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8일 월요일

이념을 담은 평양의 도시공간

6월22일(화) 평양탐구학교 2기 5회차에선 경기대학교에서 건축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창모 교수가 「도시와 건축으로 읽는 평양」을 주제로 이데올로기가 도시구조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서울은 조선시대 이후 제1의 도시로 山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역사도시다. 반면,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 이후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川을 품에 안고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인 계획도시다.

안 교수는 서울-평양 두 도시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과 김일성광장을 비교·대조하는 것으로 서울과 평양의 도시공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은 6·25전쟁의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옛 모습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었다. 반면, 평양은 심각한 전쟁 피해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이념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도시는 “자본주의 대도시는 모든 사회악의 온상”이라는 로버트 오웬(R. Owen)의 관점 등 자본주의 도시에 대한 반성에서 구상됐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대도시화를 지양하고 작은 규모의 도시를 선호하며, 녹지 영역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1924년 집권한 스탈린은, 구시대와의 결별을 부르짖으며 사회주의 예술로 각광받던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형식화되었다고 비판하고 그리스·로마 건축에 기초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수용하면서 과거로 회귀했다.

해방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김일성정권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등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바 건축대학 출신의 김정희(1921~1975)는 절대권력자의 요청을 받고 평양이 현재의 물리적 형태를 갖추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전후복구를 위한 1953년의 마스터플랜에서 평양 도심의 구성은 국가기관을 앉히기보다는 근로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물리적인 형식으로 상징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50년대에 주창된 주체사상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건축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준공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1974)이나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1978) 등은 소련과 동구권의영향에서 벗어나 전통을 강조하는 민족건축양식에 입각해 설계되었다. 평양의 도시 기반 시설 대부분이 전후복구 때부터 1970년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김일성광장을 사이에 두고 왼편의 조선미술박물관과 오른편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정점인 인민대학습당과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1982년에 준공된 인민대학습당은 평양시민을 위한 도서관이다. 같은 해 건설된 대동강 맞은편의 170m 주체사상탑과 함께 평양의 중심축을 형성하는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체제 우월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방증해준다. 김일성광장은 평양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10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광장이다.


평양의 공공프로젝트 : 김일성종합대학, 중앙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 신고전주의 건축양식. 스탈린이 구성주의를 버리고 고전주의 건축으로 회귀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김일성은 신고전주의양식에서 민족건축양식으로 전환했다.


매체를 통해 걸러지는 평양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쾌적한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발상 이외에도, 또다시 전쟁상황이 닥칠 경우 폭격 등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건물을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웠기 때문이다.

강의를 통해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적 스케치를 통한 도시에 대한 제안이라든가 부아쟁 계획(Plan Voisin) 같은 용어와 개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6·25전쟁 시의 폭탄세례로 초토화된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구현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하여 하나의 역사적 뿌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이 상이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도시와 건축이라는 생활양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각인됐다. 서로의 모습과 차이를 인정하는 일부터 선행돼야겠다. 젠장… 다시 출발점이다. 


스태프 선생님들이 마련해주신 유부초밥과 컵과일… 맛 좋습니다.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KSM이 마련한 「해설이 있는 NK콘서트」

6월15일(화) 평양탐구학교 4차시는 통일TV 진천규 대표가 「평양 여행가서 무엇을 먹을까?」란 타이틀로 △평양은 통화 중 △종횡무진 달리는 택시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 △북녘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2017년과 2018년에 북녘을 다녀온 진 대표에 따르면 평양시민들은 음식점·백화점·버스·지하철 등지에서 통화는 물론 사진을 찍고 게임도 즐기며 일상적으로 휴대폰을 사용한다. 식당에서는 봉사원이 태블릿PC를 통해 주문을 받고, 평양국제공항·평양호텔에서는 와이파이를 통해 남녘과 미국에 이메일을 보내면서 업무를 보았다고도 했다.

평양은 버스, 지하철, 전차(궤도·무궤도), 택시… 이렇게 4종류의 대중교통 수단이 있다. 출퇴근 시간에는 꽤 많은 차량이 이동하고, 5원 하는 버스와 지하철도 만원이라고 한다. 북녘을 방문하는 외지인(또는 외국인)은 자유롭게 택시를 탈 수 없는데, 안내원에게 이야기하여 안내원과 동행하는 ‘참관’을 할 수 있다. 진 대표가 참관한 택시 운전원은 하루 평균 40~50명을 봉사한다고 밝혔다고 한다.

