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 11일 금요일

가회동 서측 걷기

조동사의 부정문 만들기

[편집자 주 : 서울특별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공모한 「2020년 시민참여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협)마을대학종로의 ‘기가 막힌 FAKE 뉴스’가 선정되어, 8월27일(목)부터 10월8일(목)까지 5회에 걸쳐 최병현, 변자형, 김수민, 김서중, 윤호창 강사가 주제에 따라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중 2번째 프로그램인 9월12일(토) 현장답사에 대한 내용을 두 편으로 나누어 송고합니다. 탐방 주제는 「조동사(朝東史)의 부정문(不正文) 만들기」입니다.]

(1편에 이어서…)

김형태가옥 경성사진관
고하길 서쪽 끝자락 중앙고입구 삼거리에서 북촌로를 따라 50m 남하하면 김형태가옥이다. 1930년대에 여러 필지로 쪼개져 개발된 종부사장(宗簿司長) 이달용(1883~?) 소유의 옛 땅에 ㄱ자형 사랑채, ㄷ자형 안채, ㅡ자형 문간채로 건립된 김형태 가옥은 당시 북촌에 지어진 도시형 한옥에 비하여 큰 규모와 격식을 자랑한다. 1999년 가회동의 도로 확장으로 대지의 일부가 잘려나가고 높은 축대가 쌓였는데, 지금은 한옥스튜디오 경성사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여기서 30m 남쪽에는 1976년 김경섭·김충섭·김정섭(김강유) 3형제가 설립한 도서출판 김영사의 서울사무소가 있다. 기자가 읽은 김영사 최고의 책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이다. 문득 이번 탐방 내용인 페이크(Fake)와 부정문(不正文, 바르지 않은 글)을 생각해 보기에 어울리는 책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계동 석정보름우물을 통해 살펴봤듯이 북촌 가회동은 1795년 4월5일 주문모 신부 집전으로 조선땅의 첫 정식 미사가 봉헌된 역사적인 공간이다. 북촌로쪽 마당에 춘향목 적송(赤松)으로 꾸민 사랑채를 내고 안쪽은 현대식 성전으로 치장한 지금의 가회동성당은 주변의 기와지붕 집들과 어울리는 조화로움이 편안하게 다가온다.
안마당, 성지마당, 아랫마당, 미니마당, 하늘마당 등 5개의 마당 공간이 성당의 설계 중심이 된 것도 특이한 점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에 올라가 보글보글한 한옥지붕을 조망하는 것은 또다른 가회(嘉會, 아름다운 모임)가 된다.

주변과 조화로운 가회동성당
가회동성당에서 200m 남단, 가회동주민센터 위쪽에 손병희 집터를 알리는 표석이 있다. 의암 손병희(孫秉熙, 1861~1922)는 수운 최제우, 해월 최시형의 뒤를 이어 1897년에 동학 제3대 교조에 올랐다. 손병희는 일제가 침탈한 국권을 10년 안에 되찾겠다고 다짐하고, 1912년 강북구 우이동에 12칸짜리 ‘의창수도원’을 세워 인재양성 교육을 시작했다. 1914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배출한 483명의 천도교 인재들은 3·1운동을 준비하고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다.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 중 15명이 천도교인이었다. 손병희는 전통이라는 쌀에 항일의 누룩을 빚어 자주독립의 물로 걸러낸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고 전한다.

표석을 보고 오른쪽 북촌로7길로 직진하면 백인제가옥이 나온다. 이곳은 1913년 이완용의 외조카이자 한성은행 전무였던 한상룡(韓相龍)이 압록강 흑송을 가져다 집을 짓고 1928년까지 거주한 연유로 ‘한상룡옛집’으로도 불린다. 1935년 개성 출신의 부호였던 언론인 최선익(崔善益)이 사들여 1944년까지 소유했다. 최선익은 조선중앙일보사를 인수하여 발행인을 맡으면서 여운형을 사장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1941년 스승이 운영하던 병원(현 인제대학교 부속 백병원 자리)에 백외과(白外科)를 개업한 백인제(白麟濟, 1899~?)가 1944년 옛 최선익의 집을 인수했다. 평북 정주의 부호 출신인 백인제는 3.1운동에 참여해 옥고를 치렀으며, 광복 후 1948년 5.10총선 때는 서울 중구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력이 있다. 백인제는 6.25전쟁 중 동생인 백붕제와 함께 납북되었다. 백붕제의 아들이 문학평론가 백낙청이다. 백낙청의 형 백낙환이 백부인 백인제의 의업을 이어 백병원과 인제대학교(경남 김해)를 설립했다. 서울특별시 민속문화재 제22호로 지정(1977)된 백인제가옥은 2015년 1200여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암살」에서 친일파 강인국(이경영 분)의 저택으로 설정됐다.

북촌로5길 고개는 주변에 붉은 흙이 많아 홍현(紅峴)이라 불렸고, 궁중의 화초를 키우던 장원서(掌苑署)가 있어서 화개동, 줄여서 화동(花洞)으로도 불렸다고 전한다.
김옥균·서재필 등 조선정부에 몰수된 개화파 관료들의 집터에 1900년 관립중학교가 설립된 이후 교명이 관립한성고등학교(1906), 경성고등보통학교(1911),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1921), 경성제일공립고등보통학교(1922), 경기공립중학교(1938)로 변경돼왔다. 1976년에 경기고등학교가 강남구 삼성동으로 이전하면서 1977년부터 정독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료관동(1927)과 도서관동·휴게실동(1938) 등은 건축 당시 철근콘크리트와 벽돌벽 구조, 스팀 난방방식을 도입한 최신식 학교건물로 가치를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재 제2호로 지정됐다. 도서관1동과 2동 사이엔 이곳이 을사오적과 경술국적에 이름을 올린 외부대신 평재 박제순(朴齊純, 1858~1916)의 집터였음을 알려주는 우물돌이 있다.
겸재 정선이 인왕산을 바라보며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그렸던 자리가 정독도서관 정원이다. 갤 제霽,  빛 색色… 비가 그친 후 맑게 갠 하늘색 풍광을 보기 위해선 서로가 서로의 페이크(Fake)와 부정문(不正文)을 씻어내리는 한줄기 시원한 소낙비가 되어주어야 한다.

정독도서관 정문 건너편은 동아일보의 창간사옥 자리(東亞日報創刊社屋址)이다. 동아일보는 1920년 4월1일(목) 박영효를 사장으로 타블로이드판 4면 체제로 창간되었다. 
동아일보는 일제강점기 문맹퇴치와 한글보급을 위한 브나로드 운동, 박정희 정권 하 백지광고 참여를 불러온 불합리한 체제비판의 야당성 등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으나 우리 사회를 뒤흔든 오보도 많이 냈다. 그중에 올해 2월,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이 펴낸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보도 100선」 제2장 33편 ‘동아의 모스크바 삼상회의 가짜뉴스’(58쪽)에는 최악의 오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사건이 기술돼 있다.

