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月出山)의 남쪽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위사(無爲寺)는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하리에 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무위사는 10세기 초 선각대사 형미와 관련되어 규모가 확장되었다. 이후 조선 초에는 자복사(資福寺: 나라의 복을 기원하는 절)와 수륙사(水陸社)로 지정되었다.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창건한 관음사에서 시작되었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라는 절이름은 선각대사탑비에 나타난다. 무위지위(無爲之爲: 하지 않지만 하는 것)의 약자인 무위는 내(我)가 있다는 생각을 넘어선 무아와 무욕의 경지에서 성취되는 법(道)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逈微)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이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건축이 드문 상황에서 당시의 조각과 벽화를 보존하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조선 세종 12년(1430)에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 달리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건물 안에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아미타불, 관음,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불 조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뒤편에 해당하는 벽면의 앞·뒷면에는 1476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과 관음보살도가 장엄되어 있다(보물 1313호). 동서 측벽과 주변에도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 별도로 보존하고 있다.
무위사의 가장 오랜 유물은 선각대사편광영탑비(보물 507호)이다. 그 주인공 선각대사 형미스님(864~917)은 가지산 보림사 체징의 제자로 당에서 귀국한 후에 무위사에서 주지로 8년간 머무르며 무위사 중창을 주도하였다. 친왕건 세력이었던 그는 궁예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고려의 태조가 된 왕건이 그에게 선각대사라는 시호와 편광의 탑명을 내렸다.
탑비는 거북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높이 250㎝). 거북 받침돌과 운용문이 있는 머릿돌에 표현된 조각 수법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몸돌 앞면에는 형미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
현재의 부도비는 정종 원년(946)에 세워졌고, 삼층석탑 또한 이 시기의 유물이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무위사 3층석탑은 현재 극락전 우측인 선각대사편광탑비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전형적인 2층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으로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형이 잡힌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선각대사편광탑비의 연대와 동시대이거나 그 연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려시대 초반기로 추정된다.
지대석은 몇 개의 넓은 돌로 짜여져 있고, 그 위헤 각형 2단의 괴임대와 하대기단 중석이 연결되고 있는데 각 구를 2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탱주(가운데기둥) 1주와 양면에는 우주(모서리기둥)를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지붕돌)이 각 1석씩으로 탑신부의 양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2~3층에서는 그 높이와 폭을 줄여 알맞은 체감을 보였다.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는 완전하게 남아있다.
무위사 3층석탑은 비교적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는…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내어 보존한 것이며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29점이 보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 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아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과감할 정도로 밝고 엷은 적색과 녹색 등 고려불화의 양식이 짙게 나타나있는 반면, 화면에 나한이 등장하는 등 세부묘사에서 조선초의 새로운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전시관 내에 보존되어 있다.
「무위사사적」에 의하면 신라 진평왕 39년(617) 원효대사가 창건한 관음사에서 시작되었고 도선국사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무위사라는 절이름은 선각대사탑비에 나타난다. 무위지위(無爲之爲: 하지 않지만 하는 것)의 약자인 무위는 내(我)가 있다는 생각을 넘어선 무아와 무욕의 경지에서 성취되는 법(道)이다.
무위사의 역사는 선각대사 형미(逈微)스님이 중창한 10세기 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무위사는 고려 초에는 선종사찰로 유명하였으나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수륙사로서 유명하였다. 죽은 영혼을 달래주는 수륙재(水陸齋)를 행하였던 사찰이었던 만큼, 중심 건물은 극락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여래를 모신 극락보전(국보 13호)이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건축이 드문 상황에서 당시의 조각과 벽화를 보존하고 있어 그 가치가 매우 높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극락보전으로, 조선 세종 12년(1430)에 건립되었으며, 우리나라 조선시대 불교 건축물 중에서도 초기 형태에 속한다. 눈여겨 볼 것은 고려시대의 영향을 받은 맞배지붕과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단아하면서도 소박한 건축미이다. 특히 극락보전 측면의 기둥과 보가 만나 이루는 공간 분할의 절제된 아름다움도 놓쳐서는 안 될 감상 포인트이다. 또한 단정하고 검소한 극락보전의 겉모습과 달리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묘사한 화려한 건물 내부는 물론, 조선 초기 불교 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불상과 불화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이다.
