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28일 화요일

봉제협동조합 솔샘일터 방문

삼양동(三陽洞)은 삼각산의 남쪽 양지라는 뜻일 터. 도로명주소가 사용되면서 ‘솔샘로’로 변경되었는데, 소나무가 무성한 삼각산의 물 맑은 샘이라는 ‘솔샘’의 이름이 예쁘다. 성북생태체험관 인근에 솔샘 발원지가 있다고 한다.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의 5개 선교본당 중 가장 오래된 곳이 삼양동 선교본당이다.
4호선 미아사거리역 5번출구나 2번출구로 나와 중앙차로정류장(09012)에서 삼양동사거리입구 방향의 1165 지선버스를 타고 SK아파트입구 정류소(09222)에서 하차하면 된다. 솔샘문화정보도서관으로 향하는 경사로를 따라 걷다보면 오른편에 비슷비슷한 계단골목이 많은데, 잘못 진입했다가는 복잡한 이면도로에서 헤메기 십상이다. 강북소방서 맞은편 몽달하우스와 북한산슈퍼 사이의 가파른 계단길로 올라가야 한번에 솔샘공동체 삼양동선교본당에 닿을 수 있다. 오는 7월 우이신설 경전철이 개통되면 조금 더 접근성이 좋아질 것이다.


봉제협동조합인 솔샘일터의 제23차 정기총회 감사미사는 일반 가정집 2층에 자리잡은 삼양동선교본당의 아늑한 방에서 이강서·나승구 신부님이 집전해 주셨다. 번듯한 성전도 사제관도 없기에 초대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 정신에 잘 부합하는 느낌이다.
솔샘일터는 1991년 9월 강북구 미아1동에 솔샘공동체가 자리잡고, 93년 10월에 이기우 신부님을 비롯 여성 3인의 출자로 조합이 구성된 후 94년 4월에 명례방협동조합의 지원을 받아 사제복·수녀복·전례복과 수의 등을 만드는 전문 생산협동조합으로 성장해 왔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종의 방한 때에는 장백의(長白衣)를 만들어 봉헌하기도 했다.
최근엔 어려운 경제상황의 여파로 영업 부문에서의 한계도 드러난 만큼 보다 실질적인 솔루션도 요구된다. 또한 명례방협동조합에서도 생산공동체와의 연대 방안을 좀 더 모색하고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제반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2017년 2월 26일 일요일

선정릉, 봉은사 역사문화트레킹

선릉과 정릉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2호선 선릉역 10번출구로 나가는 것이 빠르지만 오늘은 먼저 1번출구를 택했다. 특검이 입주해 있는 대치빌딩으로 나가기 위해서다. 지난 12월 21일 수사를 개시한 이후 박사모·일베·어버이연합·엄마부대·자총·친박 국개의원 등의 온갖 방해와 모략과 포악질에도 흔들리고 않고 쉼없이 달려오면서 문형표·김기춘·조윤선·최경희·이재용 등을 기소하였다. 다만 피의자 박ㄹ혜 대면조사와 청와대 압색이 무산되고, 우병우 구속이 불발된 것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부역자 황교안이 특검연장을 해줄리 만무하니 지금까지 보여준 정의감과 수사력은 이제 종료되겠지만, 헌정 사상 최고의 특별검사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선정릉(宣靖陵)은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으니 말그대로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고 해야 할까. 도심 속 녹지가 쾌적해 보였다.
제9대 성종(이혈)은 잘산군(乽山君) 시절 할머니 정희왕후 윤씨(세조비)와 권신 한명회의 정치적 결합으로 13세에 등극하여 38세로 승하하기까지 26년간 재위하였다. 초반 7년 간은 할머니의 섭정을 받았다. 3명의 왕비(공혜왕후·제헌왕후·정현왕후)와 다수의 후궁 사이에 20여 명의 자녀를 두어 카사노바라는 부정적 비판도 있는데, 유교적이지 못한 면은 분명히 있어 보인다. 성종이 추진했던 독서당(讀書堂) 제도에 관심이 간다.


제헌왕후 윤씨(폐비)에 이어 성종의 3번째 왕후가 된 정현왕후 윤씨(자순대비)는 중종의 생모이다. 2계비임에도 불구하고 남편 옆에 묻혀 있다. 동원이강(同原異岡)의 형식으로 조성된 성종과 정현왕후의 능은 가까이까지 접근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정현왕후 릉에 없는 병풍석이 성종의 릉에는 둘러져 있다.