조선·동아 최악보도 100선
“동아일보는 1945년 12월 28일에 열리는 삼상회의 결과를 발표 이전에 미리 가짜뉴스로 보도했다. 사실과 정반대로 미리 보도한 것이었다. 사실은 소련이 신탁통치할 이유가 없으니 즉시 독립시키자는 것인데 반해 미국은 5년 이상 신탁통치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타협안으로 5년 신탁통치를 통한 임시정부 수립에 합의된 것이었지만 동아의 이 같은 가짜뉴스로 우익진영은 즉시 독립시키자고 했다는 미국을 지지하는 ‘반탁’으로, 처음에는 역시 ‘반탁’을 지지했다가 모스크바 삼상회의가 신탁통치 합의로 발표되자 ‘찬탁’의 입장으로 돌아선 좌익진영으로 나뉘어 반목 대립하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이승만과 한민당은 즉시 독립이라는 명분으로 ‘반탁’을 통해 친일세력을 포함한 모든 우익진영을 단결시키려고 했다. 친일세력은 자신들의 친일경력을 즉시 독립을 위해 노력하는 ‘애국자’로 포장했다. 오늘날 좌우대립이라는 남남갈등의 씨앗은 이렇게 뿌려진 것이었다.
그러나 한민당 송진우 총무(대표)가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 보도를 보고 “미·영·소 삼상 결정이 세 나라에 의해 합의된 것이고 이를 우리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고 발언했다가 다음 날 자택에서 피격 사망하고 말았다. 한민당의 수뇌도 삼상회의 결과를 받아들이고 임시정부 수립으로 가자고 합리적 판단을 했지만, 우익 친일세력의 방침에 따르지 않는 인물은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처단하려고 했다.”

모스크바 3상회의(1945.12.16~26)와 관련해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하고 미국은 즉시 독립을 주장한다는 기사(1945.12.27)는 명백한 오보였다. 민족주의·민주주의· 문화주의를 3대 사시(社是)로 이어오고 있다는 동아일보는 이제라도 우리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오보를 인정하고 앞으로 오보를 줄일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북촌로5길을 걸어 종친부(宗親府)에 다달았다. 종친부는 임금의 어보(御譜)와 어진(御眞)을 보관하고, 종실·제군의 인사와 분규를 처리하던 관청이다. 경근당·옥첩당 건물은 (구)국군기무사령부 내 테니스장을 짓기 위하여 1981년 정독도서관으로 강제 이전된 후, 2013년 원래 위치로 이전·복원됐다. 종친부(宗親府)의 본채 경근당(敬近堂)과 복도로 연결된 옥첩당(玉牒堂)의 ‘옥’자는 양쪽에 옥구슬이 있는 형상이어서 특이한데, 아스키나 엡시딕 문자로도 어떻게 표기할 방법이 없다. 종친부 옆에는 의빈(儀賓, 부마)의 인사 문제를 관장하는 의빈부가 있었다고 한다.
 
양쪽에 옥구슬이 있는 형상의 독특한 ‘옥’자를 쓰는 종친부(宗親府) 옥첩당(玉牒堂) 현판

종친부에서 율곡로로 내려가는 길의 왼편 송현동 일대가 순종의 장인 윤택영(1876~1935) 후작, 오른편 간동 일대가 윤택영의 형 윤덕영(1873~1940) 자작 형제의 해평윤씨 세거지(世居地)였다.

율곡로1길 좌측의 사간동 법륜사(法輪寺)와 두가헌(斗佳軒)은 고종의 후궁 광화당 이씨와 삼축당 김씨의 거처가 있던 곳이다.
금강산 유점사의 경성포교당으로 시작된 불이성 법륜사(不二城 法輪寺)는 태고종(太古宗) 소속의 사찰이다. 1950년대 조계종은 독신을 주장하는 비구승(比丘僧, 이판승) 세력과 결혼을 허용하는 대처승(帶妻僧, 사판승) 세력으로 갈등을 겪다가 1962년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이 성립됐다. 그러나 중앙종회 구성에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1970년 1월 박대륜을 종정으로 하는 일파가 통합종단에서 나와 새로이 ‘한국불교태고종(太古宗)’을 발족했다. 태고종은 승려의 결혼문제를 자율에 맡기고 있다.

태고종은 2006년 법륜사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4층 규모의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 건물을 지었다.

지난 10월26일(월) 언론시민단체들이 조선동아 폐간투쟁 300일을 맞아 ‘100년 언론 대역죄인 조선동아 폐간’을 다시금 촉구했다. 시민실천단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조선동아는 자신들의 영리만을 추구하는 가짜뉴스 제작판매회사이고, 회사에 충성하는 글쟁이 종업원들은 검언유착은 물론 도둑 취재도 감행하며 견제받지 않는 사악한 권력의 극단적인 횡포를 저지르고 있다.”면서 “앞으로 500일, 1000일을 향해 가는 길이 험난해도 조선동아 폐간을 위해 초심을 잊지 않고 투쟁해 가겠다.”고 선언했다.

1993년 신신애는 「세상은 요지경」을 통해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을 친다.”고 설파한 바 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맹신은 부정의한 글(不正文)이 일용하는 양식이다.
조선일보도 호시절(好時節)이 있었다. 1920년대 조선일보 계열은 신석우, 안재홍, 이상재 등 일제에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좌파 그룹이 사회주의 세력과 함께 신간회(新幹會)를 결성(1927)하기도 했다. 민족주의 우파(타협적) 그룹의 김성수, 이광수, 최린 등 동아일보 및 일부 천도교 계열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인정하고 일제 법률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산업진흥과 교육개발로 민족의 실력을 기르자는 자치론을 주장한 것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탐방단은 약 3시간에 걸쳐 「조동사(朝東史)의 부정문(不正文) 만들기」를 살펴봤다. 그러나 지리적인 제약으로 동사(東史)와 관련한 몇몇 현장을 돌아보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조사(朝史)까지 더듬어보기 위해서는 광화문 거리를 지나 보신각 남쪽 청계천변까지 나가야 한다. 좋은 날을 잡아 다시 비판적 걷기에 나서보고자 한다.

9월12일(토) 촉촉한 가을 보슬비 내리던 날, 9人의 페이크 파인더가 『기가 막힌 FAKE 뉴스』 프로젝트 2차 프로그램 「조동사(朝東史)의 부정문(不正文) 만들기」에 참가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종로마을N에도 실렸습니다.

2020년 12월 8일 화요일

계동길 걷기

조동사의 부정문 만들기①

[편집자 주 : 서울특별시 생활속민주주의학습지원센터가 공모한 「2020년 시민참여 프로그램 지원사업」에 (협)마을대학종로의 ‘기가 막힌 FAKE 뉴스’가 선정되어, 8월27일(목)부터 10월8일(목)까지 5회에 걸쳐 최병현, 변자형, 김수민, 김서중, 윤호창 강사가 주제에 따라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이중 2번째 프로그램인 9월12일(토) 현장답사에 대한 내용을 두 편으로 나누어 송고합니다. 탐방 주제는 「조동사(朝東史)의 부정문(不正文) 만들기」입니다.]

9월12일(토) 오전 10시, 9명의 조동사(朝東史) 순례자가 안국역 3번 출구에 모였다. 안국동(安國洞)은 가회동(嘉會洞), 적선동(積善洞), 서린동(瑞麟洞)과 더불어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동명이 유지되고 있는 몇 안 되는 동네다.

제생원지(濟生院址) 표지석
계동길 입구에 약재를 취급하는 제생원(濟生院)이 있었음을 알리는 표석이 얹혀있다. 본래 제생원이 있는 동네여서 제생동(濟生洞)이라 하였는데 ‘제’와 발음이 유사한 ‘계’를 써서 계생동(桂生洞)으로 바꿔 불렀다. 그러던 것이 1914년 조선총독부의 조선 행정구역 대개편 즈음에 계생동이 기생동(妓生洞)을 연상시킨다는 일각의 주장에 따라 ‘계동’으로 줄여 부르게 되었다.

제생원지 표석 뒤편 옛 휘문중·고등학교 운동장이었던 너른 공간은 현재 현대그룹 빌딩군(群)이 자리하고 있다. 현대빌딩 12층은 2003년 8월 당시 5억 달러 대북송금과 문광부 박지원 장관 150억 비자금에 관련돼 검찰 조사를 받고 나온 후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이 투신한 것으로 보도된 곳이다.

