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6일 지난주 토요일 오전. 처음 동참해 보는 씨알순례길…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고 명찰 착용 후 인공분수 뒤편의 이말산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도보하여 통일정 쉼터에 도착. 이후 하나고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 다시 20분 소요. 이말산에는 국토분단의 현실을 말해주는 참호가 곳곳에 패여 있고, 조선시대 내시묘도 다수 볼 수 있다.
하나고등학교에서 큰길을 건넌 후 북한산둘레길(효자동) 이정표를 지나 삼각산 진관사 입구 일주문까지 대략 15분이 소요된다.
진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히는 수륙도량으로 이름난 사찰이다.
큰 사찰에는 대개 부처님을 대웅전 밖에서 호위하는 사천왕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래 사진처럼 금강역사가 대신하기도 한단다.
진관사 종무국의 안내에 따라 공양실에서 담백한 점심공양 후, 홍제루에 올라 저수삼배로 교육담당 비구니 스님을 맞이하여 진관사(津寬寺)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태조 왕건의 손녀인 황보씨의 두 자매는 모두 사촌오빠인 5대 경종에게 출가하여 헌애왕후, 헌정왕후가 된다. 재위 6년만에 경종이 승하하자 두살짜리 어린 왕자 왕송을 대신하여 자매들의 친오빠인 왕치가 왕위를 이어 6대 성종이 된다. 16년 재위 동안 후사 없이 성종이 붕어하자 경종과 헌애왕후의 아들인 왕송이 7대 목종에 오르고, 헌애왕후는 천후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통해 성종의 유교 정책과 거란에 대한 사대정책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이러한 정치격변 와중에 동생 헌정왕후와 태조의 아들인 왕욱 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 왕순이 왕위 계승자로 봉해진다. 태후는 성종년간에 김치양과 정을 통해 몰래 낳은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해 조카인 대량원군을 죽이려 하였으나 진관대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왕순은 1009년 강조의 변을 통해 8대 현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현종은 진관대사(津寬大師)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1011년 크게 절을 세우고, 진관사(津寬寺)라 명하였으며, 그 후 마을 이름도 진관동이라 부르게 됐다.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의 중간집결지로 사용됐던 진관사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칠성각과 나한전 등 3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1963년 현 회주이신 비구니 진관(崔眞觀)스님이 발원하여 건물을 차례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진관사는 현재 비구니스님들만의 수행정진 사찰이다.
동입서출의 원칙에 따라 반시계 방향으로…
홍제루 ⇒ 나한전 ⇒ 칠성각 ⇒ 독성전 ⇒ 명부전 ⇒ 대웅전 ⇒ 동정각 순으로
진관사 경내를 탐방해 나갔다.
임금을 기다리다가 지쳐 죽은 소화 궁녀의 혼백이 피워낸 꽃이라 하여 능소화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나무. 꽃말은 슬픈 전설과는 어울리지 않게 ‘명예’다.
나한전에는 영산회상도, 십육나한도, 소 삼존불상, 십육나한상이 있다.
칠성각은 그 이름 자체가 무속과 결부된 한국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칠성도, 석불좌상, 명호스님 초상이 있다.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정부에서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이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또한 KBS 1TV 3·1절 특집극으로 <초월의 비장, 진관사 태극기>가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진관사와 학계는 백초월 스님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당시 진관사가 경성 지역 불교독립운동의 근거지였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현재 진관사에서는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초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자 만해 한용운 스님과 비견되는 대표적인 항일 승려이다. 스님은 1919년 3·1운동 이후 진관사에 주석하면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정진하다가 1945년 6월 조국광복을 불과 두달 앞두고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해 청주교도소에서 법납 53세, 세수 67세로 옥사 순국하셨다.
독성전에는 소 독성상, 독성도, 산신도가 있다. 독성은 나반존자를 이른다.
명부전은 저승정부를 뜻하는데… 머리 부분이 특이한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다.
진관사 대웅전(큰 영웅이 계시는 궁전)에는 과거불인 정광불이 화한 제화갈라보살상, 현재불인 석가여래불상, 미래불인 미륵불이 화한 미륵보살상 등의 삼존불상이 차례로 모셔져 있다.
동정각에 걸려 있는 높이 160㎝, 구경 91㎝, 300관의 대형범종은 1974년에 진관 회주가 조성하였다.
홍제각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수려한 모습. 교관겸수·돈오점수·정혜쌍수… 이런 곳에서 수양하면 불법이 저절로 쌓여질 법도 하다.
