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2일 월요일

거꾸로 석물

①532년에 비잔티움 황제 유스티니아 1세가 건설한 예레바탄 사라이(Yerebatan Sarniscir) 지하궁전의 메두사(Medusa) 머리 기둥  ②청계천 홍수 때 태종 이방원이 계모 신덕왕후 강씨가 묻혔던 정동 정릉에서 가져온 병풍석과 난간석으로 보수한 광통교 석물  ③을사늑약의 장본인 중 하나인 주한공사 하야시 곤스케(林權助) 남작의 동상을 받치던 좌대를 복원한 남산 통감관저 터의 판석…

거꾸로 세운 건조물은 대상에 대한 혐오감, 역겨움, 욕, 반감, 옭아맴, ​벽사(辟邪) 등의 낱말과 연결될 터이다. 적어도 축복의 감정과는 거리가 멀다. 많은 사람이 ‘굥’이나 ‘논’민대를 언급하고 있다.


2022년 8월 12일 금요일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

“제 이름은 똑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입니다.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 우영우.”… 요사이 화제가 되고 있는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법무법인 한바다의 인턴 변호사이자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우영우가 자기소개를 할 때마다 쓰는 문장이다. 이 문장에 쓰인 단어들처럼 앞뒤 어느 쪽에서 읽어도 같은 어구·문장·숫자를 돌림문, 회문(回文), 영어로는 팰린드롬(palindrome)이라고 한다. 보통 낱말 사이에 있는 공백은 무시한다.

성인문해 중학 3단계 국어… 지난주에 내드린 ‘거꾸로 읽어도 제대로 읽어도 같은 낱말’을 써오는 창의학습 과제물을 걷었다. 올해 82세(좌·1941), 86세(우·1937년) 되신 어머님 두 분도 훌륭하게 숙제해오셨다. 


2022년 8월 11일 목요일

코리안 디아스포라의 삶

“디아스포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를 수강신청했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와 관련해 (다시)봐야 할 혹은 (앞으로)보고 싶은 시, 소설, 에세이, 희곡과 연극, 영화, 다큐가 한가득이다.

이카이노시집(김시종)
떠도는 땅(김숨)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 ▲바람 목소리(김창생) ▲우토로 여기 살아왔고, 여기서 죽으리라(나카무라 일성) ▲이슬람 정육점(손홍규) ▲파친코(이민진) ▲단순한 진심(조해진) ▲로기완을 만났다(조해진)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정의신)
차별(김지운) ▲항로 - 제주, 조선, 오사카(김지운) ▲우키시마호(김진홍)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김철민) ▲제주해녀 양씨(신기수→마사키 하라무라) ▲감춰진 손톱자국(오충공)
코리안 디아스포라(김지연) ▲연변으로 간 아이들(김지연) ▲일본의 조선학교(김지연) ▲사할린의 한인들(김지연) ▲경계인의 사색(송두율) ▲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송두율) ▲서간도 시종기(이은숙)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최성주)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허은)

이중 페친이 넷… 대단한 분들이다.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2894

문학으로 바라보는 디아스포라의 삶
‘떠도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우리의 시선’


종로구는 지역주민 등을 대상으로 「문학으로 바라보는 이방인들의 삶과 우리의 시선」 2부 “디아스포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의 수강자를 모집한다.

다섯 꼭지의 온라인 ZOOM 강연은 8월23일부터 9월20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이방인의 이야기’를 주제로 이어진다. 6회차 종강연은 오프라인 강연이다.

1회차(8.23) 강연은 문학비평가 이숙이 “고려인 디아스포라, 떠도는 자들의 이야기”를 주제로 고려인 강제이주를 다룬 소설 「떠도는 땅」(김숨)을 통해 역사적 재난과 디아스포라의 현재를 들여다본다.

2회차(8.30) 강연에는 영상문학 연구자 최은영이 나선다. 영화 「암살」,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서사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 만주·상해로 추방당한 여성 독립운동가의 궤적을 탐구하는 “항거하는 여성, 총을 들어라”를 이야기한다.