건물 안에는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아미타불, 관음, 지장보살의 아미타삼존불 조각이 모셔져 있다. 불상의 뒤편에 해당하는 벽면의 앞·뒷면에는 1476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과 관음보살도가 장엄되어 있다(보물 1313호). 동서 측벽과 주변에도 벽화가 있었으나 현재 별도로 보존하고 있다.
무위사의 가장 오랜 유물은 선각대사편광영탑비(보물 507호)이다. 그 주인공 선각대사 형미스님(864~917)은 가지산 보림사 체징의 제자로 당에서 귀국한 후에 무위사에서 주지로 8년간 머무르며 무위사 중창을 주도하였다. 친왕건 세력이었던 그는 궁예에게 죽음을 당하였으며, 고려의 태조가 된 왕건이 그에게 선각대사라는 시호와 편광의 탑명을 내렸다.
탑비는 거북 받침돌과 몸돌, 머릿돌을 모두 갖춘 완전한 모습이다(높이 250㎝). 거북 받침돌과 운용문이 있는 머릿돌에 표현된 조각 수법은 정교하면서도 사실적이다.
몸돌 앞면에는 형미스님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최언위가 비문을 짓고 유훈율이 글씨를 썼다.
현재의 부도비는 정종 원년(946)에 세워졌고, 삼층석탑 또한 이 시기의 유물이다.
탑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불교의 상징적인 예배의 대상이다.
무위사 3층석탑은 현재 극락전 우측인 선각대사편광탑비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탑의 구조는 전형적인 2층 기단을 갖춘 3층 석탑으로서 각 부재가 잘 조화되고 균형이 잡힌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 석탑이다.
이 석탑의 조성연대는 선각대사편광탑비의 연대와 동시대이거나 그 연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고려시대 초반기로 추정된다.
지대석은 몇 개의 넓은 돌로 짜여져 있고, 그 위헤 각형 2단의 괴임대와 하대기단 중석이 연결되고 있는데 각 구를 2구로 나누고 중앙에는 탱주(가운데기둥) 1주와 양면에는 우주(모서리기둥)를 조각하였다.
탑신부는 탑신과 옥개석(지붕돌)이 각 1석씩으로 탑신부의 양면에 우주가 모각되고 2~3층에서는 그 높이와 폭을 줄여 알맞은 체감을 보였다.상륜부(탑의 꼭대기 부분)는 완전하게 남아있다.
무위사 3층석탑은 비교적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양식을 충실히 고수하고 있다.
무위사 극락전 내벽사면벽화(보물 1315호)는… 1974년 극락보전을 보수하면서 벽면의 벽화들을 원형대로 뜯어내어 보존한 것이며 아미타내영도, 석가여래설법도, 휙휙 그려낸 너울과 옷자락이 멋있는 해수관음좌상도, 보살좌상도, 오불도,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비천선인도 등 29점이 보물로 지정·보존되고 있다.
이중 아미타내영도는 흙벽에 채색된 것으로 사람이 죽을 때나 수행이 성숙해지면 아미타불이 마중와서 서방극락으로 인도해 간다는 내용을 도상화한 것으로 아미타불과 8보살 8비구가 구름 위에서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왕생자를 맞이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그림은 과감할 정도로 밝고 엷은 적색과 녹색 등 고려불화의 양식이 짙게 나타나있는 반면, 화면에 나한이 등장하는 등 세부묘사에서 조선초의 새로운 양식이 표현되어 있다.
현재 극락전 좌우 벽면에 그려진 아미타내영도와 설법도 등 2점은 모사본이며 원본은 전시관 내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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