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의 첫날, 임시공휴일에 소요산 자재암에 올랐었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옛일을 떠올리거나, 국가 보물로 지정된 「반야심경」 언해본을 만나거나, 한가로이 슬슬 거닐며 소요(逍遙)할 생각으로 산행에 나선 것이 아니다. 하나밖에 남지 않은 동두천의 옛 성병관리소를 보존하고자 애쓰는 분들과 잠시나마 함께하기 위해 몇몇 지인과 미리 날을 잡았었다.
그동안 동두천시는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에 궤도굴삭기를 동원하여 경기북부어린이박물관쪽으로 돌아서 진입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철수했고, 철거를 지지하는 관제데모를 동원하기도 한 모양이다. “미국이 도와줘서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그래서 성병관리소는 철거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공대위 전언)는 시의장의 속내는 차라리 솔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옛 성병관리소의 평화적 전환과 활용을 지지하는 이들의 “당시엔 달러벌이 애국이고, 지금은 감추고픈 수치인가”란 피켓문구가 상황을 요약해 준다.
지난 구월에 만난 남악의 金선생은 공무원=禁治産者로 규정해서 나를 놀래켰었다. 저 선홍색 조끼 입은 사람들의 무지하고 막지한 죄과를 어이해야 할까. 홉스의 말대로 국가는 거대한 폭력, 리바이어던이다.
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 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 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 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이원규, 「단풍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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