3회차 강연은 김시종 시인의 「이카이노시집(猪飼野詩集)」(1978), 「계기음상(季期陰象)」(1992), 「화석의 여름(化石の夏)」(1998)에 주목하여 일본과 2개의 조선 사이에 포위된 경계인의 윤곽을 살펴보는 “혐오와 연대 사이에서―경계를 넘어” 시간이 꾸려졌다. 유인실 시인이 진행한다.

4회차(9.13)는 만화연구자 김은혜의 안내로 6·25전쟁 이후 실향민이 된 엄마 이복동녀氏의 생애사를 그린 「내 어머니 이야기」(김은성)를 통해 “엄마가 구술하는 전쟁과 분단의 기억”을 살펴본다.

5회차(9.20) 강연은 재일동포 작가 정의신의 희곡 「야끼니꾸 드래곤」의 줄거리를 내용으로 “부유하는 경계인의 삶, 재일한인 극작가의 역사 쓰기”를 탐구한다. 극작가 최정이 고향은 있지만 갈 수가 없어 일본땅에서 살고 있는 재일교포의 삶과 목소리를 보여준다.

작가와의 만남&후속모임으로 마련된 6회차(9.27) 강연 “우리 안의 디아스포라, 공존하는 우리를 위하여”는 오프라인(선착순 20명)과 온라인(ZOOM) 강연을 병행한다. 「이슬람 정육점」 「저녁의 선동가」의 손홍규 소설가가 우리 안의 이주노동자와 다문화가정 이야기를 들려주고, 오윤호 교수가 독서모임에 적용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 문학작품 활용 노하우를 전해준다.

오프라인 강연 장소는 어린이청소년국학도서관(종로구 명륜길 26 와룡문화센터 5층)이다. 수강료는 무료이며, 수강을 희망하는 사람은 구글폼(https://forms.gle/tAHDjUZ81LKzq6HV9)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문의: ☎02-747-8335~6


2022년 8월 9일 화요일

수유리 광복군 합동묘소 17위, 대전현충원 이장

1941~1946년 사이 중국 각 지역(능천, 태행산, 태원 등)에서 치열하게 싸우다 순국(전사, 처형, 자결 등)한 광복군 선열 17위를 국립묘지로 모신다는 소식이다.

대전현충원에는 간도특설대 등에서 활동하며 항일무장세력을 토벌했던 ▲신현준(만주 봉천군관학교, 간도특설대 창설요원, 만주군 상위) ▲김석범(만주 봉천군관학교, 일본육사 53기, 간도특설대 정보반 주임, 만주군 상위) ▲송석하(만주 봉천군관학교, 간도특설대 장교, 만주군 상위) ▲백홍석(일본육사, 일본육군 중좌) 등이 묻혀 있다. 아이러니 한국사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27

‘수유리 광복군’ 선열 17위, 대전현충원에 모신다
후손 없는 광복군 선열, 광복 77년 만에 국립묘지로 이장


국가보훈처(처장 박민식)는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8월 11일(목)부터 14(일)까지 나흘간의 일정으로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묘소에 있는 광복군 선열 17위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한다고 밝혔다.

광복 직후에는 광복군 선열들을 따로 모실 공간이 없었고, 독립유공자도 아니었기에 조계사 등에 안치했다가, 1961년부터 한국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구 묘소(1957년 작고 후 수유리에 묘역 조성, 1994년 서울현충원 이장) 아래에 묘역을 조성한 뒤 1981년까지 각각 시점을 달리하여 봉분 1기에 17위의 선열을 함께 안장했다.

이후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어졌지만, 선열들이 20~30대 젊은 나이에 광복군에 투신, 조국독립을 위해 일제에 맞서 싸우다 전사, 순국한 뒤 후손도 없어 지난 77년간 국립묘지로 이장이 이뤄지지 못했다.

「다시, 대한민국! 영웅을 모십니다」라는 주제로 추진되는 이번 이장은 8월 11일 묘소 개장부터 임시 안치, 국민 추모·참배 기간 운영(12~13일), 합동봉송식 및 합동안장식(14일)의 순으로 진행된다.

