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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제25회 명동 詩낭송 콘서트 「명동은 흐른다」

“명동은 흐른다” 시낭송 콘서트 열려

문화예술의 거리 명동의 가치 되새기는 10년 세월 기념


한국여성문예원(원장 김도경)이 14일 오후 5시, 서울YWCA회관 4층 강당에서 ‘제25회 명동 詩낭송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시낭송 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0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지난날 명동시낭송콘서트와 함께한 명사들이 화면으로 축사를 전했다. 최불암 원로배우는 “명동은 대한민국의 문화 정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명동이 살아야 서울이 산다.”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김훈 작가는 “먹자골목과 쇼핑천국이 대세인 명동거리에서 10년을 버텨온 시낭송이 참으로 대단하다. 옛 명동이 가졌던 생명력을 환기해 젊은 세대에게 전수해주길 바란다.”고 전하면서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하는 역할에 충실해 줄 것을 주문했다.

도종환 시인은 현장 무대에 올라 ‘명동의 추억’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근대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명동이 주는 힘으로 가능했음”을 언급한 그는 명동의 문학은 지금도 살아있는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도 시인은 박인환, 이진섭, 나애심, 이봉구, 임만섭이 함께 했던 1956년 3월 밤의 일화를 들려주며 「세월이 가면」의 몇 소절을 즉석 해서 불러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명동에 관한 시 낭송 순서에는 이옥희, 정선근, 이주은 낭송가가 각각 △흐르는 명동(정해종) △명동의 달(김동리) △목마와 숙녀(박인환)를 낭송하여 시낭송 콘서트의 낭만 감성을 띄웠다.

▲제25회 명동 시낭송 콘서트에서 도종환 시인이 ‘명동의 추억’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도경 원장은 “2015년 이래 10년에 걸쳐 명동에 대한 재발견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의 힘으로 흐르기에 명동이 더욱 가치가 있는 듯하다. 저 혼자가 아니라 많은 분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축하공연은 식전, 식간, 식후로 나누어 임장순과 친구들, 소프라노 강태은, 포크듀오 해바라기가 출연해 객석 분위기를 돋우었다.

2024년 9월 24일 화요일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 「열매를 맺다 Ⅶ」展

개원 46주년 부대행사로 닥종이인형 전시회를 연다. 원내 동아리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원들의 작품을 뽐내는 시간이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닥종이를 한 겹 또 한 겹… 수백 번 덧입히고 채색하는 작업은 상당한 집중력과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격년마다 개최하니 비엔날레인 셈이다. 종로구 관훈동 인사동길을 거니는 분들은 한 번쯤 찾아주셔도 좋겠다.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 회원전 ―열매를 맺다 Ⅶ “사브작사브작 아름다운 마음소리”

이 작품은 수트의 완성도를 좀 더 높여야 한다.


2024년 6월 14일 금요일

「동아시아의 선종사원과 양주 회암사지」 학술대회

월말에 원내 학술동아리에서 사찰건축에 대해 발표를 한다.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을 듯하여 「동아시아의 선종사원과 양주 회암사지」 학술대회를 청강했다. 회암사는 12세기 이전부터 고려 유력 사찰의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나말여초를 거치면서 경사진 지형조건에 맞춘 배치상의 변화와 13~14세기에 온난한 기후에서 한랭해진 기후에 대응하여 온돌이 확산하는 양상을 보여준다. 15~16세기에는 상왕(이성계)의 행궁 영역이 조성되고, 보우는 문정왕후의 후원으로 대대적인 중수를 이뤄냈다. 250쪽에 달하는 두툼한 컬러 자료집이 양주 회암사지 현장답사에 대한 욕구를 불러온다. 여주 신륵사 조사당의 지공-나옹-무학으로 이어지는 선승의 진영과 계보도 다시 살펴보고 싶다.


절집은 전통건축물 가운데 살림집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신중단-보살단-불단으로 위계화된 사찰 전각의 의미와 다양한 불교미술품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HZ로 인한 왼팔뚝의 통증으로 낮동안 잠깐씩 앉아 휴식하는 꾸벅거림이 밤시간에는 어김없이 긴 불면으로 교환되면서 처리해야 할 업무와 작성해야 할 기사문이 밀려 있다. 그럴듯한 PPT를 생산해야 하는 과제까지 더해졌다. 오늘밤도 너튜브 수면유도 빗소리 스탠바이~ 외줄에 매달린 악착보살의 일념으로 용맹정진~


2024년 6월 10일 월요일

김광섭 vs. 김광균 vs. 김광림 vs. 김광규

김광섭, 김광균, 김광림, 김광규… 이 시인들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로 유명한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5.9.22~1977.5.23)은 「생의 감각」에서 고협압으로 쓰러졌다가 소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지를 노래했다.

우사(雨社) 김광균(金光均, 1914.1.19~1993.11.23)은 「와사등」에서 도시문명의 쓸쓸함과 방향감각 상실을 그리고 있다. 납북된 동생을 대신해 무역회사 ‘건설상회(건설실업)’를 경영한 기업가이기도 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 같은 시구가 떠오른다.

독문학자 김광규(金光圭, 1941.1.7~ )는 「대장간의 유혹」에서 플라스틱과 같은 무가치하고 몰개성적인 삶을 반성하고, 시퍼런 무쇠 낫과 같은 진정성 있는 삶의 회복을 열망하고 있다. 「작은 사내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

김광림(金光林, 1929.9.21~2024.6.9)의 본명은 김충남(忠男)이다. 김광균의 ‘光’과 김기림의 ‘林’에서 필명 ‘光林’을 지었다고 한다. 1950년대 장교 복무시절 외출을 나올 때마다 보급품 박스 속에 있던 양담배(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모아 화가 이중섭에게 전해줬다. 그래서인지 「이중섭 생각」 연작시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시인은 국내에서 가장 평균소득이 낮은 직업군으로 꼽히곤 한다.
슬픈 천명(天命)…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역시나 쉽게 씌어지는 시는 부끄러운 것인가 보다.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달항아리 키링

