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3일 금요일

은행사거리에서 은행나무가 사라진다면


은행사거리는 왜 은행사거리인가.
은행나무(Ginkgo)가 많아서인가 은행(Bank)이 많아서인가.
물론, 은행나무도 많고, 은행도 많다.
하지만 이 둘을 합한 숫자보다도 이런저런 학원이 훨씬 많다.
실상은 ‘학원사거리’인 것이다.
강남, 목동과 더불어 서울의 3대 사교육지구이다.



도심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면 어느덧 계절이 바뀌어 있음을 알게 된다.
떨어진 은행잎을 밟으며 또 한해의 마무리를 준비해야 함도 알게 된다.

“본래 하나의 잎새인 것이 둘로 나뉜 것인가
딱 어울리는 두 잎이 맞대어 놓여 하나처럼 보이게 된 것인가”

괴테의 본을 받아 연모의 감정을 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이상 노란 은행잎을 도심에서는 밟아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은행나무 열매에서 악취가 난다는 이유로 일부 시민들이 민원을 넣는 모양이다.
스산한 바람에 늦은 가을비까지 내리는 만추의 날.
가을의 전령사인 은행나무 잎을 밟는 낭만과 정겨움마저 잊혀져 가면 세상은 그만큼 더 삭막해지지 않을까.

은행나무가 사라진 은행사거리를 상상해 본다.
은행나무 정취가 소멸된 정동길을 떠올려 본다.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 애닮음.. 속삭임..
늦기 전에 부지런히 낙엽을 밟아야겠다.

“얘들아, 내가 젊었을 때는 말이지. 서울 시내에서도 무료로 은행잎을 밟아볼 수 있었단다~”
“정말요~??”

댓글 8개:

  1. 정겨움, 따스함... 그런것이 느껴집니다. 예전의 모습을 추억한다는 건 마음이 온화해지게 하는 그런 무엇이 있는 듯 합니다.

    수필과 같은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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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그 은행나무 마저 사라진다면..

    서울은 정말 삭막해질텐데요..아쉽네요

    그런 민원을 넣다니..

    서울은 자동차 매연냄새가 더 심하던데 말이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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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은행은 인류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원시수종이에요(제가 그쪽 비스무리 전공..).. 엽상이나 엽맥 등이 보통 나무들과는 확연히 다르지요...그래서 그래요..ㅎㅎ 화석에나 보여야할 녀석들이 저렇게 찬연한 노란빛으로 빛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메타세콰이어도 화석에만 존재하는 나무인줄알았는데.. 1930년대인가 중국의 오지에서 발견돼서...지금은 우리나라 가로수로도 흔한 수종이 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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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서울..전 제주도라 거리에 나무가 많이보이는데..안타깝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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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나로 - 2009/11/15 11:06
    자연과학 전공하셨군요. 평소 나로님의 어투로 보면 전혀 아닐꺼 같은데.. 의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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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처음처럼 - 2009/11/16 16:10
    제주도에는 무슨 나무가 많나요. 물론 은행나무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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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유리 - 2009/11/13 22:22
    아마도 은행나무를 다 베어내고 다른 수종으로 대체해 심을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면 덕수궁 돌담길 정취도 많이 퇴색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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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그별 - 2009/11/13 13:01
    먼 훗날에는 정말 돈내고 밟아보는 거리가 생길지도 모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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