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김광균, 김광림, 김광규… 이 시인들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성북동 비둘기」 「저녁에」로 유명한 이산(怡山) 김광섭(金珖燮, 1905.9.22~1977.5.23)은 「생의 감각」에서 고협압으로 쓰러졌다가 소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삶의 의지를 노래했다.
우사(雨社) 김광균(金光均, 1914.1.19~1993.11.23)은 「와사등」에서 도시문명의 쓸쓸함과 방향감각 상실을 그리고 있다. 납북된 동생을 대신해 무역회사 ‘건설상회(건설실업)’를 경영한 기업가이기도 했다.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추일서정),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외인촌), “먼 곳에 여인의 옷 벗는 소리”(설야) 같은 시구가 떠오른다.
독문학자 김광규(金光圭, 1941.1.7~ )는 「대장간의 유혹」에서 플라스틱과 같은 무가치하고 몰개성적인 삶을 반성하고, 시퍼런 무쇠 낫과 같은 진정성 있는 삶의 회복을 열망하고 있다. 「작은 사내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널리 알려져 있다.
김광림(金光林, 1929.9.21~2024.6.9)의 본명은 김충남(忠男)이다. 김광균의 ‘光’과 김기림의 ‘林’에서 필명 ‘光林’을 지었다고 한다. 1950년대 장교 복무시절 외출을 나올 때마다 보급품 박스 속에 있던 양담배(럭키스트라이크) 은박지를 모아 화가 이중섭에게 전해줬다. 그래서인지 「이중섭 생각」 연작시가 나왔다.
일반적으로 시인은 국내에서 가장 평균소득이 낮은 직업군으로 꼽히곤 한다.
슬픈 천명(天命)…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역시나 쉽게 씌어지는 시는 부끄러운 것인가 보다.
2024년 6월 10일 월요일
김광섭 vs. 김광균 vs. 김광림 vs. 김광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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