백팩에 다는 #달항아리 키링.
높이 34㎜ 지름 31㎜ 두께 3㎜. 김명희 도예가의 실험적 작품.
현존하는 달항아리는 국내외 20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백하고 절제된 조형미가 숨을 멎게 한다. 고아하고 이지적인 순백의 원이 발산하는 무심한 아름다움이 키링으로 탄생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빚어 이어 붙인 데서 나오는 비대칭성의 달항아리라면 더 좋겠다. 이 순박하고 은근한 내면의 빛을 애정한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소설을 통해 이어진 종로와 작가

혜화동과 명륜동을 걸었다. 혜화동은 1914년에, 명륜동은 1936년에 일제가 생산한 동명이다. 흥덕동, 송동, 잣골, 흙다리골, 앵두나무골, 박우물골, 피맛골, 궁안골, 박석고개 같은 우리 지명은 잊혔다. 60여 년간 혜화동을 지켜온 문화이용원의 텅 빈 공간에 마음이 애잔하다.
북묘터에서 명성황후 민씨의 진령군, 엄귀비의 현령군, 박ㄹ혜의 최태민·최순실, 굥본부장의 天公을 떠올렸다. 어디까지가 믿을 수 있는 얘기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받들 대戴(18획 戈변), 실을 재載(13획 車변)… 무심히 읽어온 성균관 노복들의 공간은 재학당(載學堂)이 아니라 대학당(戴學堂)이다.

혜화동우체국 앞에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청마의 「행복」을 읊조린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그러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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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이어진 종로 공간과 작가의 관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④ 한무숙 장편 「역사는 흐른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24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단풍의 향연이 한창인 계절의 일요일 오전, 추억의 밴드 동물원의 「혜화동」을 흥얼거리며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린다.
(협)마을대학종로가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마지막 4차시 탐방지는 혜화동과 명륜동 일부 지역이다.

덕수궁 옆 정동교회와 이화여고의 경계 보도에 ‘보구녀관(普救女館)’ 표석이 있다. 미국 감리교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가 이화학당 인근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을 세운 자리다(1887). 보구녀관의 로제타 홀(Rosetta S. Hall) 의사는 내외(內外)의 구별이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여성 환자의 진료를 전담하는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혜화동 아남아파트 자리에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마련했다(1928).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의학교육기관의 탄생이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우석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 등을 거쳐 발전하며 의료계를 이끌었다.
아남아파트 입구에 물이 많이 나서 바가지로 물을 푼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이곳 동네 이름을 박우물골, 박정동(朴井洞)이라 불렀다. 맞은편은 궁안우물골 궁내정동(宮內井洞)이라 불렀다. 조선 20대 경종(景宗)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의 친정에 큰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혜화동로터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관어당, 부인 이순경氏의 동양서림에 얽힌 내력을 알아보고 있다.

혜화동로터리 좌변으로 금문(金門), 블링크안경, 동양서림, 성진약국, 혜화동우체국이 연속하여 보인다. 동양서림은 지난해 102세로 작고한 이순경氏가 1953년 설립한 서울미래유산 인증 서점이다. 이氏는 식민사학의 태두로 알려진 두계 이병도의 맏딸로 1941년 일본 유학 중이던 장욱진과 혼례를 올렸다. 그림과 술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난 ‘업보’로 살림과 아이들 교육을 떠맡아야 했다. 학자 집안인 친정의 체면을 생각하여 고심 끝에 선택한 업종이 서점이었다. ‘동양서림’ 상호는 부친이 지어주었다.
생업을 책임진 아내 덕분에 장욱진 화백은 종로구 명륜동과 남양주 덕소, 충주 수안보, 용인 신갈을 오가며 화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여인상>과 <진진묘(眞眞妙)> 3점으로 담아냈다. 내년 2월(2024.2.12)까지 장욱진의 회화, 드로잉, 판화 등 25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으로 관람객과 만난다.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로 불리는 기농 정세권은 1920년대 익선동·가회동·혜화동 등 사대문 안쪽 좁은 땅에 방과 마루, 부엌, 마당과 화장실이 응집된 ㄱ자, ㄷ자, ㅁ자 형태의 근대 도시형 개량한옥을 선개발해 후분양했다. 1930년대에는 성북동·창신동·서대문 등 사대문 외곽지역, 1940년대에는 왕십리와 행당동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섰다.
혜화동에는 실내 공간을 넓히려 방의 벽이 담장 역할을 하면서 짧아진 처마에 함석을 덧대 햇빛을 확보하고 빗물을 방지한 정세권식 근대한옥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혜화동주민센터로 변모한 한소제의 한옥이나 향정한무숙기념관은 이러한 근대한옥의 호사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영산대학교를 설립한 부봉환·박용숙 부부의 옛집으로 추정되는 기와집과, ‘만우기념관’ 현판을 달고 있는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의 옛집은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성균관의 동북쪽 땅은 연꽃과 앵두꽃으로 유명한 한양도성 내 명승이었다. 상왕으로 물러난 이성계가 살던 집을 희사해서 지은 교종(敎宗)의 교종소(敎宗所) 흥덕사(興德寺)에서 흥덕동이란 동명이 생겼다. 연산군의 폐불정책으로 사라진 흥덕사 터에 회덕사람 송시열이 살면서 송동(宋洞)으로 회자됐다. 송시열은 바위에 曾朱壁立(증주벽립), 今古一般(금고일반) 글자를 새겼다. ‘증자와 주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벽을 세우겠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신념은) 한결같다’는 송자의 대의명분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1883년, 고종은 흥덕사터 송동에 북관왕묘를 지었다. 이는 임오군란(1882)으로 충주까지 피신한 왕후에게 환궁 시기를 예언해 준 이씨무녀(진령군)의 주청에 따른 것이다. 1884년 12월7일(음10월20일) 갑신정변 마지막날, 좌의정 홍영식은 고종 부처를 수행해 진령군이 거처하는 북묘까지 갔다가 청군에 피살됐다. 북묘터에 진령군 대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마비가 서 있다. 고종은 북묘의 내력을 북묘비(北廟碑)를 제작해 기록하고, 관왕을 관제로 높여 올렸다.
동묘에 합사된 북묘 자리에 1915년 불교계 중앙학림이 개교하여 3·1운동에 참여하고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로 학맥을 이었다. 1927년에 수송동에서 중앙학림의 동쪽으로 옮겨온 보성학교는 간송 전형필 가문이 운영을 맡았는데, 1989년 송파구 방이동으로 이전했다. 혜화동의 옛 보성중학교 자리에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보성고등학교 자리에 서울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우암 송시열의 증주벽립(曾朱壁立) 각자를 살펴보고 있다.

