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1일 금요일

방송대학생의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취득


이미 오래전부터 방송대학 학생들은 사회복지학과 신설을 요구해왔다.
그간의 문제점은 이미 사회복지 관련 학과가 설치된 대학들이 무수히 많기 때문에 매년 수많은 사회복지사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외부에서는 이런 상황에 방송대학도 가담하게 되면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면서 사회복지사만 과잉 생산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견제하는 시선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평생교육을 지향하는 방송대학의 특성상 현재의 직업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추가로 개발하거나 2차 교육적인 목적에서라도 사회복지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어, 이르면 2010년 1학기부터 운영할 수 있도록 실무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식은 사회복지관련 학과신설보다  실효성 있는 사회복지연계전공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이는데, 사회복지와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 행정학과가 주관학과로, 그 외 법학과, 유아교육과, 교육학과, 청소년교육과, 가정학과의 가정관리전공이 연계학과 후보가 된다.

오스트리아의 석학 피터 드러커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지식인은 4년 내지 5년마다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드러커 역시 법학과 물리학 등 새로운 지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한국방송통신대가 1972년 개교 이후 이 같은 역할을 해왔다.

보건복지부령에서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 취득을 위해 이수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는 필수 10개 과목과 선택 20개 과목은 다음과 같다.
이중 필수 10개 과목과 선택 4과목 이상 총 14과목 이상을 이수해야 한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과목이 2009년 현재 방송대학교에서 이수할 수 있는 과목이다.

현재 방송대학교 교과목 중에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인정을 해주고 있는 과목은 모두 6과목이다.
즉, 사회복지사 자격 취득을 위해 이수가 필요한 과목 중...

◈ 필수과목 10과목 중 2과목 : 인간행동과 사회환경(교육학과), 사회복지행정론(행정학과),
◈ 선택과목 중 4과목 : 자원봉사론(청소년교육과), 청소년복지(청소년교육과), 아동복지(유아교육과), 정신건강(유아교육과), 한국사회문제(공통교양과목)...
합쳐서 총 6개 과목이 인정되고 있다.

이외에 부족한 전공 8개 과목은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다른 대학에서 과목을 수강하면 모두 인정된다.
한가지 주의할 점은, 수강한 과목이 사회복지사협회에서 열거한 과목과 명칭이 약간 다를 경우에는 소위 '동일과목심의요청'을 통해 동일한 과목임을 인정받아야 한다.


사회복지사 2급 이수과목 (14과목 42학점)
필수과목 (10과목)
선택과목 (4과목)
사회복지개론
인간행동과 사회환경
아동복지론
청소년복지론
노인복지론
장애인복지론
사회복지정책론
사회복지법제
여성복지론
사회복지발달사
산업복지론
의료사회사업론
사회복지실천론
사회복지실천기술론
정신건강론
학교사회사업론
교정복지론
정신보건사회복지론
사회복지조사론
사회복지행정론
사회보장론
사회복지지도감독론
사회문제론
사회복지자료분석론
지역사회복지론
사회복지현장실습
가족복지론
사회복지윤리와철학
자원봉사론
프로그램개발과평가

2009년 7월 22일 수요일

자판기의 실체

백조는 우아하게 물위에 떠 있지만 물아래 발은 계속 움직인다.

白鳥的水上雅(백조적수상고아)  백조의 물위는 고상하고 우아하다
然他的水中之足(연타적수중지족)  하지만 백조의 물안의 발은
無休恒時忙中也(무휴항시망중야)  쉼없이 항상 바쁜중에 있다네








2009년 7월 20일 월요일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우리는 왜 친구의 애인에게 끌리는가






친구의 애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

01 남자 친구와 술을 마시고 놀다 막차를 놓칠 것 같은 시간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 그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만 우선은 놀고 마신다. → 2번으로
└ 집까지 데려다 줄래?라고 묻는다. → 3번으로
└ 미안! 다음에 또 놀자라고 말하고 역으로 돌진 → 4번으로


02 친구와 디저트 카페에 들어갔다. 친구가 고른 메뉴도 굉장히 맛있어 보인다. 그때, 당신은 ‘한입만~’ 하고 부탁한다.

