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30일 목요일

굿바이 마왕

더클래식의 발라드 「마법의 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마귀(魔鬼)나 요괴(妖怪)로부터 가엽고 아름다운 여인(희생제물·공주)을 구출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는 장르를 불문하고 동서고금에 걸쳐 익숙한 설정이다.
덴마크 설화 ‘마왕 이야기’에서 영감을 받아 괴테(Goethe)가 쓴 시에 1825년 18세의 슈베르트(Schubert)가 곡을 붙여 가곡 마왕(Erlkönig 에를쾨니히)을 탄생시켰다.
며칠 전 한창 나이에 급작스레 타계한 신해철이 마왕으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MBC FM에서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유령국가)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즈음부터라고 한다.

마왕 신해철은 대마초 규제에 대해 좀더 섬세한 통제를 주문했고, 이효리와 같은 퍼포먼스 가수의 립싱크를 두둔했으며, 이명박에 대해서는 (박정희보다는) 전두환의 아바타라고 일갈했다. 우수한 학생은 감당 못하고 떨어지는 학생은 배려 못하는 것이 작금 공교육의 실상이니, 사교육이 무용지물이 되는 환경을 만들지 못할 바에야 공교육은 자취를 감춘 인성교육과 사회화의 서비스를 강화하고 가려운 부분은 사교육이라도 동원해서 긁어주는 것이 현재의 차선책이라면서, ‘사교육=입시지옥을 만드는 절대악’이라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또한 시청률에 일희일비하는 최근의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으며, 노래할 땐 록하고 말할 땐 사회적 발언을 가열차게 쏟아낸 소셜테이너(socialtainer)였다. 연예인출신의 정치인을 뜻하는 폴리테이너(politainer)와 분명하게 차별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론 고교 선배님이기도 한 고인은 1988년 제12회 MBC 대학가요제에 그룹 무한궤도의 보컬로 참가하여 경쾌한 비트의 「그대에게」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이후 록음악의 대중화를 이끈 싱어송라이터이자 끊임없는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깨어있는 뮤지션이었다.

어느날 마왕은 많이 아파 여위어진 얼굴 모습으로 힘없이 누워 있다가 차디차게 식어 갔지만, 남은 이들에겐 그런 슬픈 표정 하지 말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우리 역시 세상에 머무르는 건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과 무엇을 찾아 이 세상에 왔을까 하는 질문은 지워지지 않는다. 어렵고 험한 빗길 속을 걸어서 우린 결국 같은 곳으로 가고 있다. 다만, 고흐의 불꽃같은 삶도 니체의 상처 입은 분노도 더 이상 도움될 것 없는 현실에서 우리 앞에 생이 끝나갈 때 누군가 작은 목소리로 물어오면 지나간 세월에 후회 없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의 문제가 남는다. 얼마나 아파해야 우리 작은 소원이 이뤄질까!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 할 내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 ♪

「날아라 병아리」, 「힘겨워 하는 연인들을 위하여」, 「내 마음 깊은 곳의 너」를 흥얼거려 본다.
굿바이 얄리… 마왕(魔王)의 영면을 기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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