경술국치 이전인 1910년 1월25일에 개교한 숭정의숙은 경제력을 갖추고 신분상승을 꾀한 반민(泮民) 교육열의 산물이다. 조선의 최고학부 성균관의 다른 이름은 반궁(泮宮)이다. 천자국인 고대 주(周)나라의 국학 벽옹(辟雍)은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반면에 제후국의 학교 옆은 반쪽만 물이 흐르도록 하여 반수(泮水)라 불렀다. 소를 도축하여 성균관에 독점으로 납품하는 반인(泮人)층이 반촌(泮村)을 형성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사적 제143호)은 문선왕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자 교육기관이다.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를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의 서울문묘 은행나무들은 1519년(중종14)에 대사성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었다고 전한다. 대개 은행나무는 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의 교목도 은행나무고, 심볼마크도 은행잎을 형상화한 것이다. 남자 하인들이 거처하던 대학당(戴學堂) 앞 주목이 이채롭다.
성대 불문과 김귀정 학생이 1991년 5월 당시 노태우정권의 신공안정책에 반대하는 범국민대회(3차)에 나섰다가 충무로역 진양상가 부근에서 26세로 압사했다. 6월12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을 지날 수 없다는 유림의 반대에 부딪혀 장례행렬은 정문을 피해 도서관 옆문으로 교내로 들어가 유해를 빈소에 안치할 수 있었다.

성균관5길을 따라 걸으며 명륜동 우물터와 이가원(李家源) 가옥을 둘러보고, 동궐 후원의 옥류천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의 명륜동 빨래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봄을 모은다’는 뜻의 집춘문(集春門)은 임금이 창경궁을 나와 문묘나 성균관으로 거둥할 때 이용하던 전용문이었다. 집춘문 밖에는 개인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집터에서 나라 잃은 선비의 비장한 결의를 생각하며 머리를 숙였다.

(협)마을대학종로는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진행하면서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창작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김동인·박태원·박완서·한무숙)이 종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눈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을 보고 느끼며 결국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이러한 시각이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종로 공간과 우리의 현실 종로 공간을 교차 비교해보고 등장인물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고찰하면서 참여자 각자의 삶에 시사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년 11월 6일 월요일

2023 종묘추향대제 참관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2023 종묘추향대제를 참관하면서 △환구 △종묘 △영녕전 △사직까지 올해의 모든 대사(大祀)를 현장에서 지켜본 셈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1995)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친견하는 것은 호화롭다.
조상의 신령이 생시에 듣던 향악으로 연주하고 춤추는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의 문무 조화가 이채롭다. 나는 문무(文舞)보다 무무(武舞)가 좋다. 이제야 비로소 제례의 진행순서인 홀기(笏記)나 이를 읽는 창홀(唱笏)이 귀에 들어온다.

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에서 종합16기 전수교육 수강생들이 이원 황사손(중앙)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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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종묘추향대제 봉행
영녕전(永寧殿)은 정전에서 옮겨온 신주를 모신 별묘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22

2023 종묘추향대제가 4일 오전 10시 종묘 영녕전에서 친향례로 봉행됐다.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은 세종대인 1421년에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정전 서쪽에 새로 지었다. 정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규모만 작을 뿐 내부 구조와 외부 장식 등은 거의 비슷하다. 처음 건립된 중앙 4칸은 높게, 좌우 협실 6칸은 한단계 낮게 하였다. 동월랑은 삼면이 개방된 누각 형태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서월랑은 창고 형태로 지어졌다.

영녕(永寧)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중앙 신실에는 태조의 4대조인 △목조(1실) △익조(2실) △도조(3실) △환조(4실) 순으로 모셨다. 서익실에는 5실부터 10실까지 △정종 △문종 △단종 △추존 덕종(의경태자) △예종 △인종을, 동익실에는 11실부터 16실에 △명종 △추존 원종(정원군) △경종 △추존 진종소황제(효장세자) △추존 장조의황제(장헌세자) △의민황태자 영왕을 모시면서 왕 16위와 왕비 18위 등 총 34위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왕국과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은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의 친향례(親享禮)로 거행된 이날 종묘추향대제는 사회자 역할의 집례(執禮)와 안내자 역할의 찬의(贊儀)가 먼저 절하고 봉무 위치로 나아가는 취위(就位)를 시작으로 △신관례(晨祼禮) △궤식례(饋食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망료례(望僚禮) 순으로 진행됐다.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과 11월 첫째주 토요일에 모셔진다.

[상]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 신관례에서 상월대 등가 악원들이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보태평(保太平)을 연주하는 동안 하월대 일무원이 문무(文舞)를 추고 있다.  [하]종묘추향대제 종헌례에서 하월대 헌가 악원들이 조상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정대업(定大業)을 연주하는 동안 일무원이 무무(武舞)를 추고 있다.

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에서 이원 황사손이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를 행하고 있다.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친일 문인과 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

오늘(11.4)은 종묘추향대제를 참관하고 바로 서울글로벌센터로 이동해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비판’ 세미나에 참석했다.
다수의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비판하면서도, 본인이 수상자로 선정되면 “김동인의 친일 행각과 작품성은 별개”라는 식으로 대개는 상을 받아왔다는 평가가 있다.
(협)마을대학종로는 올해 종로구 주민소통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진행하면서 한 꼭지
로 김동인 장편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답사하며 지역의 변화상을 추체험했다.
국가의 운영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앞장서 친일을 두둔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발걸음이 혹시나 이른바 ‘고상한 도시산책자’ 정도에 머무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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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인과 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 열려
마지막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동인문학상 비판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15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비판하는 세미나가 4일(토) 오후 1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비판과 민족문학운동의 방향’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는 최강민 교수(우석대)의 사회로 4시간가량 진행됐다.

임헌영 소장(민족문제연구소)은 격려사에서 “오랜 시간 줄기차게 노력해온 끝에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서정주)과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김기진)을 중단시켰고, 이제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김동인) 하나만 남았다”면서 “친일 전력을 상세히 살피며 현미경 역할을 다한 1기 활동이 목표를 달성한 만큼 2기 운동은 민족사 전체를 조망하는 망원경 역할로 확대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위상 연대활동위원장(한국작가회의)은 “차라리 ‘조선일보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꾸어달라는 요청에도 조선일보는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이제는 소설가들도 독자의 눈치를 보면서 동인문학상을 꺼리는 모양새가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서 강민숙 시인과 박이정 시인이 자작시 「우리는 붉은 혓바닥을 기억한다」 「문학의 권위와 작가의 위상을 위하여」를 직접 낭송하며 세미나의 분위기를 띄웠다.

