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8일 월요일

규칙을 지키는 학생


신문에서 상신고등학교 교사인 오창렬 시인의 <교단일기>라는 칼럼을 읽었다.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내신성적과 관련하여 오선생이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시종시간뿐 아니라 시험지 배부시간 역시 방송으로 통제하는데, 물론 이유는 학급 간 시험지 배부시간의 차이에서 오는 불만을 없애고 공정을 기하기 위해서다.
헌데, 시험지 배부와 본령 사이의 시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짧은 시간동안 학생들은 다투어 외우고 있던 내용을 시험지의 여백에 미리 메모하거나, 문제를 풀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 와중(아직 본령이 울리기 전)에 유일하게 문제를 풀지 않는 한 학생을 발견하고,
너는 왜 가만히 있어?라고 물었더니, 그 학생은 어리둥절해 하며본령 안 났는데요! 풀면 안 되잖아요? 라고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순간 오선생은 이 깨끗한 되물음과 이기심 모르는 천진난만에 감탄을 했다는 내용이다.


학교와 교실 상황에서 반칙하는 법부터 습득한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열심히 자신의 학점과 스팩을 관리하고, 오로지 지배엘리트 층에 편입되기 위한 질주를 하게 된다.
국가조직 공무원이나 대기업 회사원 등을 지향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지금의 우리 사회통념상 결코 나쁘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적인 문제에만 집중하다 보니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법만 배우게 되어 사회적인 감각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판단을 해야 할 때 바이어스(편견)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공직에 나서는 사람이 ‘위장전입’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 사회에는 희망의 기회가 없어야하지 않을까.

내 경우를 생각하고 반성해 본다.
산업인력관리공단이나 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각종 검정시험에 응시했을 때, 고사장에 들어온 감독관이 규정대로 엄하게 시간을 관리하면 조금이라도 원망의 마음이 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후퇴가 논의되고 있는 요즘 진정한 시민적 자율성이나 책무에 대해 다시금 안드라고지적으로 학습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경지까지는 아니더라도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은 갖춰야겠다. 수신과 제가와 치국과 평천하의 순서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닌가 보다.

댓글 2개:

  1. 요즘 같으면 저런 순수한 아이는 바보취급 당할테죠.. 사람이 약지가 못해서 항상 당하고만 산다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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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유리 - 2009/09/28 15:55
    유리님은 지금 외국에 계셔서 혹시 한국 CF를 보실 수 있을런지 모르겠네요. `산책` 이라는 제목의 모 아파트 홍보 CF인데요. 거기에 보면 한 아빠가 예쁜 딸아이를 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연예인 이름보다 꽃이름을 더 많이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습니다`... 이런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역시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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