먼저, 11일(목)에는 오전부터 서울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묘소를 개장한 뒤, 오후에 서울현충원으로 운구, 현충관에 임시 안치한다. 12일(금)부터 13일(토)에는 국민들이 광복군 선열들을 추모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을 통해 ‘국민 추모·참배 기간’을 운영한다. 이후, 14일(일) 오전 서울현충원에서 한국광복군 선열 합동 봉송식을 거행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 오후 대전현충원에서 안장식을 개최한다.

‘수유리 애국선열 묘역 및 광복군 합동묘역’은 서울시 강북구에서 관리해오다 지난 2021년 2월, 국가보훈처에서 국가관리묘역으로 지정, 전담 관리직원 배치와 묘역 개보수, 안내·편의시설 설치 등 국립묘지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하고 있다.

수유리 한국광복군 합동묘소(서울 강북구 수유4동 산127-1)에 안장된 광복군 선열 17명 중 13명은 1941~1946년 사이 중국 각 지역(능천, 태행산, 태원 등)에서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순국(전사, 처형, 자결 등)했고, 다른 4명은 광복 후 국내 등에서 작고했다. 

① 김유신(1991년, 애국장) : 1943년 2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② 김찬원(1991년, 애국장) : 1946년, 중국 산서성 태원지구에서 지하공작 중 일본군에 체포, 순국
③ 백정현(1991년, 애국장) : 1944년 4월, 중국 북경감옥에서 탈옥 시도, 실패 후 총살 순국
④ 이해순(1991년, 애국장) : 1945년 8월, 중국 산서성 운성에서 공작활동 중 체포, 순국
⑤ 현이평(1995년, 애국장) : 1941년 1월, 중국에서 한국인의 민족의식 고취 등 활동 중 피살
⑥ 김순근(1990년, 애족장) : 1945년 2월, 일본군에 체포·억류 중 비밀 보전을 위해 자결 순국
⑦ 김성률(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적 후방에서 공작 중 전사
⑧ 김운백(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⑨ 문학준(1991년, 애족장) : 1943년 8월, 중국 하남성 수무현에서 전사
⑩ 안일용(1991년, 애족장) : 1944년 9월, 중국 하남성 수무현에서 순국
⑪ 전일묵(1991년, 애족장) : 1945년 8월, 초모공작 및 항일운동 전개 중 일본군에 체포, 순국
⑫ 정상섭(1991년, 애족장) : 1943년 9월,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
⑬ 한  휘(2022년, 애족장 예정) : 중국 태항산 전투에서 전사(추정)
⑭ 이한기(1990년, 애족장) : 1949년 10월 5일 호림부대 소속으로 작전 중 전사
⑮ 이도순(1990년, 애족장) : 1969년 11월 28일, 서울 자택에서 작고
⑯ 동방석(1990년, 애족장) : 1971년 1월 20일, 서울 자택에서 작고
⑰ 조대균(1990년, 애족장) : 사망일자 및 사망장소 미상 


2022년 8월 8일 월요일

빅브라더 유감

성인문해 중학 2단계 사회시간에 ‘경제주체의 경제활동’을 학습하는 참에 작년 1단계 때 살펴본 ‘3권분립’을 엮어 함께 공부했다. 중앙에 정부를 두고 왼편에 국회와 법원, 오른편에 가계와 기업을 배치한 다이어그램을 그려 교안을 준비했다. 공공재(사회간접자본+공공서비스)의 개념과 종류, 공공재를 정부가 생산하는 이유 등을 민영화 이슈와 묶었는데, 70대 어머니 학습자분들이 잘 이해하신다.

국회의 탄핵소추권, 법원의 위헌법률심판제청권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각각 탄핵심판권, 위헌법률심판권을 갖는다. 위헌 결정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헌법재판관 6인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상상할 수 있는 사고능력, 생각의 자유를 박탈하고 개인의 정신까지 통제하는 빅브라더의 감시체제 독소조항들은 퇴출돼야 한다. 9월15일,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의 공개변론이 중요한 이유다.


