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1일 수요일

사람……믿으시나요.

지지난주 금요일(11월 19일)에는 KBS 2TV의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을 시청했다.
<아내의 올인>이라는 제목이었다.
인터넷 고스톱에 정신없는 전업주부인 아내가 못마땅한 남편은, 아내에게 실전 고스톱을 가르쳐주게 되는데…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살림과 남편·아이는 뒷전이고, 집안이고 찜질방이고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 고스톱을 치게 되는 심각한 상황이 전개된다.
급기야 상습도박으로 경찰서 유치장에까지 가게된 아내는 전문 타짜들의 꾐으로 출소한 뒤에도 하우스 고스톱에 빠져 결국은 사채에까지 손을 대 남편 몰래 집까지 잡히는 불상사가 발생하게 된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남편은 이혼을 결심하게 되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내와 함께 드라마의 설정이 늘 그렇듯이 법원에서 신구氏의 조정을 받게 된다는 내용이다.

고스톱… 도박… 카지노…
문득 k가 생각났다. 한때는 크나큰 미래를 그리며 함께 매진했던 파트너.
일주일이고, 보름이고 무고로 사라졌다가 초췌한 모습으로 불쑥 나타나는 그의 눈을 보며 느낀 것은 초점없는 동태의 그것이었다.
한 후배를 향해 그는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고 말했었다.
이 말은, 그 무렵 유령같은 며칠을 보내고 나타난 그에게 내가 했던 말이기도 하다.
그가 내게 입힌 손실은 금전적으로 따지면 기껏해야 몇백이다.
하지만 그는 내몫의 우정과 기회를 내가 가장 혐오하는 방법중의 하나로 날려버렸다.
그도 내가 여유가 있어 기천만원의 보증까지 섰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임에도 나의 기대와 신뢰를 무참히 무너뜨렸다. 못났다. 이것이 더 화가 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k. 그와의 관계 역시 제로다.
역시 한때 누구보다도 친밀했던 그였지만 동상이몽 끝에 결별했다.
하지만 자신이 마땅히 치러야할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 채권자와 신용정보회사에 시달리고
급기야 동부지원에서 지급명령까지 받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의 말만 들었던 나의 귀얇음으로 가장 아끼는 후배와도 2~3년간 소원했다.
그무렵 이 후배와 관련하여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원래 성향이 그랬던 사람인데 사람들이 그걸 몰랐던 것일뿐’이라고…
본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그는 알고 있을까.
못났다.
후자의 경우는 아직도 미성숙한 의식의 흐름이 삶에 반영되는 때문이겠고, 전자의 경우는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음에도 그와 같은 행동을 보여주었다.
미스테리다. 못났다.

지난 주말 한 선배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도 지인들은 그들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더러 지나간 우정을 생각하고 화해하라고들 했다. 때로는 무언의 압박도 가해온다.
구체적인 언사없이 이런저런 모임에서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나를 어렵게 만드는 얘기들이다.

젊은날의 열정과 기억들을 공유하고 있으니 그들이 지인들, 동문들 모임에 참석하는 것도 막을 수 없다.
못났다. 가능하면 보고싶지 않지만, 언제든 술잔 앞에 마주앉을 기회도 간혹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제 더 이상 그들의 얼치기 발산을 내가 수렴하지 않는다.
내면 깊은곳의 대화는 없을 것이다.
혹 길거리 같은데서 마주치더라고 허심한 목례로 스쳐지나가게 될 것이다.
나로서는 단호하다. 서로간에 트였던 물길은 이제 막아졌다.
세월은 간다고 떠난 것은 잊으라고 낙엽은 졌다.
나에게도 치유하기 힘든 데미지가 남겨졌다.
내 삶이 다하는 날까지 엎질러진 가슴, 지울 수 없는 추억의 조각들이 한겨울 문풍지처럼 떨게될 것이다.

지난 십년간의 사회이력…
믿었던 사람이 내몫의 돈을 횡령하는 일도 겪었고, 내막을 모르는 지인들에게 때아닌 오해도 받았고, 직원들 돈을 가로채고 탕진하여 유치장에서 젊음을 한탄하는 사장도 만나보았고, 2천만원에 가까운 급여도 떼여보았고, 자신의 덩치를 과시하는 안하무인의 거래처들에게도 치여 보았고, 이런저런 편법으로 수시로 사기 아닌 사기로 현혹하는 사람들에 부딪혀도 봤다.
쉽지만은 않았던 나날들…

이제 12월이다.
얼마전부터 내옆에는 새로운 파트너가 있다.
다시한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내 나이 서른 다섯, 스펀지처럼 푸석푸석해진 나의 세상맞이.
날 인정함으로 또 한발 내딛어 본다. 내 나이의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