1968년 1.21사태 무장공비 침투로
이 침투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과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했던 주요 이동통로이다. 중무장한 공비들은 경기도 연천군 휴전선 철책을 뚫고 시간당 평균 10㎞씩 주파하면서 파평산, 노고산, 앵무봉을 차례로 지나 이곳 진관사 계곡까지 침입하였으며, 인적과 추위를 피해 바위동굴에서 은신,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이동하였다. 마지막 공격캠프인 사모바위 앞 동굴에서 최종목표지점 점검을 하고 종로구 세검정길을 통해 청와대로 접근하던 중 세검정 고개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교전이 발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군·경 및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무장공비 침투로로 이용되었던 북한산 진관계곡 탐방로는 분단된 조국의 가슴 아픈 역사의 한 길목이기도 하다.
진관계곡 사슴집에서 21명의 참가자가 모여 막걸리 파티로 7월 씨순길을 마감했다.
모임을 준비하고 이끌어 주신 김승주 선생님이 많이 애써 주셨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감탄사를 불러온 이재섭 선생님께 새로이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라는 건물 지식도 배웠습니다.
한겨레신문 이주형 선생님의 <가시연꽃>·<무궁화> 시낭송… 감명 깊게 음미했습니다.
초록낙타 김낙영 대표님의 장편시 <조국>은… 읽는 내내 울분으로 답답했습니다. 사진 엽서…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HAPI 미디어 이웅립 선생님, 민락재단 김길수 상무님, 이창희 작가님, 함인숙 목사님, 함께 하신 모든 선생님들… 만나봬서 반갑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3호선 구파발역 1번 출구에서 모여 인사를 나누고 명찰 착용 후 인공분수 뒤편의 이말산 산책로를 따라 20분 정도 도보하여 통일정 쉼터에 도착. 이후 하나고등학교로 내려가는 갈림길까지 다시 20분 소요. 이말산에는 국토분단의 현실을 말해주는 참호가 곳곳에 패여 있고, 조선시대 내시묘도 다수 볼 수 있다.
진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사찰로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예로부터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히는 수륙도량으로 이름난 사찰이다.
큰 사찰에는 대개 부처님을 대웅전 밖에서 호위하는 사천왕이 있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아래 사진처럼 금강역사가 대신하기도 한단다.
진관사 종무국의 안내에 따라 공양실에서 담백한 점심공양 후, 홍제루에 올라 저수삼배로 교육담당 비구니 스님을 맞이하여 진관사(津寬寺)의 어제와 오늘에 대한 말씀을 들었다.
태조 왕건의 손녀인 황보씨의 두 자매는 모두 사촌오빠인 5대 경종에게 출가하여 헌애왕후, 헌정왕후가 된다. 재위 6년만에 경종이 승하하자 두살짜리 어린 왕자 왕송을 대신하여 자매들의 친오빠인 왕치가 왕위를 이어 6대 성종이 된다. 16년 재위 동안 후사 없이 성종이 붕어하자 경종과 헌애왕후의 아들인 왕송이 7대 목종에 오르고, 헌애왕후는 천후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통해 성종의 유교 정책과 거란에 대한 사대정책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간다. 이러한 정치격변 와중에 동생 헌정왕후와 태조의 아들인 왕욱 사이에서 태어난 대량원군 왕순이 왕위 계승자로 봉해진다. 태후는 성종년간에 김치양과 정을 통해 몰래 낳은 사생아를 옹립하기 위해 조카인 대량원군을 죽이려 하였으나 진관대사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한 왕순은 1009년 강조의 변을 통해 8대 현종으로 즉위하게 된다.
현종은 진관대사(津寬大師)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1011년 크게 절을 세우고, 진관사(津寬寺)라 명하였으며, 그 후 마을 이름도 진관동이라 부르게 됐다.
한국전쟁 중에 북한군의 중간집결지로 사용됐던 진관사는 유엔군의 폭격으로 칠성각과 나한전 등 3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파괴되었으나, 1963년 현 회주이신 비구니 진관(崔眞觀)스님이 발원하여 건물을 차례로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진관사는 현재 비구니스님들만의 수행정진 사찰이다.
홍제루 ⇒ 나한전 ⇒ 칠성각 ⇒ 독성전 ⇒ 명부전 ⇒ 대웅전 ⇒ 동정각 순으로
진관사 경내를 탐방해 나갔다.
