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31일 화요일

서울시… 비영리단체 기부금품 모집등록 제도 안내

서울시는 20일 오후 2시부터 중구 을지로1가 서울시NPO지원센터 1층(품다)에서 서울시 비영리단체(NPO) 모금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했다. 비영리단체(NPO)의 역량 강화 및 투명한 기부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실시된 이번 교육에는 비영리법인·단체의 관련 담당자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은신애 사회협력팀장이 사회를 맡은 교육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1부에서는 김용구 주무관이 서울시 기부금품 모집등록 제도를 안내했다. 김 주무관은 기부금품의 개념을 설명하는 것으로 서두를 시작했다. 기부금품법 제2에 따르면 기부금품은 ‘명칭이 어떠하든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이나 물품’을 의미한다.
기부금품의 정의에 이어서 김 주무관은 기부금품 모집등록 대상과 절차, 기부금품의 모집완료보고와 모집 및 사용명세보고, 기부금품 처분사용계획, 서울시 기부금품 모집등록 현황, 기부금품 모집 질의 사례를 발표했다.

1,000만원 이상 기부금품을 모집하는 법인, 단체 등은 행정안전부 또는 시․도지사에게 모집 등록을 해야 하며, 모집액 1,000만원~10억원 이하는 시·도가, 10억원 초과는 행정안전부가 모집 등록청이 된다.

또한 기부금품 모집등록 신청을 하려면 △모집등록 신청서 △모집계획서 △사용계획서 △법인등기부등본 또는 비영리민간단체등록증 △고유번호증 △법인·단체 정관 △대표자 이력서 △임원 명단 △기부금 접수 전용통장사본 등의 서류를 갖추어야 한다.

최근 3년간 기부금품 모집등록 건수는 381건으로 전반적으로 상승 추세에 있다.


2부는 모금 교육 및 컨설팅 전문기관인 (주)휴먼트리 이선희 대표가 ‘모금환경변화와 모금전략’을 발표했다. 이 대표는 기부 현황과 모금 환경의 변화를 언급하며 모금의 기획 및 설계와 준비, 성공적인 모금을 위한 전략, 기부자의 권리와 모금 윤리 등을 설명했다.
특히 기부에서 기억해야 할 키워드로 △기술, 도구 △참여, 체험 △기부 확장 △유머, 재미, 즐거움 △투명성, 윤리의 다섯 가지를 제시하며 “기부자를 어떻게 행복하고 즐겁게 만들 것인가” 하는 문제가 관건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는 10여 가지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져 비영리단체 모금에 대한 관심을 반영했다. 교육 참석자에게는 <서울, 기부 길라잡이> 개정판이 배부됐다. 서울시는 2017년부터 매년 두 차례 비영리단체(NPO) 모금 역량 교육을 진행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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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21일 토요일

한글 2010 SE+의 Common Library를 8.5.8.1755 이상의 버전으로 업데이트

한글 2010 Second Plus
한글 2010 세컨드 플러스

노트북에 한글 2010 SE+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 달쯤 되었나. 그때부터 한글을 실행하면 아래의 안내창이 뜬다.

Common Library를 8.5.8.1755 이상의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업데이트하지 않고 실행하면 프로그램이 올바르게 동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버전 그대로 실행할까요?

현재 공통 구성 요소가 설치된 폴더 : C:\Program Files (x86)\Hnc\Common80
현재 버전 : 8.5.8.1762


<예> 버튼을 누르고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면
저장 단계에서 오류가 발생해 한글이 종료되곤 했다.
어쨌든 저장 자체는 되니까 여지껏 불편해도 참았는데…
이제 중요한 문서를 작성해야 해서
혹시나 문서 자료를 다 날려 먹을까봐 오류를 손보기로 한다.

https://www.hancom.com/cs_center/csDownload.do?gnb0=25&gnb1=80

위의 한컴 웹사이트 고객지원실 다운로드 페이지에서
한글 2010 SE+ (2010, 2010 SE 포함)의 패치파일(기능/보안)을 다운로드 했다.
위쪽에는 한컴오피스 2010 SE+(2010, 2010 SE 포함)도 있다. 이건 용량이 607MB다.
자기 컴에 설치된 프로그램에 따라 다르겠군.


322MB 용량의 Hwp2010Update_20191126.exe 파일을 실행하여
<다음> 버튼을 누르면 “Hwp2010Update_SE+ - InstallShield Wizard”가 진행된다.
설치가 다소 길게 느껴진다.



업데이트 마법사가 설치를 끝냈다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재부팅한 후 한글을 실행하니
좀 느려진 감은 있지만 업데이트 경고 메시지가 사라졌다.
For now it's a success~!!

2019년 12월 6일 금요일

서평원… 서울지역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 실시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원장 김주명)은 5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중구 명동에 위치한 유네스코회관 11층 유네스코홀에서 서울지역 자치구와 교육청, 문해교육기관의 담당자 및 교·강사를 대상으로 2019년 제2차 보수교육을 실시했다.

서평원 이은주 팀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교육은 문해교육 관계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마련되었으며 성인문해교육 관계자 50여 명이 참석했다.

1부는 전국문해기초교육협의회 김인숙 대표가 △학력인정 문해교육과정 고시 및 초등과정 성인문해교육교과서의 개발방향과 구성체계 △초등 1단계 성인문해교육교과서의 교수법 및 활용방안에 대해 요약 설명했다.
휴식 후 이어진 2부는 (사)푸른사람들 서화진 대표가 △초등 2~3단계 성인문해교육 교과서의 교수법 및 활용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013년 1차 개정에 이어 2차 개정된 2018년 초등과정 성인문해교과서는 ▲학습 난이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학습 분량 역시 진도에 급급하지 않도록 조절했으며 ▲지문이나 예시를 성인 문해학습자에게 적합하도록 조정하고 ▲학습 활동을 줄여 학습자의 심리적 부담을 줄인 것이 특징이다.

교육에 참석한 한 문해교원은 “개정된 교과서의 내용이 지역의 특성과 학습자의 다양성을 고려하여 적절하고 탄력 있게 취사 선택할 수 있도록 현장의 문해교사에게 재량권을 준 것이 가장 눈에 띈다.”면서 “이번 보수교육이 개정된 성인문해교과서를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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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12일 화요일

“남북경협 활성화와 UN 대북 제재의 문제점과 그 해소방안” 국민대토론회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는 10월 29일(화) 오후 2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남북경협 활성화와 UN 대북제재의 문제점과 그 해소방안’을 주제로 국민대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는 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이장희 상임대표의 환영사와 이재환 이사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총 3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전반부의 3개 발제와 그에 따른 지정토론 시간은 권영경 명예교수(통일부 통일교육원)가 좌장사회를 맡았다.

첫 발제는 안병민 소장(한국교통연구원 북한인프라연구소)이 ‘UN 대북제재와 남북경협 활성화를 위한 철도, 도로 연결 작업의 현황과 과제’에 대해 발표했다. 안 소장은 대북 제재의 성공 사례와 기간을 소개하며 대북 제제의 실효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였다.

지정토론에 나선 정성희 위원장(평화철도 집행위원회)은 ‘평화번영-경제개혁-노동존중’의 3자 관계를 언급하며 대북 제재의 단계별 해소를 위한 범국민운동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황광석 상임이사(희망래일)는 “한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상황을 정부가 국민들에게 자신있게 알리고 우리의 국익을 위한 대미 협상전략을 새로 짜야한다.”고 밝혔다.

좌장사회자의 재량으로 연달아 진행된 두번째와 세번째 발제에서 임을출 교수(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와 김진향 이사장(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이 각각 ‘하노이 정상회담 이후 남북경협의 과거·현재·미래 전망’과 ‘UN 대북제재가 개성공단 운영재개 및 금강산 관광재개에 미치는 영향과 출구전략’을 발표했다.

임 교수는 지자체 지원을 위한 통일부의 ‘남북교류협력지원 종합상담센터’ 구축을 소개하며, 남북경협 재개의 당위성을 설명하고 “단순히 재개되는 것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대미 종속성에서 탈피하라는 북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미국의 동의를 확보해야 하는 외교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정부를 지지해주는 국민들의 힘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김진향 이사장은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명확해야만 면밀한 분석이 가능하고 그에 따른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면서 제재의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능동적으로 상황을 돌파하지 못한 면을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금강산이든 개성공단이든 모두 평화의 하부 개념이므로 ‘북미 평화협정’ 체결이 모든 논의의 근본 문제임을 역설했다.

윤창원 교수(서울디지털대)는 지정토론을 통해 ‘국내외 지지 기반이 비핵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주요한 동력’임을 밝힌 부분에서 임을출 교수와 궤를 같이 했다. 아울러 한미 정상간의 밀도있는 정상회담을 통해 문제를 풀어갈 것을 제시했다.