표석 맞은편 계동길 초입은 한학수옛집이다. 1945년 8월15일 광복 당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가 결성된다. 이에 자극받은 우익 인사들이 3일 후인 8월18일 이곳 한학수가옥 사랑채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강령으로 우익진영 최초의 정당인 고려사회민주당(高麗社會民主黨)을 창당하였다. 
한학수(韓學洙)는 1905년 11월 일본제국 추밀원 의장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가 중명전(重眀殿)에서 을사늑약(제2차 한일협약)을 강요할 때 끝까지 저항했던 의정부 참정 한규설(韓圭卨, 1856~1930)의 손자 되는 사람이다. 한학수의 옛집이 그대로 남아 현재는 카페 어니언(onion)으로 운영되고 있다.

해방 후 우익진영 최초의 정당인 고려민주당(高麗民主黨)이 이곳 한학수의 집에서 발기했다.

어니언 카페에서 계동길을 100m쯤 걸어 올라가면 우편에 경우궁지 안내판을 볼 수 있다. 경우궁(慶佑宮)은 조선 23대 순조(純祖)의 생모 수빈박씨(綏嬪朴氏)의 신위를 모셨던 곳이다. 갑신정변(1884) 때에는 고종이 잠시 변(變)을 피하여 경우궁으로 이어(移御)하기도 했다. 경우궁은 현재 궁정동 육상궁(칠궁) 내에 봉안돼 있다.
경우궁을 경운궁과 헷갈려하는 경우가 많다. 경운궁(慶運宮)은 정희왕후 윤씨와 한명회의 야합으로 친동생 잘산대군(성종)에게 왕위를 도둑맞은 월산대군의 개인저택이었다. 1618년 광해군이 계모인 인목왕후(소성대비)를 경운궁에 유폐했을 때는 ‘서궁(西宮)’으로 불렸고, 종국에는 1907년 퇴위당한 고종의 궁호(宮號) 덕수(德壽)를 따라 ‘덕수궁’으로 불리게 된다.

경우궁지 안내판 맞은편은 보헌빌딩이다. 이곳은 본래 일제강점기 마포 거부 임종상이 지은 저택이었는데, 1945년 해방 직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청사로 사용됐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등록문화재 제도가 시행된다는 소문이 돈 이후 청사 건물이 헐려버렸다. 보존·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는 등록문화재 제도의 맹점으로 숱한 사적(史跡)이 사라지고 있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가 있었던 건물이 헐리고 보헌빌딩이 들어서 있다.

앞쪽으로 40m쯤 걸으면 북촌문화센터가 나온다. 구한 말 탁지부(현 기획재정부) 재무관을 지낸 인물의 이름을 따서 ‘민형기가옥’으로 부르던 곳인데, 민형기의 며느리 이규숙을 지칭하여 ‘계동마님댁’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21년경 대궐 목수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演慶堂)을 본떠 지었다고 전한다. 내외담이 보이지만, 실제는 툇마루가 사랑채와 안채를 이어주고 있다. 가옥은 2006년 3월 등록문화재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계동마님 이규숙은 1935년까지 이곳에서 살다가 옆 동네인 재동으로 이사를 나갔다.


최소아과의원이 있던 자리
지척에 보이는 2층짜리 붉은 벽돌건물은 1963년부터 2017년까지 54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최소아과의원 자리이다. 2018년 최익순 원장이 작고한 후 옷가게를 거쳐 지금은 이잌 와인바가 들어서 있다.

이잌 맞은편에 승문원지 석판이 보인다. 조선시대 외교에 관한 문서를 담당한 승문원(承文院)은 시대별로 여러 터를 옮겨 다니다가 정조 때 지금의 원위치로 회귀했다.

방향을 바꿔 창덕궁1길 언덕을 올라간다. 언덕 좌우편으로 카페와 음식점들이 늘어서 있다. 잔소리약국과 원조부대찌개가 영업하는 건물은 당진 출신 심우섭(沈友燮, 1890~1946)의 집이 있던 곳이다. 휘문의숙을 1회로 졸업한 그는 매일신보 기자로 근무하면서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과 자주 면담하였고, 태평양전쟁 전시동원을 선전하는 일에 앞장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됐다. 심우섭의 동생인 감리교 목사 심명섭도 친일파로 분류돼 있다. 이들은 「상록수」의 작가 심대섭(심훈)의 형들이다. 형제가 추구했던 ‘그날’은 이리도 달랐다.

한성부동산, 利밥 건물은 고양 출신 홍증식(洪增植, 1895~?)의 집터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영업국장을 역임했고, 1925년 고려공산청년회 활동으로 체포된 전력이 있다. 해방 후 월북하여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선전부장을 지냈다.

왼쪽부터 여운형 집터, 홍증식 집터, 심우섭 집터

대리석 단층의 안동칼국수 건물은 몽양 여운형의 계동집이었다. 중국 시절부터 무려 12번의 테러를 당한 여운형은 명륜동 정무묵의 집으로 거처를 옮기기도 했다. 1947년 7월19일 오후, 성북동에서 재미 조선사정협의회장 김용중을 만난 뒤 옷을 갈아입기 위해 계동집으로 향하던 여운형은 혜화동 로터리에서 평북 출신 한지근의 흉탄을 맞고 운명한다. 몽양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좌우합작운동을 좌절되고 시국은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8월3일 영결식날, 1936년 당시 점령국을 대표하여 베를린올림픽에 나서는 것을 꺼려했을 때 여운형의 독려에 힘입어 출전, 결국 올림픽 챔피언의 영예를 안은 손기정이 여운형의 관을 운구했다. 손기정과 관련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고 여운형은 사장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서울한옥지원센터
여흥민씨삼방파종중이 있는 계동2길을 지나서 왼편으로 꺾어 들어가 서울한옥지원센터, 북촌마을서재, 작은쉼터갤러리를 한꺼번에 둘러본다. 2015년 9월 문을 연 서울한옥지원센터는 문화재수리기능자로 구성된 한옥장인들이 한옥 대중화와 한옥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한옥응급센터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자비손한의원을 경유, 다시 계동길에 접어들어 계동피자 왼편 북촌로6길로 진입하면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6호 소목장 심용식의 청원산방(清圓山房)을 만날 수 있다.
재동초등학교 북쪽 담장을 면한 곳은 식민사학의 태두 이병도(李丙燾, 1896~1989)의 집터이자 진단학회가 출범한 터전이다. 한때 철거 위기에 처했으나 인간문화재인 대목장 정영진의 손을 거쳐 지금은 한옥 부티크 호텔 락고재(樂古齋)로 재탄생했다. 일제에 부역했던 이들에게 진단(震檀), ‘벼락 박달나무’는 어떤 의미였을까를 더듬어보는 엄숙한 공간이다.

북촌로6길을 돌아 나와 계동길에 재진입하여 걸어 올라가면 고깃집 중경삼림(重慶森林) 맞은편 골목 끝에 원파선생구거(圓坡先生舊居)가 보인다. 김성수의 백부(伯父)이자 양부(養父)인 원파 김기중의 옛집이다. 김기중은 경영난에 빠진 중앙학교와 보성전문학교를 차례로 인수하여 김성수에게 운영을 맡겼다.

짱구식당 맞은편 대동세무고등학교 진입로 오른편엔 김성수옛집이 있다. 인촌 김성수(金性洙, 1891~1955)는 1915년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넘겨받아 교장을 지냈고, 1919년 10월에 경성방직을 설립했다. 이듬해인 1920년에는 양기탁·유근·장덕수 등과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1932년 보성전문학교(지금의 고려대학교)를 인수했다. 1930년대 김성수는 실력양성론에 따른 자치운동을 지지했는데 해방 후에는 제2대 부통령을 역임하는 등 교육자·언론인·기업인·정치인으로 회자됐다. 김성수의 이름은 2005년경부터 이런저런 친일명단에 수록되는데, 2017년 4월 대법원은 그의 친일 행위를 확정했다. 이후 2018년 2월 국무회의에서 건국공로훈장 복장(현재의 대통령장) 서훈 취소가 의결됐다.