└ YES → 5번으로
└ NO → 6번으로


03 갖고 싶은 옷이나 핸드백을 발견해도 ‘돈이 없으니까’ 라든가 ‘다른 것이 있으니까’ 라며 대체로 자제하는 편이다.

└ YES → 7번으로
└ NO → 6번으로


04 지금 하고 있는 아르바이트보다 조건이나 내용이 더 좋은 아르바이트에 대한 얘기를 들어도 지금 다니는 직장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때문에...라며, 의리를 우선시한다.

└ YES → 8번으로
└ NO → 7번으로


05 중학교나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자. 여러가지 교칙들을 당신은 잘 지켰는지?

└ 당당하게 교칙을 어겼다 → 9번으로
└ 몰래몰래 어기고 다녔다 → 10번으로
└ 확실히 지켰다 → 12번으로


06 별로 자기 타입이 아닌 남자에게 고백을 받았다. 그 남자에게 보인 당신의 태도는?

└ 오해받을 만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니 앞으로 조심한다 → 12번으로
└ 우회적으로 돌려서 거절한다 → 10번으로
└ 역시 기쁘다 → 9번으로


07 현재 사귀고 있는 남자 친구의 방에 예전 여자 친구에게서 받은 손목시계가 놓여 있다면?

└ 처분하라고 한다 → 11번으로
└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 10번으로


08  노트에 쓴 글씨체나 컬러 사인펜을 사용한 색깔이 마음에 안 들어서 전부 다시 고쳐 쓴 적이 있다.

└ YES → 12번으로
└ NO → 11번으로


09  여름에 유행하고 있는 캐미솔, 당신이라면 어떻게 입을 건가?

└ 하나만 그대로 예쁘게 입는다. → 13번으로
└ 하나만 입기 망설여져 셔츠의 이너웨어로 → 14번으로


10 해외 여행지에서 조금 위험한 지역이 있다고 들으면 오히려 호기심이 발동한다.

└ YES → 13번으로
└ NO → 14번으로


11 친구와 쇼핑을 하러 다닐 때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 걸어다닌 적이 있다.

└ YES → 15번으로
└ NO → 16번으로


12 수영복은 색이나 디자인이 화려한 비키니가 최고다.
└ YES → 14번으로
└ NO → 16번으로


13 ‘굿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면 곰곰이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는 적극파라고 생각한다.

└ YES → A로
└ NO → 15번으로


14 과거에 차이거나 헤어진 남성이라도 친구 관계가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YES → B로
└ NO → 16번으로


15 해외 여행 준비를 할 때면 나도 모르게 신중해지면서, 이것저것 물건이 늘어나서 결국에는 트렁크가 꽉 찬다.

└ YES → 17번으로
└ NO → C로


16 회식이나 뒤풀이 모임에서 친구들과 술잔을 돌려 마신다거나, 하나의 접시에 있는 것을 여러 사람이 함께 먹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다.

└ YES → D로
└ NO → C로



(결과)

A type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휩쓸려 다니는 사람.
고백을 받으면 무조건 OK.
친구 애인에게 고백 받으면 죄책감보다는 그가 나에게 고백했다는 것이 더 중요해 그의 사랑을 받아들인다.
상대를 판단하는 연애 가치관이 아직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강하게 밀어붙이는 유혹에 얼떨결에 넘어간다.
이것이 친구와 삼각관계에 돌입하게 되면 우정도 잃고 애인도 잃게 될 수도 있다.
애인은 나와 사귀면서 나의 줏대 없음에 점점 싫증을 느낀다.


B type
자신의 연인은 스스로 결정하는 타입.
4가지 타입 중에 가장 연애에 적극적인 타입으로 친구의 애인이 좋아진다면 운명적인 사랑이라고 생각하고 그 사랑을 얻기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인간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라도 괜찮은 타입으로 애인 이외에도 여러 명의 이성과 영화를 본다거나 식사를 하는 데이트를 즐긴다.
그렇다고 깊은 관계를 유지하지 않기 때문에 애인에게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다.
반대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벌어져도 친구를 많이 원망하지 않고 애인을 추궁하지도 않는다.
사랑의 삼각관계 안에서 고민하는 것은 소모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C type
남자와 놀아보고 싶어도, 부끄러워서라며 행동을 자제한다.
친구의 멋진 애인을 만나면 그 사람의 매력에 금세 빠지고 만다.
그러나 당신은 부끄러워하는 성격이기 때문에 그에게 잘 접근하지 못한다.
친구의 애인과 함께 셋이서 만나는 자리에서도 아무 관심없는 듯, 우정을 더 중요시 여기는 행동을 한다.
그러나 친구와 애인이 잘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남몰래 눈물 흘리는 타입이다.
먼저 대시를 못 하지만 대시를 받으면 쉽게 받아들이는 타입이다.


