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5일 수요일

고구려 무덤군과 통일인문학

7월9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마지막 6일차 11차시는 건국대 세계유산학과 김경미 초빙교수의 ‘세계유산 고구려고분벽화’이다.
김경미 교수가 소개한 유네스코 제정 협약들… ▲전시 문화재 보호협약(1954, 헤이그 협약)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금지에 관한 협약(1970) ▲수중문화재 보호협약(2001)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2003) 중 2가지는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유네스코의 협약들은 구체적인 제재 방안이나 실천방안이 없어 완전하지 못하다.

고구려는 BC 3세기에서 AD 7세기 사이에 중국 동북부 및 한반도의 절반을 차지한 가장 강력한 왕국 중 하나다. 고구려의 가장 잘 알려진 유산은 돌로 축조한 후 돌과 흙으로 덮은 돌방무덤과 돌무지무덤이다. 당대 문화의 대표적인 유물인 이 무덤들은 고구려 중기의 것으로, 많은 무덤들이 아름다운 벽화를 가지고 있다. 현재까지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국에서 발굴된 고구려 고분 1만여 점 중 100여 점이 벽화로 장식되었고, 이 중 80여 점이 북한에 있다. 북한에서 확인된 고구려 고분 가운데 벽화가 그려진 16기의 무덤을 포함해 63기의 개별 무덤이 있다.

북한의 연속유산으로 평양시, 평안남도, 황해남도를 비롯한 서북부 일대에 분포한 동명왕릉, 덕흥리 벽화무덤, 약수리 벽화 무덤들은 아름다운 벽화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고구려 문화, 매장 풍습, 신앙을 보여주는 특별한 유산이다. 북한의 고구려 유적은 고구려의 탁월한 창조성, 동아시아 역사 발전단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가치를 지닌 유산으로 벽화의 미적(美的) 우수성, 능묘 천장 등 독특한 건축구조 등의 우수함 등이 인정받았다.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으로 요녕성 환인현의 오녀산성, 길림성 집안현의 국내성·환도성(환도산성 등), 왕릉(13기), 광개토대왕비, 귀족무덤(26기, 무용총·각저총·장천고분 등)을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했다.

왕성은 ▲오녀산성(五女山城) ▲국내성(國內城) ▲환도산성(丸都山城)이 등재됐다.
왕릉은 ▲마선626호표 ▲천추묘 ▲서대묘 ▲마선2100호묘 ▲마선2378호묘 ▲칠성산871호묘 ▲태왕릉과 호태왕비 ▲임강묘 ▲우산992호묘 ▲장군분과 1호배장묘가 있다.
귀족묘에는 ▲각저묘 ▲무용묘 ▲마조묘 ▲왕자묘 ▲배문교 ▲염모묘(모두루총) ▲산연화묘 ▲장천2호묘 ▲장천4호묘 ▲장천1호묘 ▲우산3319호묘 ▲오회분1호묘 ▲오회분2호묘 ▲오회분3호묘 ▲오회분4호묘 ▲오회분5호묘 ▲사신묘 ▲우산2112호묘 ▲사회분1호묘 ▲사회분2호묘 ▲사회분3회묘 ▲사회분4호묘 ▲형묘 ▲아우묘 ▲절천장묘(껵인천장묘) ▲구갑묘(거북등묘) 등이 있는데, 이중 42곳이 집안에 위치한다.

북한은 ‘고구려 무덤군(Complex of Koguryo Tombs)’으로, 중국은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Capital Cities and Tombs of the Ancient Koguryo Kingdom)’라는 공통된 테마로 2004년 동반등재했다.
이처럼 등재 형식이 북한은 단순 고분군인 반면 중국은 무덤을 포함한 수도 관련 왕성 등 도읍지 공간개념을 중심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중국의 고구려 유산이 북한 쪽 유적을 개념상 포괄하는가’ 하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즉, 고구려사의 중국사 편입을 위한 기본 틀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인가하는 문제를 지닌다. 이것은 중국의 동북공정의 일환에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

평행삼각고임천장의 우수한 건축술(위)과 각저총 주실 모줄임 양식 천정 성수 배치도(아래)
일월성신은 해의 신, 달의 신, 별의 신을 말한다. 해는 동그란 원 안에 삼족오(세발까마귀)가 들어간 문양이며, 달은 둥근 원 안에 약절구를 찧는 옥토끼와 두꺼비가 그려진 문양이다. 토끼가 약절구에 찧고 있는 것은 불사약인데 도교의 신선들은 비밀리에 불사약을 만들었다고 믿어졌다. 일월성신은 우리 민족이 믿어온 오랜 민속신앙이다.