계산(桂山) 정상의 대동세무고등학교 운동장 자리에는 1950년대까지 일제강점기에 왕실 살림을 관장한 이왕직 장관(궁내부대신) 관사가 있었고, 민영환의 후손들이 거주했다는 사실이 민병진(민영환의 손자)의 구술을 통해 밝혀졌다.

청전 이상범을 사사한 제당 배렴(裵濂, 1911~1968)이 1959년부터 말년까지 살던 배렴가옥은 1926년 무렵 지었다고 추정된다.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서로 마주 보는 큰 ㅁ자형 한옥으로 등록문화재 제85호에 올라있다. 배렴 이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영상민속학자로 알려진 석남 송석하(宋錫夏, 1904~1948)가 살았다고 해서 ‘송석하가옥’으로도 불린다.

배렴가옥에서 2시 방향 30m 지점은 한용운옛집이다. 승려이자 시인,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이 1918년 9월 월간지 「유심」을 창간하고 제3호까지 발행한 유심사지(惟心社址)이기도 하다. 한옥게스트하우스 만해당, 유심당을 거쳐 지금은 일반 가정집으로 사용되고 있다.
골목 안쪽에 자그마한 조계종 격외사(格外寺) 도량이 앉아 있다. 근방에서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아름답고 특색있는 한옥군(群)을 볼 수 있다.

2013년에 복원된 석정보름우물
계동4길 진입로에 석정보름우물이 있다. 정조 임금 때 천민 망나니의 딸이 언감생심, 병조판서의 서자를 사모하여 상사병을 앓다가 종국엔 도령을 해친 후 시신을 우물에 유기하고 자신도 뒤따라 투신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부터 우물물이 15일 동안은 맑고, 15일 동안은 흐려져서 ‘보름우물’이라 불렀다 한다. 보름우물은 차고 맛이 좋아 궁에서도 길어갔던 조선시대 소문난 명천(名泉)이었다.
또한 보름우물은 초창기 한국 천주교 역사와도 관련이 깊다. 1794년 청(清)에서 입국한 최초의 외국인 사제 주문모(야고보, 1752∼1801) 신부가 1801년 새남터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계동 최인길(마티아, 1765∼1795) 집에 은거하면서 조선땅 첫 미사를 봉헌했고, 이 우물물로 세례를 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요컨대 보름우물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성수이자 포교의 원천이었던 것이다. 천주교 박해 당시 많은 순교자가 발생하자 보름우물이 핏빛을 띠고 물맛이 써져서 한동안 사람들이 먹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계동길과 창덕궁길이 만나는 곳에 중앙고등학교 정문이 보인다. 1919년 1월에 와세다대학교 유학생 송계백이 이광수가 작성한 「2.8독립선언서」 초안을 들고 선언서를 인쇄할 수 있는 활자와 운동자금을 구하기 위해 중앙고보 교사로 근무중인 보성고보 선배 현상윤을 찾아 중앙고보 숙직실을 찾아오면서 3.1만세운동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중앙고는 원조 한류드라마 「겨울연가」에서 강준상(배용준 분)이 다니던 학교로 등장하는데, 인근의 정유진(최지우 분)네 집터와 더불어 고하길과 북촌3경 일대가 겨울연가 촬영지여서 욘사마와 지우히메를 추억하는 일본 관광객이 꼭 찾는 명소로 오랜기간 유명세를 치렀다.

창덕궁길 서쪽 가회동 5-7번지 양지바른 언덕은 지도에 ‘일민문화기념관’으로 표시된 곳이다. 일민 김상만(金相万, 1910~1994)은 김성수의 장남이자 김병관의 부친이다. 재단은 김상만의 유지를 따라 일민문화상(구 일민예술상), 일민미술관을 운영하며 문화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1994년 설립됐다고 한다. 재단 대문에 2008년 작고한 ‘金炳琯’ 이름의 문패가 걸려 있다.

탐방은 북촌로를 지나 가회동으로 이어진다. (2편에 계속…)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종로마을N에도 실렸습니다.

2020년 11월 17일 화요일

갤럭시 A31 자가개통 간단 후기

11월 오늘까지 42개월(3년 6개월)간 써왔던 Galaxy Wide2를 떠나보냈다.

지난주 목요일(12일) 스승님 두 분이 SK텔레콤 대리점에서 Galaxy A31로 기기변경하는 것을 도와드리다 덩달아 폰 교체를 결심하게 됐다. 물론 충동구매는 아니다. 와이드2의 바듯한 16G 용량에 고민하던 터였다.

11번가 몰 SK공식대리점에서 기기변경 조건으로 견적을 내봤다. 선택한 월 통신요금에 휴대폰 할부금을 더한 월 납부금액이 24개월 약정시점까지는 지금보다 2천원이 더 나온다. 하지만 약정이 끝나면 지금보다 오히려 6천원이 내려간다.

자가개통이라고 해서 약간의 망설임도 있었지만, 그래도 중급 유저 이상은 된다는 자신감으로 밀어붙였다. 어제 아침에 11번가를 통해 주문을 했고, 오늘 오후에 우체국 택배로 배송 받았다. 나의 3번째 스마트폰이다.

언박싱… 기기, 충전기(C타입), 이어폰, 필름 2장, 투명 케이스 2개가 동봉돼 있다.

구폰은 사전에 100% 만땅으로 충전을 해놓았다. 그리고 카카오톡에서 더보기 > 설정 > 채팅 > 대화 백업(대화 백업, 대화/미디어 백업하기)을 마쳤다.

안내장에 나온 프로세스와 11번가의 동영상을 참고하여 데이터 옮기기 작업에 들어간다.

구폰에서 유심과 SD카드를 제거하여, 신폰 트레이를 열어 장착하고 삽입했다. 부팅 후 Smart Switch 앱을 이용해 구폰에서 신폰으로 데이터 전송을 마쳤다. 전송된 항목은 연락처, 통화기록, 메시지, 앱, 설정, 홈 화면, 이미지, 동영상, 음악, 문서, 파일 등이다.

신폰의 카톡에 들어가니 “이전 휴대전화에서 카카오톡 대화기록을 백업해 주세요”라는 메시지가 뜬다. 무사히 대화내용(데이터)을 복원했다. 다만, 오픈채팅방의 예전 내용은 복구가 안 된다.

스마트택배 앱도 구폰에서 백업한 데이터를 신폰에서 복원했다. 그리고 벨소리, 알림 소리 등을 선택하여 마음에 드는 사운드로 변경했다. 설정 > 휴대전화 정보 > 소프트웨어 > 빌드번호에서 빠르게 연타하여 휴대전화 정보 아래쪽에 {}개발자 옵션을 생성했다.

구폰의 카카오톡을 지우고, 2020년 12월 31일자로 서비스 종료된다는 T연락처도 Google로 전송하고 삭제했다.

갤럭시 A31 기기는 일단 와이드2의 16G에서 64G로 저장공간이 대폭 늘어났다. 물론 와이드2는 공기계로 유용하게 사용할 것이다. 성능과 디자인… 아무래도 새삥이 좋다. 처음으로 시도해본 온라인 구매에 만족스런 자가개통이다.

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 회원전 「열매를 맺다Ⅴ」


한국여성생활연구원(원장 정찬남)이 주최하고,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회장 권택선)가 주관하는 「꿈꾸는 사람들, 열매를 맺다Ⅴ」전이 10월14일(수)부터 19일(월)까지 종로구 인사동길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서 6일간 열린다.

