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2014년도 하반기 서울 한양도성탐방

한양도성연구소가 실시하는 하반기 한양도성탐방을 3회차에 걸쳐 소화했다.
참가자격은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http://yeyak.seoul.go.kr) 시스템을 통해 선발된다.
한양도성박물관 → 낙산 → 혜화문을 걷는 1코스(동대문역 1번 출구)와 흥인지문 → 청계천 오간수문 터 → 이간수문→ 동대문역사관 → 광희문까지의 2코스(동대문역 6번 출구), 남산(일부) → 박문사 터 → 흥화문 → (장충단공원) → 수표교 → 장충단비에 이르는 3코스(동대입구역 4번 출구)를 모두 탐방 완료했다.
개인적으로는 낙산구간의 풍광이 가장 좋았다.



암문(暗門)은 성곽의 대문과 대문 사이에 위치한 작은 사잇문으로 성곽에서 구석지고 드나들기 편리한 곳에 상대편이 알 수 없게 꾸민 작은 비밀통로이다. 암문은 물자공급이나 척후 등 여러 효용성이 있음에도 방어상의 어려움 때문에 최소한도로 설치되었다. 현재 한양도성에는 8개소의 암문이 있다.


한양도성의 축조방법과 돌의 모양은 축조시기마다 다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구분할 수 있다. 1396년 태조 때에는 1월과 8월, 2차례 공사를 통해 산지는 석성, 평지는 토성으로 쌓았다. 성돌은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쌓고 사이사이에 굄돌을 놓았다. 1422년 세종 때에는 1월에 도성을 재정비하면서 평지의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다. 1704년 숙종 때에는 성돌의 크기를 40~45㎝ 내외의 방형으로 규격화하여 무너진 구간을 수차에 걸쳐 새로 쌓았다. 1800년 순조 때에는 60㎝ 가량의 정방형 돌을 정연하게 쌓아 간격도 일정하고 벽면도 수직인 것이 특징이다.



한양도성은 태조5년(1396년) 초축된 뒤 세종4년(1422년)·숙종30년(1704년)에 대규모로 개축됐고, 영조·정조·순조·고종 연간 등 600년간 보존·관리돼 왔다. 답성을 하다보면 구간마다 책임자 및 석공의 이름과 연대, 축성구간 등을 새겨 놓은 각자성석(刻字城石)을 보게 되는데, 공사실명제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크다.
예를 들어 「홍산시 鴻山始」는 1422년(세종 4)에 충청도 홍산(鴻山)의 군정(軍丁)들이 성벽 수축을 시작한 지점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이 지점부터는 홍성사람들이 축성 책임을 진다는 의미이다. 오랜 세월 동안 풍화 등으로 마모가 심해 글자를 제대로 알아보기가 힘들다. 잊혀지지 않도록 알림판 같은 것을 설치하면 좋을 것 같다.


한양도성탐방 프로그램의 아쉬운 점도 있다. 평일 낮시간이어서 탐방객이 아무래도 주부층에 한정될 소지가 있고 북악산과 인왕산 구간이 빠져있는 맹점을 보완한다면 선조들의 숨결이 녹아있는 600년 한양도성의 매력을 느끼기에 충분히 유익한 공익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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