씨가 거처하던 순화궁(順和宮)은 1907년 8월, 경빈 사후 궁내부대신 이윤용이 차지하였다. 나중엔 이복동생 이완용이 별장으로 쓰다가 1915년 1월, 대규모 호텔 ‘태화관’이 들어섰다. 이후 1918년 대한제국 전선사(궁중음식 담당부서) 장선 출신의 안순환이 인수해 명월관 분점을 개점했다.
이곳 조선요리옥 자리에선 1905년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의 을사늑약 밀의, 1907년 7월 고종 강제퇴위 음모, 1910년 병탄조약 논의가 진행됐다. 3·1만세운동 당시 민족지도자들은 이러한 모의가 벌어진 장소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여 모든 매국적인 조약이 무효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태화관은 1921년 미국 남감리교 여자선교부가 매입해 국내최초 사회복지기관인 ‘태화여자관’을 설치하고 태화여학교를 운영했다. 1936년 화가 이숙종이 태화여학교를 인수해 성신여대로 발전했다. 지금 태화관 자리엔 감리회 태화복지재단의 태화빌딩이 들어서 ‘크게 화합함’이라는 이름을 유지하고 있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의 독립선언에는 민족대표 33명 중 29명이 참석했다.
 


④승동교회(勝洞敎會)

인사동 실내포장마차 거리를 따라 인사동3길을 지난다.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인 새뮤얼 무어(한국명 모삼열)가 1893년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인 옛 곤당골에 세운 작은 한옥에서 승동교회가 출발했다. 동네에 고운 담(곤담)이 둘러쳐져 있어 고운담길·곤당골이라고 부르던 것이 그대로 교회 이름(곤당골교회)이 됐다. 무어 선교사가 양인(良人) 교인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인근의 백정(白丁)들을 받아들여 ‘백정교회’로도 알려졌다. 2대 당회장인 이눌서(W.D. Reynolds) 목사 때인 1904년 10월, 인사동에 한옥을 사들여 이사하고 1912년 지금의 본당 골격을 갖췄다. 박공 지붕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붉은 벽돌건물은 1959년 증축공사로 초기의 모습을 잃었다.
인근 인사동·종로2가 일대를 가리키던 승동(承洞)이 1907년 연합부흥회(길선주 목사) 때 “인근 절골(寺洞)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기는 교회가 되자”는 의미의 승동(勝洞)으로 교회이름을 바꾸어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3·1운동 학생단 대표인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등이 다니면서 승동교회는 하층 기도실에 모여 학생들이 비밀회합을 갖고 학생동원을 점검하는 등 독립선언서 배포에 거점 역할을 수행했다.



⑤탑골공원

세조가 고려의 흥복사 절터에 건립한 원각사 자리에 1897년(광무1) 대한제국 최초의 도시공원인 파고다(pagoda·塔婆)공원이 조성되었다. 광장이 없던 황도에 근대 공(public·公)적 공간이 들어선 것이다.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 모인 청년·학생들은 “집결할 파고다공원에서 선언식을 가질 경우, 자칫 폭동으로 비화할 수 있다”면서 타이르는 태화관의 민족대표들과 행동을 달리하기로 결정했다. “오등(吾等)은 자(玆)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라며 경신학당 출신의 해주 사람 정재용이 팔각정에 올라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탑골공원에서 민족대표를 대신해 독립선언서를 처음 낭독한 인물이 경성의학전문학교 모 학생이라는 주장도 있다.) 공원에 모인 5천여 명이 일시에 내지르는 “대한독립만세” 외침에 수만의 군중이 호응하면서 만세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다.
요사이엔 3·1운동 성지인 탑골공원(사적 제354호)의 역사적 위상에 걸맞도록 이름을 바꾸고 담장을 없애 보다 개방적인 구조로 재구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⑥천도교 중앙대교당(天道敎 中央大敎堂)