첫 발제는 이성혁 문학평론가가 ‘김동인의 소설 「백마강」에 나타난 내선일체의 논리’에 대해 발표했다. 이 평론가는 “소설 「백마강」은 백제가 (고대) 일본의 문화개화를 도와주었고, 일본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군사적으로 도와주었다(백강전투)는 상호호혜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내선일체가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하게 합체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는 효과를 심어준다”고 진단했다.

지정토론에 나선 박수빈 시인은 △소설 「백마강」의 연재본과 단행본의 차이에 대한 분석 △소설의 1차 사료인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비교 △이성(봉니수-소가) 간의 애정보다 여성인물(봉니수-오리메) 간의 우정을 부각하는 의외성 등을 거론했다.

두번째 발제자 노은희 소설가는 ‘한 급수 낮게, 스스로를 팔다’를 통해 “친일행적이 뚜렷한 문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은 현역작가의 역량을 증명하는 주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실에 굴복한 ‘한 급수’ 낮은 김동인과 대비해 친일정신에 오염되지 않은 김영랑·이육사·윤동주 등 ‘1급수’의 시대정신을 계승하여 후대에 본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여국현 시인은 △친일문학에 동조하는 작가들의 이기적 행위의 속내 △김동인 수필 「감격과 긴장」의 해석문제 △발제문이 표명하는 주제의 명확성 등을 제언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한명환 문학평론가는 ‘근대 강박과 괴물 주인공들 ― 김동인 문학의 정체성’을 주제로 △김동인의 근대성 비판 △김동인 문예의 출발점 △여성주인공과 인형조종술 △강박적 근대 욕망과 파시즘적 경향 △김동인 소설이 남긴 폐단들을 정리하였다. 한 평론가는 “김동인이 펼치고자 했던 근대 문예 선구자로서의 모색은 인생의 실패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시작된 문학의 근대 미에 대한 개념 착오와 그러한 근대 선구자적 강박이 빚어낸 비극의 경로”로 해석했다.

안상원 교수(이화여대)는 지정토론을 통해 △김동인이 출판 과정에서 독자들을 동원하는 방식 △환경결정론과 인형조종술의 어설픈 결합 △이광수를 강하게 의식한 김동인식 역사인물들의 유형화 실패 분석 등이 흥미로웠다고 언급했다.

맹문재 교수(안양대)가 마이크를 잡은 3부 종합토론은 앞선 발제와 토론에 대한 부가 내용으로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는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의 폐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수행해오고 있다.

4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2022년 6월 29일 수요일

기록되어 있다

28일(화) 어제 #종로마을N 제4기 기자아카데미 4회차 강좌는 하동훈 사진작가가 잡힐 듯 또는 안 잡힐 듯한 이미지의 감성을 들려주었다. 단순히 사진 잘 찍는 스킬을 나열할 것으로 예상했던 나는 크게 한 방 먹었다. 「곁에서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잘 찍은 사진(?) △이미지 퀄리티(빛) & 내용(대상과 프레임) △관점 △시점 △초점으로 이어가는 하동훈 작가의 말하기(telling)와 보여주기(showing)는 한 편의 인문학 강의를 연상케 했다.

아래 사진은 하동훈이 2013년에 1년간 서아프리카의 부르키나 파소(Burkina Faso)에 머물며 그네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고 있을 때,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하는 한 아이가 고장난 카메라로 하 작가를 찍어주겠다며 장난치던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이 작품은 아프리카인사이트가 공모한 「내가 만난 아프리카」展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아이의 해맑은 미소에서 가난, 기아, 질병, 고통, 전쟁 같은 고정된 부정적 관념은 쉬이 연결되지 않는다.

문학과 마찬가지로 사진을 대할 때에도 표현론이 어쩌니 반영론, 효용론이 어떻느니 하는 것들은 한낱 언어의 사변에 그치게 된다. ♬느낌 그대로를 말하고 생각한 그 길로 움직이면 되는 것𝅗𝅥 

기자학교 수강생은 다음 시간까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주제로 10장 내외의 사진을 제출해야 한다. 다음주에는 강좌를 마치고 한잔하기로 했다. 오징어 데치고 전 부치는 소리가 추임새 되는 22년 장마, 종로거리 천장 낮은 허름한 주점에서 서로 작가가 되고 독자가 되어 술잔을 기울일 게다. 

시선과 교감

하동훈 작가는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의 「연금술사」(1988)를 꼽았다. 하 작가는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아랍어 마크툽(Maktub)을 왼팔뚝에 문신했다. 「연금술사」 100쪽에는 ‘그건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이미 씌어있는 말이다’ ‘어차피 그렇게 될 일이다’라는 의미로 해석돼 있다.


2022년 6월 17일 금요일

석촌동 연접적석총

#비지트인한성백제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하루의 대부분을 석촌동, 방이동, 풍납동, 신천동 일대를 탐방하며 보냈다. 석촌동(石村洞)이라는 동명은 돌이 많은 마을이라는 뜻으로 ‘돌말’, ‘돌마리’라고 불려온 것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석촌동 고분군(사적 제243호)은 현재 돌무지무덤(적석총) 5기, 흙무지무덤(즙석분구묘) 1기, 움무덤(토광묘) 2기가 복원돼 있다. 정비된 2,3,4호 돌무지무덤은 계단 형태로 만들어져 중국에 있는 고구려의 태왕릉이나 장군총의 모습과 유사하여 부여에서 시작된 문화적 동질성을 보여준다.

몇 년 전과 달리 이번 답사에서는 새로이 ‘연접적석총’이란 구조를 알게 됐다. 연접적석총은 돌과 흙을 쌓아 만든 다수의 중·소규모 적석묘들이 서로 연결되어 사방으로 확장하면서 큰 묘역을 이루는 형태로 드러났다. 특히 2기가 연접된 형태로 복원된 석촌동 1호분과 이에 인접한 A호 적석총(내원외방분)도 포함되어 총길이 120m에 달하는 규모를 보인다. 일정에 쫓길 수밖에 없는 동행탐방 없이 혼자 방문해 찬찬히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다. 