홍순직 수석연구위원(국민대 한반도미래연구원) 역시 ‘남북경협 30년의 역사는 곧 남북관계 발전사’라면서 “정부가 외교적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더하여 금강산 관광은 단순 관광산업이 아닌 평화산업으로 자리매김해야 함도 강조했다. 또한 “법·제도, 자본, 행정서비스의 국제화를 발판 삼은 ‘남북경협의 국제화’를 통해 남북경제통합이라는 중장기적 목표를 지향해야 한다.”는 남북경협 발전 방안을 제시했다.

심상진 교수(경기대 관광경영학과)는 “세상이 바뀌었음에도 우리가 북한을 바라보는 시선은 예전 그대로다.”면서 최근 김정은의 ‘금강산 관광지구의 남측 시설 철거 지시’는 외히려 “어서 들어와 새롭게 사업을 시작하자는 의미로 풀이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발언한 홍순직 연구위원과 비슷한 해석이다. 또한 심 교수는 “11년간이나 방치하며 방을 빼지 않는 상황을 참아온 북한 입장을 이해하거나 미국의 네오콘(Neocon)을 설득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부 전반부 마지막 지정토론자 송태경 공동대표(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는 “김정은 입장에서 핵을 포기한 후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리비아 카다피의 전철을 밟겠는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면서 “남북문제는 곧 민족문제인데, 정치인들이 민족문제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한 남북경협을 ‘퍼주기’ 아닌 ‘퍼오기’하는 사업으로 규정하고 보·혁을 뛰어넘는 시민사회의 협력으로 평화 분위기를 확장시켜나갈 것을 제안했다.


브레이크 타임 이후 속개된 2부 후반부 토론은 최승환 교수(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가 좌장사회를 맡았다.

발제자 이장희 명예교수(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는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는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일본에 대한 응징이 이뤄지지 않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이 명예교수는 “미국이 밀어붙이고 있는 리비아식 해법과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은 상충할 수밖에 없다.”면서 “깨시민의 노력으로 미국과 국제사회, 북한 모두를 냉철하게 깨우쳐 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성공단 초대법무팀장을 지낸 김광길 변호사(법무법인 지평)는 지정토론에서 “미국이 진정으로 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를 원하는지 의문”이라고 서두를 열면서 대북제재에서 ‘벌크캐쉬(뭉칫돈)’를 확대 해석하는 주장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또한 남북교류협력에서 국가의 독점상황과 규제일변도의 법 조항 개정도 주장했다.

‘남북경협활성화와 UN안보리 대북제재의 국제법적 분석과 그 해소방안’을 주제로 행사 마지막 지정토론에 나선 이동원 교수(선문대)는 서언을 통해 ‘활성화’와 ‘제재’가 동시에 들어간 문구 자체가 작금의 어려운 상황을 반증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교수는 ‘비무력적 강제조치’를 규정하고 있는 유엔헌장 41조를 소개한 후 “북한이 우리를 대화 당사자로 인정하는 않는 것, 냉전체제의 법이 지금도 중심이 되고 있는 것 등이 더욱 남북관계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발제와 지정토론 후 짧게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북한의 전략물자와 김정은의 돈줄 죄기가 미국의 목적인 듯한데, 이에 대한 우리의 대처는 무엇인지 △미국에 끌려다니며 휘둘리는 우리 주권의 회복 방안은 무엇인지 △트럼프가 만든 틀에 묶여있는 상황인데, 북한이 비핵화하면 트럼프는 구체적으로 어떤 반대급부를 내놓을 것인지 등의 질문이 나왔다.

토론자들은 유엔제재 27건, 미국 단독제재 15건은 물론 5·24조치(2010)와 3·8조치(2016) 등 한국의 제재까지 진행 중이지만 우리가 하고자 한다면 필요한 명분을 확보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의 사전 승인 등의 합법적 절차를 걸쳐 얼마든지 대북사업을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100여 명이 참석한 토론회는 참가자 전원이 남북경협을 외치며 단체촬영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 80여 명은 이후 인근 신가원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설렁탕을 나누고 남북경협의 활성화와 한반도 평화정책에 기여하자며 결의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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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9일 일요일