중앙대교당이 자리한 종로구 경운동 88번지 입구 우편에 ‘독립선언문 배부터’라는 표석이 있다. 보성사 이종일 사장의 집이 있던 곳이다. 좌편의 ‘개벽사(開闢社) 터’ 표석과 ‘세계 어린이운동 발상지’ 표석엔 소춘 김기전과 소파 방정환의 흔적이 담겨있다.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천도교의 총본산이다. 교세가 확장하면서 송현동에 있던 중앙총부를 이전하고 300만 교도의 성금을 모아 1921년 준공했다. 건평 212평의 화강석 기초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린 단층건물로 식민지 시기에는 명동성당, 조선총독부와 함께 서울의 3대 건축물로 꼽혔다. 기둥을 두지 않은 내부는 아치형 천장을 철근 앵글로 엮은 뒤 바로크풍 지붕을 덮었다.
대교당 우편에 자리한 15층의 수운회관은 1971년 건축됐다. 박정희 군사독재에 협력한 최덕신이 1967년 천도교 교령 자리에 오르고 한국종교협의회장을 맡은 이후의 일이다.

1,0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천도교 중앙대교당은 종교행사는 물론 지금도 노동자, 여성, 참사피해자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시국강연회, 음악회,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105년 전 3·1만세운동은 우리나라 천도교, 개신교, 불교 세 종단이 주도하여 ‘독립’이라는 단일한 대의를 위해 하나로 뭉쳤던 민족의 소중한 경험이다.
해설자 김병기 선생이 용인땅 우봉이씨 선산 자락에서 기어코 두계 이병도의 무덤을 찾은 사연, 무장투쟁을 주장한 묵암 이종일과 비폭력주의자 의암 손병희의 논쟁, 변절자 여암 최린의 회한 이야기는 참가자들에게 약이 되고 밥이 되는 훌륭한 약밥이었다.
이날 탐방이 일본 식민지배를 미화하고 바른 역사를 왜곡하는 부류가 우리 사회의 주류인양 힘을 과시하는 이 시점에 자칫 흔들릴 수 있는 역사인식을 바로 잡는 계기가 되었기를 소망한다.

2024년 5월 11일 토요일

노나메는 「장산곶매 이야기」

“나는 통일꾼이요.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서나니
옛날 겟적 꼬꼬지 옛날 겟적 한거리 벅적 달구름에
우리말은 인류문화의 어먹한 다락이다.”

그저께 목요일(5.9) 오후, 공모사업 협약식을 마치고 명륜4가 ‘백기완마당집’을 방문했다. 선생의 옛살라비에서 옮겨온 짧은 문장은 흔히 접할 수 없는 낱말로 꾸려져 있다.
새로 나온 「장산곶매 이야기」 두 권이 후학의 우리말 공부를 노나(나누어) 메기(먹이다)는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조만간 모란공원 묘소로 찾아봬야겠다. 불쌈꾼의 영면에 삼가 고개를 숙인다.

백기완, 「장산곶매 이야기」, 노나메기, 1·2권 각 1만5천원

2024년 5월 1일 134주년 노동절에 공식 개관한 ‘백기완마당집’




2024년 5월 10일 금요일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

서울은 한성백제 위례성과 고려의 남경, 조선의 도읍을 거치면서 시·공간의 층위가 켜켜이 쌓인 역사도시이다. 그런 만큼 당대를 살아간 인물이 만들어 간 사회·역사적 경험은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었는데 그 중심 층위에 종로가 있다. 번영의 시기이건 혼란의 시기이건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인물들의 역할이 컸고, 그 속에서 주동인물과 반동인물이 겯고틀기를 반복했다. 종로라는 배경에서도 어김없이 많은 인물이 부침을 거듭했다. 이러한 ‘인물’을 알면 우리 ‘역사’와 ‘종로’를 더 잘 볼 수 있다.