D type
친구 애인이 관심을 보이며 말을 거는 것마저 단호하게 거부해버리는 스타일.
노트에 적힌 글씨가 반듯반듯하거나 구석구석 방청소가 되어 있다거나, 자신이 만들어놓은 룰을 지키는 것을 중요시하며, 외부로부터 정해져 있는 룰을 지키는 것에도 행복을 느끼는 것이 당신.
그렇기 때문에 ‘바람끼’는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착실하고 주도면밀한 것이 이 성격!
‘가벼운 남자 따윈 불결해!’라고 생각해버리기 때문에 친구 애인의 대시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2009년 7월 18일 토요일

[책] 한국여성인권운동사


1988년, 한 밤의 귀가 길에서 만난 강간범의 혀를 잘라 자신을 방어한 변월수씨.
명백한 피해자였지만 남성의 혀를 손상시켰단 이유로 구속, 기소된 그녀에게 사법부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합니다.

가해자측 변호사는 그녀가 사건 당일 먹은 술의 양을 계속 거론하며 부도덕한 여자로 몰아세웠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되려 죄인이 되는' 성폭력재판의 전형이 재연됐는데요.

여성의 인권보다 남성의 혀를 더 중시...
사법부의 편견을 여실히 드러낸 이 사건은 결국, 2심에서 여성단체 주도의 끈질긴 시민투쟁이 무죄판결을 이끌어냄으로써 여성의 자위권 확보 최초의 기록으로 남았습니다.

‘한국 여성의 전화 연합’이 발간한 『한국여성인권운동사』는 ‘성폭력 추방운동사’를 비롯해 8·90년대를 중심으로 한 각 분야 여성인권운동에 관한 대규모 보고서로, 여성의 몸과 성, 폭력, 가족문제를 ‘여성 인권’의 관점에서 재해석한 책입니다.

출판 전 세 가지 원칙은, 필히 현장가인 연구자를 필진으로 선정할 것, 사건 나열이 아닌, 사회운동과 전체 여성운동 속에서 분석적으로 기술할 것, 철저하게 여성 인권의 관점을 유지할 것 등이었다고 하는데요.
그 결과, 성폭력, 구타, 일본군 위안부 문제, 매매춘, 장애여성 및 동성애자 운동의 사례가 발로 뛴 취재와 증언으로 생생히 되살아났습니다.

종전의 인권이 정치, 노동, 사법제도 등의 침해 사례만을 문제시한데 비해, 여성인권의 개념을 보다 확대했다는 데서 그 의미가 남다른 『한국여성인권운동사』는 여성운동사 최초의 집대성이라는 의의를 넘어 페미니즘 운동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현장 보고서로 평가됩니다.

2009년 7월 17일 금요일

전원일기 김회장


장 보드리야르는 마르크스주의와 기호학을 접목하여 현대사회를 분석하려는 입장을 가졌다.
그는 현대사회를 소비사회로 규정짓고 소비사회를 철저하게 교환가치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로 파악했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활에 필요한 필수품을 생산하기 보다는 소비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물건들을 생산한다.
그 욕망을 자극하기 위해 만들어지는 대중매체 속의 광고들은 끊임없이 기호를 만들어낸다.
이제 소비자들이 선택하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광고하는 물건이 아니라 광고를 통한 기호 자체가 되어버린다.
소비자들이 기호를 욕망하고 소비하게 되는 셈이다.

보드리야르는 재현이라는 모사과정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모사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모사시뮬라크라(simulacra)라 하였다.
가상현실과 같은 모사가 현실을 압도하는 모습을 두고 보드리야르는 하이퍼리얼리티라고 불렀다.
실재다운 모사를 의미한다.