곰팡이 핀 주거복지… 행촌동·무악동 주거 취약계층 실태조사 발표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무악동선교본당(무악동성당)은 창립 20주년을 기념하여 21일 오후 3시, 무악동주민센터 4층 강당에서 100여 명의 참석자들이 함께한 가운데 ‘주거 취약계층(행촌동·무악동) 주거 실태조사 발표 및 제도개선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토론회는 올해 설립 20주년을 맞은 무악동선교본당이 성당의 사목활동 지역인 종로구 행촌동, 무악동지역 주거 취약계층(옥탑, 지하셋방, 기타 비주거용 거주자) 주민들의 생활실태(주거환경)를 조사하여 지역사회와 공유하고, 이에 따른 주거정책(대책) 개선을 마련하기 위한 차원에서 기획됐다.
토론회 사전행사로 남해윤 신부(무악동선교본당 주임)와 나승구 신부(빈민사목위원장)의 환영사와 축사가 있었다. 이들은 천주교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소속으로 사목활동을 하고 있다.
빈민사목위는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목동·사당동·상계동 재개발 과정에서 강제철거를 당한 도시빈민들을 위해 1985년 창립된 천주교도시빈민회(천도빈)를 모태로 1987년 4월 28일 설립됐다. 빈민사목위는 1998년 9월 삼양동(북부)을 시작으로 이듬해 2월에는 봉천동(남부), 금호1가동(동부), 무악동(서부) 공소를 선교본당으로 개편하고, 2006년 11월 장위1동 지역에 선교본당을 추가 설립하였다. 빈민사목위는 지난 32년 동안 빈민사목 지역센터인 선교본당 다섯 곳과 평화의집, 자활센터, 상담센터, 공부방, 재활용매장 등 열세 곳의 부설시설을 차례로 세워 현장활동가를 양성하면서 지역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해오고 있다.
이번 실태조사 대상지인 종로구 행촌동과 무악동은 무허가 불량주택이 난립한 전형적인 달동네였는데, 현재 행촌동은 한양도성 성곽 구릉지에 다수의 다세대주택이 분포하고, 무악동은 90%가량이 재개발 아파트 단지로 변모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주거 취약계층 실태는 무악동선교본당 산하 독립문평화의집 활동가 등이 (반)지하 거주 298가구, 옥탑 거주 8가구를 직접 탐방 조사하여, 이중 각각 38가구와 5가구가 완료한 설문조사 자료(기타 1가구 포함 총 44가구)를 바탕으로 한국도시연구소 이원호 책임연구원이 검토하여 주제발표를 하였다.
발제에 따르면 해당 지역의 1인 가구 비율은 63.3%로 서울시(40.1%)나 종로구(49.3%) 평균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월평균 가구 총소득은 100만원 이하가 79.5%를 차지하고, 수급가구 비율이 서울시(3.9%), 종로구(3.8%)에 비해 월등히 높은 47.7%로 파악됐다. 이처럼 (반)지하나 옥탑에 거주하는 수급가구의 비율이 절반에 가까운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주거급여를 받더라도 적정한 주거생활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저렴한 주거비’는 지역의 (반)지하 거주민이 현 거처에 거주(79.5%)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앞으로도 이주 계획 없이 계속 거주(45.5%)하는 요인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주거비에도 불구하고 주거비 부담 때문에 식료품비를 줄인 경험이 가끔 그런 편(44%), 자주 그런 편(40%)으로 나타나 주거비에 대한 부담감(54.5%)은 다른 요인보다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주거비에 대한 부담은 공공임대주택을 ‘가장 필요한 주거복지 프로그램’으로 꼽은 설문 결과(42.9%)로도 이어져, 공공임대주택에 입주를 원하는 주요 사유(38.1%)가 됐는데, 공공임대주택에 입주할 의사가 있는 가구 비율은 75.9%로 높게 집계됐다.
주거 점유형태는 월세(59.1%)와 전세(27.3%), 자가(11.4%) 순이고, 월세의 경우 500만원 이하의 보증금(61.8%)에 월임차료는 30~40만원 미만(46.1%) 비중이 많았으며, 주거면적은 30~40㎡(9~12평)대가 다수를 차지(44%)하여 (반)지하 주택규모가 열악함을 드러냈다.
요컨대 (반)지하 거주민은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가구, 저학력 가구주, 비경제활동 가구주, 고령자와 장애인 가구원의 비율이 일반에 비해 높으며, 이는 사회적 취약계층이 여러 부정적 요소로 (반)지하를 선택하였음을 의미하므로 (반)지하 거주 대책이 복지대책과 연계됨을 보여준다.
주제발표에 이어진 토론은 서강대학교 박문수 재단이사장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고, 네 명의 패널이 차례로 토론에 나섰다.
먼저 종로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이 주제발표에 인용된 <표>자료를 분석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발제에 제시된 <표>들 간의 일부 상충된 수치와 오독의 여지가 있는 행간의 의미를 언급한 김 센터장의 지적은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몇 가지 조사항목에서 연관된 문항들 사이의 응답 결과에 편차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실태조사는 보다 정확하게 수행해야 한다.
김 센터장은 “최근 센터에 습기나 곰팡이 문제를 호소하는 문의가 10여 건 있었다.”면서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아낸 현장조사의 유의미성을 평가하기도 했다. 또한 발제자가 제언한 △기초자치단체의 주거복지 조례 제정의 필요성 △습기와 곰팡이, 악취, 비위생, 채광 등 (반)지하 주거의 문제가 드러날 수 있도록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는 최저주거기준의 구체화에 동의한다면서 △주거비 지원대책으로서 주거급여의 기준과 수준의 현실화 △지불가능하고 이행가능한 공공임대주택의 적극적 공급 등의 정책방안을 제시했다.
두 번째 토론자인 SH공사 서종균 주거복지처장 역시 종로구의 주거복지 조례 제정에 찬동했다.
서 처장은 “저소득 취약계층은 역량 부족이나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선제적 상담서비스를 통해 적어도 10% 이상의 사람들에게 정책적 지원을 연결할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지역의 비수급가구 중 34.7%는 수급신청 경험이 있으나 수급을 받지 못했고, 62.5%는 ‘자격기준이 안될 것 같아서’ 등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아예 수급을 신청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된 발제 자료를 봤을 때 유효한 시나리오로 해석된다. 아울러 습기나 곰팡이 등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이에 대한 객관적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집주인이나 기초자치단체가 문제해결에 대한 책무를 회피할 수 없음을 언급하며 절박한 사람들에게 ‘찾아가는 행정서비스’가 제공돼야 함을 힘주어 말했다. 서 처장의 발언은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행정서비스의 실행 주체 중 하나인 SH서울주택도시공사 역시 임대주택사업, 주거복지사업, 도시재생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는 만큼 서 처장이 언급한 찾아가는 행정서비스 영역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이어서 종로구청 김지호 자활주거팀장이 세 번째 토론자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김 팀장은 자료집에 포함된 5쪽 분량의 ‘종로구 주거복지 현황’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나가는 것으로 일관했다. 기자가 가장 선호하지 않는 패널 유형이다. 사업이나 실적에 대한 법령과 수치는 배부된 자료집에 다 나와 있다. 문제는 지원의 대상이 되는 상당수의 취약계층 사람들이 이것들을 올바로 해석하고 적용해 낼 문해력(文解力)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주거 취약계층에 대한 각종 지원 내용이나 신청자격 등을 토론회 현장 분위기에 맞추면서 패널 자신만의 구어체로 바꾸어 비전문가인 취약계층과 지역주민이 보다 알아듣기 쉽게 발표했다면 어땠을까.
학원에 등록할 돈이 없는 가난한 수험생이 교재의 내용이 어려워 이해하기 힘들거나 교재에 나오지 않은 숨은 노하우를 얻고자 어렵게 비용을 들여 인터넷 강의에 접수하여 수강했다. 그런데 강사가 부연 설명 없이 교재 내용을 그대로 읽기만 하면 수험생 심정은 어떨까(실제 인터넷 학점은행제나 자격증 관련 평생교육원 웹사이트에서 일부 강의 교수들이 교재를 읽기만 한다). 사실 지원 대상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가졌던 토론은 세 번째 토론 내용이었다. 한정된 시간 내에 여러 내용을 발표해야 하는 패널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문어체 투로 낭독만 하는 스타일은 화자의 능력이나 열정과 무관하게 청중이나 상대에게는 ‘진성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지정 토론자로 나선 무악동선교본당 류지현 복음화위원장은 “지역주민이 주체가 되어 개발하고 운영하는 자조프로그램(협동조합 등)을 지원하고 연대”한다는 선교본당 운영지침과, “지역사회의 문제와 주민의 욕구를 파악하여 지원”한다는 평화의집 운영목표를 소개하며 지역의 자조적인 공동체 만들기를 위해 진력해온 선교본당의 지난 20여 년을 회고했다. 또한 2015년 말 결성된 ‘인왕마을넷’과 같은 지역 연대모임의 안정된 지속을 위해서는 관의 도움과 지역주민의 협조도 절실하다면서 평화의집 실무자들의 사회 경제적 조건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합당한 임금과 적정선의 활동비용이 확보돼야 함도 언급했다. 류 위원장은 “객체나 대상이 아닌 주체로서 지연주민 역할이 필요하다.”면서 “지역에 대한 ‘막연함’을 해소하는 계기가 된 이번 실태조사가 지역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진 방청객 토론은 애당초 2~3분 정도만 배정됐는데, 폐회시간에 쫓기는 짧은 동안에도 3가지 질의가 쏟아졌다.
“전화문의를 했더니 사직동은 지원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어요. 지어진지 100년 된 낡은 한옥에 살고 있는데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요?(여, 사직동 주민)” “단순히 지원 프로그램을 안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관에서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서비스를 실행할 생각이 정말 있는 것입니까?(여, 빈민사목위 직원)” “선교본당 등 도움이 되고자 하는 곳에서 제도권 밖 사람들을 찾아가려 해도 기관에서 자료를 주지 않아요. 이분들을 도울 수 있도록 관련 정보를 공유해주면 좋겠어요.(장위1동 선교본당 복음화위원)”
패널들의 답변을 듣고 궁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어서 좌장인 박문수 신부가 토론회 종료 후 개별 상담할 것으로 마무리하여 질의응답을 마쳤다.
발제자인 이원호 연구원은 쪽방촌의 안타까운 화재사건과 관련하여 “얼마 전에 ‘집이 사람을 삼킨다.’는 표현을 봤다.”면서 “지역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제언을 드리지 못해 아쉽고 죄송하다. 그러나 비가시적으로 존재하는 취약계층에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실태조사와 토론회에 함께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고 그간의 소감을 전했다.
폐회에 앞서 독립문 평화의집 강경규 국장은 “평화의집 활동의 대상자를 찾는 것이 이번 실태조사의 우선 목표였다. 1년 6개월 동안 가가호호 직접 발품을 팔고 육안으로 확인하면서 빈민자 분포와 생활수준, 의식수준을 파악해 보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소 100개 정도의 샘플링을 생각했었는데, 실제로는 대부분 설문 응답을 거절했고, 응답한 가구에서도 급여지원 등 설문 문항 자체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졌던 것 같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강 국장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빈자가 없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찾지 않고 있었던 것이었다.”며 “관과 민이 협력하고 주거복지센터 등과 연대해서 다양한 사업을 함께 구상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는 소회를 밝혔다.
강 국장과 선교본당 신자들의 안내에 따라 토론회에 참석한 100여 명 중 80여 명이 걸어서 5분 거리인 무악동선교본당으로 이동하여 잔치국수와 족발, 막걸리 등을 곁들인 저녁 만찬에 함께했다.
토론회는 끝났지만 무악동 선교본당이나 독립문 평화의집에는 앞으로 갈고 닦아 수행해야 할 과제가 놓여졌다. 실태조사에서는 표본을 늘리고 응답률을 높여 객관성과 동시에 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리고 연속적인 조사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기초자료가 산출되고 이를 의제로 구체화하여 우선순위를 정해 활동의 방향을 잡을 수 있다. 더하여 심층 인터뷰에 대한 전문스킬도 갖추어야 한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활동가들 스스로 이를 인식하고 더욱 분발할 것으로 믿는다.
토론회에서 축사가 예정돼 있던 고병국 서울시의원(종로1)이 해외출자으로 참석하지 않았다. 지역의 기초의원이나 지자체 공무원은 지역 현장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리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하여 지역 주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례와 같은 제도를 마련해내야 한다.
옥탑방에는 차고 넘치는 햇볕이 (반)지하방에는 너무나 인색하다. 이번 현장 실태조사와 조사 결과의 공유를 바탕으로 곰팡이 핀 취약계층의 주거권에 햇볕이 비추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포스트는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에도 실렸습니다.

2019년 9월 27일 금요일

우리 안의 국뽕

카톡이나 밴드를 통해 잊어 먹을 만하면 전송되는 단골 콘텐츠가 몇 가지 있습니다. 가히 SNS 메시지의 스테디셀러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인데요. 일본과 관련한 내용들이 중복해서 많이 들어옵니다. 두 가지 정도만 얘기해 보겠습니다.