한 변의 길이가 50m가 넘는 3호분(동서 50.8m, 남북 48.4m)은 근초고왕릉으로 비정(比定)되고 있다.

석촌동 고분들은 윗부분이 심하게 깎이고, 훼손되는 바람에 무덤 주인공이 묻힌 공간인 매장주체부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석촌동 고분군의 돌들은 돌무지무덤의 내부를 채우고 외부를 감싸고 있던 것이다. 어떤 돌들은 한쪽 면을 편평하게 다듬은 흔적이 보이는데 이것은 무덤의 외부를 감싸고 있던 돌들의 특징이다. 발굴된 많은 강돌과 깬돌을 분석한 결과 편마암과 규암 등으로 밝혀졌으며, 대모산과 연결된 석촌동 주변 산지와 한강에서 가져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욱리하(郁利河)에 큰 돌들을 가져와 묘곽을 만들어 선왕의 뼈를 묻었다.”는 「삼국사기」 기록(백제 개로왕 때)이 있다.


2022년 3월 13일 일요일

일본 내 조선학교에 무용신 보내기

5차례에 걸친 ‘무용신 보내기’ 캠페인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2020년 3월부터 2022년 3월까지 진행되었던 5차례의 ‘무용신 보내기’ 캠페인에 1회 이상 참여한 사람은 모두 334명(개인)과 10개 단체다. 2년간 누적된 후원금 총액은 25,329,572원이며, 일본 전역의 모든 조선학교 무용부의 학생들과 지도교사들에게 전달된 무용신은 도합 1,031켤레다.

후원자 명단에 평소 안면 있는 분들, 거리에서 뵌 분들, 페친들 이름도 많이 보인다. 사진은 조정희 대표의 페북에서 가져왔다. 뿌듯한 일에 동참할 수 있도록 캠페인을 이끌어주신 분들께 고마운 마음 전한다. 근래에 내가 한 일 중 제일 잘한 일이다.

“재일 조선학교에 무용신을 보냅시다” 후원자(1~5차) 명단

일본 전역의 모든 조선학교 무용부의 학생들과 무용교원 전부에게 빠짐없이 전달된 1,031켤레의 무용신


2022년 1월 3일 월요일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초사(楚辭)와 더불어 중국 고전시의 원천으로 존중받는 시경(詩經)은 약 3천년 전부터 주(周) 왕실의 관리들이 기록을 시작하고 서기전 5세기경 공자가 정리·편집하여 전해지는 시가집이자 유고의 경전이다. 그런데 내겐 고대 그리스人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詩學)과 비교하면 오히려 아는 바가 없다.

그제 밤 「옷소매 붉은 끝동」 종영(17화) 때 의빈 성덕임(이세영 분)이 정조 이산(이준호 분)에게 시경 구절을 읊어주는 장면이 5화에 이어 다시 등장했다. 시경 중 국풍(國風) 패풍(邶風)편에 실린 시구가 죽음 후에야 완성되는 두 사람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겹치어 마음을 흔든다. 동짓달, 섣달에 연이어 효창공원을 돌아봤다. 날이 해사해질 때면 서삼릉에 가봐야겠다.


북풍기량(北風其涼)이며 우설기방(雨雪其雱)이로다
혜이호아(惠而好我 )로 휴수동행(攜手同行)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떠나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북풍기개(北風其喈)며 우설기비(雨雪其霏 )로다
혜이호아(惠而好我)로 휴수동귀(攜手同歸)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북풍은 차갑게 휘몰아치고, 눈비는 훨훨 휘날리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막적비호(莫赤匪狐)며 막흑비오(莫黑匪烏)아
혜이호아(惠而好我)로 휴수동거(攜手同車)호리라
기허기사(其虛其邪)아 기극지차(旣亟只且)로다

붉지 않다고 여우가 아니며, 검지 않다고 까마귀 아니런가.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옷소매붉은끝동 #새피엔딩 #이산 #성덕임 #문효세자 #효창공원 #효창원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TV쇼 진품명품 「님의 침묵」 초간본

지난 일요일(2021.9.26) 오랜만에 TV쇼 진품명품(1292회)을 시청했다. 소개된 작품 중 마지막 3번째 의뢰품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님의 沈默」 초간본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날 등장한 의뢰품은 1926년 회동서관에서 출간한 초판본이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 이전에 나온 초판본에서는 긔룬(그리운), 숭(흉), 새암(샘) 같은 고향 충청도 방언과 ‘알ㅅ수업서요’와 같은 한용운 특유의 시어를 확인할 수 있다. 1934년에 발행된 재판본부터는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맞춰 방언이나 개인적인 시어들이 수정되었기에 초간본 어조의 참맛은 많이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초판본 시집은 당시 300부 정도 제작됐는데 지금은 10~20권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희소성을 더하고 있다(최종 감정가 8천만원).

시집은 창작동기를 밝힌 ‘군말’로 시작하여 후기격인 ‘讀者에게’로 끝맺고 있다. 첫 시는 ‘님의 침묵’이고 마지막 시는 ‘사랑의 끝판’이다. 특히, 처음 접하는 ‘군말’의 내용이 새로웠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김영복 서예·고서 감정위원은 작품 해설 중에 한용운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11년을 살았던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이 남향을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는 까닭에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실상 심우장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형 자체가 북사면이어서 남향으로 집을 짓기가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님의 불굴의 의지와 지사적 풍모가 훼손될 일은 없다.