진 대표는 미제를 때려잡기 위해 군사훈련을 하거나 꽃제비로 연명하고 있는 모습까지는 아니지만 북녘 아이들이 어딘가 불안하고 움츠린 모습일 거라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취재 중 마주한 아이들은 자신감이 넘치고 오히려 당돌한 모습까지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학교가 파하면 남녘처럼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평양의 4대 음식으로는 평양냉면, 녹두지짐이(빈대떡), 평양온반, 대동강숭어국이 꼽힌다. 

평양냉면에는 고기쟁반국수, 쟁반냉면, 냉면이 있다. 명예화 지배인에 따르면 옥류관 평양냉면은 하루에 1만기(器)를 봉사한다는데, 한 사람이 200g짜리를 두 그릇을 먹는 경우도 많기에 하루에 6~7천명 분을 봉사한다고 한다. 옥류관 앞에는 많은 차가 주차돼 있고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도 늘어서 있다. 시민들은 직장단위, 지역단위로 미리 발급받은 식권을 내고 입장하게 된다.

옥류관의 쟁반냉면과 쉬움떡(술떡), 청류관의 숯불구이와 대동강숭어국, 려명거리 온반집의 온반(따뜻한 밥), 경흥맥주집 스탠딩홀의 대동강생맥주, 이딸리아료리전문식당과 별무리차집의 삐쟈와 스빠게띠… 하나같이 맛보고 싶은 평양음식들이다.

진천규 대표는 북한을 방문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으로 무엇보다 언어가 통해서 좋았고, 음식이 입에 맞아서 좋았다고 했다.

옥류관 주요 요리의 정량표. ‘료리기당’은 ‘요리 한 그릇 당’이라는 뜻이다.

2층에서 내려본 청류관 홀 모습. 유명식당의 총책임자나 지배인은 대부분 여성이다.

6월16일(수) 저녁에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이 마련한 「해설이 있는 NK콘서트」를 직관했다.

가야금 연주자로 나선 박순아 씨는 오사카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3세로 조총련계 민족학교를 다니며 10살 때 처음 가야금을 접했다. 도쿄조선대학교 사범학부음악과에서 공부하고 국립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북한 명인들로부터 가야금을 사사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고대 남녘사람 우륵(于勒) 선생이 창안한 가얏고가 재일동포의 손사위로 북녘노래 ‘봄소식’을 전해준다. 그가 타는 25현 가야금 선율은 박순아라는 이름처럼 순(順)하고 우아(雅)했다.

장새납은 1970년대에 새납(태평소)을 개량 발전시킨 북녘의 목관악기로 새납보다 길다. 이영훈의 장새납 소리는 풍부한 표현력과 호탕한 음색으로 푸르지오아트홀을 가득 채우며 관객의 갈채와 호응을 이끌어냈다. 공연은 2018년 남녘 가수들의 방북공연 「봄이 왔다」가 눈앞에서 재현된 모습이었다. 음악의 힘은 철조망도 막지 못한다. 


해설이 있는 NK콘서트. 배인교 교수의 북한음악 개괄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2021년 6월 14일 월요일

당신이 지금 궁금한 ‘요즘 평양’

8일(화) 평양탐구학교 3회차에는 제주도 출신의 호주교포 정재연 씨의 좌충우돌 평양 여행기가 펼쳐졌다. 2018년 개봉한 윤종빈 감독의 영화 「공작」(황정민·이성민·조진웅·주지훈)을 보고선 북한여행을 결심했다는데, 가족과 지인들의 만류가 컸다고…

김포공항에서 2시간 걸려 베이징공항으로 이동한 다음, 북한 비자가 없는 상태에서 중국 144시간 무비자 체류 허가후 비로소 발급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광증’ 국적란(민족별)에 ‘조선’이라고 기재돼 있어 깜놀했다고…

최하위 평점으로 알려진 고려항공에 탑승하여 무슨 고기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패티와 마치 흘린 것처럼 몇 가닥 들어가는 야채로 유명한 ‘미스터리 버거’ 기내식도 맛보면서 90분 걸려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고…

북한 여행시 가져갈 수 있는 것들엔 스마트폰, 아이패드, 노트북 같은 디지털기기가 포함돼 있는데, 호텔 내에서 와이파이도 쓸 수 있고, 공항에서 SIM카드를 구입하면 국제전화도 가능하다. 반면, 북한화폐나 남한책(특히 한글로 쓰인 책, 종교서적 등)은 가져갈 수 없다고 한다.