이번 회원전은 한국여성생활연구원 창립 42주년을 축하하는 기념 전시회를 겸하고 있다.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은 1978년 8월27일 봉천동 달동네 쪽방교실에서 개원한 이래 40여년 동안 문해교육, 여성교육, 노인교육, 다문화교육, 역사문화탐방, 바리스타과정, 종이접기교실, 평생교육 실습, 검정고시과정 등을 운영하며 배움에 목마른 이들과 함께 평생교육을 실천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지정한 ‘학력인정 초등·중학 문자해득프로그램 운영’ 기관이자  ‘1365 자원봉사자’ 수요처이기도 하다.

경인미술관 아틀리에 입구에 닥종이로 만든 호박들이 쌓여 있다. 이 중에는 진짜 호박 몇 개도 포함돼 섞여 있는데, 좀처럼 구별해낼 수 없다.

전시회에서는 13명의 회원이 번갈아 나서 아틀리에를 찾는 관람객에게 닥종이 인형 제작과정과 작품에 대해 소개한다.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에서 만든 전시 작품 60여 점에는 2년에서 12년 경력의 닥종이 인형 작가 13인의 정성이 한껏 담겨있다.

철사를 골절해 한지를 한겹 한겹 뜯어 붙이는 닥종이 인형 작업은 아무리 빨라도 수개월이 걸린다. 회원들은 제작과정을 통해 전통복식과 민화를 연구할 수도 있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스리며,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생활연구원에서 20년이 넘게 영어 교사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이향 연구회원은 “우리 연구회는 한지의 우수성과 확장성에 주목하여 전통한지의 현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민화의 다양한 색감을 닥종이에 입혀보고, 향후에는 심리학에 닥종이인형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시작품에 작가명만 보이고 작품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질문에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작품명에 매몰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토의를 거쳐 작품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의 닥종이인형 작업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명동 가톨릭회관 522호에서 진행된다.

권택선 회장은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닥종이인형 작품을 감상하며 코로나19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면서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는 닥종이 공예 활동을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닥종이 문화를 더 깊이 알고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문의: ☎02-727-2471)

아래 사진은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 전시된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원 몇 사람의 닥종이 공예 작품을 기자의 입맛에 따라 촬영한 것이다.

(위)김이향  (아래)정찬남


(좌)최진석  (우)이미희


(좌)권순미  (우)이혜란


(좌)최진석, (우)최경남


강미란 작가의 여성 흉상 작품은 앞뒤가 다른 일명 ‘아수라 백작 얼굴’의 변형이다. 앞쪽은 연분홍 스웨터에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고, 뒤쪽은 흰색 라운드에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다.


(위)권택선, 권순미, 김명자, 최진석, 최경남, 김이향의 닥종이를 활용한 전등 작품  (아래)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원 13인의 닥종이 흉상 작품들은 하나 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작품에는 작가의 얼굴이 묻어난다.

2020년 8월 21일 금요일

새날희망연대 “시민사회운동가 박원순의 삶과 철학” 포럼

8월14일 금요일 오후3시 명동향린교회 1층…

123차 새날희망연대 포럼에 다녀왔다.

“시민사회운동가 박원순 – 그의 삶과 철학”이란 주제로 경기고 선후배 사이라는 노정선 박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30명의 청중이 피아노 반주에 맞춰 김민기 씨의 「아침이슬」을 합창했다. 마스크를 썼다지만 엄중한 코로나 방역 시기에 굳이 합창을 해야 하나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턱스크도 한 사람 눈에 들어오니 자꾸 신경이 쓰였다.

시낭송 순서가 마련돼 있기에 고인에 대한 감동적이거나 의지적인 근사한 자작시가 낭송될 줄 알았다. 그런데 황애순, 김수인 두 분이 각각 박노해의 「가장 오래된 시」와 윤동주의 「서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새날희망연대의 월례회의에 관한 내용 등으로 30분이 지나고 난 3시30분 무렵에야 본격적인 포럼이 시작됐다. 노정선 박사는 나무위키와 네이버 등에서 인용한 듯한 A4 4쪽 분량의 유인물을 15분 가량 읽어나갔다. 말미에 고 박원순 시장의 철학을 3가지로 요약했는데…

첫째, 박 시장은 열매(實)를 강조하는 신실학 실용주의(實用主義, pragmatism) 노선을 추구했고,

둘째, JIT(just-in-time)를 실행하여 ‘적당할 때 적절하게 즉시 문제를 해결’하는 적시공급시스템을 지향했으며,

셋째, JPSS(Justice, Participation, Sustainable Society), 정의롭게 참여할 수 있으며 지속 가능한 사회의 건설을 꿈꿔왔다는 것이다.

15분 간의 짧은 강연 후 진행자가 참석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자유발언을 유도했는데… 수업 시간에 대야 해서 먼저 퇴청했다.

자유발언 시간에 박 시장이나 가짜미투에 대한 반론, 미투운동의 왜곡, 2차 가해, 사자명예훼손 등 어떤 얘기들이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강연만 놓고 본다면… 고인의 죽음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기대하고 참석했던 만큼 실망스런 포럼이 아닐 수 없다.

2020년 8월 8일 토요일

강남(江南) 갈 채비 마친 새끼제비 4남매

충남 서천의 한 시골집 처마에 앙증맞은 새끼 제비 네 마리… 7월 중순 무렵의 모습이다.

중국땅 장강(揚子江) 이남이든, 동남아 인도네시아·필리핀이든 먼 길 떠날 채비를 마쳤다고 재잘거리는 듯하다.

군청의 요청으로 동네 미술 종사자들이 그린 제비 벽화가 마을 골목길 담벼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2020년 8월 2일 일요일

함양 농월정… 달을 희롱하며 물을 흘려보내며

용추폭포(龍秋瀑布) 심진동(尋眞洞), 수승대(搜勝臺)가 있는 원학동(猿鶴洞)과 더불어 함양땅 안의삼동(安義三洞)으로 불리는 화림동(花林洞) 화림계곡은 8정8담(八亭八潭)이라 하여 8개의 담에 8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이 중에 정자는 거연정(居然亭)과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胡亭), 농월정(弄月亭) 4곳만 남아 있다.

정자 문화의 보고 화림동에 위치한 농월정 (사진=김순조)

화림동 계곡 하류에 자리한 농월정은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1571~1639)가 낙향 후 지은 정자다.

1614년(광해군6)에 이이첨·정인홍 등 대북파가 광해군을 종용해 선조의 계비(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고 소성대비(昭聖大妃)를 유폐시키자, 박명부는 직언으로 항소하다가 파직당한 후 고향 안의로 귀향했다.
박명부는 1623년 인조반정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참판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1636)을 당하여 남한산성에서 주전파(主戰派)로 강화(講和)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굴욕을 당한 후 낙향하여 67세 때인 1637년 농월정을 완공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68세인 1638년 강릉도호부사에 제수되어 봉직하다가 이듬해 69세로 별세했다.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이름은 이백(李白, 701~762)의 <고풍(古風)> 10수 시구절 ‘명월출해저’(明月出海底, 밝은 달이 바다 밑에서 나오는 것 같다)에서 따온 것으로 ‘달을 희롱하며 노는’ 풍류가 드러나 있다.

농월정 편액은 명나라 사신으로 온 주지번(朱之蕃)이 썼다고 전한다.

농월정은 1899년을 마지막으로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해왔으나 1986년 무렵 화재로 인하여 전소됐다. 2015년 9월12일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에 정자 뒤쪽 중앙 1칸에 판방(바람막이 작은방)을 둔 옛 모습대로 복원됐다. 추녀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운 모습이 특이하다.