이번에 우리 조합은 조선시대와 근대시기까지 라이벌 관계에 있던 몇몇 인물을 통해 역사의 중심무대였던 종로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서로 다른 선택을 했던 양자의 입장을 비교함으로써, 각 인물의 다른 시작과 말로, 삶의 여정은 물론 각 시대를 뜨겁게 달궜던 갈등과 쟁점을 돌아볼 예정이다.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 성료
11월까지 이웃소통 17팀, 지역문제해결 13팀 사업수행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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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구청장 정문헌)는 9일 오전 좋은공연안내센터 다목적홀(동숭동)에서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협약식’을 가졌다.

주민소통 공모사업은 종로구에 거주 또는 근무하는 3인 이상의 주민모임 및 단체가 지역문제를 스스로 찾아내 해결하고 이웃 간, 세대 간 소통을 증진할 수 있도록 구에서 지원하는 공동체 활성화 사업이다.

행정자치과 강현영 과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협약식은 △국민의례 △내빈소개 △추진경과 및 사업소개 △협약서 전달 △구청장 인사말 △구의회의장 축사 △기념촬영 △우수사례발표 △향후일정 안내 △소통지원가 상견례 순으로 이어졌다.

정문헌 구청장은 “많지 않은 지원금액에 새로 바뀐 회계처리(보탬e)까지 부담을 드리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면서 “종로를 향한 애향심으로 의미 있는 결실을 맺는 길을 함께 걸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공모사업은 초기 단계의 이웃소통사업과 발전 단계의 지역문제해결사업으로 구성돼 있다.

올해 주민소통 공모사업은 지난 2월 사업공고(2.1) 이후 총 42개 팀이 응모했다. 심사단은 1차 서류 및 현장심사(3.14), 2차 면접심사(4.2)를 거쳐 최종 30개 팀(이웃소통 17, 지역문제해결 13)을 선정(4.4)했다. 예산집행지침 및 보탬e시스템 교육(4.26)까지 마친 선정 단체는 100만 원에서 300만 원까지 지원받아 5월부터 11월까지 사업을 진행하게 된다.

한편, 종로마을N을 발행하고 있는 (협)마을대학종로는 2022년 「사라진 싱아를 찾아서」, 2023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에 이어 올해에도 「종로, 역사의 라이벌」을 주제로 3년 연속 지역문제해결사업을 운영한다.

※ 신청링크 - https://forms.gle/WEDAYEzeFM9LPySSA

2024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종로, 역사의 라이벌」 by (협)마을대학종로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용산 도시산책

Part 1. 오염으로 바라본 용산 다크투어

지난 4월13일,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이 진행한 용산미군기지 담벼락을 따라 걷는 다크투어에 동행했다. 첫 포스트는 이태원광장에 있는 지하수 집수정이다. 상단부를 높인 철제 구조물에 알록달록 그라피티 작업을 해놓았는데, 뒤로 돌아가보니 기름냄새가 풍겨나왔다. 겉으로 보아서는 이것이 인근의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온 오염된 지하수를 모아놓는 시설이라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다.

녹사평역 1번출구에서 전쟁기념관으로 향하는 철조망 담장길을 “라일락 꽃향기 맡으며(이문세)” 걸었다. 미군정청 자문관으로 근무하던 엘윈 M. 미더(Elwin M. Meader)가 1948년 북한산 백운대에서 털개회나무 씨앗을 채집해 미국으로 돌아가 개량하였다. 그리곤 자문관 시절 자신의 사무보조원이었던 한국 여성의 성을 따 ‘미스킴 라일락(Miss Kim Lilac)’으로 이름 지었다. 구상나무처럼 우리나라 토종식물이 외국에서 교배되어 역수입된 안타까운 사례다.