2022년 8월 1일 월요일

응시가 존재를 조각한다… 죽산 조봉암 63주기

어제 오전 11시, 망우리공원묘지 내 죽산 조봉암 묘역에서 봉행된 63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모세 기념사업회장에 따르면 해마다 추모식 날에는 아주 비가 많이 오거나 아주 덥거나 한다고 한다. 어제도 죽산 선생의 恨이런가. 망우산에 국지성 호우가 쏟아지면서 1시간 넘게 진행된 추모식 내내 비가 흩뿌렸다.

“죽산은 차기 대권을 노리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및 그 추종세력의 음모에 죽었다”며 미국의 영향력이나 이승만의 책임을 방조하는 듯한 신복룡氏의 추도사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본인을 국가유공자회 상임고문이자 국민의힘 중앙당 고문이라고 소개한 장년의 창녕조씨(昌寧曺氏)가 서훈에 대해 “문중의 자책과 자숙이 있어야 한다”며 소속당의 역할은 배제하고 문중의 문제로 몰아가는 듯이 한 발언에도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과연 國民の力 인사다운 언변이다. 죽산이 헌정사상 사법살인의 첫 희생자로 숨져갈 때 법무부의 수장이 홍라희, 홍석현의 아버지 홍진기 장관이었다.

특별히 추모식에서 눈에 띈 점은 청년 두 사람이 추도사를 했다는 것인데, 63주기 동안 처음 있는 일이라고 들었다. 죽산의 정신을 미래세대에 잇겠다는 사업회의 비전과 맞닿는 거 같아 보기에 좋았다. 사형장으로 걸어가던 죽산 선생이 서대문형무소 담장 옆에 피어있는 코스모스에 다가가 한참 동안 꽃향기를 맡았다는 일화나 竹山이라는 호, 그리고 집행 직전 “막걸리 한 사발과 담배 한 개비”를 요청했다는 일화에서 묘역을 대나무나 코스모스로 꾸며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망우리 사잇길을 걸을 때 막걸리도 챙겨 한 사발 올려 드려야겠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120
죽산 조봉암 63주기 추모식 열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미래세대에 죽산정신 이어갈 것”


죽산 조봉암(1899~1959) 선생의 63주기 추모식이 7월31일 오전 11시, 망우리 묘역에서 열렸다.

정정현 작가의 사회로 진행된 추모식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죽산이 1959년 7월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11시에 맞춰 시작했다. 추모식은 △순국선열과 조국통일에 헌신한 분들에 대한 묵념 △죽산 육성(1956년 11월10일 진보당 창당대회) 청취 △환영사 △추도사 △분향 및 헌화 △음식나눔 순으로 엄수됐다.

이모세 회장(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은 인사말을 통해 “죽산의 동지들과 따님 조호정 여사의 눈물겨운 노력으로 2011년 사법적인 명예회복은 이루었으나, 아직도 독립유공자 서훈은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민주·인권·평등·평화에 대한 ‘조봉암정신’이 세대에서 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패러다임을 바꿔 청년과 학생들을 위한 문화 콘텐츠 개발 등에 진력해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행숙 문화복지정무부시장(인천광역시)은 “어렵고 복잡한 일과 직면할 때마다 죽산의 정신은 인천이 나아가는 길에 등불이 돼 주었다”며 “인천은 대한민국이 지켜야 할 소중한 자산인 죽산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일에 앞장서겠다”고 추모했다.

신복룡 전 석좌교수(건국대 정치외교학과)는 추도사 중간에 “죽산은 차기 대권을 노리던 이기붕과 박마리아 및 그 추종세력의 음모에 죽었다”고 전제한 뒤 “죽산에 대한 서훈은 굴곡진 현대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하지 않으니, 죽산 해원(解寃)의 마지막 작업으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다시 신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서훈심사위원·위원장(2009~2021)을 지냈다.