한국사 시간 문화 파트에서 고구려와 발해의 고분 양식으로 접했던 모줄임천장(抹角藻井天障)은 네 모퉁이에서 세모의 굄돌을 걸치는 식으로 반복하여 모를 줄여가며 올린느 돌방무덤의 천장이다. 모줄임 천장을 밑에서 올려다보면 큰 네모 안에 작은 네모, 그 안에 더 작은 네모가 각각 45도씩 방향을 돌려가며 작아지는 형상으로 보인다.
비록 스크린을 통해 본 것이지만 강서대묘(평양, 6세기 말~7세기 초)의 ▲현실 천정(황룡 부분) ▲북쪽 천정의 비천과 넝쿨무늬 ▲말각조정(末角藻井, 모줄임천장) 벽면과 천정 사진에서는 천년의 아우라가 느껴졌다.

수산리 귀부인도는 세련된 옷차림으로 고구려 상류사회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일본 국보인 나라현 다카마쓰 고분 서쪽 벽에 그려진 여인군상도의 여인은 평안남도 남포에 있는 수산리 고분 벽화에서 보이는 색동 주름치마에 웃옷으로 치마를 덮는 고구려풍의 의상을 착용하고 있어 수산리 묘주부인상과 흡사하다. 고구려 문화가 일본 아스카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다는 증거로 많이 인용된다.

북한의 고구려고분벽화는 공기에 노출된 고분의 변색으로 인한 훼손, 관광을 위해 무분별하게 개발하는 상황에 대한 대응책이 없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7월9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마지막 6일차 12차시는 통일교육원 김진환 교수의 ‘인문학의 눈으로 본 통일’이다.
김진환 교수는 기존의 통일담론을 평가하는 데서 ‘통일인문학’의 출발점을 잡았다. 지금까지의 통일담론은 주로 ‘제도의 통일’에 초점을 맞춰 전개되어 왔는데… 통일은 형식적으로는 제도와 제도의 만남으로 이루어지겠지만, 내용적으로는 사람과 사람의 소통과 공생으로 완성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방안’은 정치·경제제도의 통일에 대한 구상과 함께 ‘사람의 통일’ 방법을 포괄할 필요한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경제적 이익’에 대한 기대에 앞서 자신과 이웃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 통일 추진의 주된 동력이 될 수 없을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1980년대 후반 탈냉전이 본격화되던 시절에는 ‘이산가족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통일하자’는 주장이 대중적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3항(이산가족·비전향장기수 등 인도적 문제의 조속한 해결)과 4항(경제협력을 통한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의 활성화)의 ‘순서’에 담긴 뜻 되새겨봐야 한다.

(위)이중섭, 돌아오지 않는 강. 1956, 종이에 유채, 14.6×18.5㎝
(아래) 북측 판문점과 마주보고 있는 남측 자유의집 내 책상의 두꺼운 조선어사전, 남북의 언어가 너무 달라 필요할 때마다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수신용 초록색 전화기, 발신용 빨간색 전화기도 보인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 요금 2만원♪… 방송대 법대생이자 택시기사였던 조재형이 작사하고 작곡가 윤민석이 곡을 붙인 민중가요다. 1995년 신형원이 불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원곡은 1991년에 이미 발표됐다고 한다. 당시 가끔씩 흥얼거렸기에 1절은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2절 가사가 주는 뭉클함이 새롭다. 작사자 직업이 택시기사여서 평양까지 실컷 택시를 몰고 가고 싶지만, 현실에서는 이루기 힘든 소망이기에 꿈 속에서라도 신명나게 평양까지 달려보고 싶다는 가삿말이 시리다.

분단 세력 몰아내고 통일만 된다면
돈 못 받아도 나는 좋아 이산가족 태우고 갈래
돌아올 때 빈 차걸랑 울다 죽은 내 형제들
묵은 편지 원혼이나 거두어오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 속에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한국전쟁, 오랜 분단과 대결 등으로 남북한 사람들 마음 속에 서로를 미워하는 감정이 크게 자리잡고 있고 가치관, 정서, 생활문화 등의 ‘차이’가 커져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 지닌 ‘적대감’을 해소할 수 있는 또 서로의 ‘다름’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같음’을 만들어나갈 시간과 경험 필요하고 남한 국민에게 막대한 경제적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급격한 통일보다는 단계적이고 점진적인 통일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남북한에 전하는 동서독 통일이야기’란 부제를 달고 있는 <환상 너머의 통일>, 부지영 감독의 영화 <여보세요>를 봐야겠다.
장벽 뒤의 장벽, 휴전선 너머 휴전선… 망원경 안에 갇힌 건 그들인가 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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