레이첼 카슨은 봄의 침묵을, 폴 사이먼은 소리의 침묵을, 토머스 해리스는 양들의 침묵을, 폴 데이비스는 우주의 침묵을, 엔도 슈샤쿠는 하느님의 침묵을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스님은 종교적인 절대자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으로, 사랑하는 여인으로 님을 형상화했다. 님의 부재 상황과 그로 인한 슬픔은 해방 70년이 훌쩍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허나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붉은색 표지의 「님의 침묵」 초판본(大正15년 5월15일)


2021년 7월 3일 토요일

운현궁 한정판 입장권 배부

흥선대원군의 사가인 서울 운현궁(雲峴宮, 사적 제257호)이 7월1일(목)부터 12월31일(금)까지 한시적으로 한정판(limited edition) 방문기념 입장권을 6개월간 무료로 배부한다. 그동안 운현궁은 별도의 입장료가 없었던 만큼 입장권도 발부하지 않다가 이번에 매달 선착순 1만 명에 희소아이템 입장권을 배부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

입장권은 「운현궁 관람 안내 책자」에 담기지 않은 또 다른 운현궁의 정보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제 아침나절, 운니동 외부 강의 나가는 길에 잠깐 들러 입장권을 받고 경내를 둘러보았다. 7월 입장권은 노안당(老安堂) 방에서 남쪽 담장 너머 덕성여대 종로캠퍼스 방면을 바라본 모습이 담겨 있다. 최대한 비슷한 각도를 찾아 셔터를 눌렀다. 12월까지는 근처에 강의가 잡혀 있으니 매월 초에 운현궁의 색다른 멋을 담은 ‘작품 입장권’을 만나볼 수 있을 듯하다. 소확행이다.


노안당(老安堂)은 운현궁의 사랑채로 흥선대원군의 주된 거처였다. 노안은 「논어」 가운데 ‘노자(老子)를 안지(安之) 하며’라는 구절에서 따왔는데 ‘노인을 공경하며 편안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노안당은 노락당(老樂堂)과 함께 1864년(고종 1) 3월에 상량하고, 같은 해 완공하였다.


서울 운현궁, 7월(2021년) 한정판 입장권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이념을 담은 평양의 도시공간

6월22일(화) 평양탐구학교 2기 5회차에선 경기대학교에서 건축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안창모 교수가 「도시와 건축으로 읽는 평양」을 주제로 이데올로기가 도시구조를 어떻게 다르게 만들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서울은 조선시대 이후 제1의 도시로 山을 품에 안고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역사도시다. 반면, 평양은 고구려의 수도 이후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갖고 있으며, 川을 품에 안고 대동강과 보통강으로 둘러싸인 계획도시다.

안 교수는 서울-평양 두 도시의 심장부인 광화문광장과 김일성광장을 비교·대조하는 것으로 서울과 평양의 도시공간 변화를 가늠할 수 있다고 했다.

서울은 6·25전쟁의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상대적으로 옛 모습을 유지한 상태에서 미국의 지원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갖추었다. 반면, 평양은 심각한 전쟁 피해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이념으로 새로운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사회주의 도시는 “자본주의 대도시는 모든 사회악의 온상”이라는 로버트 오웬(R. Owen)의 관점 등 자본주의 도시에 대한 반성에서 구상됐다. 사회주의 도시계획은 대도시화를 지양하고 작은 규모의 도시를 선호하며, 녹지 영역을 적극적으로 구성한다.

1924년 집권한 스탈린은, 구시대와의 결별을 부르짖으며 사회주의 예술로 각광받던 러시아 구성주의(Constructivism)를 형식화되었다고 비판하고 그리스·로마 건축에 기초한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수용하면서 과거로 회귀했다.

해방이후 소련의 지원으로 성립된 김일성정권에서 김일성종합대학, 김일성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등이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모스크바 건축대학 출신의 김정희(1921~1975)는 절대권력자의 요청을 받고 평양이 현재의 물리적 형태를 갖추는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전후복구를 위한 1953년의 마스터플랜에서 평양 도심의 구성은 국가기관을 앉히기보다는 근로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물리적인 형식으로 상징화되었다.

1970년대 들어 마르크스-레닌주의는 1950년대에 주창된 주체사상으로 대체되었는데, 이는 건축양식에도 영향을 미쳤다. 당시 준공된 평양의 인민문화궁전(1974)이나 묘향산의 국제친선전람관(1978) 등은 소련과 동구권의영향에서 벗어나 전통을 강조하는 민족건축양식에 입각해 설계되었다. 평양의 도시 기반 시설 대부분이 전후복구 때부터 1970년대에 걸쳐 건설되었다.


김일성광장을 사이에 두고 왼편의 조선미술박물관과 오른편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이 정점인 인민대학습당과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1982년에 준공된 인민대학습당은 평양시민을 위한 도서관이다. 같은 해 건설된 대동강 맞은편의 170m 주체사상탑과 함께 평양의 중심축을 형성하는데,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체제 우월을 강조하는 프로그램이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방증해준다. 김일성광장은 평양의 기념비적인 건물들에 둘러싸여 있으며 10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광장이다.


평양의 공공프로젝트 : 김일성종합대학, 중앙종합병원, 만경대혁명학원, 해방호텔 ⇒ 신고전주의 건축양식. 스탈린이 구성주의를 버리고 고전주의 건축으로 회귀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김일성은 신고전주의양식에서 민족건축양식으로 전환했다.


매체를 통해 걸러지는 평양의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는 이유는 이데올로기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쾌적한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발상 이외에도, 또다시 전쟁상황이 닥칠 경우 폭격 등으로부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건물을 일정 간격을 두고 세웠기 때문이다.

강의를 통해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건축적 스케치를 통한 도시에 대한 제안이라든가 부아쟁 계획(Plan Voisin) 같은 용어와 개념을 조금은 이해하게 됐다.

6·25전쟁 시의 폭탄세례로 초토화된 평양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구현된 사회주의 도시의 특징을 객관적으로 파악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더하여 하나의 역사적 뿌리와 문화적 전통을 가진 민족이 상이한 이데올로기로 인해 도시와 건축이라는 생활양식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도 각인됐다. 서로의 모습과 차이를 인정하는 일부터 선행돼야겠다. 젠장… 다시 출발점이다. 


스태프 선생님들이 마련해주신 유부초밥과 컵과일… 맛 좋습니다.


2021년 5월 21일 금요일

낯익은 것을 낯설게 보는 종로 스토리텔링

18일(화) 오후 5시, 종로구 가회동 한옥협동조합 교육장(북촌로50 삼보빌딩 2층)에서 종로마을N(편집장 당현준) 제3기 기자아카데미 2회차 강좌가 진행됐다.

서울을 중심으로 도시 탐구를 이어오고 있는 권기봉 여행작가(42)가 「종로 역사적 공간탐방과 스토리텔링화」를 주제로 2시간 동안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낯설게 보는 힘에 대해 소개했다.