임금을 기다리다가 지쳐 죽은 소화 궁녀의 혼백이 피워낸 꽃이라 하여 능소화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아름다운 나무. 꽃말은 슬픈 전설과는 어울리지 않게 ‘명예’다.
나한전에는 영산회상도, 십육나한도, 소 삼존불상, 십육나한상이 있다.
칠성각은 그 이름 자체가 무속과 결부된 한국불교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칠성도, 석불좌상, 명호스님 초상이 있다.
칠성각에서 발견된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사료
2009년 5월,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던 중 백초월(白初月, 1878~1944) 스님의 1919년 당시 항일운동을 대변해주는 태극기와 귀중한 독립운동사료들이 발견되었다. 독립신문, 신대한신문을 비롯한 독립운동 사료들이 태극기에 싸여 있는 상태로 불단 안쪽 기둥 사이에 90년 동안 비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2010년 정부에서는 총 6종 20점에 이르는 이 사료들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하였으며, <진관사 태극기> 특별전이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또한 KBS 1TV 3·1절 특집극으로 <초월의 비장, 진관사 태극기>가 방영되기도 하였다. 그동안 진관사와 학계는 백초월 스님의 생애와 독립운동을 조명하는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여, 당시 진관사가 경성 지역 불교독립운동의 근거지였음을 새롭게 확인하였다. 현재 진관사에서는 백초월 스님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리는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초월 스님은 일제 강점기 불교계의 대강백(大講伯)이자 만해 한용운 스님과 비견되는 대표적인 항일 승려이다. 스님은 1919년 3·1운동 이후 진관사에 주석하면서 평생을 독립을 위해 정진하다가 1945년 6월 조국광복을 불과 두달 앞두고 일제의 모진 고문에 의해 청주교도소에서 법납 53세, 세수 67세로 옥사 순국하셨다.
독성전에는 소 독성상, 독성도, 산신도가 있다. 독성은 나반존자를 이른다.
명부전은 저승정부를 뜻하는데… 머리 부분이 특이한 지장보살을 모신 곳이다.
진관사 대웅전(큰 영웅이 계시는 궁전)에는 과거불인 정광불이 화한 제화갈라보살상, 현재불인 석가여래불상, 미래불인 미륵불이 화한 미륵보살상 등의 삼존불상이 차례로 모셔져 있다.
동정각에 걸려 있는 높이 160㎝, 구경 91㎝, 300관의 대형범종은 1974년에 진관 회주가 조성하였다.
홍제각에서 바라본 북한산의 수려한 모습. 교관겸수·돈오점수·정혜쌍수… 이런 곳에서 수양하면 불법이 저절로 쌓여질 법도 하다.
1968년 1.21사태 무장공비 침투로
이 침투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의 특수부대인 124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기습과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했던 주요 이동통로이다. 중무장한 공비들은 경기도 연천군 휴전선 철책을 뚫고 시간당 평균 10㎞씩 주파하면서 파평산, 노고산, 앵무봉을 차례로 지나 이곳 진관사 계곡까지 침입하였으며, 인적과 추위를 피해 바위동굴에서 은신,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이동하였다. 마지막 공격캠프인 사모바위 앞 동굴에서 최종목표지점 점검을 하고 종로구 세검정길을 통해 청와대로 접근하던 중 세검정 고개에서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교전이 발생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군·경 및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무장공비 침투로로 이용되었던 북한산 진관계곡 탐방로는 분단된 조국의 가슴 아픈 역사의 한 길목이기도 하다.
진관계곡 사슴집에서 21명의 참가자가 모여 막걸리 파티로 7월 씨순길을 마감했다.
모임을 준비하고 이끌어 주신 김승주 선생님이 많이 애써 주셨습니다.
해박한 지식으로 감탄사를 불러온 이재섭 선생님께 새로이 전당합각재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이라는 건물 지식도 배웠습니다.
한겨레신문 이주형 선생님의 <가시연꽃>·<무궁화> 시낭송… 감명 깊게 음미했습니다.
초록낙타 김낙영 대표님의 장편시 <조국>은… 읽는 내내 울분으로 답답했습니다. 사진 엽서…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HAPI 미디어 이웅립 선생님, 민락재단 김길수 상무님, 이창희 작가님, 함인숙 목사님, 함께 하신 모든 선생님들… 만나봬서 반갑고 고마운 시간이었습니다.
처음 두장은 김승주 선생님 사진입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