제11대 중종(이역) 역시 3명의 왕비(단경왕후·장경왕후·문정왕후)를 두었으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이곳에 홀로 누워 있다. 인왕산 치마바위 전설이라든가 조광조와의 관계는 널리 알려진 것들이다.
정자각(운상각) 동쪽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2개인데, 서쪽에는 1개 뿐인 이유가 궁금하다. 정자각 뒤의 열려진 문을 통해 건너다 봐도 능묘 언저리만 얼핏 보일 뿐 정면으로 바라볼 수 없는 구조이다.


폐출된 정비 단경왕후(온릉)는 차치하고, 애초엔 1계비였던 장경왕후의 희릉(서삼릉 소재)에 중종의 릉이 조성되었으나, 풍수지리를 이유로 1562년(명종 17)에 2계비인 문정왕후에 의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그러나 저지대로 인한 침수피해 탓에 정작 문정왕후는 남편 곁에 묻히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태릉에서 잠들게 되었다.
조선왕릉은 도굴을 봉쇄하기 위해 화강암을 짜맞춰 견고한 석실(石室)로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선릉과 정릉의 세 능을 파헤쳐 재궁을 불태우고 시신을 훼손하였다고 한다. 숭악한 놈들~
선정릉(사적 제199호)은 3개의 능이 있다고 해서 삼릉공원이라고도 불리고, 그 남쪽길은 1972년 삼릉로(三陵路)로 개통되었다가 1977년 테헤란 시장이 방한하면서 테헤란로로 개칭되었다.
조선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저자도리·무동도리·부리도리였던 세 마을이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획정 때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 삼성리로 합쳐졌다가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될 때 성동구 소속의 삼성동으로 명명된 후 1975년 10월 1일에 강남구로 이속되었다.


강남 최대사찰 봉은사는 794년(원성왕 10)에 연회국사에 의해 견성사(見性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 1498년(연산군 4)에 선릉의 능침사찰이 되면서 많은 땅을 하사받고 사찰 이름도 ‘은혜를 받든다’는 의미의 봉은(奉恩)으로 개명되었다. 명종의 모친 문정왕후가 보우대사를 신임하고 불교를 장려하면서 봉은사는 선종 수사찰이 되어 승과의 과거시험장으로 사용되어 유생들의 견제를 받았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같은 고승이 장원급제 출신이다. 현판에는 수도산(修道山) 수선종(首禪宗) 봉은사(奉恩寺)라는 글씨가 써있다. 참고로 교종의 수사찰은 남양주 봉선사(奉先寺)이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의 전각이 파괴되어 재건축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건축물은 미미하다. 2015년에 9호선 지하철 봉은사역이 개통되어 접근성이 더욱 좋아졌다. 2010년에 자승 총무원장이 직영사찰로 만들어 당시 이명박 정권에 대립각을 세웠던 이른바 강남좌파 명진스님을 축출한 바 있다.


사찰삼문 중 첫 번째인 일주문의 역할은 2마리의 코끼리 석상이 대신하는 것처럼 보인다. 천왕문도 따로 진여문(眞如門)으로 부르는 것 같다. 진여문을 지나 오른편에 크고작은 부도와 탑비, 공덕비 등이 늘어서 있다.
대웅전의 현판 글씨는 추사가 쓴 진관사(津寬寺) 대웅전의 것을 모각한 것이라고 한다. 판전의 현판은 말년의 추사가 죽기 사흘전 과천에서 썼다고 해서 마지막 글씨로 이름난 것인데, 왼편에 71과병중작(七十一果病中作)이라는 낙관이 보인다.


판전(板殿) 옆 작은 비각 안에 예서체의 흥선대원위영세불망비(興宣大院位永世不忘碑)가 있다. 대원군이 땅문제로 송사에 휘말린 봉은사 측의 손을 들어준 것에 대한 감사의 내용이라고 한다. 미륵전 뒤편의 미륵대불은 23m 높이로 국내 최대의 석불이다. 영암스님이 발원하여 익산에서 가져온 돌로 10년 간의 불사 끝에 1996년에 완공을 보았다고 한다. 종루의 범종에는 비천상 무늬가 있고 상단부에 음통이 달린 양식으로 조성되었다.


봉은사에서 나와 봉은사역 2번출구를 돌아 올라가는 영동대로 언덕마루에 삼성리토성 표석이 있다. 고개를 넘어 내려가면 청담역 2번출구인데 우편은 아이파크, 왼편은 경기고등학교이다. 삼성동토성은 수도산(修道山) 능선을 둘러싼 백제의 테뫼식 토성으로 추정되는 바, 한성백제의 왕성을 방어하고 해운의 중심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보다 세밀한 발굴조사가 필요하다.


이렇게 오늘의 제23차 역사문화트레킹을 마쳤다. 인근의 논현동 K스포츠재단이나 미르재단과 연계하여 이른바 ‘부패투어’로 기획해 보아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2017년 2월 25일 토요일

We’re almost there.

