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도엽 시인이 경향신문에 게재하는
[2009 특별기획] 이소선의 ‘80년, 살아온 이야기’라는 연재물이 있다.
이소선은 전태일의 모친이다.
그 87번째 내용을 몇부분 발췌 소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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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때문에 위기를 넘긴 수배자는 장기표뿐만 아니다. 이소선은 위기가 닥치면 위축되지 않고 더욱 대범해진다. 대범할 뿐만 아니라 지혜롭다. 그래서 이소선의 진가는 위기의 순간 더 빛을 발한다.
“내가 대범하다고? 그런 말마라. 얼마나 오금 저리는 일이 많았는지 모른다. 숱한 고비 많이 넘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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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쌍문동 집에 김문수가 왔어. 저기 경기도 지사하는 김문수. 방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형사들이 우찌 눈치를 챘는지 집으로 들이닥친 거야. 김문수가 요만한 방에 난 창문으로 튀려고 하는 거라. 가만 있어, 그냥 밥 먹어. 내가 김문수한테 그라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냐. 그라니 형사가 방 좀 들여다봐야겠다는 거라. 왜 그라냐, 그랬더니 수배자가 있는지 보겠다는 거라. 그래서 내가 방문을 활짝 열지 않았냐. 내가 방문을 여니까 김문수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밥숟가락을 들고 달달달 떨고 있는 거라. 도망도 못 가게 하더니 방문까지 열어젖히니 얼마나 놀라겠냐. 내가 형사한테 냅다 소리쳤어. 어디 들어가서 봐라. 만약에 수배자가 없으면 니가 영장도 없이 남의 집에 들어왔으니까 가택침입죄로 집어넣을 테니, 어디 방에 들어가 뒤져봐라. 그라니까 형사가 아닙니다, 이 여사, 그라며 방에 못 들어가고 그냥 대문 밖으로 나가는 거라. 거기서 내가 주춤해봐라. 형사가 들이닥치지. 그라고 창문 밖에는 형사가 지키고 있지 않았겠냐. 방문을 활짝 여니 쳐다도 안 보고 가잖아. 형사가 가고 나서도 밥숟가락을 덜덜 떨고 있어. 겁먹지 말고 밥 먹어. 그때서야 김문수가 밥을 먹는 거라.”
전태일은 (어머니인) 이소선에게 분신 직후 담대해지라고 당부를 했다. 이소선은 아들과의 약속을 지키고 있다. 궁지에 몰릴수록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대담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내 곁에서 이 빠진 입술을 오물거리며 이야기를 하는 이소선이 가끔은 너무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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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같은 사람들을 변절자로 바라보는 시선(나를 포함하여)이 있다.
반하여 과거의 과오를 뉘우치고 발전적인 전향을 하여 크게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보는 시각도 인구의 반 가까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변절’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논하는 것은 시간 낭비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김문수 류의 그럴듯한 답변은 무엇인지 진정 궁금하다.
50년 전, 문사 조지훈은 변절자를 꾸짖으며 「지조론」으로 일갈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신념을 버리는 사회, 변절을 찬양하는 광기의 사회에 미래는 없다.
변절자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도 세심한 주의와 경계가 필요하다.
제대로 살펴보면 우리 시대의 변절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수가 생각보다 상당히 많다는 것에 또한번 놀라게 된다.
뉴스 한마디, 신문 한줄을 헛으로 보지 않아야 할 이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