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한 밤의 귀가 길에서 만난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한 변월수씨.
명백한 피해자였지만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단 이유로 구속, 기소된 그녀에게 사법부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합니다.
가해자측 변호사는 그녀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을 계속 거론하며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되려 죄인이 되는' 성폭력재판의 전형이 재연됐는데요.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더 중시...
사법부의 편견을 여실히 드러낸 이 사건은 결국, 2심에서 여성단체 주도의 끈질긴 시민투쟁이 무죄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여성의 자위권 확보 최초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한국 여성의 전화 연합’이 발간한 『한국여성인권운동사』는 ‘성폭력 추방운동사’를 비롯해 8·90년대를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여성인권운동에 관한 대규모 보고서로, 여성의 몸과 성, 폭력, 가족문제를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입니다.
출판 전 세 가지 원칙은, 필히 현장가인 연구자를 필진으로 선정할 것, 사건 나열이 아닌, 사회운동과 전체 여성운동 속에서 분석적으로 기술할 것, 철저하게 여성 인권의 관점을 유지할 것 등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성폭력, 구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매매춘, 장애여성 및 동성애자 운동의 사례가 발로 뛴 취재와 증언으로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종전의 인권이 정치, 노동, 사법제도 등의 침해 사례만을 문제시한데 비해, 여성인권의 개념을 보다 확대했다는 데서 그 의미가 남다른 『한국여성인권운동사』는 여성운동사 최초의 집대성이라는 의의를 넘어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현장 보고서로 평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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