먼저 소개할 내용은 아베(Abe Shinzo)에 관한 것들입니다. 그는 일본국의 제90대, 96·97·98대 내각총리대신이죠. 그런데 그의 조부가 일제강점기 제9대 조선총독인 아베 노부유키(Abe Nobuyuki, 1875~1953)라는 겁니다. 메시지는 이렇게 시작하죠.

“조선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손자, 아베가 경제침략을 감행했다.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를 아시나요?
이름이 익숙하죠. 맞습니다. 현 일본총리 아베는 아베 노부유키의 친손자입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 내용은 ‘진짜뉴스’가 아닙니다.
같은 발음이라도 묘금도 유(劉)씨와 버들 류(柳)씨는 별개의 가문이죠. 정나라 정(鄭)씨와 고무래 정(丁)씨도 다른 혈통이고요. 아베 신조는 한자로 안배진삼(安倍晋三)이고, 그의 조부로 전파된 아베 노부유키는 한자가 아부신행(阿部信行)입니다. 우리한테는 같은 ‘Abe’지만 지금의 일본 총리는 ‘안배’씨고 마지막 조선총독은 ‘아부’씨기 때문에 조손관계가 성립할 수 없지요.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민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결국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 조선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아베 노부유키의 ‘예언’ 또는 ‘저주’로 알려진 위의 글도 출전이 분명하지 않아 사실성을 확보할 수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그런데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Kishi Nobusuke) 즉 안신개(岸信介, 1896~1987)는 제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으로 기소되었다가 풀려난 뒤 제56·57대 총리까지 지낸 인물로 지금의 아베에게 사상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에 따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독도 얘기입니다. 기자가 아래 메시지를 처음 접한 것은 2015년 4월경입니다. 박근혜 정권의 권력이 시퍼렇게 살아 춤추던 시기입니다.

★조금전 美國에서 온 문서입니다.
우리 國民 들에게 많은 홍보 부탁드립니다. (4분 11초 영상입니다) 
★ 韓·日 외교당국이 펼친 인터넷 독도 동영상 홍보전에서 우리 측이 일본에 완패했다는 소식을 받았습니다. 
대한민국 國民으로서 약 4분가량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國土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함께 합시다!! 
★ 80프로 이상 보셔야 조회수로 포함된다고 하니 주변 지인들님께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당시 일본에 완패했다는 소식에 기자도 의기롭게 재생 버튼을 눌렀었죠. 그런데 두어 달 뒤부터는 ‘완패’란 말이 ‘완승’으로 바뀌어 퍼 날라지더군요. 애국심 충만한 국민들의 손가락 운동 덕분에 전세가 역전된 걸까요. 아니면 모종의 정치적 술수가 개입된 걸까요. 이미 완승(완전하게 또는 여유 있게 이김)을 거뒀는데 2019년 지금까지도 이 메시지는 계속 퍼져 나오고 있어요.

‘국뽕’이란 말이 있습니다. 국가와 히로뽕(philopon)의 합성어죠. 타민족·타국가에 극도로 배타적이며 자국의 자긍심에 과도하게 도취되어 맹목적으로 한국만을 찬양하고 떠받드는 자뻑 태도를 비꼬는 새말입니다. 적당한 국뽕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본은 역사 왜곡에 조작까지 예사로 일삼는데, 우리는 있는 역사도 올바로 찾아 먹지 못하는 상황이 부지기수니까요. 그래요. 다소의 과장은 용인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과대망상은 금물입니다. 정의롭지 못한 개인과 집단에 대적하여 이기려면 무엇보다 정의로워야 합니다.

최근 신일본제철(구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삼릉)중공업 등 전범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13년 만에 강제징용 피해자가 승소하면서 아베 일본의 경제도발이 시작됐습니다. 일본과의 경제전쟁의 근저는 역사전쟁이거든요.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으라는 저들의 요구는 명백한 내정간섭입니다. 일본의 아베 우익정권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험한 적입니다. 반성 없는 저들의 작태에 식민지 시기의 치유되지 못한 분노와 아픔이 더해져 우리 안의 국뽕을 소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턱대고 흥분하거나 무조건 ‘우리는 위대한 민족’임을 내세우면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실재했던 역사적 사실로 포장하는 것은 아베 일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소인배의 ‘정신적 승리’에 불과합니다.

나름대로의 정의감에 불타는 평범한 시민들은 적반하장의 태도로 일관하는 아베 일본에 민간 차원의 불매운동을 지속하면서도 문화교류는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아이러니죠. 아베 일본의 망상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됩니다. 우리는 쉽사리 국가주의로 변질될 수 있는 설익은 애국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진정한 애국심은 우리의 땅과 자연을 아끼고, 모든 구성원의 행복과 안녕을 지키며, 가장 가난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회정의를 위해 협심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기해왜란(己亥倭亂)으로 불리는 2019년 가을 문턱입니다.
2040년 쯤 되는 훗날, 일본이 “2019년 당시 우리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했는데, 오히려 이를 계기로 한국이 지금처럼 세계 초인류국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라며 시기심 짙은 토설을 내뱉는 상상을 해봅니다.

덧붙이는 글 |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Kwanews)에도 보냈습니다.

2019년 8월 30일 금요일

디지털 생활문해교육 강사 양성 연수 참가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이하 서평원)이 26일(월)과 27일(화) 이틀 동안, 종로구 송월동 서울자유시민대학 3층 5강의실에서 ‘2019년 디지털 생활문해교육 강사 양성 연수’ 과정을 운영했다.
이번 집합연수는 서울지역의 디지털 생활문해교육 확대와 장·노년층의 디지털 격차 해소를 위한 전문 인력 양성을 목표로 개설됐다.

‘디지털 생활문해교육’이란 디지털기기(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무인기기 등)를 이용하는데 필요한 관련 생활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교육이다. 앱으로 기차표나 버스표 예매하기, 영화관이나 음식점의 무인기기로 주문하기 등이 ‘디지털 생활문해’에 해당한다.

연수 대상자는 사전 공고를 접하고 지난 21일(수)까지 이메일로 접수한 지원자 중 서류심사와 면접심사를 거쳐 25명이 선발됐는데, 대다수가 서울지역의 각급 평생교육기관에서 활동하고 있는 초등과 중학과정 문해교사들이다.
강의는 ‘어디나 지원단’의 IT전문 강사 김태경 메이커가 진행했다.


연수생들은 하루 5시간씩 총 10시간의 교육 과정을 통해 스마트폰의 기본 환경설정과 인터넷 검색, 카카오톡 소통, 앱 설치와 관리, QR코드 활용, 키오스크(Kiosk) 무인단말기 사용법 등을 점검하고, 분과 토의를 통해 문해 현장에 효과적으로 적용할 시니어 스마트폰 교육방법학습론을 함께 모색했다.

서평원 정책사업팀의 이선영 주임은 “연수 이수자는 9월 23일부터 11월 15일까지 8주 동안 최대 50시간(월 최대 24시간)까지 ‘어디나 지원단’의 디지털 생활문해교육 보조강사로 활동하게 된다.”고 밝히면서 개별 활동 가능 일정에 대한 사전조사를 진행했다.

연수를 마친 문해교사들은 보조강사로 매칭되는 기관이나 단체의 어르신들이 스마트폰 대중화 시대 속에서도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지 못해 겪었던 불편을 해소하고, 새로운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2019년 8월 16일 금요일

화합과 단결을 바라며 나눠 먹은 ‘8·15 통일비빔밥’

일본 히로시마현을 강타한 제10호 태풍 크로사(KOROSA)의 간접 영향으로 하루 종일 굵은 빗줄기가 내리다 그치기를 반복한 광복절 정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8.15통일비빔밥 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8.15 통일비빔밥’ 나눔 행사가 진행됐다.
참여단체마다 다섯 가지 채소로 준비된 200명 분량의 비빔밥이 모두 10개 천막부스에서 비벼져 일흔 네 번째 광복절을 맞아 전국에서 광화문을 찾은 시민들에 제공됐다.


3.1혁명 100주년 범시민추진위와 동학실천시민행동(상임공동대표 이요상)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통일비빔밥 행사에 참여하여 15일 12시부터 광화문광장에서 통일비빔밥 나눔을 진행하였다. 약 200인분의 비빔밥에 소요되는 경비 50만원은 김익완 회원 등 범시민추진위 구성원들이 십시일반으로 모금하여 마련했다.

비빔밥은 계절과 지역에 따라 다양한 맛과 색으로 간편하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행사장에서 화합의 의미를 담아 퍼포먼스에 활용하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진주성 혈전 때 쉴 틈 없이 싸우는 남자들을 위해 아녀자들이 각종 나물과 갓 잡은 소고기를 썰어 밥과 비벼 만든 일종의 전투식량이 오늘날 육회비빔밥으로 유명한 진주비빔밥의 유래다.

