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20일 수요일

가학광산동굴 역사문화트레킹

54년 전 쿠데타의 날(1961.5.16)… 광명시에 있는 가학광산동굴로 동굴탐방을 떠났다. 7호선 철산역 2번출구로 나와 횡단보도 건너편 다이소 인근에서 17번 버스를 타면 도착한다. 동굴에 인접해 있는 광명 자원회수시설(Resource Recovery Facility)의 건물 색깔이 진한 분홍색이기에 인근에서는 쉽게 찾아갈 수 있을 듯하다.


2015년 현재 35만명 인구의 광명시는 과천시와 더불어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조성된 위성도시로써 베드타운 성격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경기도에 속해 있지만 생활권은 서울 영등포권에 밀접하다. 1981년 시 승격 당시에는 원광명(굉메)에서 유래한 광명동이 중심지였기 때문에 광명시(光明市)라는 도시이름을 갖게 됐다. 자연촌락인 원철산(쇠뫼)에서 유래한 철산동(鐵山洞)은 광명시의 중심지역으로 광명시청, 광명경찰서, 관공서, 철산역, 철산상업지구가 밀집해 있다.


동굴 안 수족관의 실버아로와나(silver arowana)… 공룡시대 물고기라고 하기에 한장 찍어봤다. 먹이감을 사냥하기 위해 물 밖으로 펄쩍 뛰어오르는 습성 때문에 ‘원숭이고기’라고도 불리며 수컷이 입속에 알을 넣고 부화시키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조선광업령(1915)이 시행되기 전부터 시흥동광산(始興銅鑛山)이란 명칭으로 출발한 가학광산동굴은 1912년 일제가 금·은·동·아연을 채굴하기 위해 형성한 이후 1972년까지 약 60년 동안 수도권 유일의 금속광산이었다. 이후 방치돼 오다가 2011년 광명시가 매입하여 총 7.8㎞ 중 1㎞ 정도를 복합문화공간으로 개발·개방하였다.


멍에 가(駕), 두루미 학(鶴)… 예전엔 학들이 멍에처럼 마을을 둘러싸며 서식하였다 하여 붙여진 가학산(駕鶴山)에 소재하기에 가학광산동굴일 터인데, 광명시가 일종의 랜드마크와 관광지로 활용하기 위해 광명동굴이라고 새로 작명한 것 같다.


동굴 안 이곳저곳 신경도 많이 쓰고 나름 눈요기 거리도 있지만 4천원이라는 입장료에는 한참 미치치 못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무엇보다 일제의 잔혹한 약탈의 현장임을 부각하지 못한 부분이 매우 아쉽다.(안한 것일까. 못한 것일까.)


서울 동북부에 불수도삼(불암산·수락산·도봉산·삼각산)이 있다면 광명시에는 도구가서(도덕산·구름산·가학산·서독산) 4개의 산이 있다. 동굴에서 나와 가학산(220m)에 이어 구름산(240m) 정상을 찍고 하산 후 광명시장 전집에서 막걸리 몇 사발로 트레킹을 마쳤다. 철산동과 가학동에는 지석묘(고인돌) 유적지도 있는데, 이번에는 탐방하지 못했다.
아베 같은 애들만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식민주의도 반드시 돌아보아야 한다. 때문에 현재와 미래를 위한 과거의 정확한 기록과 보존의 중요성이란 측면에서 가학광산동굴은 많은 아쉬움을 남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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