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1일 월요일

파주삼릉 탐방

지난 9월말 파주 홍원연수원으로 워크숍을 갔었다. 200m 거리에 파주삼릉(坡州三陵)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가 아니면 교통 등의 여건상 다시 찾아오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욕심을 내어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에 살짝 빠져나와 50분 정도 나홀로 탐방을 나갔다.


파주 삼릉은 능역 왼편부터 공릉, 순릉, 영릉이 있는 곳이다.

공릉(恭陵)은 8대 예종의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 한씨의 묘로 조성되었다. 무석인이 없고, 지형 문제로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참도는 ㄱ자로 꺾여 있다.

순릉(順陵)은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공혜왕후는 세조의 장자방 한명회의 넷째딸로 셋째딸인 장순황후와 자매지간이다.

영릉(永陵)은 21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진종)와 며느리 효순현빈(효순황후) 조씨의 묘로 조성되었다. 이후 양자인 정조가 효장세자를 진종으로 추존하고 순종이 다시 진종소황제·효순소황후로 추존하였다. 세자묘로 조성된 이후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세웠기 때문에 영릉에는 비각 2동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각 표석 전면에는 △조선국 효장세자묘 효순현빈 부좌 △조선국 진종대왕 영릉 효순왕후 부좌 △대한 진종소황제 영릉 효순소황후 부좌… 글자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파주삼릉은 크게 눈여겨볼 것은 없었다. 다만 당대의 척신 한명회가 수양대군을 왕위에 올리고, 정희왕후 윤씨와 결탁하며 예종과 성종의 장인으로 국정을 농단하다가 마침내 탄핵당한 옛일을 떠올리며 현 시국과 겹쳐본다. 한명회가 갈매기(鷗)를 길들이며(狎) 소일했던 한강 남쪽의 압구정(狎鷗亭)은 오간 데 없고 지금은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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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순릉·영릉이 모인 파주삼릉 걸어보자.

추존 진종의 영릉은 비각 2동에 표석 3기 세워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425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파주삼릉(坡州三陵)은 공릉·순릉·영릉이 모여 있어 ‘공순영릉’이라고도 부른다.

가장 왼편의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이 세자(해양대군)였을 때 세자빈이었던 장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장순왕후는 세조의 장자방 ‘한명회’의 셋째딸이다. 1461년(세조7)에 원손 인성대군을 낳았으나 얼마 후 숨을 거둬 묘소를 장순빈묘(章順嬪墓)라 불렀다. 이후 1470년(성종1)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공릉은 세자빈의 묘로 조성되었기에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석양과 석호 각 1쌍만 배치하여 간소한 모습이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1445∼1461)의 무덤이다. 장순왕후는 한명회의 딸로 1460년에 세자빈에 책봉되었으나 이듬해 죽었다. 처음에 왕후릉이 아닌 세자빈 무덤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병풍석, 난간석, 망주석은 없다. 다만 양석과 둘레돌을 둘러 무덤을 보호하게 하였다.

가운데의 순릉(順陵)은 9대 성종의 원비 공혜왕후 한씨의 단릉이다. 공혜왕후는 ‘한명회’의 넷째딸로 공릉에 안장된 장순왕후의 동생이다. 1467년(세조13) 잘산군(성종)과 혼인하여 천안군부인에 올랐고, 성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공혜왕후는 1474년(성종5) 소생 없이 창덕궁 구현전에서 19세로 세상을 떠났다. 중전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났기에 능침이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다.

우편의 영릉(永陵)은 21대 영조의 장자인 효장세자(진종)와 효순현빈(효순황후) 조씨의 쌍릉이다. 효장세자는 1728년(영조4) 창경궁 진수당에서 10세로 세상을 떠났다. 훗날 이복동생인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가 효장세자의 양자로 들어가 왕위를 이으면서 진종(眞宗)으로 추존되었다. 이어서 대한제국 시기인 1908년(융희2)에 다시 진종소황제(眞宗昭皇帝)로 추존되었다.

영릉에는 두 비각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이는 진종이 왕과 황제로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효장세자묘, 두 번째는 진종대왕 영릉, 세 번째는 진종소황제 영릉의 표석이다.

파수삼릉은 숲길을 따라 산책하듯 둘러보면 60분 정도 소요된다.

<>파주 영릉(永陵)에는 비각 2동에 3기의 표석이 남아있다. 이는 세자 시절에 세상을 떠난 진종이 왕과 황제로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효장세자묘, 두 번째는 진종대왕 영릉, 세 번째는 진종소황제 영릉의 표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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