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16일 수요일

두 번의 유턴과 한 번의 직진

이른 아침에 모처럼 조조 영화를 관람했다. 요즘 가장 핫한 두 영화, 군함도와 택시 운전사… 잠깐의 망설임 끝에 택시운전사로 발권했다.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흥얼거리며 녹색 브리사(Brisa) 택시를 모는 김사복은 이렇다 할 것 없는 평범한 소시민이다. 1980년 5월, 김사복은 밀린 월세를 해결할 수 있는 거금 10만원을 받기로 하고 독일 국적의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를 태워 전라남도 광주로 향한다.
목도한 현실을 회피하는 광주 시내에서의 첫 번째 유턴, 치열한 광주와는 달리 너무도 평온한 순천에서의 두 번째 유턴, 그리고 미안함과 사명감으로 밟는 탈광주의 서울행 악셀레이터.
전두환 씨 측은 계엄군이 비무장 광주시민에게 조준 사격하는 영화의 장면은 날조라며 불편해하고 있다. 그러나 5·18기념재단의 ‘전두환 회고록’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에 법원은 인용 결정을 내렸다.
삶의 과정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과정이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가치판단이 선행되어야 한다.


2017년 8월 5일 토요일

동구릉 역사문화트레킹

오늘 34차 역사문화트레킹은 동구릉이다.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를 모신 경복궁 동쪽에 있는 9기의 왕릉을 뜻한다. 건원릉을 조성한 후부터 하나씩 왕릉이 추가되면서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다가 1885년에 수릉이 들어서면서 동구릉(東九陵)이 되었다.


먼저 찾은 곳은 추존 황제 문조와 신정황후의 합장릉인 수릉(綏陵)이다. 23대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는 일찍이 대리청정을 통해 정치력을 발휘하여 기대를 모았으나 22세의 나이로 요절하고 만다. 효명세자는 창경궁 후원에 사대부 집을 모방하여 민가 형식으로 120여 칸의 연경당(演慶堂)을 짓기도 했다. 또한 어머니인 순원숙황후 김씨의 40세 생일을 축하하는 춘앵무(春鶯舞)를 만들기도 했다. KBS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박보검이 효명세자로 분했었다.
흔히 조대비로 알려진 신정왕후 조씨는 훗날 이하응의 차남 명복(고종)을 효명세자의 양자로 삼아 철종의 뒤를 이어 왕위를 잇게 한다. 비각에서 ‘대한 문조익황제수릉 신정익황후부의’라 새겨진 비문을 살펴보았다.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은 조선왕릉 가운데 유일하게 3글자 이름이다. 건원릉으로 향하는 금천 위에는 10개의 기다란 돌이 놓여 있고, 봉분에는 특이하게도 잔디가 아니라 함경도 영흥땅의 억새가 자라고 있다.


건원릉이 단릉인 것과 마찬가지로 태조의 원비인 신의왕후 한씨의 제릉(齊陵)은 북한 개풍군에, 계비인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貞陵)은 성북구에 단릉으로 조성돼 있다.


휘릉(徽陵)은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 조씨의 능침으로 단릉이다. 정자각에 익랑(翼廊)이 붙어 있어 특이하다. 인조와 정비 인열왕후 한씨의 묘호는 파주 장릉(長陵)이다.


휘릉에서 원릉으로 이동하는 길에 방치된 채로 누워있는 의문의 석물을 박아 보았다. 무엇에 쓰는 물건이고 어디에 세워져 있던 것인지 고증하여 원상복구해야 할 터인데… 보기가 민망하다.


원릉(元陵)은 21대 영조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쌍릉이다. 비각에는 특이하게 비석이 3개나 들어서 있다. 영조의 정비 정성왕후 서씨의 홍릉(弘陵)은 고양시 서오릉 중의 하나이다.


조선왕릉이 생태계의 보고라는 말은 과연 허언이 아닌가 보다. 수릉과 현릉 사이 지점에서 장수풍뎅이 2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릉에서 내려오는 길에는 운 좋게도 막 허물을 벗고 세상에 나온 매미의 경이로움도 감상할 수 있었다.


올여름 들어 최고 폭염이었다는 고온에다 경기도 8개 시·군에 오존주의보가 발령될 만큼 트레킹하기 힘든 날이어서 수릉과 건원릉만 그런대로 둘러보고 나머지 현릉(문종·현덕왕후), 목릉(선조·의인왕후·인목왕후), 휘릉(장렬왕후), 원릉(영조·정순왕후), 경릉(헌종·효현왕후·효정왕후), 혜릉(단의왕후), 숭릉(현종·명성왕후)은 살펴보지 못했다. 특히 효명세자의 아들인 24대 헌종과 정비 효현황후 김씨, 계비 효정황후 홍씨가 하나의 곡장 안에 나란히 잠든 삼연릉 형식의 경릉(景陵)과 14대 선조와 정비 의인왕후 박씨, 계비 인목왕후 김씨의 무덤이 각각 다른 언덕에 조성된 동원이강릉의 형태를 이루는 목릉을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