최불암이란 연기자가 있다.
그는 MBC TV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김회장으로 오랫동안 나온 사람이다.
김회장은 최불암이란 연기자의 시뮬라크라 곧 모사이다.
그는 한 때 모 정당의 전국구의원으로 공천되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는 방송인이라 하여 문공분과위원으로 선임되었다.
하지만 그 앞으로는 농촌문제와 관련된 민원이 많았다고 한다.
텔레비전 속의 현실(시뮬라크라)이 실제 현실(국회의원)을 압도한 것이다.
그는 전국구 의원을 그만두고 영등포구에 출마하여 큰 표차로 낙선하게 되었다.
만약 그가 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리티를 눈치채고 영등포구가 아니라 농촌지역에서 출마하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2009년 7월 16일 목요일

[영화] 파니핑크


남편도, 약혼자도, 남자친구도 없는 30세 여성은 국적 불문하고 호기심의 대상인가.
30대가 되기 전에, 적당한 남성을 만나 안정된 짝짓기를 해야 한다는 주문에 갇힌 29세 독신여성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이 질문의 해답을 제시하는 영화가 바로 <파니핑크>다.
영화는 막 30세가 되는 공항 검색원 파니의 삶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존재의 결핍감, 그로 인해 파니는 죽음을 연습하는 수업에 몰입돼 간다.
어느 날 마주친 이웃집 흑인 심령술사이자 동성애자인 오르페오, 이상적인 남자를 만날 마지막 기회가 오고 있다는 그의 예언은 갖가지 해프닝의 시작이 되는데..
그날부터 운명의 상대로 점찍은 남자를 향한 파니의 구애는 눈물겹지만, 처음부터 그는 그녀의 상대가 아니었다.

파니는 상심하지만, 이를 계기로 비슷한 시기에 실연한 오르페오와 친구가 된다.
쓸쓸할 게 뻔한 파니의 서른 번 째 생일, 오르페오가 준비한 깜짝 파티는 감동적이며, 그들만의 축제는 에디뜨 삐아프의 감미로운 노래와 함께 영원한 순간이 된다.

하지만 느닷없는 오르페오의 죽음, 그와의 짧은 우정은 파니에게 삶은 결국 스스로 개척해야 하는 것이란 깨달음을 남기는데..
자신이 만든 관을 던져버리는 파니의 행동은 자기연민에 대한 악순환을 벗어나려는 결단으로 보이며, 너무나 통쾌한 장면이었다.


‘남자 없는 삶’은 곧 ‘죽음’이란 마취에서 깨어 비로소 독립적 존재가 된 파니는 30세 여성,아니 가부장제 주술에 주눅든 그 모든 여성을 깨우는 이름이며, 여성 스스로가 삶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데 대한 유감 표명치고는 너무나 신비롭고 주술적이며 사랑스런 영화다.

2009년 7월 15일 수요일

조그만 교외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의 한 토막..

주성영 의원: “아들이 결혼할 때 청첩장도 안 돌렸다면서요?”
천성관 후보: “아들도 원하지 않고, 저도 원하지 않아서 그렇게 했습니다”
주성영 의원: “어디서 결혼시켰습니까?”
천성관 후보: “조그만 교외에서 했습니다”
박지원 의원: “아드님 결혼식을 ‘교회’에서 하셨다고 그랬죠?”
천성관 후보: “아니, 저 ‘교외’라고 그랬습니다”
박지원 의원: “워커힐 W호텔에서 안했습니까?”
천성관 후보: “예, 그 ‘야외’에서 했습니다”



여기서 키워드는 ‘조그만’과 ‘교외’다.
1421㎡ 규모의 호텔 내 대저택이 ‘조그맣고’,
쉐라톤그랜드 워커힐 애스톤하우스‘교외’란다.
법조인이 용어의 의미를 모를리가 없다.
아들의 결혼식을 호화판으로 치른 것을 피해가려
궁색한 수사까지 동원하는 모습이 무지 딱하다.
명품쇼핑, 호화아파트대금, 골프여행, 위장전입, 무상차량사용...
이런 한심한 검찰 조직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도덕성을 잃은 천성관 내정자의 사퇴는 국가적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다.