청년들의 추도사도 이어졌다. 조은주 청년활동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 살 수 있는 세상, 억압과 부패를 혁신하여 진정한 자유와 평화 속에서 인간다운 생활이 보장되는 복지국가”를 역설한 죽산의 진보당 결당대회 개회사를 인용하며 서두를 열었다. 조 활동가는 “목숨을 잃을 각오로 위험한 일터에 내몰린 청년, 사회복지 사각지대에서 고독사하거나 자살하는 청년들을 보면 인간의 존엄과 평등을 강조하며 복지사회 건설을 위해 혁신정치와 경제정의 실천을 주장했던 죽산의 사상과 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서 “의(義)로움과 이(利)로움을 조화롭게 추구한 죽산의 궤적을 더 많은 청년시민과 되새기고 확대하며 꿋꿋하게 걸어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윤준수 학생(전북대 정치외교학과)은 “혹자는 불만을 표시하지만, 죽산이 이승만 정권의 장관직 제의를 수락하지 않았다면 농지개혁법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죽산의 내각 참여를 ‘신의 한 수’로 칭송했다.

죽산 조봉암(1899~1959) 63주기 추모식이 7월31일(日)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공원묘지에서 열렸다.

추모식 말미에 발언에 나선 전현수 교수(경북대 사학과)는 “경북대 아시아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2019년부터 진보당 혁신계 형사사건 기록을 연구하고 있는데 진보당 조봉암 관련 서류는 1만6천장 정도의 방대한 사료로 구성돼 있다”면서 “위대한 항일독립투사이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죽산은 제헌헌법을 기초하고, 농지개혁법을 제정해 실천에 옮겼다. 사회주의가 스탈린 전체주의로 흐르자 민주적 사회주의로 사상적 대전환을 시도해 진보당을 만들었다. 한국사회의 발전과 민주화, 통일에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진보당과 조봉암을 연구해 재조명하고 후세에 전승하겠다”고 전했다.

정치권에선 김교흥(민주당/인천 서구갑) 국회의원이 추모식에 참석했고, 이재명(민주당/인천 계양을), 박찬대(민주당/인천 연수갑), 심상정(정의당/경기 고양갑) 국회의원이 조화를 보내 죽산의 뜻을 기렸다. 김교흥 의원은 “죽산 선생은 제헌의회 때 인천 을구 출신으로 지역구 대선배시다. 지금처럼 민생파탄에 국가가 위기 속에 있는 시점에 죽산의 정신이 사무치게 그리워진다”며 “역사의 질곡을 바로 잡는 서훈이 이뤄져야 한다. 청년들에게 시대정신을 제대로 심어주는 의미 있는 추모식이 됐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추모식은 100명 내외 참석자의 분향 및 헌화로 마무리됐다.

죽산 조봉암 선생은 1899년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강화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에 눈을 떴다. 이후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와 사회주의 계열의 독립운동을 펼치다가 일제 치하에서 7년간 복역했다. 이때 죽산은 일제의 고문과 감방에서의 동상으로 가운데 세 손가락의 첫 번째 마디를 잃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인 1945년에도 일제 헌병대의 요시찰 인물에 대한 예비검속에 걸려 정치범으로 구속됐다가 해방 이후 석방됐다.

1946년 5월 박헌영과 결별, 사상전향하여 좌우합작 운동에 참여하고 남북협상 노선을 걸었다. 1948년 5월10일 인천을구(현재 부평·계양·서구) 제헌의원으로 당선돼 헌법기초의원, 초대 농림부장관에 이어 제2대 국회의원,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는 동안 강제로 땅을 뺏는 게 아니라, 지주에게 농지채권을 주는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시행했으며, 지금의 농업협동조합을 만들기도 했다.

죽산은 1952년 8월 2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낙선하고, 1956년 ‘평화통일과 사회민주주의’를 노선으로 3대 대통령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30%가 넘게 얻은 지지율(=216만표)을 토대로 같은 해 11월 진보당을 창당했다. 하지만 1958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와 간첩죄로 체포돼 1심에서 징역 5년, 2·3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31일 오전 11시, 재심 요청에도 불구하고 교수형으로 서거했다. 2011년 대한민국 법원은 재심을 통해 죽산 조봉암 선생의 간첩죄 등을 52년 만에 무죄로 선고했다.

죽산의 묘비는 뒷면에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백비(白碑)다. 유족들은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아 완전한 명예회복이 실현되면 비를 새로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