반드시 지켜야 할 규칙은 △북한 사회주의에 대한 존중 △종교행위 No △단독행위 No △지도자에 대한 존중이다. 사진촬영 때는 주의사항이 많고, 정해진 시간 내에 쇼핑을 끝내야 한다.

미스 정(북녘 사람들의 호칭)은 △평해튼 려명거리와 저녁 마실 △25,550개의 돌이 들어간 세계에서 2번째로 높은 170m 석탑, 주체사상탑 △마실거리(코코아탄산단물·커피·7가지의 대동강맥주 등)와 먹거리(물을 넣은 비빔밥·평양랭면·오리고기·단설기·튀기·신젖·닭알·닭알아이스크림·땅콩사탕 등) △몸까기(다이어트) 특별봉사 △1973년 개통한 3개 노선 17개 역의 평양지하철과 세계에서 가장 깊은 110m 승강장 △화장품과 미용, 영화관 체험 △배그네(바이킹) 이름이 독특한 놀이공원, 개선청년공원 △남측의 판문점과 북측의 판문각 그리고 정전협정서약서 원본 △대성산혁명열사릉의 헌화 △한편으론 추레한 평양의 이면과 관찰·감시하는 눈 △북한 주민들과 함께 지낸 함경북도 홈스테이 등을 소개하며 영화 속으로 들어간 듯이 소회를 이어갔다.

요컨대 긴장과 두려움, 설렘이 잘 드러난 토크콘서트였다. 미스 정의 말대로 대통령을 탄핵하는 체제와 지도자를 신적인 존재로 대하는 체제가 통일을 이룬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허나 분명한 것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것이다. 민족도 하나, 핏줄도 하나, 땅도 하나이지 않은가. 감동과 아쉬움으로 울컥했던 감상 한 쪼가리를 뒤늦게 풀어놓는다.

#평양탐구학교


“그 무서운 데를 어떻게 갈 생각을 했을까, 겁도 없이. 빨갱이들이잖아. 너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 줄 알아? 겉으로는 웃어도 속으로는 쳐들어올 생각만 한다고.”(할머니)
“가서 한국말 하지 말고 영어로만 말해. 튀는 행동 하지 말고 질문도 하지 말고 그냥 주는 밥 먹고 조용히 있다 와. 한국말 절대 쓰지 말아. 알았지?”(엄마)


「평양, 제가 한번 가보겠습니다(당신이 지금 궁금한 ‘요즘 평양’)」, 정재연, 넥서스BOOKS, 2019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디지털 역량강화 위한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 설치

한국여성생활연구원(원장 정찬남)은 3일(목) 중구 명동 교육장에서 디지털역량교육 서울사업단(에이럭스, 대표 이치헌)과 업무협약식을 갖고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를 개소했다고 밝혔다.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은 국민 누구나 집 근처 주민센터나 도서관, 복지관, 경로당 등 생활 SOC 공간에 설치된 디지털배움터에서 수준별 맞춤형 교육을 받고 디지털 역량을 높이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로 온라인 교육, 재택근무 등 일상이 비대면 방식의 디지털 환경으로 빠르게 변화함에 따라 디지털 격차가 사회·경제적 격차로 심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과기정통부와 17개 광역시·도가 함께 추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2년차를 맞은 올해 서울 지역의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은 과기정통부와 서울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이 공동으로 주관하고, ㈜에이럭스가 교육수행을 맡아 지난 5월부터 진행하고 있다.

교육과정은 교육대상자 유형(고령층·다문화·장애인·경력단절자·재취업특화·중장년재취업희망자·청년취업희망자·창업예정자·기타)에 따른 맞춤형 교육을 위해 △디지털 기초(8) △디지털 생활(11) △디지털 심화(3) △디지털 특별(4)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세부 교육 내용은 스마트 기기, 비대면 화상회의 솔루션, SNS 등의 기본 활용법부터 교통, 금융, 전자정부 등 다양한 디지털 편의 서비스까지 생활 속 디지털 역량을 키우는 종합 프로그램으로 마련됐다.