요사이 기해왜란(己亥倭亂), 기해왜변이란 말이 회자되고 있다. 일제의 강점에서 우리 힘만으로 독립을 이뤄내지 못한 과거를 반성하며 국민 모두가 힘을 합하여 아베의 폭거에 맞서고 극일(克日)에 나서야하는 오늘… 비빔밥만큼이나 민족의 화합과 단결을 상징하는 것이 또 있을까.

아래 사진은 어제 광복절 정오 이후 광화문광장의 이모저모를 촬영한 것이다.




2019년 8월 13일 화요일

함양기행 4 - 우리가 소녀상이다

8월 1일(목) 일본 아이치(愛知)현 나고야(名古屋)시에서 개막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展―그 이후’가 아베정권의 압력과 극우세력의 협박 등으로 전시 사흘 만인 3일(토) 중단됐다.

이에 정당한 표현의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전세계의 사람들이 중단된 전시 주제를 따라 직접 찍은 ‘표현의 부자유 동상되기’(being a statue of Non-freedom of expression) 사진을 SNS에 공유하며 항의하기 시작했다.
평화의 소녀상 등 일본의 침략전쟁 사실을 고발하는 작품들의 철거는 전시 주제인 ‘표현의 부자유’를 적나라하게 상징하는 반어적 풍경이 아닐 수 없다.

70년 전 조지 오웰은 디스토피아 소설 <1984>를 통해 모순된 것을 모순된 것으로 느끼지 못하게 하는 더블 싱크(double think) 개념을 고안해 냈다. 이중사고가 지배하는 환경에서는 더블 스피크(double speak)와 같은 언어 왜곡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이런 사회에서 올바로 생각하는 것은 소트 크라임(thought crime) 즉 사상범죄가 된다.


예술이든 언론이든 그 생명력은 진실을 말하는 데에 있다.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 기자단도  경남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마을 ‘휴먼스쿨 명상의 집’ 여름휴가에서 오른편 옆자리를 비운 의자에 앉아 ‘표현의 부자유 동상되기’에 동참했다.
죽은 소녀와 현세를 매개한다는 왼쪽 어깨의 작은새는 마당에 핀 분홍색 상사화(相思花)로 대신했다.
일본 국가주의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일본 언론이 표현의 자유와 인권 문제에 보다 관심을 두길 바란다.

2019년 7월 24일 수요일

3·1운동 및 임정 수립 100주년 기념 수도권 100년 토론광장 참가

대통령직속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주관하는 <수도권 100년 토론광장>이 13일 오후 2시 서울 세종문화회관 1층 세종홀에서 개최됐다.
영남권(5월31일ㆍ경남도청 본관 대회의실)과 호남·제주권(6월5일ㆍ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컨퍼런스홀), 충청권(6월10일ㆍ대전컨벤션센터 그랜드볼룸), 강원권(6월28일ㆍ춘천세종호텔 사파이어홀)에 이어 마지막 다섯 번째 100년 토론광장이다.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100년 토론광장>은 국민이 직접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뜻을 되새기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를 그려보는 국민참여 행사로 기획됐다.

토론에 참가하는 국민 참여단은 거주 지역에 상관 없이 원하는 지역에 자유롭게 신청한 10대 이상 시민 중 성별과 나이를 고려하여 5개 권역마다 200명이 무작위로 추점, 선발됐다.
나의 경우 지난 5월 말 참가신청을 했는데, 8일 월요일 오전에 최종 참가단후보에 선정되었다는 (사)징검다리교육공동체의 문자를 받았다. 참석확인 링크를 따라 토론회 참여를 회신하고, 일시와 장소를 확인한 후 토론광장 웹사이트에 게시된 사전자료집 내용을 숙독했다.

수도권 100년 토론광장은 230여 명의 참가자가 4개 영역별로 “백년” “토론” “광장” “출발”을 함께 외치면서 힘차게 시작했다.
100년 토론광장 웹사이트와 참여신청서에 기재된 ‘국민의 목소리’를 분석한 자료를 사회자가 안내해 주었다. 산출된 키워드를 보면 전국적으로는 ‘애국심 > 자주 > 민족정신’ 순이었고, 수도권 시민들은 ‘독립 > 자주 > 애국심’ 순이어서 같은 듯 다른 소리가 보이기도 했다.

참가자 피드백을 집계하기 위해 자주색 QWIZDOM 단말기가 지급됐는데, 참가자자 숫자패드를 통해 본인이 공감하거나 선택한 내용에 해당하는 숫자를 클릭하고 전송버튼을 누르면 상단 화면에 ‘√,X’ 문자가 나타난다. 이를 통해 즉각적으로 결과를 산출하여 바로 스크린에 텍스트와 그래프로 표시하는 투표용 현장응답시스템은 매우 유용해 보였다.

첫 번째 QWIZDOM 집계는 남녀 비율이었는데 참가자의 성별은 50% 대 50% 동률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10대(33%) > 40대 > 50대’ 순으로 나타나 청소년층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는 수도권 토론광장에 서울특별시교육청이 함께 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학년별로는 ‘고2 > 중3 > 고1’ 순으로 참가학생이 많았다. 참고로 최고령 참가자는 77세, 최연소는 15세였다.
지역별로는 ‘서울’과 ‘경기’ 지역이 압도적이었고, 3순위는 ‘호남·제주’였다.
이어 참여자들은 ‘참여자 약속’을 통해 자유롭고 활기 있으면서도 경청의 자세로 토론에 임할 것을 다짐하였다.

한완상 추진위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3·1운동과 임정수립 100년이 지났지만 선열들이 꿈꾸었던 새 나라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오늘 토론에 참석한 여러분이 되찾아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서 조희연 서울 교육감은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를 언급하며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공존의 평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 토론 [선열이 꿈꾼 나라]의 첫 설문은 “오늘 우리가 계승해야 할 3·1운동의 가치”를 선택하는 것이었다. 내가 소속된 17모둠에서는 ‘정의와 공정성’, ‘국민주권’이 1, 2순위였고, ‘민주주의’ ‘사회통합’ ‘참여정신’이 3순위로 동률이었다. 전 모둠이 참여한 전체투표에서는 참여정신, 역사바로세우기, 평화 순으로 채택됐는데, 좀 의아했다. 참여정신이나 역사바로세우기 또는 사회통합 키워드가 3·1운동 당시의 핵심가치는 아니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의 이해가 부족한 듯한 결과다.
바로 이어진 3·1운동 당시 가장 절실했을 가치로는 ‘국민주권, 자유, 자주’가 많이 뽑혔다.


짧은 브레이크 타임 후 속개된 두 번째 토론 [우리가 만들 세상]의 주제는 “3·1운동의 가치가 살아 숨쉬는 대한민국 미래비전 그리기”였다. 정치·행정, 경제·산업·복지, 문화·교육·환경, 한반도·국제 등 4개 영역당 6개 테이블로 구성되어 총 24개 모둠이 내용 검토에 들어갔다. 각 모둠원은 사전에 온라인에서 많이 모아진 원안을 선택하거나 원안에 대한 수정의견 또는 새로운 의견을 포스트잇에 써서 A4용지에 붙이고, 모둠별 토론을 통해 의견을 숙의하여 대표안을 선정했다. 17모둠의 검토 의견은 최웅립 퍼실리테이터가 안건을 취합하여 전지에 붙여가면서 집계를 하고 제목을 넣어 제출하였는데, 자체 결선을 통해 8번 균등한 기회 보장이 2번 주입식 교육 탈피를 누르고 대표 안건으로 등록되었다.

본격적인 모둠 발표 시간… 정치·행정 영역의 1모둠은 ‘국회의원의 성비를 동등하게 구성하자’는 9번 원안을 선정했다. 5모둠은 추가 발표를 통해 ‘청소년 참정권을 18세로 인하하자’는 새로운 안을 내놨는데, ‘18세로 인하’란 용어는 어색한 표현이다. ‘인하’ 대신 ‘하향’이나 ‘낮춤’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었다. 사회자 직권으로 소개된 6모둠의 “교육감 선출에 청소년 투표권 요구” 안이 신선했다.

한반도·국제 영역의 19모둠은 6번 남북교류 활성화 원안에 ‘통행자유’를 추가하여 수정안을 냈다.
경제·산업·복지 영역은 10모둠 소속의 강동구에서 온 중2 남학생이 호소력 있는 발표를 통해 9번 원안에 ‘소외되는 사회적 약자가 없는 진실되고 정의로운 복지사회를 만들자’는 수정안을 제시하여 박수를 받았다. 이어서 7모둠은 ‘실패가 두렵지 않은 사회’를 새로운 안으로 발표했다.

