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덕만공주가 여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


국사책을 보면 고대국가의 왕권은 왕위의 계승이 형제상속에서 부자상속으로 자리잡아 가게 되면서 강화된다.
삼국 모두 기본적으로 남자 적자에게 왕위가 계승되고, 적자 부재시 서자에게도 계승되는데, 신라의 경우는 여자에게의 계승도 이루어지는 특이점을 보여준다.
즉 신라에서는 부자상속, 형제상속, 여자상속이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다.
신라는 골품상의 제약이 엄격하여 부계와 모계를 똑같이 중요시하게 만들었고, 혈통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족내혼 내지는 근친혼이 성행했으며, 이로 인해 족보상 부계나 모계의 한계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고구려나 백제에서는 적자가 없을 경우 서자의 계승이 인정되었지만 여자 계승은 없었던 반면, 신라에서는 서자 계승보다 여자 계승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두고 신라 사회가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여성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는 일각의 주장이 있는 거 같다.
하지만 이는 신라 사회의 근간인 골품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의견이 아닌가 싶다.
배타적인 신분제 사회에서는 ‘골제(骨制)’가 ‘품제(品制)’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군계일학으로 출중한 진골 남자가 존재한다 해도 성골 여자에게 우선순위가 있는 것이다.
나말의 최치원 같은 천재도 6두품이라는 신분상의 한계에 발이 묶여 6번째 관등인 아찬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다. 자주색 관복을 입지 못한 것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비슷한 이유로 지난 44대 미국 대통령 선거 민주당 경선에서 백인 여자인 힐러리가 흑인 남자인 오바마에 이길 것으로 예상했던 나의 생각은 보기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역시 미국은 뭔가 달랐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미국에서도 그만큼 가부장제가 공고화되었다는 얘기도 되지 않을까 싶다.

하여간 공주가 왕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요즘 한창 흥행하고 있는 드라마에서처럼 덕만공주가 특별히 잘나서도 서민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어진 성품이 있어서도 아닌 것이다.
덕만의 사후, 역시 성골 신분의 승만이 진덕여왕으로 즉위하는 장면에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덕만공주가 그저 평범한 여자에 불과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서에서 덕만의 총명함과 비범함을 언급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덕만공주가 당 태종이 보낸 모란꽃 그림에 나비가 없음을 보고 모란꽃에 향기가 없다고 예측했다는 내용이 실려있다. <삼국유사>에는 여왕으로 즉위한 덕만이 옥문지라는 연못에서 개구리가 떼를 지어 우는 것을 보고 백제군이 여근곡에 숨어있음을 미리 간파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MBC 드라마 <선덕여왕>은 픽션으로 도배된 시나리오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리더를 필요로 하는 우리 시대의 요구에 부합하면서 그 대박행진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덕만과 미실 모두 매력적이다.
진정 아래로부터의 존경과 권위를 부여받는 리더쉽이 아쉬운 요즘.. 드라마라도 보면서 대리충족하는 마음이 마냥 흐뭇하지만은 않다.

댓글 4개:

  1. 선덕여왕을 좀 볼껄 그랬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근데... 신라를 배경으로 드라마가 만들어진 것이 꼭 현 정부 들어서 연계된 듯 한 느낌이 있는 건 저의 선입견일까요? ^^

    답글삭제
  2. @그별 - 2009/11/12 00:45
    저도 처음부터 보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 헌데, 미실과 덕만의 대사가 참으로 그럴듯했습니다. 그때부터 가능하면 빼먹지 않고 보고 있습니다. 박상연 작가는 나름대로 의식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됩니다. 덕만의 대사 때문에 오히려 어떤 식으로든 탄압을 받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되더군요.

    답글삭제
  3. @블링크 - 2009/11/12 15:12
    아~, Haedfake가 숨어 있었던 거군요... 그래서 알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고 갑니다. 모르면 오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듯 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겠죠... 워낙 유사한 일들이 많다 보니... ^^ 좋은 말씀 곻맙습니다. 블링크님 (_ _)

    답글삭제
  4. trackback from: 비담이 대야성에 메고 간 가방의 비밀ㅋㅋㅋ
    비담이 몰래 미실 만나러 위장하고 대야성 들어갔을때 메고 다니던 상콤한 노란 체크배낭 기억하시나여? 새까만 옷에 비장한 표정으로 들어가는 모습과 너무 달랐던 배낭ㅋㅋㅋㅋ 이 가방의 출처.... 알고보니 문노스승님과의 추억이 깃든 가방ㅠㅠㅠ 비담 너란 남자... 몇십년째 같은 가방 메는 남자ㅠ 저때는 "스승님, 여기있는 사람들 제가 다 죽여버렸습니다^^" 하기 전이라 문노 스승님 사랑 듬뿍 받던 시절 이건 웃겨서 퍼옴~ 출처- 김남길갤 문노, 미실 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