메인포스트와 사우스포스트를 잇는 구름다리 밑을 지나 전쟁기념관으로 향한다. 한강로1가 삼각지파출소 옆 골목부터는 적산가옥이 수십 미터 이어져있다. 횡단보도를 건너 한진중공업 건물로 향하는 왼편 공사부지에서 또하나의 ‘킴(Kim)’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조선육군창고’로 조성한 곳에 2019년까지 캠프 킴(Camp Kim)이 자리했다. 주한미군을 지원하는 한국노무단(KSC)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미군이 운용한 지하저장탱크에서 기름이 새 지하수를 타고 퍼졌다. 토양에서는 맹독성 발암물질인 다이옥신이 검출된 바 있다. 그런데 정화작업은 서울시가, 정화비용은 중앙정부가 떠맡고 있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구속력 없는 관련 규정을 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이 평택의 캠프 험프리(Camp Humphrey)로 이전해 간 후 미군위문협회(USO) 건물을 2020년 12월까지 ‘용산공원 갤러리’로 운영했었다. 이제 땅값만 4조원인 이곳 한강로1가 1-1번지 금싸라기 터에 초고층 빌딩숲이 들어설 전망이다.

투어팀은 완공 시한을 넘겨 아직도 공사중인 남영동 대공분실을 확인하고 삼각지역으로 선회했다. 1939년 일제가 설치한 삼각지 로터리는 한강, 서울역, 이태원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배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의 “삼각지 로터리를 헤매 도는 이 발길” 노랫말처럼 1967년 용산 방면이 추가되어 4방향의 타원형식 입체교차로 역할을 하다가 1994년 오히려 급증한 교통체증과 노후화로 철거되었다.

마무리 포스트는 2023년 5월4일 개방된 ‘용산어린이정원’이다. 이곳은 각자가 웹사이트에서 예약한 후 직접 방문해보길 권한다. 百聞不如一見. 직접 겪어봐야 한다. 왜군(임진왜란)과 청군(병자호란·임오군란)이 주둔했던 땅을 다시 일본군(청일전쟁·러일전쟁)이 장악하고 이어서 미군(해방·한국전쟁)이 들어와 차지했다. 용산의 중첩된 시·공간을 생각하매 가슴이 답답해온다.




Part 2. 미군기지와 도시산책

4월20일 어제는 아임스토리가 마련한 ‘저자와 함께 떠나는 용산 역사문화 산책길 투어’에 함께했다. 용산도시기억전시관 2층 세미나실에서 저자의 사전강의를 들은 후 아세아아파트 예정지(부영건설)부터 용산가족공원 태극기광장 북쪽까지 3㎞ 빗길을 걸었다.

일본제국주의가 조선지배와 대륙침략의 핵심 인프라로 건설한 용산역은 경의선(경성~신의주)과 경원선(경성~원산)의 출발지이자 경부선·경인선이 경유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용산역 주변에 일본군 사령부(1907), 통감부 철도관리국(1906), 철도관사, 철도병원, 철도학교 등이 설치된 이후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용산은 경성부의 일부로 편입하고 신흥도시로 변모했다. 원래의 용산을 밀어낸 신용산의 탄생이다.

공사장 높은 펜스가 늘어선 골목을 지나 용산세무소 마당에 섰다. 남쪽 뚝방선로 위로 이촌역을 향하는 경의중앙선 전동차가 마치 한 세기전 화륜거마냥 기묘한 인상으로 다가온다. 서빙고로 건너편 파크타워 아파트 106동 뒤편 벤치에서 10시 방향 1.2㎞ 전방까지 뻗은 서빙고근린공원 산책로를 조망할 수 있다. 이후 국립중앙박물관 북면에서 미8군도로를 따라 좌우로 늘어선 사우스포스트와 메인포스트의 주요 건물과 멀리 남산서울타워까지 바라보았다.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은 △용산기지 △한강대로 △남산자락 △독립의지 △시대전환 △마을부군 △서빙고로 등 7개 꼭지로 구성돼 있다. 김홍렬 저자는 ‘조선통신사 사행길’이 빠져있다고 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2018년 3월, 서울시 주무관 시절의 저자가 안내하는 팀에 합류하여 숭례문에서 이태원부군당까지 걸었었다. 그리고 2019년 6월에는 캠프 킴(Camp Kim) 자리의 ‘용산공원 갤러리’에서 대면했던 기억도 있다. 자칭 ‘용산김씨 시조’ 김홍렬 저자의 쉼 없는 열정과 다년간의 수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과 지도를 꼼꼼하게 체크하고 첫 투어를 마련해준 아임스토리 분들도 수고 많으셨다. 이번 신간이 대중에게 용산 공간을 바로 인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용산 미군기지와 도시산책」 안쪽면에 ‘용산산책지도’가 인쇄돼 있다. 책 띠지가 이렇게나 유용하게 활용된다.