마지막 문화·교육·환경 영역은 우리 17모둠이 시작했다. 발표자인 대원여고 2학년 김수연 학생은 8번 균등한 기회와 성숙한 사회적 포용력이 있는 나라를 우선순위로 선정한 이유를 차분히 밝히면서 추가설명을 통해 “친구들을 보면 신석기나 삼국시대까지는 잘 하는데, 근대에 들어서면 한국사를 멀리하게 된다”고 부연하면서 근현대사 교육의 강화를 제시하였다. 사회자가 이번 행사에 대해 느낀점을 물었고, 김수연 학생은 “다양한 연령대가 함께 했지만 비슷한 의견과 겹치는 점들이 있어 세대간 공감대를 느낄 수 있었다”고 답해 큰 박수를 받았다. 사회자 역시 100년 토론광장의 본래 기획의도와 일치한다면서 다시한번 참여자들의 박수를 유도하였다.
13모둠은 밥상머리교육과 홈스쿨링, 14모둠은 외래문화의 유입 속에 사라져가는 우리 문화를 아끼고 사랑할 것을 신규안으로 내놓았다. 18모둠은 친일파의 재산환수와 청산, 표준계약서 사용 의무화를 제안하였다.


24개 모둠이 각각 제안한 24개의 대표제안을 화면에 띄우고 모둠별로 짧은 토의를 거쳐 18개로 통합·조정하였다. 참가자들은 1~3차 투표를 통해 18꼭지 중 차례로 1개씩 총 3개 항목을 선택하여 투표를 완료했다.
집계가 이뤄지는 동안 이번 토론광장 활동에 대한 느낌문과 참가확인서를 작성했다. 추후에 참가사례비 3만원을 지급해준다고 했다.

드디어 합산 결과가 나왔다. 수도권 100년 토론광장의 전체 1순위는 조정된 번호 11번으로, 길라잡이 자료집 문화·교육·환경 영역 8번의 “누구나 차별 없이 균등한 기회를 누리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 성숙한 사회적 포용력이 있는 나라를 만들자.”가 차지했다. 기쁘다. 내가 개인 1순위로 선택했고, 소속 17모둠에서도 결선을 통해 1순위로 뽑힌 데 이어, 수도권 최종 집계에서도 1순위 가치로 선정됐다.

이어서 수도권 참가자를 대표한 4인이 단상에서 100년 토론광장 수도권 선언문을 봉독했는데, 변상빈 학생이 마치 성우 같은 목소리로 선언문을 읽어내려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선언문은 1919년의 기미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단락 “着手(착수)가 곳 成功(성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의 문장구조를 차용하여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저 앞의 밝은 빛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뿐이다.”로 끝맺음됐다. 수도권 선언문은 추진위와 교육청에 전달됐다.

모든 참가자에게는 한정판 기념품으로 [쉽게 읽는 독립선언서]와 [민국 100주년 앨범] 2종이 제공됐다. 아래 사진은 ‘100년 토론광장’ 페이스북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번 토론광장을 통해 참가자들은 100년 전,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만세를 외친 선열들이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제국(帝國)에서 민국(民國)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임시정부가 그려보았던 해방된 나라는 어떤 곳이었을까? 우리가 계승해야할 독립운동의 핵심 가치는 무엇일까?를 토론하며 3·1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 실현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문득 tvN 토일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유진 초이가 고애신에게 건넸던 뭉클한 대사가 떠오른다.

“귀하가 구하려는 조선에는 누가 사는 거요. 백정은 살 수 있소? 노비는 살 수 있소?”


덧붙이는 글 |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Kwanews)에도 보냈습니다.

2019년 7월 12일 금요일

명예시민학위제 운영 계획 마련 위한 서울자유시민대학 시민공청회

서울자유시민대학이 11일 오후 2시, 시민청 지하2층 태평홀에서 명예시민학위제 ‘석사’ 과정 운영을 위한 시민 공청회를 개최하고 참석한 시민들의 의견을 들었다.
‘명예시민학위’란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정규강좌를 일정 시간 이수하고, 연구과제 수행, 사회참여활동 등 정해진 기준을 충족한 학습자에게 수여하는 비공인 학위로, 명예시민 학사·석사·박사로 구분된다.

시민대학 강좌 100시간 이상을 수강한 명예시민학사가 취득할 수 있는 명예시민석사는 이수석사와 실천석사 두 가지가 있다.
이수석사(가칭)는 공통과정 80시간, 전공과정 100시간을 이수하고 졸업과제인 전공세미나 20시간을 통해 산출된 결과물을 인정받으면 취득할 수 있다.
실천석사(가칭)는 이수석사의 이수기준 200시간에 시민연구회 및 사회참여활동 등 다양한 형태의 실천활동 40시간을 충족하면 취득할 수 있다. 이수석사 과정을 밟는 중에 실천석사로 전환도 가능하다.
아래는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제시한 명예시민석사 취득기준(안)이다.


김민웅 서울자유시민대학 교육체계 수립 자문위원장은 △우리 사회의 도전과 인류적 차원의 과제에 대한 대응력 배양 △새로운 미래를 창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역량 강화를 명예시민학위제의 교육 목표로 설명하면서, 시민 학습공동체의 본질을 위한 철학적ㆍ역사적ㆍ윤리적ㆍ생태적ㆍ미래적ㆍ미학적 사유 등 6가지 사유체계를 명예시민학위제의 교육철학으로 제시했다.


공청회는 시민대학에서 준비한 교육목표 및 교육철학, 운영 기본안에 대한 설명을 40분 만에 마무리짓고, 곧바로 질의응답 순서로 들어갔다.
한국역사인문교육원 오정윤 대표, 서울자유시민대학 김종선 국장, 경희대학교 김민웅 교수, 한양대학교 이영재 교수, 이음교육 박하늘 대표가 시민들의 질의에 답변했다.
한 시간 가량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을 통해 모두 13명의 참석 시민이 학위제의 문제점과 개선점 등 20여 종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였다.

시민대학 관계자는 “오늘 공청회에서 시민들에 제시된 학위제 운영 방향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라면서 “시민들이 제안해 준 여러 가지 소중한 의견을 수렴하여 보다 체계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운영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자유시민대학은 오는 9월 중 석사과정 참여자를 모집할 예정이다.

故 신영복 교수는 ‘평생학습’에 대해 ‘먼 길을 함께 가는 아름다운 동행’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서울시와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지향하는 민주사회, 학습사회에 대한 가치와 철학이 많은 시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함께 하는 동행’으로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2019년 7월 5일 금요일

서울극장에서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 개막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Resistance Film Festival in Korea 2019)가 4일부터 7일까지 나흘간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펼쳐진다.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가 주최·주관하는 레지스탕스 영화제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독립운동과 저항정신을 기억하고자 지난해 처음 개최됐다.

올해 2회째를 맞는 2019 레지스탕스영화제의 슬로건은 ‘분노하며 돌아보라 그리고 저항하라’다. 실제 레지스탕스로 활약했던 스테판 에셀의 책 『분노하라』(돌베개, 2011)가 연상되는 대목이다. 금년에는 작년에 비해 개최 시기를 2개월 앞당기고, 섹션도 확대하여 모두 27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이번 영화제의 김효정 프로그래머는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을 통해 “세계 각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현 시대의 레지스탕스들을 조명하는 것에 영화제의 초점을 맞추겠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요 섹션과 상영 작품은 다음과 같다.

▲‘저항의 인물사’ 섹션 : <1919 유관순>(신상민)과 <체 게바라> 1·2부(스티븐 소더버그)
▲‘조선반도와 우리들 영화제’ 섹션 : <니안짱>(이마무라 쇼헤이), <큐폴라가 있는 거리>(우라야마 키리오)
▲‘전후 재일 50년사’ 섹션 : <The Story of Koreans in Postwar Japan:Zainichi>(오덕수), <교사형>(오시마 나기사)
▲‘계속되는 투쟁’ 섹션 : <침묵>(박수남), <디아즈:이 피를 지우지 말라>(다니엘레 비카리), <일 신다코>(데이비드 파렌디·클라우디오 카네파리), <젊은이들의 양지>(길레 페렛·프랑수아 뤼팡), <주전장>(미키 데자키), <더 디펜더>(차오 시 한)
▲‘투쟁의 회고’ 섹션 : <코뮌>(피터 왓킨스), <빨치산 전사>(츠치모토 노리아키), <잔 다르크의 어린 시절>(브뤼노 뒤몽), <여생>(시앙-추 탕), <김군>(강상우), <파업전야>(이은기·이재구·장동홍·장윤현)
▲‘마이너리티의 투쟁’ 섹션 :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나는 반대한다>(벳시 웨스트·줄리 코헨), <칼 끝에서>(제레미 윌리암스), <자브리스키 포인트>(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역사의 기록’ 섹션 : <어느 독일인의 삶>(크리스티앙 크로네·올라프 뮐러·롤랜드 쇼르투퍼·플로리안 와이겐즈미어), <철의 심장을 가진 남자>(세드릭 히메네즈)
△‘스페셜 초청작’ : <비욘드 더 웨이브스>(알랭 드 알뢰), <두만강아 잘 있거라>(임권택)

4일 오후 4시 ‘개막작’으로는 백인경찰에 의한 흑인시민 사살로 촉발된 2014년 미주리州의 퍼거슨 봉기(Operation Ferguson)를 다룬 <후즈 스트리츠?>(사바 폴라얀)가 상영(H관)된다.
<코뮌> 영화의 한 장면은 이번 영화제의 포스터 이미지로 사용됐다. 파리 코뮌(Paris Commune)은 1871년 보불전쟁(Franco-Prussian War)의 휴전조약 후 파리 시민들이 티에르의 임시정부를 몰아내고 세운 70일 짜리 민주주의 혁명정부의 명칭이다.