천성관의 사퇴를 보고받은 자리에서 2MB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반하는 것은 곤란한 것이 아니냐.
고위 공직자를 지향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처신이 모범이 돼야 한다”고 했단다.

정말 웃긴다. 그럼 BBK는 뭐지?
‘결정적 결격사유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던 딴나라 역시 언제나처럼 개망신이다.
그나저나 다음번 내정자는 어느 정도 레벨의 비리자가 나오려나.
2탄이 무지 기다려진다.
에이~ 검사스러운 넘들~


2009년 7월 10일 금요일

▶◀ 대통령 노무현, 잠들다

노무현 대통령의 49재...
부재함으로써 존재감이 더욱 커지는 사람이 있다.
실수는 잊혀지고 잘한 일은 부각된다.
죽은 이에 대한 산 자의 기억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다시 표출될 지 알 수 없다.
선거나 광장의 구호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 공연의 예술작품...
우리의 일상에서도 불현듯 튀어나올 수 있다.
바로 이것을 이메가와 그 추종자들이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이다.
긴장을 푸는 일에는 그렇게 무능하면서, 어찌하여 불안 조성에는 그렇게도 능한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과 노무현 대통령.
이 두 분에게는 공통적으로 '바보'라는 용어가 쓰여졌는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세상의 악과 거대한 불의에 무모하지만 도전하는 영웅,
즉 바보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카뮈의 부조리 철학과도 연결되는 고리다.
굴러내리는 바윗돌을 산 정상에 올려놓기를 되풀이하는
시지프스의 고된 도전을 통해 까뮈는 실존의 부조리를 설명했다.
부조리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저항'이다.
대통령조차 어쩌지 못하는 절명의 상황... 하지만
자신의 모든 노력이 무의미함을 알면서도, 그 어떤 희망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포기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언제나 다시 굴러떨어질 자신의 운명을 향해 돌아서는 시지프스의 모습에서
부조리에 정면으로 '저항하는 인간'의 당당함과 열정을 찾아볼 수 있다.

노무현 부정에서 노무현 계승으로 갈아타기하고 있는 민주당은 좀더 지켜보겠다.
독재 파시즘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은 잊혀질 수 없는 가치가 되어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처연한 결단에 담긴 진정성과 시대정신을 기억하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다.


17년 묵은 노래가 다시 들려온다.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 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 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에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 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워~
저기 우산 속으로 사라져 가는구나
입술 굳게 다물고 그렇게 흘러 가는구나 워~

비가 개이면 서쪽 하늘부터 구름이 벗어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면 저 남산 타워 쯤에선 뭐든 다 보일 게야
저 구로 공단과 봉천동 북편 산동네 길도
아니 삼각산과 그 아래 또 세종로 길도

다시는 다시는 시청 광장에서 눈물을 흘리지 말자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


보라 저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빨간 신호등에 멈쳐 섰는 사람들 이마 위로
무심한 눈길 활짝 열리는 여기 서울 하늘 위로
한 무리 비둘기들 문득 큰 박수 소리로
후여 깃을 치며 다시 날아 오른다 하늘 높이 훠~훠이훠얼

- 정태춘, <92년 장마, 종로에서>

2009년 7월 8일 수요일

[책] 페미니즘,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



인류의 반은 여자. 그들이 원하는 건 절대적 평등!
과연 이것이 페미니즘을 올바르게 보는 관점일까요?
때때로, 페미니즘은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성별 경쟁이나 남성혐오증과 직결되죠.

만화 형식의 여성운동사 <페미니즘, 무엇이 세계를 움직이는가>는 바로 그런 점을 불식시킬 만한 지침서라 하겠는데요.
이 책은 프랑스 혁명기에 태동해, 여성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폭발한 1970년대와.. 보수적인 반동이 일어난 레이건, 대처의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페미니즘사의 특징적인 인물과 사건을 예리한 문구와 사진 삽화를 통해 쉽고도 통찰력 있게 조명하고 있습니다.

