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은 1949년 1월16일(48년 음력 섣달 열여드레)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 옴탕밭(옴팡팥)에서 남녀노소 600여 명의 주민이 ‘도피자 가족’ 또는 ‘입산자 가족’이라는 죄목으로 군인들에게 학살된 ‘북촌리 사건’을 주요 배경으로 작가의 체험을 섞어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사실주의 기법의 중편 액자소설이다. 1949년 겨울과 30년이 지난 1978년 현재(소설上)를 교차하면서 제주 4·3사건의 참상에 얽힌 민중의 수난사를 조명한다.
작가 현기영(81)은 서슬 퍼런 유신 시절인 197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군대의 대양민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하여 그 참혹상을 고발함과 동시에, 이 학살의 와중에 극적으로 생존한 순이 삼촌이 평생을 환청과 신경쇠약에 시달리면서 황폐해지고 결국 자살(향년 56세)로 내몰리게 되는 상황을 보여줌으로써 4·3사건의 여파가 지금도 제주 사람들에게 어떠한 트라우마로 작용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있다. 짓밟히면서도 왜 짓밟히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의 아픔을 작가가 대신 아파하며 울분의 목소리로 항변해 준다.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은 밤에는 폭도(공비)들에게 “입산하지 않는 자는 반동”이라며 대창에 찔려 죽고, 낮에는 “약탈당하지 않은 집은 좌익 동조자”라고 취조를 당했다. 이런 좌우 이데올로기의 흑백 논리 속에 마을 소각이라는 참상이 놓여 있다. 「순이삼촌」은 제주 4·3사건의 진실을 폭로한 최초의 기록이라는 의의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무고한 양민을 죽음으로 몰고 간 학살의 원인을 섬사람과 뭍사람 간의 감정·지역 대립으로 규명하는 듯한 설정이 한계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그 죽음은 한 달 전의 죽음이 아니라 이미 30년 전의 해묵은 죽음이었다. 당신(순이삼촌)은 그때 이미 죽은 사람이었다. 다만 30년 전 그 옴팡밭에서 구식 총구에서 나간 총알이 30년의 우여곡절한 유예를 보내고 오늘에야 당신의 가슴 한복판을 꿰뚫었을 뿐이었다.”는 상수(1인칭 관찰자)의 인식은 소설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한편, 삼촌(三寸) 호칭은 일반적으로 남성을 지칭하기에 순이(順伊)삼촌을 남성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설의 해당 인물은 여성이다. “고향(제주)에서는 촌수 따지기 어려운 먼 친척 어른을 남녀 구별 없이 흔히 삼촌이라 불러 가까이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작품에서 설명하고 있다.
2022년 4월 3일 일요일
너븐숭이 옴탕밭의 유예된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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