권 작가는 대학 시절인 1999년,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200만 원을 가지고 두 달간 유럽으로 첫 해외여행을 떠났던 경험을 돌아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가방을 대신하는 비닐봉지 하나만 달랑 들고서 숙박비를 아끼려고 야간열차를 이용해 쪽잠을 자고, 유통기한이 임박한 싸구려 식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반바지 외의 여벌 옷 없이 이른바 거지꼴로 낯선 유럽땅을 배회하고 왔다.”고 했다. “학창시절 두 차례의 후속 해외여행과 이후 수많은 국내여행을 다니면서, 현시점에서 가까운 우리 근·현대사 100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에 수강생들의 눈과 귀가 쏠렸다.

권 작가의 종로 이야기는 길이 18.6㎞, 높이 5~8m의 한양도성 축조, 좌우 대칭으로 구성한 경복궁의 공간배치 철학으로 이어졌다.

1968년 1월21일 벌어진 ‘1.21 사태’와 이틀 후에 발생한 ‘미해군 푸에블로호 납치 사건’, 같은해 10월30일부터 12월25일까지 터져 나온 ‘울진·삼척 무장공비 사건’과 베트남전(1960~1975) 조기 종식을 내걸고 동년 11월5일 미 37대 대통령에 당선된 리처드 닉슨의 군사 불개입 독트린으로 엄청난 충격을 받은 당시 박정희 정권은 국가안보 우선주의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인다. 그렇게 해서 영화 「실미도」의 모티브가 된 북파공작원 684부대를 창설하고, 민간인의 전투훈련을 위해 예비군제도를 강화한다. 또한, 장교 양성을 위해 육군 제2사관학교와 제3사관학교를 개교하고, 고등학교 이상 재학생을 대상으로 한 교련(교육훈련) 과목을 편성하게 된다.

박 정권은 자체 발전 설비를 갖추어 각각 15만 명씩 수용 가능한 남산 1·2호 터널, 유사시 행정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시청역에서 을지로6가까지 뚫은 지하상가, 한강 수면에 최대한 가깝게 설치하여 북한공군에 쉽게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잠수교, 경기 북부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상에 설치한 대전차 장애물, 유사시 통일로를 이용한 북한군의 남침 속도를 늦추기 위한 유진상가 등 ‘서울 요새화’를 위한 도시개발도 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모두가 남북갈등(전쟁)의 아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공간으로 기억해야 할 유산들이다.

“근·현대 100여 년의 공간들은 주로 도시 안에 있다. 근·현대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우리는 어두운 시대의 역사를 보듬어 안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해왔고, 그 연장선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축조된 도심 속 근·현대 구조물에 대한 보존 의지까지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이유로 도심 속 근·현대 유산은 개발 압력이 크고, 빨리 사라진다.”는 권 작가의 논지에 수강생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문학에서 ‘낯설게하기(Defamiliarization)’는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처음 사용한 용어로, 이미 일상화되었기에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인식의 틀을 깨고 낯설게 (변형·치환)하여 새로운 느낌이 들도록 표현하는 기법을 말한다.

한 수강생은 “곁에 있기에 무심코 흘려보내는 익숙한 것들에 대해 비틀어 보고 새롭게 보는 안목을 갖게 해준 강의로 기억될 것 같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서울은 2천 년 전 한성백제 이래 시공간적 확장과 변용을 거듭해온 깊고도 넓은 도시이며, 그 중심 층위에 종로가 있다. 관심을 가지고 보면 우리 주변에 있는 역사와 인문이 다르게 보인다.

2021년 종로마을N 기자아카데미는 오는 25일 3회차 강좌로 이어진다.

18일(화) 오후, 종로마을N 2021 기자아카데미에서 권기봉 여행작가가 「종로 역사적 공간탐방과 스토리텔링화」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종로마을N에도 실렸습니다.

2021년 5월 6일 목요일

호랑 나비 옆에 호동그란 나비

꽃가루와 같이 부드러운 고양이의 털에 고운 봄의 향기가 어리우도다.

금방울과 같이 호동그란 고양이의 눈에 미친 봄의 불길이 흐르도다.

고요히 다물은 고양이의 입술에 포근한 봄의 졸음이 떠돌아라.

날카롭게 쭉 뻗은 고양이의 수염에 푸른 봄의 생기가 뛰놀아라.


어제 어머니들과 함께 공부한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시인은 고양이의 털, 눈, 입술, 수염을 각각 봄의 향기, 불길(생명력·정열), 졸음(포근함), 생기(생동감)에 빗대어 감각적으로 묘사해냈다. 촉각·후각·청각·시각적 심상에 포착한 직관력, 정적인 이미지와 동적인 이미지를 대조적으로 배치한 점도 인상적이다. 우리 어머님들, 이제 직유법과 은유법 정도는 껌으로 잘 맞히신다.

고월(古月) 이장희(1900~1929)는 빙허 현진건, 상화 이상화와 함께 대구가 낳은 3대 문인으로 꼽힌다. 친일파인 부친(이병학, 중추원 참의)과의 불화와 특유의 예민하고 비사교적인 성향으로 29살의 젊은 나이에 음독하여 생을 마감했다. 그가 노래한 봄날의 기운, 봄의 생명력과는 상반되는 파괴적인 마침이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 金之助)의 장편소설 吾輩は猫である(와가하이 와 네코 데 아루)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로 번역한 것은 이장희의 ‘봄은 고양이로소이다’에서 영감을 받아 작명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사진은 인스타그램 insta_@my_lulu_cat_ 님의 감각적인 사진이다. 콧등에 내려앉은 호랑나비에 당황한 듯 호동그래진 고양이의 눈이 잘 포착돼 있다. Butterfly Cat… 나비 옆에 나비를 담아낸 수작이다.


2020년 10월 18일 일요일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 회원전 「열매를 맺다Ⅴ」


한국여성생활연구원(원장 정찬남)이 주최하고,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회장 권택선)가 주관하는 「꿈꾸는 사람들, 열매를 맺다Ⅴ」전이 10월14일(수)부터 19일(월)까지 종로구 인사동길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서 6일간 열린다.

이번 회원전은 한국여성생활연구원 창립 42주년을 축하하는 기념 전시회를 겸하고 있다.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은 1978년 8월27일 봉천동 달동네 쪽방교실에서 개원한 이래 40여년 동안 문해교육, 여성교육, 노인교육, 다문화교육, 역사문화탐방, 바리스타과정, 종이접기교실, 평생교육 실습, 검정고시과정 등을 운영하며 배움에 목마른 이들과 함께 평생교육을 실천해오고 있다.

