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31일 금요일

주절주절

요사이에는 회식을 마치고 늦은 저녁 귀가길 지하철을 타면 몇몇 사람들도 역시 어느정도 술 냄새를 풍긴다. 아침 출근길, 전철이나 버스 속에 앉아 있는 사람은 대개 눈을 감고 자거나 애써 잠을 청한다.
해마다 이 맘때면 망년회 특수에다 연말 선물수요같은 소비증가로 식당과 유흥가, 유통업체들은 이른바 연말 특수라는 것을 톡톡히 누려왔다. 하지만 올해는 극심한 내수부진 속에 이런 특수마저 옛 일이 되가고 있다.
백화점들이 앞다퉈 연말세일에다 각종 사은행사까지 벌이고 있지만 오히려 세일 막판으로 갈수록 매출이 줄어드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물론 지난 해보다 매출이 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반면교사’라는 말이 있지만, 꼭 닮지 말아야 할 곳이 아르헨티나다.(축구 빼고)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 세계 7대 부국 중 하나였다. 1913년에 이미 지하철을 놓았을 정도다. 74년 1만달러였던 아르헨티나의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해 3657달러로 줄었다. 전체 인구(3800만명)의 절반을 넘는 2000만명이 빈곤층이다. 지난해까지 월 평균 2000건의 시위 행렬이 거리를 메웠다. 그런 아르헨티나 경제가 망가진 것은 ‘알젠틴병’ 때문이었다.

기업의 평균 수명은 지난 한 세기 동안 놀라운 속도로 줄어들었다.
맥킨지 컨설팅 보고서에 의하면, 1935년 90년이었던 기업의 평균 존속 연도가 20년만인 1955년에는 45년으로 절반이 줄었고 1975년에는 다시 30년까지 떨어졌다.
지난 1995년에는 22년까지 내려와 급기야 2005년의 경우 평균 15년 수준으로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엄청난 속도로 변해가는 기업 환경…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말이 현실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로벌 무한경쟁속에서 살아남는 기업은 변화에 익숙한 기업뿐이다.
사업을 운용한다는 것은 ‘한순간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다.

1940년대 초 두 사람이 8848m의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도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도중에 산을 내려오면서 두 사람 가운데 한 청년이 이렇게 말했다.
“에베레스트, 너는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자랄 것이다! 그리고 반드시 돌아올 것이다.”
이 청년은 10년 후에 다시 에베레스트 산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1953년 5월 29일 마침내 등반에 성공했다.
이 사람이 바로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한 에드먼드 힐러리이다.

깊은 동면이 우리 경제의 어두운 터널을 길게 만들고 있지만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힐러리경의 인터뷰 내용이다.

“어떻게 세계 최고봉을 정복할 수 있었나요?”
“뭐, 간단합니다. 한발 한발, 걸어서 올라갔지요.
진정으로 바라는 사람은 이룰 때까지 합니다. 안 된다고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방법을 달리합니다. 방법을 달리해도 안될 때는 그 원인을 분석합니다.
분석해도 안될 때는 연구합니다.
이쯤 되면 운명이 손을 들어주기 시작합니다.”

2004년 12월 30일 목요일

책을 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이런 외국 만화를 본 적이 있습니다.
책이 가득 꽂힌 서재 앞에서 한 남자가 술잔을 든 채 여인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이 책들에는 한때 내가 되고자 했던 모습들이 담겨 있어요”라고.

‘신유목민’ 시대라 부피가 많이 나가는 책이 이동에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이 남자의 말은 맞습니다.
처음에는 큰 포부를 지녔다가 차츰 현실과 타협하면서 샐러리맨 등으로 작아진 그 사람의 영혼의 궤적이 그 서재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누군가의 집으로 초대받아 가면 뭐부터 살핍니까. 예의는 아닐지 몰라도 저는 집주인이 눈치채지 못하게 그 집에 책이 어느 정도 있는지, 그리고 어떤 장르의 책이 많은지를 살핍니다.
아무리 책을 읽지 않는 집이라 해도 어느 한구석에는 책이 놓여 있게 마련입니다.
별도의 서재를 갖출 공간이 없는 가정이라도 소파 옆의 테이블이나 침대머리맡에는 한두 권의 책이 놓여 있게 마련입니다.

얼마전 일본에서는 목욕 중에도 읽을 수 있도록 비닐로 만든 물에 젖지 않는 책이 등장했다고 합니다.
최근 급증하는 반신욕 애호가를 겨냥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 책은 물에 젖어도 찢기지 않고, 책장이 들러붙지 않는 게 특징이랍니다.
반신욕 애호가를 대상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내는 출판사의 기획력도 경이롭지만, 출판사가 그런 시도를 할 수 있는 일본사회의 ‘독서습관’이 더욱 놀랍습니다.
지하철에서건 목욕탕에서건 책을 읽는 많은 일본인들. 이들의 ‘책 사랑’이 아니라면, 이런 ‘시장’이 없었다면, 출판사가 이런 ‘목욕탕 문고’를 만들어볼 시도조차 못했을테니까요.