교육은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준수하고 △배움터 집합교육 △1:1 방문교육 △비대면 온라인교육으로 진행되며, 디지털배움터 강의에 참여하고자 하는 시민은 콜센터(1800-0096) 또는 홈페이지(www.디지털배움터.kr)를 통해 신청하면 된다.

정찬남 원장은 “이번에 우리 연구원에 설치한 서울 디지털 역량강화 교육 프로그램이 디지털 격차로 소외되거나 생활에 불편을 겪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배움터를 찾아오는 분들이 원하는 교육을 편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라고 전했다.

3일 오전, 중구 제1디지털배움터(한국여성생활연구원) 개소식 모습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크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21년 6월 7일 월요일

광나루 건너서 보루 길을…

6일(日) 오전 11시, 남북역사문화교류협회가 진행하는 「서울-평양, 고구려로 만나다」 첫 현장탐방으로 아차산의 고구려 보루들을 만나고 왔다.

낙타고개에서 해맞이광장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산불진화장비 보관함(26) 앞쪽에 돌무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고구려가 아닌 신라의 부부합장묘로 추정된다는데 10㎝ 정도만 걷어내면 바닥이 나온다는 설명을 들었다.


사실 나는 돌무지무덤(積石塚적석총), 돌덧널무덤(石槨墓석곽묘), 돌널무덤(石棺墓석관묘), 고인돌무덤(支石墓지석묘), 돌방무덤(石室墓석실묘) 등 돌무덤(石墓석묘) 종류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아래]아차산 3보루 왼편에도 돌무덤 흔적이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니 왼편으로 지면에서 살짝 넓게 패인 공간이 나온다. 1보루가 있었던 곳이다. 30㎝만 파내려가도 유물이 나온다고 한다. 지금은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음식을 나누고 있는 쉼터로 변모한 모습이다. 당장은 추가 발굴계획이 없다고 했다. 발굴 최소화… 발굴 자체가 파괴행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우측 건너편에 5보루가 보인다.


아차산 5보루는 현재 출입이 제한돼 있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쌓으면 말 하나 지나갈 정도로 쌓기 때문에 아차산에서도 마도(馬道)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그리고 등산로에 보이는 돌들이 다 성돌이라고… 결국 유적은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인다는 거다.

산 아래 평지에는 백제 유물이, 고구려 유물은 주로 산지에서 발견된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됐다.

용마산 1,2보루 너머가 능리, 지금의 능동 일대다. 최종택 교수는 6세기 전반 말객이 지휘하는 고구려 둔전병이 이곳 아차산 라인에 1천명, 건너편 용마산 라인에 1천명 주둔했을 것으로 추산했다.


남쪽으로 펼쳐진 강변 앞쪽에 아차산성(아단성)이 보인다.


용마산 1,2보루 전경

1997년 봄, 무려 15세기 동안 묻혀 있던 아차산 4보루 발굴 조사를 계기로 양주와 임진강 일대, 대전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고구려 성들이 추가로 확인되었고, 2004년에 20개의 아차산 일대 보루군(堡壘群)은 사적 제455호로 지정됐다.

탐방단은 최종택 교수의 방어시설, 저수시설 등 유구배치에 대한 설명을 듣고 아차산 4보루 성벽을 돌아보았다. 건조한 겨울철엔 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말단 병졸이 산길을 따라 내려오기도 했을 거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1997년 아차산 보루 중 처음 발굴된 아차산4보루 모습


하산길에는 3보루 유적지에서 방앗간 시설을 확인했다. 방아채를 받쳐주는 화강암 지지대인 볼씨는 놀랍게도 등산로 한가운데 있어 지금도 등산객들의 발길에 차이고 있다.


3보루의 방아시설 중 하나인 디딜방아 볼씨(방아를 받치는 쌀개를 지지하기 위해 박아 놓은 돌). 사진에서 방아확(곡물을 빻는 둥근 홈이 난 돌)은 보이지 않는다.

백제군의 반격을 받은 고구려는 500년 무렵 한강이북 아차산에 보루를 축조하고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 보루군은 고구려가 한강 유역에서 퇴각한 551년경 폐기되기까지 고구려의 남쪽 최전방 군사기지 역할을 수행했다.