아임스토리 남정인 대표와 용산김씨 김홍렬 저자.

4월20일 오후, ‘저자와 함께 떠나는 용산 역사문화 산책길 투어’ 사전강의에서 김홍렬 저자가 자료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동편, 용산가족공원 내 태극기광장 북쪽에서 우중 단체촬영(사진=아임스토리 밴드)


2024년 4월 15일 월요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5번의 독립

어제 낭독음악극 「통인동 128번지」는 30분으로 줄인 약식 공연으로 연행되었다. 참여연대 건물 뒤편, 우당이 국내로 잠입했을 때 묵었던 통인동 128번지는 안타깝게도 지난해 철거되어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건석철회시호 6형제… 존 레논의 아나키즘적 가사가 인상적인 「Imagine」을 떠올린다.

박건호 역사컬렉터가 제시한 키워드 ‘다섯 가지 독립’이 강렬했다. 저 ○○이 구체화되는 그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1st 독립. 1896년 11월 21일 → 淸(중국)으로부터의 독립
2nd 독립. 1919년 3월 1일 → 독립(선언)기념일, ‘민국’수립, 독립선언서≠독립청원서
3rd 독립. 1945년 8월 15일 → 일본으로부터의 독립, 독립일, liberation, emancipation, 불완전한 독립, 대한민국 27년
4th 독립. 1948년 8월 15일 → 미군정으로부터의 독립, ‘자주’독립, 정부수립, 대한민국 30년
5th 독립. ○○○○년 ○○월 ○○일 → 통일, 자주독립 완전달성


이은숙「서간도 시종기」 정정화「장강일기」 허은「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 한도신「꿈갓흔 옛날 피압흔 니야기」 등 풍찬노숙을 마다하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책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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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기념관, 임시정부사 이야기 공연 개최
의정원홀서 첫 공연 「역사의 조각을 줍는 사람들」 진행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81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1919.4.11) 105주년을 맞아 임시정부의 역사를 활용한 이야기공연(토크콘서트)이 열렸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관장 김희곤)은 14일 오후 2시, 기념관 지하1층 의정원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역사를 만나는 첫 번째 이야기 공연 「역사의 조각을 줍는 사람들」을 개최했다.

먼저, 오프닝 공연으로 우당 이회영, 영구 이은숙 부부의 치열했던 삶을 그린 낭독음악극 「통인동 128번지」가 박형준, 신이현, 이동학 배우, 공혜원 연주가의 열연으로 객석의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통인동 128번지」의 연출자인 정대경 감독이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두번째 패널로 나선 박건호 역사컬렉터는 자신의 역사자료 수집품에 담긴 ‘독립’의 의미를 풀어내어 참여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임시정부기념관은 올해 광복절을 맞아 두 번째 이야기 공연(8.11)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한국광복군 이야기」, 순국선열의 날을 계기로 개최되는 세 번째 이야기 공연(11.16)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임시정부 사람들을 알아보는 「비하인드 씬: 무대 뒤의 사람들」을 내용으로 관객과 호흡할 계획이다.

14일 오후,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의정원홀에서 열린 임시정부사 이야기 공연 「역사의 조각을 줍는 사람들」에서 정대경 감독(위), 박건호 역사컬렉터가 이야기하고 있다.


2024년 4월 12일 금요일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

‘정의의 불꽃’ 앞 무대에서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 본선에 오른 12개 합창팀이 경연 중이다. 「그날이 오면」 「상록수」 「내 나라 내 겨레」 「홀로아리랑」 같은 익숙한 노래가 퍼지면 관객들이 따라 부른다.