한편, 강상우 감독과 신연경·고유희 프로듀서, 최낙용 제작자가 <김군>으로, 장동홍 감독과 이용배 제작자가 <파업전야>로, 박수남 감독이 <침묵>을 통해 ‘레지스탕스 필름 어워즈 수상자’로 선정됐다.
6일 오후 3시 서울극장 1층에서 ‘영화는 한일간의 역사적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가’를 주제로 포럼이 열릴 예정이다.

아래 상영시간표는 레지스탕스영화제 페이스북(facebook.com/RFFinKR)에서 가져왔다.


2019 레지스탕스 영화제의 모든 상영작은 무료로 상영(5관/10관)되며, 티켓은 당일 현장에서 선착순으로 배포된다. 좌석은 비지정석이며, 입장 후 자유롭게 앉아 관람할 수 있다.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서울자유시민대학, 전국 최초로 명예시민학사 381명에 학위 수여

지난 목요일(3월 14일) 서울자유시민대학이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 최초로 명예시민학사 381명을 배출했다. 당초 2월 예정이었던 제1회 명예시민학위 수여식이 3월 14일로 변경되어 오전 10시 40분부터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명예시민학위는 개설된 오프라인 강좌를 서울자유시민대학의 취득 기준에 따라 일정 시간 이상 이수한 학습자에게 서울자유시민대학총장(서울시장) 명의의 시민학위를 수여하는 제도로 작년에 도입되었다.
총괄은 2018년 4월에 종로구 송월동 옛 서울시복지재단 터에 개관한 본부캠퍼스가 맡고 있다.

2013년 태평로 시민청에 캠퍼스가 처음 조성될 무렵에는 ‘서울시민대학’이란 이름으로 추첨제로 운영됐던 것이 지난해부터 ‘서울자유시민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총 1,398개의 강좌에 65,196명의 학습자가 참여했다고 한다. 이중 100시간 이상을 충족한 381명이 이번에 처음으로 명예시민학사를 받게 된 것이다.
학위는 14개 그룹별로 나뉘어 단상에서 학위증이 수여됐다. 학위 수여자 중 최고령은 81세, 최연소는 23세였다. 무려 800시간을 채운 우수 학습자도 15명이나 나왔다.

나도 2013년에 시민청 태평홀에서 ‘나는 새로운 사회 실현의 주역인가?’ 강좌의 학습자로 선정된 후 과정을 수료하면서 서울시 평생학습 대열에 합류했다. 지난해에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에서 ‘익숙한 소설들로 읽는 근대 감성의 사회사’ 과정을 수료하여 6년간 총 102시간을 채우면서 턱걸이로 학위수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오랫만에 학사복 입고 학사모 쓰는 재미가 쏠쏠하고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주로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학위수여자 분들이 서로 축하의 덕담을 건네고,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주며 격려하는 모습이 마냥 흐뭇하고 보기가 좋았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서울자유시민대학 2022 운영계획’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명예시민 학·석·박사 3,000명 배출을 목표로 335억원이 투입돼 100개 캠퍼스가 운영될 예정이다.

시민석사는 시민학사 학위자가 필수 1강좌, 심화 3강좌를 수료한 후 사회참여 활동 20시간을 더하고 에세이를 작성하여 총 200시간(누적 300시간) 이상을 수료해야 취득할 수 있다.
또 시민박사는 시민석사 학위자가 필수 1강좌, 심화 4강좌, 사회참여 활동 20시간에 에세이를 작성하여 추가로 총 200시간(누적 500시간)을 더 수료한 후 개인 연구과제 심사까지 통과해야 취득 가능합니다.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학위 취득자는 시민연구회와 동아리 등 꾸준한 학습활동을 통해 정책연구, 제도개선안 마련 등 서울시의 정책파트너로 활동하도록 지원을 받게 된다. 아울러 시민기자단(진흥원), 모두의 학교(모두아띠) 자원봉사 및 학습매니저(서울자유시민대학), 평생학습코디네이터(자치구 평생학습관), 평생교육전문가(동네배움터) 등 사회공헌 일자리와도 연계될 예정이라고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축사를 통해 독일 뮌헨(Munich)시의 시민강좌 현황을 예로 들면서 독일의 경제번영과 숙의민주주의의 바탕에 평생학습이 자리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극복하게 만든 일본의 시민력(市民力) 개념을 언급하면서 성별, 연령, 계층, 문화, 지역에 차별받지 않는 성인 공교육 시대를 열어나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제1회 명예시민 학위수여식을 통해 지속적인 배움에 대한 동기 부여는 일단 안착한 것으로 보인다.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한 부분으로 평생학습을 추구하는 학습자도 늘어났다.
시민의 각성과 그에 따른 행동은 부조리한 사회를 개선해 나가는 동력이자 민주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주춧돌이다. 서울시가 야심차게 추진하는 평생학습, 시민교육 프로그램이 튼실한 뿌리를 바탕으로 더욱 활기차게 가지를 뻗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2019년 2월 26일 화요일

세 명의 마리아 - 조마리아, 김마리아, 박마리아의 선택

가톨릭교회는 세례자에게 성덕(聖德)이 뛰어난 성인(聖人)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장려하여 13세기 이래로 교회법으로 명시하고 있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모친인 마리아는 일반 성인에 대한 공경(恭敬)보다 한 차원 높은 상경(上敬)의 대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때문에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고자 하는 많은 여성 예비신자들이 ‘마리아’ 세례명을 택하고 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마리아(瑪利亞)를 세례명이나 이름으로 삼은 여성들이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조성녀(趙姓女) 마리아(1862~1927)다.
황해도 해주 출신의 조마리아는 1897년 남편 안태훈의 인도로 뮈텔 주교에게 세례를 받았다.

“네가 만약 늙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고 생각한다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너 한 사람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것은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짓이다. 네가 나라를 위해 이에 이른즉 다른 마음 먹지 말고 죽으라.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刑)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大義)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다. 어미는 현세에 너와 재회하기를 기대치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반드시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후 뤼순감옥에 수감된 안중근 의사에게 사촌동생 안명근을 통해 전했다는 조마리아의 당부인데, 참으로 담대하고 강직한 언사다. 안 의사는 어머니가 보낸 흰색 명주수의를 입고 이듬해 3월 26일 교수형을 받아 31세로 순국했다.
안 의사의 순국 후 조마리아는 연해주로 망명하여 동쪽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쪽 바이칼호수에 이르기까지 쉼 없이 동포들의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사업을 전개해나갔다.

1920년대 상하이에서는 김구의 모친 곽낙원(郭樂園)과 동기간처럼 지내면서 독립지사들의 어머니 역할을 수행했다. 조마리아는 장남인 안 의사의 동생 성녀, 정근, 공근 3남매도 독립운동가로 키워내면서 ‘안중근의 모친’으로 손색없는 삶을 살다가 1927년 7월 15일 상하이에서 66세로 순국하였다. 유해는 프랑스조계 만국공묘(萬國公墓)의 월남묘지에 안장되었는데, 지금은 개발로 인하여 묘소를 찾아볼 수 없다. 대한민국정부는 2008년 8월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두 번째 마리아는 김진상(金眞常) 마리아(1892~1944)다.
김마리아는 삼촌과 고모들이 모두 항일구국운동에 투신한 애국집안 출신이다. 세례명이기도 한 그의 이름 마리아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부친이 지어줬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었으나, 대학공부까지 하라는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1906년 이화학당에 입학했다가 장로교 계열 연동여학교(정신여고 전신)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그 뒤 광주의 수피아여학교(수피아여고 전신)와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며 교육 계몽운동에 힘썼다.