농월정 앞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반석을 월연암(月淵岩, 달바위)이라 하는데, 그 면적이 1천여 평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옥구슬 구르듯이 암반을 타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달과 같이 둥글게 형성된 소(沼)를 월연담(月淵潭)으로 부른다.

함양 용추계곡 내 용추폭포 (사진=김순조)

2020년 7월 15일 수요일

고구려 무덤군과 통일인문학

7월9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마지막 6일차 11차시는 건국대 세계유산학과 김경미 초빙교수의 ‘세계유산 고구려고분벽화’이다.
김경미 교수가 소개한 유네스코 제정 협약들… ▲전시 문화재 보호협약(1954, 헤이그 협약)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금지에 관한 협약(1970) ▲수중문화재 보호협약(2001)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2003) 중 2가지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유네스코의 협약들은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나 실천방안이 없어 완전하지 못하다.

고구려는 BC 3세기에서 AD 7세기 사이에 중국 동북부 및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한 가장 강력한 왕국 중 하나다. 고구려의 가장 잘 알려진 유산은 돌로 축조한 후 돌과 흙으로 덮은 돌방무덤과 돌무지무덤이다. 당대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인 이 무덤들은 고구려 중기의 것으로, 많은 무덤들이 아름다운 벽화를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 1만여 점 중 100여 점이 벽화로 장식되었고, 이 중 80여 점이 북한에 있다. 북한에서 확인된 고구려 고분 가운데 벽화가 그려진 16기의 무덤을 포함해 63기의 개별 무덤이 있다.

북한의 연속유산으로 평양시, 평안남도, 황해남도를 비롯한 서북부 일대에 분포한 동명왕릉, 덕흥리 벽화무덤, 약수리 벽화 무덤들은 아름다운 벽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 문화, 매장 풍습, 신앙을 보여주는 특별한 유산이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은 고구려의 탁월한 창조성, 동아시아 역사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벽화의 미적(美的) 우수성, 능묘 천장 등 독특한 건축구조 등의 우수함 등이 인정받았다.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으로 요녕성 환인현의 오녀산성, 길림성 집안현의 국내성·환도성(환도산성 등), 왕릉(13기), 광개토대왕비, 귀족무덤(26기, 무용총·각저총·장천고분 등)을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왕성은 ▲오녀산성(五女山城) ▲국내성(國內城) ▲환도산성(丸都山城)이 등재됐다.
왕릉은 ▲마선626호표 ▲천추묘 ▲서대묘 ▲마선2100호묘 ▲마선2378호묘 ▲칠성산871호묘 ▲태왕릉과 호태왕비 ▲임강묘 ▲우산992호묘 ▲장군분과 1호배장묘가 있다.
귀족묘에는 ▲각저묘 ▲무용묘 ▲마조묘 ▲왕자묘 ▲배문교 ▲염모묘(모두루총) ▲산연화묘 ▲장천2호묘 ▲장천4호묘 ▲장천1호묘 ▲우산3319호묘 ▲오회분1호묘 ▲오회분2호묘 ▲오회분3호묘 ▲오회분4호묘 ▲오회분5호묘 ▲사신묘 ▲우산2112호묘 ▲사회분1호묘 ▲사회분2호묘 ▲사회분3회묘 ▲사회분4호묘 ▲형묘 ▲아우묘 ▲절천장묘(껵인천장묘) ▲구갑묘(거북등묘) 등이 있는데, 이중 42곳이 집안에 위치한다.

북한은 ‘고구려 무덤군(Complex of Koguryo Tombs)’으로, 중국은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라는 공통된 테마로 2004년 동반등재했다.
이처럼 등재 형식이 북한은 단순 고분군인 반면 중국은 무덤을 포함한 수도 관련 왕성 등 도읍지 공간개념을 중심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중국의 고구려 유산이 북한 쪽 유적을 개념상 포괄하는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즉,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위한 기본 틀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인가하는 문제를 지닌다.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평행삼각고임천장의 우수한 건축술(위)과 각저총 주실 모줄임 양식 천정 성수 배치도(아래)
일월성신은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을 말한다. 해는 동그란 원 안에 삼족오(세발까마귀)가 들어간 문양이며, 달은 둥근 원 안에 약절구를 찧는 옥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진 문양이다. 토끼가 약절구에 찧고 있는 것은 불사약인데 도교의 신선들은 비밀리에 불사약을 만들었다고 믿어졌다. 일월성신은 우리 민족이 믿어온 오랜 민속신앙이다.




한국사 시간 문화 파트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고분 양식으로 접했던 모줄임천장(抹角藻井天障)은 네 모퉁이에서 세모의 굄돌을 걸치는 식으로 반복하여 모를 줄여가며 올린느 돌방무덤의 천장이다. 모줄임 천장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큰 네모 안에 작은 네모, 그 안에 더 작은 네모가 각각 45도씩 방향을 돌려가며 작아지는 형상으로 보인다.
비록 스크린을 통해 본 것이지만 강서대묘(평양, 6세기 말~7세기 초)의 ▲현실 천정(황룡 부분) ▲북쪽 천정의 비천과 넝쿨무늬 ▲말각조정(末角藻井, 모줄임천장) 벽면과 천정 사진에서는 천년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수산리 귀부인도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고구려 상류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일본 국보인 나라현 다카마쓰 고분 서쪽 벽에 그려진 여인군상도의 여인은 평안남도 남포에 있는 수산리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색동 주름치마에 웃옷으로 치마를 덮는 고구려풍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어 수산리 묘주부인상과 흡사하다. 고구려 문화가 일본 아스카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로 많이 인용된다.

북한의 고구려고분벽화는 공기에 노출된 고분의 변색으로 인한 훼손, 관광을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 없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7월9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마지막 6일차 12차시는 통일교육원 김진환 교수의 ‘인문학의 눈으로 본 통일’이다.
김진환 교수는 기존의 통일담론을 평가하는 데서 ‘통일인문학’의 출발점을 잡았다. 지금까지의 통일담론은 주로 ‘제도의 통일’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어 왔는데… 통일은 형식적으로는 제도와 제도의 만남으로 이루어지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과 공생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방안’은 정치·경제제도의 통일에 대한 구상과 함께 ‘사람의 통일’ 방법을 포괄할 필요한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에 앞서 자신과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통일 추진의 주된 동력이 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이 본격화되던 시절에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통일하자’는 주장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3항(이산가족·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4항(경제협력을 통한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의 활성화)의 ‘순서’에 담긴 뜻 되새겨봐야 한다.

(위)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종이에 유채, 14.6×18.5㎝
(아래) 북측 판문점과 마주보고 있는 남측 자유의집 내 책상의 두꺼운 조선어사전, 남북의 언어가 너무 달라 필요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수신용 초록색 전화기, 발신용 빨간색 전화기도 보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 방송대 법대생이자 택시기사였던 조재형이 작사하고 작곡가 윤민석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다. 1995년 신형원이 불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곡은 1991년에 이미 발표됐다고 한다. 당시 가끔씩 흥얼거렸기에 1절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2절 가사가 주는 뭉클함이 새롭다. 작사자 직업이 택시기사여서 평양까지 실컷 택시를 몰고 가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소망이기에 꿈 속에서라도 신명나게 평양까지 달려보고 싶다는 가삿말이 시리다.

분단 세력 몰아내고 통일만 된다면
돈 못 받아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돌아올 때 빈 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오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한국전쟁, 오랜 분단과 대결 등으로 남북한 사람들 마음 속에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이 크게 자리잡고 있고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 등의 ‘차이’가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 지닌 ‘적대감’을 해소할 수 있는 또 서로의 ‘다름’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같음’을 만들어나갈 시간과 경험 필요하고 남한 국민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급격한 통일보다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환상 너머의 통일>, 부지영 감독의 영화 <여보세요>를 봐야겠다.
장벽 뒤의 장벽, 휴전선 너머 휴전선… 망원경 안에 갇힌 건 그들인가 나인가?

