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3일 일요일

북한산둘레길 2구간 애국선열묘역길

지난달 11일 서울시민연대 분들과 북한산둘레길 2구간(순례길) 독립유공자 묘역을 다녀왔는데, 이제서야 몇 자로 정리·요약한다.


몽양 여운형(1886.5.25 ~ 1947.7.19) 묘역은 평소엔 개방을 하지 않기에 전상봉 대표가 사전에 연락을 취하여 참배할 수 있었다.


1911년 매국원흉 이용구(일진회장)를 암살기도했으며, 1932년 솽싱푸(雙星堡) 전투에 한국독립군의 참모장으로 참전했던 강재 신숙(1885.12.29 ~ 1967.11.22).


합리적인 보수의 전형을 보여준 심산선생 김창숙(1879.7.10 ~ 1962.5.10)은 이승만을 향해 2번이나 물러날 것을 주장하여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섶다리는 통나무, 소나무가지, 진흙으로 놓여진 임시다리를 말한다. 강을 사이에 둔 마을주민들의 왕래를 위해 매년 물이 줄어든 겨울 초입에 놓았다가 여름철 불어난 물에 의해 떠내려갈 때까지 사용된다. 예전에는 강원도 영월과 정선 일대에서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현대적인 교량이 들어서 대부분 사라져버리고 이색풍물이 되어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섶다리는 매년 추수를 마치고 10월 말경에 사람들이 모여 4~5일에 걸쳐 만들었다가 다음해 5월 중순경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거두어 들이게 되는데, 물에 강한 물푸레나무를 Y자형으로 거꾸로 박고, 그 위에 굵은 소나무와 참나무를 얹어 다리의 골격을 만든 후 솔가지로 상판을 덮고 그 위에 흙을 덮는다고 한다. 지네발을 닮았다고도 비유되는 섶다리는 못을 사용하지 않고 도끼와 끌로만 기둥과 들보를 만드는 정교한 작업이 요구된다.


1940년대 중국 각 지역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우다 전사·순국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 17위의 합동묘소는 너무나 초라하다.


반면에 일성 이준(1859.12.18 ~ 1907.7.14)의 묘역은 수유동 애국선열 묘역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홍살문까지 세워져 있다. 이역만리 헤이그에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운명한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이지만, 지나치게 격상·미화되어 왔다는 느낌이다. 더구나 드종 호텔에서의 최후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더하여 쇠기둥에 볼트 너트를 끼우고 붉은 칠을 한 홍살문이라니… 국가보훈처나 강북구청의 새머리에 어이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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