1914년에 도일하여 도쿄여자학원에서 수학하던 김마리아는 1919년 3·1만세운동의 전초전이라고 할 수 있는 2·8독립선언에 참여하다 일경에 붙잡혀 취조를 받았다. 이후 2·8독립선언의 열기를 국내로 전파하고자 ‘2.8독립선언문’ 10여장을 베껴 숨기고 부산항을 통해 귀국하여 교편을 잡았던 광주 지역에 배포하였다. 3·1운동 때에는 황해도 봉산에서 활동했다가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는데, 이때 몸을 상해 평생을 건강문제로 고생하였다. 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6개월 동안 옥고를 치르고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된 후, 대한민국애국부인회 회장으로 임시정부에 군자금을 조달한 혐의로 다시 3년형의 판결을 받고 복역하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세브란스병원에서 치료 중 동지들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상하이로 망명한 김마리아는 상하이 대한애국부인회 간부와 임시의정원 대의원으로 활약했으며, 국민대표회의에서 창조파와 개조파의 불화에 실망하여 1923년 미국으로 건너가 근화회(槿花會)를 조직하고 항일투쟁을 지속해 나갔다. 1932년 오직 신학만 가르친다는 조건으로 귀국한 김마리아는 원산에 있는 마르다 윌슨신학교에 머물면서 끝까지 신사참배를 거부하였다. 조국광복을 불과 1년 앞둔 1944년 3월 13일 고문으로 얻은 병이 도져 53세로 순국하였다. 결혼을 하지 않은 김마리아의 시신은 그의 유언대로 화장돼 대동강에 뿌려졌다. 대한민국정부는 1962년 유관순과 함께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서울 신대방동 보라매공원에 김마리아 동상이 건립되어 있다.
“김마리아 같은 여성동지 열 명만 있었던들 대한은 독립이 되었을 것”이라는 안창호의 말은 조국광복을 위해 일생을 바친 김마리아의 위상을 대변해 준다.

세 번째 마리아는 박마리아(1906~1960)다.
강릉 태생으로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고의대(高義大)의 손에서 가난하게 자랐다. 박마리아는 어머니가 가정부로 일했던 인연으로 정춘수 목사의 소개를 받아 개성의 감리교 계열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2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배재학당을 설립한 아펜젤러(Henry Gerhart Appenzeller)의 주선으로 미국 유학길에 올라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1932년 귀국하여 이화여전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1934년 유학 시절에 만났던 이기붕과 결혼하고 조선YWCA 총무로 10년간 활동하면서 일제의 내선일체 지침에 따라 조선YWCA가 일본YWCA에 흡수되는데 일조하였다. 태평양전쟁 즈음에는 김활란, 모윤순, 노천명, 박순천 등과 함께 친일강연에 적극 참여하면서 징병제 등에 협력할 것을 종용하였다. 광복 후에는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와 대한부인회 부회장으로 영부인 프란체스카 도너(Franziska Donner)와 가까이 지내면서 그때까지 별 볼일 없던 남편이 대통령비서실장과 서울특별시장 자리에 임명되는데 조력했다. 남편 이기붕이 정치 라이벌 이범석을 제치고 1공화국 2인자로 자리매김하던 무렵 박마리아도 이화여대 문리대학장과 부총장, YWCA 회장 자리에 올랐다.

1957년 박마리아는 장남 이강석을 이승만의 양자로 입적시켜 정치에 더욱 깊숙이 개입하였다. 1960년 제5대 정·부통령 선거를 통해 이기붕이 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곧바로 4·19혁명이 일어나 자유당 정권이 붕괴하고 이승만은 하야(下野)하였다. 1960년 4월 28일 경무대(景武臺)로 피신해 있던 이기붕, 박마리아, 이강욱 일가는 당시 육군 소위로 복무 중이던 이강석의 권총을 맞아 죽고 이강석 또한 자살하면서 참혹한 종말에 이르고 만다. 그들이 살았던 종로구 평동 166번지 서대문 집터는 1964년부터 사설도서관이 들어서 지금은 4·19혁명 기념도서관으로 운용되고 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조마리아, 김마리아, 박마리아… 마리아 이름을 가진 세 여성 모두 3·1운동 전후의 굴곡진 시대를 살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조국광복의 길로 한 사람은 친일과 반민주의 길로 들어섰다.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등의 사료에 따르면 약 300만 명이 일제강점 당시 시대정신의 중심축인 독립운동에 참여한 것으로 추정된다. 300만 명 중 일부는 일제에 부역하는 쪽으로 진로를 바꿨다. 각자의 선택과 삶의 흔적은 기억이 되고 역사로 남았다. 그 선택의 발자국이 복지국가의 건설, 경제민주화의 실현, 분단조국의 통일과 같은 2019년의 시대정신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살피고 고민하는 일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 된다.


<참고자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보훈처 ‘이달의 독립운동가’

덧붙이는 글 | 한국여성연합신문 크와뉴스(Kwanews)에도 보냈습니다.

2019년 2월 5일 화요일

기해년, 모두가 행복하면 돼지~

설날이다.
많은 사람들이 친지간에 정(情)과 덕담을 나눈다. 나 역시 주로 카톡이나 밴드와 같은 SNS를 통해 덕담을 주고 받았다.
돼지해여서 그런지 많은 문구가 “행복하면 돼지, 부자되면 돼~지, 사랑하면 돼지, 새해엔 다~돼지”였다.

그런데, ‘~하면 돼지’가 올바른 표현일까?
‘되-’는 동사 ‘되다’의 어간이고, ‘돼’는 어간 ‘되-’에 어미 ‘-어’가 결합해 축약된 형태다.
그러므로 ‘돼지’가 아니라 ‘되지’가 적절한 표현이다.
또한 ‘되지’의 부정 표현도 ‘안 돼지’가 아니라 ‘안 되지’가 맞다.


5살 된 조카 아이는 하얀 망토를 한 분홍색 ‘AHN(안)돼지’ 인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십이지(十二支) 중 맨 마지막인 돼지는 고대 부여국(夫餘國)의 사출도(四出道)를 구성했었고, 윷놀이의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선량한 사람들 모두의 가정과 공동체에 좋은 일 많은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행복하면 되지”, “사랑하면 되지”

2019년 1월 4일 금요일

알라는 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했을까?

이슬람교에서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슬람교의 경전인 쿠란(Quran)에는 먹을 수 없는 음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돼 있다. 돼지고기, 죽은 고기, 동물의 피와 그 피로 만든 음식, 그리고 유일신 알라(Allāh)의 이름으로 기도문을 외우지 않고 도축한 것들은 하람(Haram)이라 하여 금기사항으로 규정해 놓았다.
반면 양, 소, 염소, 낙타 등의 초식동물을 알라의 이름으로 도축한 것들은 할랄(Halal)이라 하여 허용되는 음식이 된다.

그렇다면 알라는 왜 돼지만을 특별히 언급하여 먹지 말라고 명했을까?
이에 대하여 돼지가 보유한 기생충이 인간의 몸에 해롭다든가, 높은 온도의 사막기후에 돼지고기가 쉽게 상하여 식중독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있다.
또한 털로 몸을 보호하거나 땀을 흘려 체온조절을 할 수 없는 돼지가 외부의 습기를 이용하기 위해 물기가 있는 진흙 속을 뒹구는 습성을 불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덥고 척박한 건조기후 지역에서는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돼지보다는 양, 염소와 같이 풀만 먹어도 인간에게 우유와 고기, 가죽을 제공하는 동물을 사육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어서 사회적 관습으로 굳어졌고 이러한 흐름이 종교적 금기로 명문화되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생태학적으로 돼지 사육이 가능한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들은 이슬람 문화권의 외곽선을 이루고 있다. 돼지고기를 일종의 소울 푸드(soul food)로 생각하는 중국에서 이슬람교의 지위는 미미하다. 요컨대 이슬람교의 지리적 한계는 돼지 사육이 적합한 지역과 고온건조하여 돼지 사육이 어려운 지역의 경계선에 갇혀 있다.

돼지에 대한 금기는 19세기 중반 인도에서 충돌을 불러왔다.
1857년 5월 델리에서 영국 동인도 회사에 고용된 인도인 용병 세포이(Sepoy)들이 영국에 대항하여 무력 항쟁을 일으킨 것이다. 그해 1월 “새로 보급된 신식총의 탄약통이 녹슬지 않도록 소기름과 돼지기름을 바른 종이로 포장해 놓았는데, 그 종이를 입으로 끊어야 사용할 수 있다”는 통보가 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소를 신성시하는 힌두교도와 돼지를 금기시하는 이슬람교도로 구성된 세포이의 항쟁(1857~1858)은 당시 영국의 지배에 불만을 품고 있던 상인들과 도시 빈민, 농민들이 동조 가세하여 인도 각지로 확산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여 무굴제국을 해체하고 빅토리아(Victoria) 여왕이 새로운 인도제국의 황제를 겸직하며 이른바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세를 이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