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10일 금요일

▶◀ 대통령 노무현, 잠들다

노무현 대통령의 49재...
부재함으로써 존재감이 더욱 커지는 사람이 있다.
실수는 잊혀지고 잘한 일은 부각된다.
죽은 이에 대한 산 자의 기억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표출될 지 알 수 없다.
선거나 광장의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공연의 예술작품...
우리의 일상에서도 불현듯 튀어나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이메가와 그 추종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이다.
긴장을 푸는 일에는 그렇게 무능하면서, 어찌하여 불안 조성에는 그렇게도 능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노무현 대통령.
이 두 분에게는 공통적으로 '바보'라는 용어가 쓰여졌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세상의 악과 거대한 불의에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영웅,
즉 바보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카뮈의 부조리 철학과도 연결되는 고리다.
굴러내리는 바윗돌을 산 정상에 올려놓기를 되풀이하는
시지프스의 고된 도전을 통해 까뮈는 실존의 부조리를 설명했다.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저항'이다.
대통령조차 어쩌지 못하는 절명의 상황... 하지만
자신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그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언제나 다시 굴러떨어질 자신의 운명을 향해 돌아서는 시지프스의 모습에서
부조리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인간'의 당당함과 열정을 찾아볼 수 있다.

노무현 부정에서 노무현 계승으로 갈아타기하고 있는 민주당은 좀더 지켜보겠다.
독재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잊혀질 수 없는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처연한 결단에 담긴 진정성과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17년 묵은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 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에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 가는구나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빨간 신호등에 멈쳐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 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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