성폭행 당한 여성이 ‘정조’를 잃었다는 생각을 공격한 인도 여성들.
76년 프랑스 매춘부들의 인권투쟁, 89년 낙태권리를 옹호한 폴란드 여성들의 데모 등 숱한 여성들의 실화는 프리랜서 작가이자 평화운동가인 ‘수잔 앨리스 왓킨즈’와 디자인을 담당한 인권운동가 ‘마르타 로드리게’에 의해 재치있는 말과 그림으로 옮겨졌는데요.
만화책을 읽는 듯한 가벼움 안에, 페미니즘의 명쾌한 해석은 물론, 보수세력의 반대의 역사와 여권 운동 내부의 견해 차이를 두루 소개하는 이 책은 세계를 움직이는 힘으로서 페미니즘의 가치를 일깨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2009년 7월 5일 일요일

[사람들] 원조 고공농성자 체공녀 강주룡

평양 명승 을밀대 옥상에 체공녀가 돌현하엿다.
“나는 죽음을 각오하고 이 지붕우에 올라왓습니다. 나는 평원고무사장이 앞에 와서 임금감하의 선언을 취소하기까지는 결코 내려가지 않겟습니다. 끝까지 임금감하를 취소치 않으면 (중략) 노동대중을 대표하야 죽음을 명예로 알 뿐입니다. 그러하고 여러분, 구타야 나를 여기서(집웅) 강제로 끄러내릴 생각은 마십시오. 누구든지 이 집붕우에 사닥다리를 대놓기만 하면 나는 곳 떠러져 죽을 뿐입니다.”(<동광> 1931. 7)

‘1931년 5월 29일 새벽,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한 여성이 고공 농성을 벌였다. 지금까지 알고 있기로는 우리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벌어진 고공농성 1인 시위였다. 주인공은 평원고무공장 노동자 파업투쟁의 지도자 강주룡이었다. 신문에서는 강주룡을 ‘체공녀’라고 하면서 을밀대 농성을 ‘아직 조선 노동운동선상에서 보지 못하던 새 전술’이라고 평가하였다.



1920년경부터 평양 일대에는 고무신 공업이 발달하는데 조선인끼리의 출혈경쟁으로 이윤을 확보하려 했다. 고무신을 싸게 파는 대신 노동자들의 임금을 조금이라도 더 깎아 손해를 메우려는 식의 계산법으로 인해 12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노동, 남자 감독관의 욕설과 구타, 성희롱을 참아 넘기면서도 남성노동자들 반에 못 미치는 임금이 고작 여성노동자들에게 돌아오는 대가였다. 근대 산업사회의 요구로 직업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한 여성들의 노동은 무시당하고 착취당했다.

강주룡의 을밀대 고공농성은 당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죽을 때까지도 그의 이름 앞에 을밀대가 붙어 다녔다. 강주룡은 을밀대 위에서 9시간 동안을 목청 높여 소리치다가 결국 끌려내려와 평양경찰서에 체포되었고 단식으로 농성 방법을 전환하였다. ‘여류투사 강여사’, ‘평양의 히로인’식의 호응과 함께 평원고무공장 파업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되고 일반 대중의 응원과 함께 투쟁은 탄력을 받기 시작한다. 강주룡도 76시간 단식 뒤에 풀려나 동무들의 시위에 동참했고, 극적으로 임금인하를 막아낸다. 하지만 강주룡과 강경파 스무명은 해고를 당했고, 그는 유치장에서 다시 57시간 단식을 벌이면서 ‘극심한 신경쇠약과 소화불량’이라는 후유증을 얻는다.

‘여성사’에서뿐만 아니라 한국 노동사에서도 최초로 기록될 강주룡의 고공농성은, 결국 그의 목숨을 대가로 끝을 맺는다. 다음해 8월 평양 서성리 빈민굴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우리가 강주룡에 대해 관심을 갖는 까닭은 을밀대 고공농성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31년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잠시 무장독립단체에도 참여했으며, 밑바닥에서 출발하여 선진노동자로, 노동조합 파업투쟁의 지도자로, 그리고 1930년대 혁명적노동조합운동의 활동가로 성장하였다. 강주룡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의 속박을 벗어나 당당한 여성이자 노동자로 깨어났으며,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서는 당당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2009년 7월 4일 토요일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  Fried Green Tomatoes (1991)

여가수의 노래가 흐르고.. 기차가 지나는 풍경 속에 ‘휫슬 스탑’ 카페가 있다.
‘잇지’와 ‘루스’의 까페는 백인우월주의자의 테러가 횡행하던 시절임에도 흑인과 걸인까지 포용하는 평화로운 공간이다.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는 두 여인과 그들의 식당에서 일어나는 ‘공동체의 역사’인 동시에, ‘여자들의 이야기에 관한 이야기’다.

