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1일 일요일

고양(高陽) 행주산성(幸州山城) 탐방

방금 전 끝난 KBS 사극 「징비록」 제32회에서는 행주대첩이 그려졌는데 급박한 전투상황이 그럭저럭 표현된 듯하다. 특히 권율의 조방장으로 활약한 조경(趙儆)이란 분이 강단 있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5월의 마지막 일요일 오전 시간을 고양 행주산성 답사로 보냈다. 고봉산(高烽山, 203m)의 高자와 덕양산(德陽山, 125m)의 陽자가 합쳐져 고양(高德)이라는 지명이 탄생했다고 한다. 행주산성의 정문인 대첩문(大捷門)을 들어서면 전면에 도원수 권율상이 묵직하게 서있고, 우편 아래로는 활쏘기 체험을 할 수 있는 충훈정(忠勳亭)이 위치한다.


홍살문을 지나 올라가면 1970년 문화재 재건사업으로 건립한 충장공(忠莊公) 권율의 사당인 충장사(忠莊祠)가 나오는데, 매년 3월 14일 행주대첩을 기념하는 제례를 모신다고 한다. 한글 현판은 박정희의 글씨이다.


선조 26년(1593.2.12) 행주산성 전투 당시 사용된 무기류와 기록화가 전시되어 있는 대첩기념관 내에서는 촬영을 금하고 있어 사진을 담을 수가 없었다.


진강정(鎭江亭)과 덕양정(德陽亭)을 지나 정상부로 올라가면 행주대첩의 경과와 권율장군의 공덕을 적어 부하들이 선조 35년(1602)에 세운 대첩비(초건비,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4호)가 비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비문은 최립(崔笠)이 짓고 비의 명칭은 김상용(金尙容), 글씨는 한석봉(韓石峯)이 썼으며, 끝의 추기는 이항복(李恒福)이 지었고 김현성(金玄成)이 썼다. 흑색이 가미된 화강암 재질의 초건비는 오랜 세월 풍화작용과 마모로 훼손되어 읽을 수 있는 글자가 거의 없다. 헌종 11년(1845)에 초건비의 내용에 일부 내용을 뒷면에 추가한 중건비를 행주나루 부근의 기공사(紀功祠)에 세워 놓았다. 1970년 행주산성 정상화사업 때 세워진 재건비의 각자도 박정희의 글씨이다.


한강 교량 중 가장 길다는 방화대교의 붉은색 아치트러스(arch truss)가 시원스럽게 뻗어 있다. 방향에 따라 위치한 전망시설에서 난지공원·가양대교·성상대교·63빌딩·관악산, 삼각산 백운봉과 인수봉, 일산대교·김포대교·심학산·호수공원·고봉산을 조망해볼 수 있다.


3호선 화정역 3번출구로 나와 19392 정류장에서 행주교통 노란색 012 마을버스를 타고 20분쯤 달려 행주산성 입구에 도착했다. 배차간격이 긴 편이고, 안내방송이 나오지 않아 초행자에게는 불편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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