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일 월요일

지리산 구룡계곡

9월 1일(일), 지리산 구룡계곡 등산길…


이곳은 아홉 마리의 용이 노닐었던 곳이라 하여 용호동(龍糊洞)이라 불리었으며, 약 400년 전 이 지역의 선비들이 용소(龍紹) 앞 넓다란 바위 위에 6각형 모양의 정자를 지어 육모정(六茅亭)이라 이름하였다. 원래의 육모정은 뒤에 보이는 계곡 변바위 위에 있었으나, 1960년 큰 비로 유실되어 현위치로 옮겨져 복원되었다.
술취한 객들이 등산화를 신고 함부로 올라가 고성방가를 예사로 일삼는 낯뜨거운 광경… 고색창연(古色蒼然)한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육모정 맞은편에 위치한 춘향묘(春香墓)는 소설(또는 전설)과 사실(fact)의 혼동이다.
남원부사 이한림의 자제… 알성시에 장원급제하고 이조참의, 대사성, 이판, 호판, 좌우영상을 다 지낸 이몽룡의 내자로 숙종대왕께서 정렬부인으로 봉하신 춘향이 어찌 이씨문중의 선산에 묻히지 못하고 이곳에 홀로 떨어져 있단 말인지?
춘향전을 읽어보면 “매 맞아 죽거들랑… 한양성으로 올려다가 서방님 선산 발치에 묻어주고 비문에 새기기를 ‘수절원사 춘향지묘’라고 여덟자만 새겨달라.”면서 죽어서라도 이몽룡의 가문에 편입하려는 춘향의 강한 신분 상승 의지가 나타나고 있지 않나.


이곳은 떨어지는 물살에 패인 바위의 모양이 마치 소나 말의 먹이통인 구유처럼 생겼다하여 이 지방 사투리인 구시(구유)를 써서 ‘구시소’라 부르고 있다. 예전에는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 구유모양을 띠고 있었는데 1960년대 발생한 큰 홍수로 인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곳은 구룡계곡(九龍溪谷) 9곡(曲) 중 제 7곡인 비폭동(飛爆洞)이다.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반월봉(半月蜂)인데, 거기서부터 흘러내린 계곡 물이 이곳 폭포에서 떨어지며, 아름다운 물보라(抱沫)가 생기는데 그 모양이 마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처럼 보인다 하여 비폭동이라 불리우고 있다.


구룡폭포 앞 다리 위에서 한컷~!! 사진 우편으로 20m 정도 따라 올라가면 바로 구룡폭포. 아래쪽 매표소에서 대략 3.1㎞ 거리다.
구룡폭포… 심산유곡일지언정… 이름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규모다.


참고로 지리산둘레길 전 구간은 아래 그림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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