고전이 된 이 작품은 여성들간의 우정을 감성적으로 그렸지만 의외로 만만찮은 섹슈얼리티가 읽히는 영화로, 그 해 ‘트랜스 레즈비언 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때는 대공황기인 3,40년대의 미국, 인종차별과 여성학대가 공공연하던 시절이다.
뭇 여성과는 다른 자유로움과 당당함을 지녔던 ‘잇지’는 가정 폭력의 희생자이던 루스를 구해내고, 소극적인 그녀로부터 강인한 여성성을 이끌어내는 주인공.

그 후 50년, 잇지가 들려주는 ‘그녀들의 역사’는 실의에 빠진 중년의 에블린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정면으로 보게 하고, 변화시키기에 이른다.
에블린이 망치로 '벽'을 부수는 장면은 사회통념을 향한 통쾌한 한방이며, 뚱뚱한 몸을 흔들며 운동을 시작한 그녀는 자신에게서 희망을 찾는 당당한 여성 젊은 날의 잇지를 닮아있다.

'잇지와 루스'의 우정은 다시 에블린과 할머니의 정으로 이어지고 그 안에 담긴 인생의 의미와 사랑, 친구와 가족의 소중함은 관객들을 감염시킨다.
그것은 이 영화가 여성, 남성을 넘어, ‘인간사랑의 기록’으로 찬사되는 이유이며, 영화의 마지막 나레이션 어떻게 이 작은 까페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아름다운 기억으로 묶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나의 해답’이다.

2009년 7월 2일 목요일

[사람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은 이성적으로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좀 더 우월한 이성을 가진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다.”

여자로 살기 - 역사 속의 그 여자 -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여성은 이성적으로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좀 더 우월한 이성을 가진 남성, 특히 아버지와 남편에 의해 교화되어야 하는 존재다.”
유교의 삼종지도냐고? 아니다. 서양의 대표적 계몽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말이다. 계몽사상가들의 열린 생각, 트인 눈을 남몰래 흠모해 오던 독자라면 깜짝 놀랄지 모르겠다. 루소를 비롯한 계몽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은 누구든 공평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고 역설하지 않았나. 유감스럽게도 계몽사상가들이 말한 ‘인간’은 남성이지 여성은 아니었다. 지금 서유럽은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당히 높아졌지만, 300년 전만 해도 여성을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루소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이성을 갖고 있으며 여성이 복종할 대상은 이성이지 아버지나 남편이 아니라고 주장한 이가 바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ecraft)다.

