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9일 목요일

고대 무덤양식

우리나라 고대 삼국의 무덤은 시기별·지역별로 다양하다. 무덤의 축조재료에 따라 흙무덤과 돌무덤, 시신을 안치한 위치에 따라 지하식과 지상식, 매장방법에 따라 구덩식(수혈식)과 굴식(횡혈식)으로 나뉜다.


움무덤(토광묘 土壙墓)은 구덩이를 만든 뒤 그 안에 시신을 안치하는 지하식 무덤으로 가장 일찍부터 널리 사용된 방식이다. 한반도에서는 신석기시대부터 확인된다. 시신을 널에 넣어 움에 묻은 것을 널무덤, 널을 덧널 안에 넣고 움에 묻은 것을 덧널무덤이라고 한다. 서울 인근과 한강 이남에서는 주위에 도랑을 두른 움무덤도 다수 확인되었다.

흙무지무덤(분구묘 墳丘墓)은 땅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묻는 지상식 무덤이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른 시신을 추가로 묻어 봉분이 점점 커지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하나의 봉분 안에 둘 이상의 시신을 묻은 무덤을 흔히 다장묘라고 한다. 가락동1·2호분, 석촌동파괴분, 석촌동5호분, 김포 운양동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돌무지무덤(적석묘 積石墓)은 땅 위에 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그 안에 시신을 묻은 지상식 무덤이다. 돌무지무덤은 고조선시대부터 만들었으며, 고구려에서는 초기부터 오랫동안 왕릉으로 사용되었다. 백제에서는 고구려의 무덤처럼 봉분 전체를 돌로만 쌓은 순수한 돌무지무덤(석촌동3호분)과 함께 봉분 안을 흙으로 채춘 후 돌을 쌓은 돌무지무덤(석촌동2호분, 석촌동4호분)도 만들었다. 석촌동3호분은 동서 길이 50.8m, 남북 길이 48.5m의 규모로 한반도에서 가장 큰 돌무지무덤이며 한성백제 전성기의 왕릉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구려의 돌무지무덤은 평면은 기본적으로 네모모양이며, 축조방식에 따라 무기단식·기단식·계단식 등으로 나뉜다. 가장 완성된 형식의 돌무지무덤으로 꼽히는 중국 지안(集安)의 장군총은 계단식이며 한 변의 길이가 31m 내외의 정사각형모양이다. 압록강 중·하류 일대에는 수천 개의 돌무지무덤이 분포하여 고구려 지배층의 공동묘지이다.


돌덧널무덤(석곽묘 石槨墓)은 긴 네모모양의 구덩이를 파고 돌로 덧널시설을 만든 다음 나무널을 넣고 돌을 덮는 구덩식 무덤이다. 청동기시대에 출현하였으며, 신라·가야지역에서 많이 만들었다. 백제에서는 대개 3세기 이후에 확인된다.

돌방무덤(석실묘 石室墓)은 돌로 방을 만들고 한쪽에 사람이 드나들 수 있게 출입시설인 널길을 만들어 추가장이 가능한 무덤이다. 부부를 비롯한 가족합장 무덤으로 유리해서 삼국시대 후기에 대표적인 무덤이 되었다. 백제의 돌방무덤은 고구려·신라와는 달리 산의 경사면에 땅을 깊이 파고 만들어서 봉분이 낮은 것이 특징이다. 한성기 돌방무덤은 평면이 네모모양으로 배가 부르게 완만한 곡선을 띠는 것과 직선을 띠는 것이 있으며 널길은 주로 우측에 있으나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신라의 돌무지 덧널무덤(적석목곽묘 積石木槨墓)은 잔돌을 깔고 덧널과 널을 설치한 뒤 돌을 쌓아 덮고 다시 흙으로 봉분을 만든 무덤이다. 독특한 축조방식으로 인해 무덤규모가 크고 도굴이 쉽지 않기 때문에 발굴조사 결과 금관·금귀걸이 등의 화려한 유물이 많이 출토되었다. 신라의 대표적인 지배층 무덤으로 황남대총, 천마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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