[위] 최종택 교수님 설명에 귀 기울이고 있는 장면을 포착해준 김현주님의 센스 만점 샷… 고맙습니다.  [아래] 15~16세기 전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명왕이 바라보았을 한강이남땅

신라나 백제에 비교해 상대적으로 유물·유적이 적은 남녘의 고구려 자취를 발로 확인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좀 더 알고 싶은 욕구가 새록새록~ 다음 아차산성 탐방 일정(6월27일)이 기다려진다.

나다움을 찾아 남다른 방식으로 전달해야

2시부터 2시간 동안 전국민 디지털역량강화교육 서울사업단(에이럭스)에서 마련한 ‘디지털배움터 릴레이 온택트 특강’을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들었다.

SK텔레콤 5GX 미디어사업CoE 임성희 박사가 「디지털 시대의 콘텐츠 비즈니스 성공 방정식」을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임 박사는 ‘BTS가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진정성 △연결 △스토리의 3가지 요소를 꼽았다.

요컨대 “진정” 나다운 것을 찾아내서, 독특한 “세계관과 스토리”로 팬(고객·수요자)들과 소통하며 “연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가는 요소가 진정성이다. 새삼스럽지만 정치권이나 기업 마케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왼편 스크린에 내 모습도 나온다. 디지털배움터 강사/서포터즈는 다자화면으로 카메라 앵글에 계속 잡히기 때문에 강의시간에는 집중 및 호응 부탁한다는 서울사업단의 요청에 나름대로 경직모드였다. 방송 카메라를 들이대면 아무래도 긴장하고 의식하게 된다.

말미에 임 박사가 15초짜리 영상 플랫폼 틱톡(TikTok)의 파워를 앞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는데, 음… 이젠 틱톡러에도 도전해야 하나…

#디지털배움터 #서울디지털역량교육 #에이럭스 #BTS #ARMY

2021년 6월 4일 금요일

평양을 바라보는 시선의 문제

1일(화) 저녁 7시, 평양탐구학교 2회차는 (주)여행이야기 박광일 대표가 「평양의 역사와 역사유적」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인(仙人) 왕검(王儉)의 택(宅), 왕검성(王儉城), 기성(箕城), 낙랑(樂浪), 부루나, 서경(西京), 호경(鎬京), 류경(柳京), 평양부, 평양직할시… ‘혁명의 수도’ 평양(平壤)은 그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왔다.

평양은 427년 고구려의 새로운 수도(안학궁)로 건립됐고, 586년에는 최대 길이 23㎞에 달하는 장안성(북성·내성·중성·외성)이 완공되면서 명실공히 한반도의 중심 역할을 담당했다. 고려 당시에도 개경, 경주, 한양과 함께 4대 주요도시 중 하나로 발전하며 제2의 중흥기를 맞이했다. 조선왕조는 전조 고려의 개경세력을 압박했고, 중국과의 지리적 근접성으로 인해 평양은 한반도 북부의 중추도시로 번영을 누렸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는 평양을 부(府)로 지정하고, 대륙 침략을 위한 공업 및 병참기지로 개발했다.

김일성 원수는 6·25전쟁으로 초토화된 평양을 포기하지 않고 일제가 추진했던 동서축을 기준으로 계획·확장하여 ‘이상적 사회주의 도시’ 공간을 구현하는데 힘을 쏟았다.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을 받은 평양성(371), 당제국의 안동도호부 설치(668), 묘청의 서경천도운동(1135), 조위총의 반무신란(1174), 몽골제국의 동녕부 설치(1270), 임진전쟁 초기 4차례의 평양성전투(1592~93),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조선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1925, 엘리자베스 키스), 근대 교육과 상공업의 도시, 일제강점기 기생권번의 도시, 서울과 함께 3·1만세운동을 벌인 도시…

그러나 1945년 이후 남녘에서는 평양에 대한 기억이 단절되거나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로 고착되어왔다. 우리는 우리의 반쪽 북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있을까? 구미에 맞춰 걸러진 자극적 정보를 뚫고 온전히 평양을 바라볼 수 있을까?

모른다. 모르기에 북녘을 이해하는 창(窓) 평양을 탐구하고 알아보자는 거다. 남이든 북이든 필터링된 정치·경제 이슈에서 한발 물러나 서로를 기억하기 위한 노력과 진심 어린 대화로 다시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