공감능력 下下, 책임회피 上上 레벨의 박ㄹ혜가 취임한 지 4년째 되는 오늘, 솔샘총회미사를 마치고 광화문에서 제17차 촛불집회에 합류… 헌재의 탄핵인용과 특검 수사기간 연장, 국정교과서 폐기를 소리높여 외쳤지.


이은결의 마술과 김원중의 ‘직녀에게’도 뭉클했고, 빨간 색지로 촛불 받침컵을 둘러싼 레드카드 퍼포먼스도 돋보였다. 집에 와서 뉴스를 보니 오늘 또 한 번 100만 명이 넘는 촛불이 모였다더군. 이제 거의 다 왔다. 끝이 보인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아자아자아자~!!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읽고 보고 듣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오후에 잠깐 짬을 내어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문서와 사진, 증언으로 보는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 강연회에 다녀왔다. 공공서비스 예약시스템을 통해 사전등록을 마쳤기에 관련 자료집도 받을 수 있었다.


1941년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데이신타이(정신대, 挺身隊)로 끌려갔던 올해 92세의 김복동 할머니는 말씀 도중 복받치는 설움에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셨다.


국제사회에서 쓰이는 공식명칭은 정신대도 종군위안부도 아닌 일본군 성노예(military sexual slave by Japan)이지만, 피해자 분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 for the Japanese army)라 통칭하고 단어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작은따옴표에 넣는다.
강제로 끌려간 후 버려졌다가 다시 우리 앞에 선 할머니들에 대한 한국사회의 반응은 가문의 치욕, 화냥년, 민족의 수치였다. 심지어 당시 광복회장이란 양반은 2008년에 서울시가 서대문 독립공원 내에 일본군 위안부 박물관의 건축 허가를 내준 것에 대해 순국선열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까지 성토하며 관련 사업을 저지하기도 했다.


할머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 아픈 역사가 잊혀지는 것이라고 한다. 할머니들의 간절한 바램에 성심껏 응답하는 마음가짐과 액션이 확산돼야 한다. 아울러 털끝만큼도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일본정부와 야합하지 않는 정의로운 정부를 갖고 싶다.
오는 수요일은 98주기를 맞이하는 삼일절이다. 1272번째 수요시위에 함께 해야겠다. 중학동으로 고고고~

2017년 2월 9일 목요일

감사 vs 감사 vs 감사

감사(感謝)는 고마움을 표시하는 인사이다. ‘감사’를 일본식 한자라든가 일제의 잔재라고 폄하하면서 ‘감사합니다’ 대신 우리식의 ‘고맙습니다’를 써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감사’는 최치원의 계원필경이나 조선왕조실록, 다산 일기 등에서도 사용된 오래된 한자어이다. 그러므로 부담 없이 써도 된다.
감사(監司)는 조선시대에 각 도에서 행정권, 사법권, 군사권, 감찰권을 가진 종2품의 고위관직이다. 관찰사(觀察使)나 방백(方伯)으로도 불린다.
감사(監査)는 국정감사, 세무감사와 같이 감독하고 조사하는 것이다. 흔한 예로 감사원(監査院)이 있다.
감사(監事)는 단체나 조직의 재산이나 업무를 감독하고 조사하는 기관 또는 사람이다.


2월 5일(日) 개최된 제25차 정기총회를 통해 명례방협동조합의 13기 감사직을 맡게 되었다. 12기에 이어 연임인 만큼 보다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직무수행을 다짐해본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 사실 처음엔 ‘미안함’에서 출발했는데 시간이 쌓이면서 ‘소명감’이 더해진다.


2016년 감사총평를 통해 특별히 새롭게 주문한 것은 명례방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단체 간의 유기적인 연대와 청소년·청년 조합원 활동의 활성화이다. 
협동조합의 제반환경도 더디지만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지역생협, 대학생협, 의료생협 같은 생활협동조합도 전국 단위의 생협(전국연합회)이라면 공제사업이 허용되는 쪽으로 입법예고됐다고 한다. 때문에 조합원을 상대로 한 보험 판매가 이론상으로는 가능해진다. 지난달에 기재부에서 발표한 제2차 협동조합 기본계획(협동조합 내실화를 통한 건강한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 문건도 면밀히 검토해봐야 한다.
투명하고 공정한 감사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작금에 나라를 온통 뒤흔들고 있는 박ㄹ혜-최순실 게이트와 같은 불행한 사태는 결코 발생하지 못했을 터. 작년 가을에 불거진 아이쿱생협의 납품비리 사건 등을 반면교사 삼아 내게 주어진 감사의 고유권한을 십분 발휘하여 우리 조합원들의 권익에 보탬이 되어야겠지. 왜곡 없이 감사(監査)해야 하는 감사(監事)의 직분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