2020년 7월 9일 목요일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제14기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 개설

남북경협을 뒷받침할 전문가 양성과정 수강생 모집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상임공동대표 이장희)가 남북경협을 뒷받침할 법률전문가와 실무가, 사업가를 양성하는 ‘제14기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 과정을 개설,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30일 밝혔다.

모집대상은 경협관련 법률지식이 필요한 법률가, 정부·유관기관 정책 및 기획실무자, 대북 진출희망기업의 임직원, 남북경협 기업인연구원, 남북경협에 관심있는 일반인 등으로 50명을 선착순 모집한다.

9월9일(수)일 개강하는 아카데미는 10월21일(수) 수료 때까지 6주간 11강좌(1주/1일 2강좌 또는 1강좌)로 진행되며 7강좌 이상 출석 시 수료증이 수여된다. 교육장소는 문화공간 온(1호선 종각역 11번 출구 통일빌딩 3층)이다.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는 2007년부터 시작하여 매년 6주간 총11강좌로 14년째 진행해오고 있다. 제1기 34명 △제2기 49명 △제3기 46명 △제4기 56명 △제5기 54명 △제6기 51명 △제7기 60명 △제8기 60명 △제9기 44명 △제10기 50명 △제11기 32명 △제12기 34명 △제13기 30명 등 변호사, 일반 및 남북경협 관련 기업인, 정치인, 시민단체 임원 등 총 600명의 수료생을 배출했다.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는 ‘대한변협 변호사특별연수과정’으로 인정(2013.9.12)받은 프로그램이다.

강사진 또한 전·현직 판사, 검사, 교수 및 시민사회단체 대표 등 각계각층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어 남북경협 관련 최고의 법률강좌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14기 아카데미에는 ▲정세현(1강: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홍민(2강: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윤갑구(3강: 에이스재단 대표이사) ▲진천규(4강: 통일TV대표) ▲권영경(5강: 통일교육원 명예교수) ▲안병민(6강: 한국교통연구원 유라시아북한인프라연구소장) ▲박정원(7강: 국민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김진향(8강: 개성공업지구 지원재단 이사장) ▲윤상도(9강: 서울남부지방법원 부장판사) ▲장소영(10강: 대전지방검찰청 공판부 부장검사) ▲이장희(11강: 한국외대 법전원 명예교수) 대표가 강의에 나선다.

주요 강의내용은 ▲코로나 이후 남북교착의 출구전략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남북관계 패러다임 변화 ▲남북에너지분야 협력과 한반도 평화 ▲사진으로 보는 오늘날 북한 ▲한반도 경제공동체이야기 ▲북중경협과 남북물류의 현황과 과제 ▲최근 북한법제 동향과 대외경제 개방 법제개관 ▲개성공단 법제 개관 및 법·제도적 과제 ▲경협관계관련 분쟁사례와 법률적용문제, 그 해결방안 ▲분단국의 교류·경협 관련 법제와 남북경협 ▲남북교류사업의 법·제도적 접근 등이다.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에 대한 접수 등 자세한 사항은 △전화 02-723-4770 △이메일 casnec@naver.com △홈페이지 www.casnec.or.kr로 문의하면 안내받을 수 있다.

한편 남북경협법률아카데미를 주관하는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는 7·4 남북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및 6·15 남북공동선언의 민족정신에 입각하여 남북 경제협력을 통한 한반도의 화해와 평화에 기여하고, 한민족 공영의 길로 나아감을 목적으로 지난 2003년 9월25일 발족했다.
남북경제협력사업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사업과 학술활동, 통일·평화 교육사업 등 한반도의 평화 정착에 기여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종로마을N에도 실렸습니다.

2020년 7월 8일 수요일

북한의 문예정책과 문화유산정책

7월2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5일차 9차시는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전영선 연구교수의 ‘김정은 시대 북한 문예정책과 시사점’이다.

북한 문화정책의 방향은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민족문화 건설이다. 김일성 시대에 △민족문화의 전통과 사회주의 문화예술의 접목을 시도했다면, 김정일 시대에는 △유일사상체계를 중심으로 한 주체문화예술론이 비등했다. 현 김정은 시대는 △세계 지향적인 근본 변화를 요구하는 혁신이 키워드다.





2020년 7월 7일 화요일

함양기행 7 - 페인트공

20일 토요일 저녁, 안국동 수운회관에서 교육을 마치고 바로 강변역 동서울터미털로 이동하여 김순조 선생님과 만남… 예매해 두었던 함양행 7시 고속버스에 탑승하여 3시간 만에 함양시외버스터미널에 안착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캄캄한 백전면 새터마을 휴먼스쿨명상의집에 도착, 20분쯤 후에 평창국제평화영화제에 참석하고 밤길을 달려온 김익완·정찬남·함인숙·김동선·최서현 선생님과 반갑게 도킹.
五臺山 월정사에서 쏟아진 소나기로 옷을 흠뻑 적신 일화 등 꽤나 흥미진진한 평창 이야기를 안주 삼아 1시 좀 넘어서야 취침.

예년보다 호두가 적게 달렸다.

21일 주일 아침, 마산교구 운산공소 예절을 마치고 별관 탐방… 문간의 통시와 마당의 느티나무는 안녕하다.


운산공소의 김발바라 할머니가 초대하여 잠깐 댁에 방문했는데, 이 분은 2003년 모니카 원장님이 진행한 함양 한글학교 늦깎이 학생으로 가갸거겨를 배우게 됐다. 당시 MBC-TV의 ‘문맹탈출’에서 김발바라 할머니의 문맹탈출기가 방송되기도 했다. 가난한 시골집 6남매의 맏딸로 자란 할머니는 동생들을 건사하느라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가난 때문에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에 문제가 발생하여 천주교 세례명 Barbara가 그대로 실명이 되고 말았다. 벌써 17년 전(68세) 얘기니 지금은 85세시다. 더운 날씨지만 정성으로 내오신 시골커피가 구수하다.



발바라 할머니댁 순둥이가 짖어대는 소리를 뒤로 하고 본부로 복귀, 김사부님을 모시고 함양읍내로 나갔다. 점심 외식 장소는 학사루길의 조샌집이다. 김사부님이 좋아하시는 을지로의 동강나루터와 비슷한 콘셉트의 민물고기 전문점이다. 매운탕을 맛보려했으나 메기매운탕(4만/3만), 메기찜(4만), 잡어매운탕(4만/3만)은 주문이 안 된다고 해서 어탕밥(7천)과 어탕국수(7천), 은어튀김(3만)을 시켰다. 가게 사람이 자꾸 언어튀김이 맛있다고 권하기에 도대체 ‘언어’라는 민물고기가 뭔가 하고 고민했었다. 아서라, ‘ㅡ’를 ‘ㅓ’로 발음하는 경상도 지방인지 몰랐더냐. 멋모르고 산초가루를 많이 넣어 입이 얼얼했는데, 탕맛은 좋은 편이다.


‘조센징’이란 이름에서 조선인을 비하하는 듯한 어감이 느껴지는 바람에 가게 유래가 궁금했는데, 내부에 설명해놓은 문구를 보면…
조샌집은 조생원의 집이란 뜻의 방언이다. 하지만 실제 상호를 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관청에 상호 등록을 하러 갔다가 가게 이름을 지어야 한다고 해서 급하게 지은 것이 1대 사장님의 성을 따 ‘조선생의 집’이란 뜻의 조샌집으로 정했다.…고 한다.
하기사 동이 아버지 허생원의 친구 조선달이 사시장천 뚜벅뚜벅 걷는 장돌뱅이 신세를 하직하고 함양땅까지 내려와 차려놓은 전방(廛房)은 아닐 터다.