10개 팀이 여성합창단이고, 인천지역 공무원동호회 ‘코러스판타지’와 ‘성동구립시니어합창단’만 유이한 혼성팀이다. 광주시여성합창단과 코러스판타지, 성동구립시니어합창단이 똑같은 「나 하나 꽃 피어」를 선보였다. 주최자인 강북구의 강북시니어합창단이 축하공연으로 「홀로아리랑」 「뭉게구름」을 부르며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랬다. 심사 결과 칸타타 ‘동방의 빛’ 중 「희(希)」를 부른 용산구립합창단이 첫 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구태여 송현동 부지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우리 헌법 전문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라는 반대여론에 직면해 있다.

저 강물은 흐르는데 우리 어찌 죽었다 말하리.
밀려오는 사월의 그날을, 진달래 향기는 이리도 붉은데.
굽이치는 물결 위로 그날의 그 함성 되살아 솟구쳐.
일어서는 사월 오늘은, 진달래 그 향기 파도쳐 오리라.





강북구,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 개최
자유·민주·정의 4.19혁명 정신 계승·발전하고 공유하는 마당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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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금) 오후 2시, 서울 강북구가 주최한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가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렸다.

이번 전국 4·19 합창대회는 자유, 민주, 정의의 역사인 4·19혁명 정신을 계승·발전시키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공유하기 위하여 강북구가 진행하고 있는 4·19혁명 국민문화제의 하나로 올해 처음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예선을 거쳐 이날 본선에 오른 전국의 성인합창단 12개 팀은 ‘정의의 불꽃’ 조각상 앞 특설무대에서 4·19혁명 정신의 자유, 민주, 정의를 주제로 한 자유곡으로 경연을 펼쳤다.

12일 오후 서울 강북구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에서 12개 참가팀이 본선 경연을 펼치고 있다.

첫 순서는 안양 동안구여성합창단이 권진원의 「그대와 꽃피운다」를 들고 무대에 섰다. 이어서 △노원구립여성합창단(그날이 오면) △강동구립여성합창단(상록수) △대전 유성구여성합창단(문을 열어라) △광진구립여성합창단(내 나라 내 겨레) △용산구립합창단(칸타타 ‘동방의 빛’ 중 희希) △경기 광주시여성합창단(나 하나 꽃 피어) △인천 코러스판타지(나 하나 꽃 피어) △관악구립여성합창단(Ain't No Grave Can Hold My Body Down) △도봉구립여성합창단(홀로아리랑) △양천구립합창단(새 날이 오면)이 무대에 올라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뽐냈다. 마지막 12번째 무대는 성동구립시니어합창단이 「나 하나 꽃 피어」를 불러 객석의 박수를 받았다.

심사 결과가 집계되는 동안 경연에 참가한 모든 합창단원이 「4·19의 노래」를 합창하는 장관을 연출하여 큰 감동을 선사했다.

12일 오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에서 성동구립시니어합창단이 「나 하나 꽃 피어」를 열창하고 있다.

12일 오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에 참가한 합창단원들이 함께 모여 「4·19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날 대상(국가보훈부장관상)은 용산구립합창단이 수상하며 상금 500만원을 차지했다. 이어서 △최우수상(서울시장상·300만원)은 광진구립여성합창단 △우수상(강북구청장상, 200만원)은 유성구여성합창단과 도봉구립여성합창단 △장려상(4.19혁명국민문화제위원장상·100만원)은 광주시여성합창단과 성동구립시니어합창단이 각각 수상했다.

12일 오후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열린 제1회 전국 4·19 합창대회 경연을 마친 유성구여성합창단이 응원 나온 정용래 유성구청장과 함께 기념 촬영하고 있다.

한편, 4월 12일 전국 4·19 합창대회와 함께 개막한 4·19혁명국민문화제는 오는 19일(금)까지 다양한 문화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강북구 곳곳에서 펼쳐진다.