요즘 지하철을 타보면, 책을 펴고 있는 사람들이 전보다 많이 줄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냥 눈만 감고 있는 경우도 많고, 무가지를 들추거나 핸드폰 게임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펴들고 있는 사람은 눈에 띠게 줄었습니다.

지하철에서든 약속장소에서든, 혼자 있을 때 책을 펴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아집니다.

우리 TV는 책에 너무 인색합니다.
아무리 영상매체라 해도 읽기 문화를 진작해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고 있는 마당에 의도적으로 서재를 꾸며 보여줘야 할 판에 많은 사람이 넋을 놓고 보는 드라마에서조차 책을 보여주는 예가 드뭅니다.
그나마 책을 소품으로 이용하는 프로그램으로는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정도인 것 같습니다.

불황이라지만 세계 10위권 출판 강국의 지위는 그대로이고, 신간 종수도 예년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책을 내는 사람은 여전히 많은데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 적어졌다는 말이겠지요. 책을 내려고 애쓰기에 앞서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는 게 지식인이 아닐까 합니다.

지하철 전동차에서 볼 수 있는 문구입니다.


책이 없다면
신도 침묵을 지키고,
정의는 잠자며,
자연과학은 정지되고,
철학도 문학도 말이 없을 것이다.

- 토마스 바트린 -

2004년 12월 1일 수요일

사람……믿으시나요.

지지난주 금요일(11월 19일)에는 KBS 2TV의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을 시청했다.
<아내의 올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인터넷 고스톱에 정신없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못마땅한 남편은, 아내에게 실전 고스톱을 가르쳐주게 되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살림과 남편·아이는 뒷전이고, 집안이고 찜질방이고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 고스톱을 치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급기야 상습도박으로 경찰서 유치장에까지 가게된 아내는 전문 타짜들의 꾐으로 출소한 뒤에도 하우스 고스톱에 빠져 결국은 사채에까지 손을 대 남편 몰래 집까지 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남편은 이혼을 결심하게 되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의 설정이 늘 그렇듯이 법원에서 신구氏의 조정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고스톱… 도박… 카지노…
문득 k가 생각났다. 한때는 크나큰 미래를 그리며 함께 매진했던 파트너.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무고로 사라졌다가 초췌한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는 그의 눈을 보며 느낀 것은 초점없는 동태의 그것이었다.
한 후배를 향해 그는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말했었다.
이 말은, 그 무렵 유령같은 며칠을 보내고 나타난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가 내게 입힌 손실은 금전적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몇백이다.
하지만 그는 내몫의 우정과 기회를 내가 가장 혐오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날려버렸다.
그도 내가 여유가 있어 기천만원의 보증까지 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임에도 나의 기대와 신뢰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못났다. 이것이 더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k. 그와의 관계 역시 제로다.
역시 한때 누구보다도 친밀했던 그였지만 동상이몽 끝에 결별했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치러야할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 채권자와 신용정보회사에 시달리고
급기야 동부지원에서 지급명령까지 받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만 들었던 나의 귀얇음으로 가장 아끼는 후배와도 2~3년간 소원했다.
그무렵 이 후배와 관련하여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성향이 그랬던 사람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랐던 것일뿐’이라고…
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을까.
못났다.
후자의 경우는 아직도 미성숙한 의식의 흐름이 삶에 반영되는 때문이겠고, 전자의 경우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음에도 그와 같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미스테리다. 못났다.

지난 주말 한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도 지인들은 그들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더러 지나간 우정을 생각하고 화해하라고들 했다. 때로는 무언의 압박도 가해온다.
구체적인 언사없이 이런저런 모임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이다.

젊은날의 열정과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들이 지인들, 동문들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못났다. 가능하면 보고싶지 않지만, 언제든 술잔 앞에 마주앉을 기회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얼치기 발산을 내가 수렴하지 않는다.
내면 깊은곳의 대화는 없을 것이다.
혹 길거리 같은데서 마주치더라고 허심한 목례로 스쳐지나가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단호하다. 서로간에 트였던 물길은 이제 막아졌다.
세월은 간다고 떠난 것은 잊으라고 낙엽은 졌다.
나에게도 치유하기 힘든 데미지가 남겨졌다.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엎질러진 가슴, 지울 수 없는 추억의 조각들이 한겨울 문풍지처럼 떨게될 것이다.

지난 십년간의 사회이력…
믿었던 사람이 내몫의 돈을 횡령하는 일도 겪었고, 내막을 모르는 지인들에게 때아닌 오해도 받았고, 직원들 돈을 가로채고 탕진하여 유치장에서 젊음을 한탄하는 사장도 만나보았고, 2천만원에 가까운 급여도 떼여보았고,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는 안하무인의 거래처들에게도 치여 보았고, 이런저런 편법으로 수시로 사기 아닌 사기로 현혹하는 사람들에 부딪혀도 봤다.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이제 12월이다.
얼마전부터 내옆에는 새로운 파트너가 있다.
다시한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내 나이 서른 다섯, 스펀지처럼 푸석푸석해진 나의 세상맞이.
날 인정함으로 또 한발 내딛어 본다. 내 나이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