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도회에 초대받은 남성들은 성기 가리개인 ‘페호’를 착용한 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연신 땀 냄새, 옷매무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때 페호 속에 감춰진 남성을 훔쳐보며 거만하고 야릇한 시선을 흘리는 여성들...
‘하느님, 어머니’로 시작되는 기도를 하는 땅 이갈리아에선 아이의 양육은 ‘부성보호’란 이름으로 남자에게 넘겨진다.
노르웨이 출신의 게르드 브란튼 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Egalia's daughters)
‘이갈리아’(Egalia)라는 가상의 땅에서 일어나는 모권제 사회를 그리고 있는 소설인데요.
평등의 낙원, 이갈리아란 그 이름처럼, 과연 이 땅이 신세계일까요?
억압받는 성이 전복되었을 뿐, 이곳에도 성과 관련된 편견과 강간, 권력관계를 지속시키기 위한 각종 학문의 정당화 작업은 여전하죠.
여성 운동가들이 브래지어를 불태웠듯, 남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성기가리개인 페호를 불태우고 남성문제를 계급문제로 환원시켜 설명합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남성우위가 아니라 남녀가 조화된 평등한 사회. 이 책은, 여성과 남성의 바뀐 성 역할을 통해서 그간의 여성운동이 얼마나 합당하고 필연적인 것이었는지를 역설합니다.
더불어, ‘여성운동을 사회 전복의 전조’로 읽는 특권 남성에 대한 풍자를 통해, 절반의 행복으론 결코 유토피아의 이상이 실현될 수 없음을 말하는데요. 남녀문제에의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그 어떤 연설이나 논리보다 분명하게 부권사회의 고정관념에 일침을 가하는 「이갈리아의 딸들」은 한마디로, 치밀하고도 유쾌한 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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