2024년 4월 2일 화요일

연백 출신 최종대氏… ‘진상규명 투쟁’ 감사패 받아

백남기기념사업회, ‘진상규명 투쟁’ 공로자에게 감사패 전달
88세 최종대氏, 2016년 보성에서 서울까지 도보순례 완주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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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명평화일꾼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이하 사업회)는 지난 3월13일(수) 오후 3시, 5.18민주화운동기록관 다목적강당에서 ‘2024 정기총회’를 열고 새 이사장을 선출했다.

이날 3대 이사장으로 선임된 장휘국 前광주광역시 교육감은 故백남기 농민과 광주서중, 광주고교 동문이다.

사업회는 그동안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한국진보연대와 故유문철, 이문영, 최영추, 최종대, 황성효氏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감사패를 받은 최종대님은 올해 88세로 황해도 연백이 고향이다. 백남기 농민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며 지난 2016년 2월 11일부터 27일까지 전남 보성역에서 서울대병원까지 16박 17일간 물러섬 없이 도보순례 일정을 함께 한 바 있다.

한편, 사업회는 오는 5월 보성 웅치면 부춘마을에서 밀밭길 추억 행사, 9월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서 8주기 추모제 및 생명평화상 시상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는 지난 13일 정기총회에서 ‘진상규명 투쟁’ 공로자들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사진=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 제공


2024년 3월 26일 화요일

제가 떠나겠습니다, 신부님.

신부님, 나라가 이 지경입니다. 하 수선하고 시끄러운 소리만 자꾸 들려오는데, 이 나라 백성으로 어찌 눈 감고 귀 닫고 입 닫고 모른 척 지낼 수 있겠습니까?
종교적인 문제에 있어선 얼마든 신부님의 지시를 따르겠습니다. 허나, 국가와 애국심에 관한 문제라면 신부님은 그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집이 아닙니다. 숙명입니다. 이 산하에 사는 자의 운명입니다.
신부님, 제 정치적 언사가 신부님의 성무에 어떤 방해를 끼친답니까? … 죄송합니다. 신부님께 염려를, 신부님 성무에 방해를 드려서요. 하지만 저는 분명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그것을 눈감고 귀 닫고 모른 척 지낼 수 없습니다. 제가 떠나겠습니다, 신부님.

3년 전 안도마는 그렇게 부모와 두 형제를 데리고 떠났다. 그 이후 거사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 음악극 「안중근의 고백」, 국립극장 달오름, 2023.10.6(금) PM 7:30


2024년 2월 22일 목요일

단심(丹心)의 슬픔

단재 신채호 순국 88주기를 맞아 낭성귀래 묘소에서 참배하고 옛일을 생각했다.

추모식장 단재 영정 우편의 용산발 화환이 강점의 그날처럼 부끄러웠다.

△我와 非我의 투쟁 사관 △묘청의 조선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사건 △상고사 연구 △낭가사상 △조선혁명선언 기초로 상징되는 쓸쓸한 아나키스트의 한 조각 붉은 삶(丹生)에 나는 겨울비처럼 서러워졌다.

짧지만 강렬했던 박자혜와의 보랏빛 신혼은 소나기처럼 지나갔다.

님은 역사를 이어 잇겠다 했건만 우리는 여직 바다를, 반도를 잇지 못하고 있으니…

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수파희어로

11월17일은 을사늑약이 강제된 날(1905)이자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일(1932)이다.
2019년 여름, 군산 원도심의 장미동과 영화동을 답사했다. 구영7길의 ‘다호’ 게스트하우스 벽면에 윤봉길, 김구, 안중근의 얼굴과 함께 秀波喜語路(수파희어로) 다섯 글자가 선명했다.
빼어날 秀수, 물결 波파, 기쁠 喜희, 말씀 語어, 길 路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 임정주석 김구,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슈퍼히어로Superhero로 손색없는 지사들이다. 흉상 철거니 독립영웅실 철수니 하면서 닛뽄 리쿠군시칸갓코 태릉캠퍼스 따위가 어찌해 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란 말이다.

秀波喜語路 수파희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