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1일 금요일

죽음의 소리


어제밤 11시 20분경. 좀 느즈막하게 우리집 뚜비(요크셔 강아지) 녀석과 산책을 나갔다.
당현천 길을 슬슬 걷고 있는데, 뭔가 “투욱~” 하고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어디서 큰 돌이 구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요즘 당현천이 청계천을 롤모델로 한창 공사중이어서 주변 사정이 심히 어지럽기 때문이다.

헌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불과 몇분만에 소리가 들려온 당현천길 옆 아파트 쪽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앰블런스가 오고, 경찰차가 오고...
서둘러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올라갔다.
늦은 시간이었고 컴컴했지만, 우리집은 비교적 높은 층이어서 건너편 아파트 상황을 그런대로 어림잡아 내려다볼 수 있었는데...
경찰들의 전짓불이 어지러이 휘돌고, 조금 후에는 119대원들이 하얀 천으로 무언가를 덮는 듯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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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사람들이 수군대는 것을 들으니, 어제밤 성적비관으로 한 학생이 몸을 던졌다는 사실확인...
내가 들은 “투욱~” 소리는 한 생명의 종료를 알리는 죽음의 소리였던 것이다.

신자유주의 성향의 그레고리 맨큐의 저서「맨큐의 경제학」에서는 생명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계산한 부분이 나온다.
교통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교차로에 신호등을 설치하는 비용을 묻는 것으로 시작하여, 사람들이 받아들일 용의가 있는 위험수준과, 그 위험성을 받아들이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보상받고자 하는지를 따져 연구했다.
그 결과 생명은 대체로 1000만달러(120억원 상당)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입시지옥. 자라나는 세대를 무한경쟁으로 파국으로 내모는 기성세대의 교육정책은 바뀔성 싶지 않다. 생각만해도 수험생과 학부모의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선되기는커녕 더욱 목을 죄어온다.
죽음을 택하고 베란다 난간에 발을 올려놓은 마지막 순간, 어두운 밤하늘을 바라보며 그 아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식을 위해 쉼없이 기도하고 바라지했을 남겨진 부모형제의 마음은 어떠할까.

오늘만큼은 격정조절이 곤란한 정서적 심약자라는 둥의 정 떨어지는 소리는 하고 싶지 않다.
“경쟁에서 진 것 아니냐”는 시장주의자들의 논리로 ‘피어보지도 못한 꿈’의 가치가 평가절하돼서는 안되겠다.

단지.. 그 아이가... 부디 이젠 좋은 곳에서 편히 쉬기를 기도해 본다.

댓글 5개:

  1. 비밀 댓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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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예전에 귀신이야기 중에서 떨어지는 여자와 눈마주쳤다는 이야기 보다 더 소름기치네요. 사람이 떨어지는 소리...ㅠ.ㅠ 악몽 꾸시지는않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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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리 - 2009/09/11 23:47
    그 길은 출퇴근 및 수시로 지나치게 되는 길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고개가 돌아가게 되고 그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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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trackback from: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
    베르테르 효과(Werther effect)는 유명한 사람의 자살이 있은 후에 잇따라 자살이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에 보도된 자살을 모방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름은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이름에서 유래했다. 동조자살(copycat suicide) 또는 모방자살이라고도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가 1774년 출간한 서한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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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베르테르 효과하고는 핀트가 맞지 않는거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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