2020년 6월 30일 화요일

한울환경교육사 과정 4일차, 생태적 문명전환과 생태생활

6월28일(토)… 한울 환경교육지도사 양성교육 일정이 진행됐다.
한울한경교육사 과정 4일차 9차시는 김용휘 전 교수의 ‘생태적 문명전환’이다. 김 교수는 인도 퐁디셰리의 오로빌(Auroville) 생태공동체에서 생활하다가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면서 지난 4월 귀국하여 현재 경주에 기거 중이라고 했다.

Short-term Variations Versus Long-term Trend 그래프를 보면…지구 온도의 5년 단위의 단기 추세(파란선)는 감소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전체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20~30년 이상의 장기 추세(빨간선)는 여지없이 우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NOAA NCDC의 데이터).

무너지는 15가지 기후변화 도미노 그래픽은 지구온난화가 15가지 이상의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상호관계를 가지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강도 높은 이산화탄소 감축이 없다면 기후변화는 심각해질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자료).

△인간과 기계의 경계 △일자리의 축소 △생명의료윤리의 문제 △과학기술이 자본에 독점될 때의 문제 △인간복제의 문제 같은 4차 산업혁명의 명암도 언급됐다.

바람직한 시나리오는 △지역자치와 세계정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넘어서 새로운 경제체제(기본소득, 국가·시장·민간 경제의 균형) △세계정부 차원에서의 지구적 문제 대응(생명의료윤리 확립) △생태농업, 종다양성 농업 △종교 중심에서 영성·수행 중심으로의 변화 등이 꼽혔다.
그러나 현 상태로라면 경로의존적 시나리오가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것은 △코로나의 일상화 △기후변화 심각, 종다양성 소멸, 사막화 △자국 중심주의·보호주의가 야기하는 전쟁 위험성 증가 △과학기술에 대한 자본의 독점으로 두 계급화(성안↔성밖)하는 것이다.

이러한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우주와 인간, 자연과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명적 전환 △더 나은 시나리오의 구체화와 보급,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에 대한 비전 제시 △내 안의 참나를 회복하는 생태적 문명 전환과 영성이 요구된다.


울한경교육사 과정 4일차 10~11차시는 교원대학교 환경학과 김찬국 전 교수의 ‘지구환경문제와 생태생활’이다.
김찬국 교수는 환경 관련 사고는 피해가 일어난 지역이 아니라 원인을 제공한 기업이나 배 이름으로 사고 명칭을 짓는다고 서두를 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지만, 2007년 겨울부터 통용된 ‘태안 기름유출사고’는 ‘삼성-허베이스피릿호 기름유출사고’라고 불러야 한다.

김 교수는 우석훈의 책 <생태페다고지>도 소개했다. 다만, 연별별로 제시된 △생태 에티켓(유아) △생태 감수성(초등학생) △생태 지혜(중학생) △생태 용기(고등학생)는 교차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의견을 덧붙였다.


저자 린 체리(Lynne Cherry)가 열대림을 보호하다가 살해당한 치쿠 멘데스(Chico Mendes)에게 헌정했다는 어린이 그림책 <커다란 판야나무 The Great Kapok Tree>(개정판 제목: 아마존 열대 우림의 속삭임)도 많은 걸 생각케 했다. 숲의 원주민 아이(A native child)가 속삭인 말 “Senhor, when you awake, please look upon us all with new eyes.”(“아저씨, 당신이 깨어 났을 때, 우리 모두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숲을 떠나는 작은 남자… He hesitated. Then he dropped the ax and walked out of the rain forest.(그는 망설였다. 그런 다음 도끼를 떨어 뜨려 우림 밖으로 나갔습니다.)

커다란 케이폭나무 숲에 가보고 싶다.
저자 린 체리(Lynne Cherry)가 열대림을 보호하다가 살해당한 치쿠 멘데스(Chico Mendes)에게 헌정했다는 어린이 그림책 <커다란 판야나무 The Great Kapok Tree>(개정판 제목: 아마존 열대 우림의 속삭임)도 많은 걸 생각케 했다. 숲의 원주민 아이(A native child)가 속삭인 말 “Senhor, when you awake, please look upon us all with new eyes.”(“아저씨, 당신이 깨어 났을 때, 우리 모두를 새로운 눈으로 바라봐주세요.”) 그리고 숲을 떠나는 작은 남자… He hesitated. Then he dropped the ax and walked out of the rain forest.(그는 망설였다. 그런 다음 도끼를 떨어 뜨려 우림 밖으로 나갔습니다.)

에콜로지는 과학으로의 생태학(Ecology: Scientific Ecology)과 윤리·철학으로의 생태주의(Ecology: Ecologism)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물발자국을 통해 농산물, 식품, 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데 사용되는 물의 총량인 가상수(virtual water) 개념을 익히고, 케냐의 슬픈 장미, 차드의 난민수용소 일화도 아프게 들었다.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행동들 △끊임없이 학습하기 △내 생활방식의 영향 생각하기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기 △내가 사는 지역의 자연을 경험하고 느끼기 △투표를 통한 참여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실천하기 △위축되지 않기 △내가 먼저 실천하기 등을 바로 수행해야 한다. 2012년 당시 16세의 보얀 슬랫(Boyan Slat)은 어떻게 해양쓰레기를 없애려는 생각을 하고 실천했던 것처럼 말이다.


울한경교육사 과정 4일차 마지막 12차시는 김춘성 전 부산예술대학교 교수의 ‘생명과 영성을 향하여’이다.

1860년 수운 최제우(1824~1864)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는 깊은 종교적 성찰을 통해 한울님과 인간과 우주만물을 유기적으로 파악함으로써 서구 근대의 인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였는데, 수운은 이를 ‘다시개벽’이라고 부르며 인류 삶의 틀이 송두리째 바뀌는 새로운 문명을 예고하고 나섰다.

수운의 도통을 이어받은 해월 최시형(1827~1898)은 이천식천(以天食天)을 통해 먹는 사람도 한울이고 먹히는 발도 한울이라는 우주 전체가 연기적 네트워크라는 인식을 보여주었다. 또 경천(敬天)·경인(敬人)·경물(敬物)의 삼경론(三敬論)를 구체화하였다. 특히 경물은 자연사물까지도 한울님이나 사람처럼 똑같이 공경하라는 동학만의 독특한 표현이지만, 자연사물을 숭배하라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해월은 한가히 있을 때 한 어린이가 나막신을 신고 빠르게 앞을 지나니, 그 소리 땅을 울리어 놀라서 일어나 가슴을 어루만지며 “그 어린이 나막신 소리에 내 가슴이 아프더라”면서 ‘땅을 소중히 여기기를 어머니 살같이 하라’고 호소한다. 모든 살아있는 것은 떨고 있다는 그의 인식이 떨림-울림-열림의 사상으로 이어진 것인가 보다.

이번 한울환경교육지도사 양성교육은 31시간 가량 진행되어 25명이 천도교 종무원장 명의의 수료증을 받았다. “나를 살리는 천지부모, 천지부모를 공경하는 우리”라는 문구가 새롭다.
긴 시간동안 원만한 진행을 위해 애써주신 천도교 한울연대의 이미애 상임대표, 정진숙 공동대표, 두정희 사무처장님께 고마움 전하고 싶다. 온화한 미소의 정윤택 교화부장님, 알뜰히 챙겨주신 파랑새 김양임 선생님께도 안부인사 드린다.
‘한울을 모시고, 사람을 섬기며, 만물을 만드는’ 일에 힘쓰는 천도교 도반님들이 환경운동과 생명운동에 전력하여 우리 시대의 가장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지혜를 모아주시길 소망한다.
―심고心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