현재 한국여성생활연구원은 서울특별시교육청이 지정한 ‘학력인정 초등·중학 문자해득프로그램 운영’ 기관이자  ‘1365 자원봉사자’ 수요처이기도 하다.

경인미술관 아틀리에 입구에 닥종이로 만든 호박들이 쌓여 있다. 이 중에는 진짜 호박 몇 개도 포함돼 섞여 있는데, 좀처럼 구별해낼 수 없다.

전시회에서는 13명의 회원이 번갈아 나서 아틀리에를 찾는 관람객에게 닥종이 인형 제작과정과 작품에 대해 소개한다.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에서 만든 전시 작품 60여 점에는 2년에서 12년 경력의 닥종이 인형 작가 13인의 정성이 한껏 담겨있다.

철사를 골절해 한지를 한겹 한겹 뜯어 붙이는 닥종이 인형 작업은 아무리 빨라도 수개월이 걸린다. 회원들은 제작과정을 통해 전통복식과 민화를 연구할 수도 있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다스리며,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해 한국여성생활연구원에서 20년이 넘게 영어 교사로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김이향 연구회원은 “우리 연구회는 한지의 우수성과 확장성에 주목하여 전통한지의 현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민화의 다양한 색감을 닥종이에 입혀보고, 향후에는 심리학에 닥종이인형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볼 생각”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전시작품에 작가명만 보이고 작품명이 보이지 않는다는 기자의 질문에 “작품에 이름을 붙이면 작품명에 매몰되어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에 내부 토의를 거쳐 작품 이름을 붙이지 않기로 의견을 모았다.”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의 닥종이인형 작업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30분부터 2시간 동안 명동 가톨릭회관 522호에서 진행된다.

권택선 회장은 “전시회를 통해 시민들이 닥종이인형 작품을 감상하며 코로나19에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갖길 바란다.”면서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는 닥종이 공예 활동을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다. 닥종이 문화를 더 깊이 알고 함께 작업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전했다.(문의: ☎02-727-2471)

아래 사진은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 전시된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원 몇 사람의 닥종이 공예 작품을 기자의 입맛에 따라 촬영한 것이다.

(위)김이향  (아래)정찬남


(좌)최진석  (우)이미희


(좌)권순미  (우)이혜란


(좌)최진석, (우)최경남


강미란 작가의 여성 흉상 작품은 앞뒤가 다른 일명 ‘아수라 백작 얼굴’의 변형이다. 앞쪽은 연분홍 스웨터에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이고, 뒤쪽은 흰색 라운드에 미소 짓고 있는 모습이다.


(위)권택선, 권순미, 김명자, 최진석, 최경남, 김이향의 닥종이를 활용한 전등 작품  (아래) 북촌닥종이인형연구회원 13인의 닥종이 흉상 작품들은 하나 같이 미소를 머금고 있다. 작품에는 작가의 얼굴이 묻어난다.

2020년 8월 8일 토요일

강남(江南) 갈 채비 마친 새끼제비 4남매

충남 서천의 한 시골집 처마에 앙증맞은 새끼 제비 네 마리… 7월 중순 무렵의 모습이다.

중국땅 장강(揚子江) 이남이든, 동남아 인도네시아·필리핀이든 먼 길 떠날 채비를 마쳤다고 재잘거리는 듯하다.

군청의 요청으로 동네 미술 종사자들이 그린 제비 벽화가 마을 골목길 담벼락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2020년 8월 2일 일요일

함양 농월정… 달을 희롱하며 물을 흘려보내며

용추폭포(龍秋瀑布) 심진동(尋眞洞), 수승대(搜勝臺)가 있는 원학동(猿鶴洞)과 더불어 함양땅 안의삼동(安義三洞)으로 불리는 화림동(花林洞) 화림계곡은 8정8담(八亭八潭)이라 하여 8개의 담에 8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이 중에 정자는 거연정(居然亭)과 군자정(君子亭), 동호정(東胡亭), 농월정(弄月亭) 4곳만 남아 있다.

정자 문화의 보고 화림동에 위치한 농월정 (사진=김순조)

화림동 계곡 하류에 자리한 농월정은 지족당(知足堂) 박명부(朴明榑, 1571~1639)가 낙향 후 지은 정자다.

1614년(광해군6)에 이이첨·정인홍 등 대북파가 광해군을 종용해 선조의 계비(인목왕후) 소생인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살해하고 소성대비(昭聖大妃)를 유폐시키자, 박명부는 직언으로 항소하다가 파직당한 후 고향 안의로 귀향했다.
박명부는 1623년 인조반정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예조참판으로 재임 중 병자호란(1636)을 당하여 남한산성에서 주전파(主戰派)로 강화(講和)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인조가 삼전도에서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굴욕을 당한 후 낙향하여 67세 때인 1637년 농월정을 완공하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68세인 1638년 강릉도호부사에 제수되어 봉직하다가 이듬해 69세로 별세했다.

농월정(弄月亭)이라는 이름은 이백(李白, 701~762)의 <고풍(古風)> 10수 시구절 ‘명월출해저’(明月出海底, 밝은 달이 바다 밑에서 나오는 것 같다)에서 따온 것으로 ‘달을 희롱하며 노는’ 풍류가 드러나 있다.

농월정 편액은 명나라 사신으로 온 주지번(朱之蕃)이 썼다고 전한다.

농월정은 1899년을 마지막으로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해왔으나 1986년 무렵 화재로 인하여 전소됐다. 2015년 9월12일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에 정자 뒤쪽 중앙 1칸에 판방(바람막이 작은방)을 둔 옛 모습대로 복원됐다. 추녀 네 귀퉁이에 활주를 세운 모습이 특이하다.

농월정 앞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반석을 월연암(月淵岩, 달바위)이라 하는데, 그 면적이 1천여 평이나 된다고 한다. 또한 옥구슬 구르듯이 암반을 타고 흐르는 계곡의 물소리와 함께 달과 같이 둥글게 형성된 소(沼)를 월연담(月淵潭)으로 부른다.

함양 용추계곡 내 용추폭포 (사진=김순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