여성은 이성적 존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한때 스스로 ‘루소와 사랑에 빠졌다’고 할 만큼 루소의 사상에 심취했다. 루소가 말한 ‘천부인권’이라든가 ‘자연법’ 사상에 깊이 공감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루소로부터 벗어나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게 된다. 그 결실이 《여권옹호론》이다.
《여권옹호론》은 오늘날 페미니스트들의 성서 또는 페미니스트 선언문이라 불린다.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성 문제와 그 해결 방법을 제시한 최초의 체계적 저술이다.
하지만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제대로 인정받기까지는 무려 한 세기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그이의 사상에 대한 재평가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건 1970년대 들어 유럽에 여성운동이 새 바람을 일으키면서부터다. 이유는, 메리의 삶이 유독 짧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순탄치 못한 결혼 생활로 그이가 남긴 업적의 가치가 왜곡된 탓이기도 하다.
메리는 서른세 살 때 《여권옹호론》을 썼다. 《여권옹호론》을 쓰기까지 메리의 삶을 더듬어 보자.
메리는 1759년 영국 런던에서 몰락한 상인의 맏딸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그이는 정식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가난보다 더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부모의 끊임없는 불화였다. 어머니의 삶을 지켜보며 메리는 ‘결혼이란 여성에겐 견딜 수 없는 짐이요, 여성을 노예보다 더 비참하게 만드는 굴레’라고 생각하게 했다. 메리에게 결혼은 ‘법으로 보장된 매춘’일 뿐이었다.
메리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지만 열여섯 살 때 아는 목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영리하고 배움에 열성적이었던 메리는 실력을 인정받아 귀족 집안 아이들의 놀이 상대, 가정교사, 부유한 가정의 말 상대 노릇을 하며 가족을 부양했다.
부유한 상류 집안을 드나들며 메리는 호화로운 저택 서재에 장식품처럼 꽂혀 있는 책들을 읽어 치웠다. 그이가 본 상류사회 여성들은 오로지 ‘즐기는 일’에만 열중하는 사람들이었다. 연극, 무도회, 트럼프, 무도회……. 너무 어리석은 삶이라고 그이는 생각했다.
상류든 하류든 여성이 무기력한 존재이긴 마찬가지라고 깨달은 메리는 그 근원을 찾기 시작했다. 그이는 여성이 이성적으로 미개하고 지적으로 열등하다고 여겨지게 된 근본 이유가 사회제도의 모순, 특히 불평등한 교육제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잘못된 교육 때문에 여성은 스스로가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며, 설령 깨닫는다 해도 이성을 어떻게 가꾸고 드러내야 할지 전혀 모르고 있단다.
메리는 자신의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조그만 학교를 운영할 꿈을 키웠다. 1784년 마침내 부유한 친구의 도움을 받아 뉴잉턴 그린에 학교를 열었다. 그이 나이 스물일곱 살 때 일이다.
그러나 학교는 1년이 채 못 가 문을 닫고 만다. 여동생 엘리자의 남편이 방해한 탓이다. 엘리자는 남편의 구타에 시달리며 불행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메리는 엘리자를 도망치게 하여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남편의 횡포가 아무리 심해도 법률상 남편의 ‘소유물’인 아내가 집을 나온다는 건 그때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엘리자의 남편은 메리를 비방하며 메리가 운영하는 학교의 평판을 떨어뜨려 결국 문닫게 하고 말았다.

혁명 한복판에서 태어난 《여권옹호론》
메리는 학교를 운영하면서 진보적 지식인들과 사귀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책을 써 나가기 시작했다. 그때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메리는 열광했다. 여성의 지위가 변화되려면 교육제도가 바뀌어야 하고, 교육제도가 바뀌려면 사회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메리는 혁명의 열풍이 몰아치는 프랑스로 건너가 토머스 페인, 콩도르세, 탈레랑 같은 내로라하는 혁명가들과 만나며 생각을 가다듬었다. 여기서 《여권옹호론》이 탄생한다.
《여권옹호론》은 탈레랑의 <공공교육에 대한 보고서>의 답신 형식을 띠고 있다. 탈레랑은 혁명 후 프랑스가 어떤 교육을 해야 할 것인가 계획하면서 <공공교육에 대한 보고서>를 썼는데, 메리가 이에 대해 《여권옹호론》을 내놓은 것. 《여권옹호론》을 읽은 탈레랑은 프랑스 교육위원회가 교육안을 만들 때 메리를 참여시키도록 주선했다.
메리는 《여권옹호론》에서 여자 어린이의 교육을 특히 강조했다. 유아기야말로 인격 형성에 가장 중요한 시기니만큼, 여성이 민주적 권리를 행사하려면 유아기 때부터 평등한 여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이는 주장했다. ‘다섯 살부터 여덟 살까지 남녀 구별 없이 똑같이 옷을 입히고 자유롭게 배우고 동등한 교육 과정을 이수하도록 남녀공학을 실시해야 한다’ ‘종교, 윤리 같은 과목뿐 아니라 신체 단련을 위한 체육을 중심으로 교과 과정을 짜야 한다’ ‘여성이 신체적 열등함을 극복하려면 어려서부터 남성과 같은 신체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요즘은 초등학교부터 남자와 여자가 같은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공부하는 게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지만, 그 무렵 남자와 여자가 한 자리에서 더구나 같은 내용을 배워야 한다는 주장은 충격일 만큼 과감한 것이었다.
프랑스혁명은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 시대를 맞았다. 메리는 혁명에 실망을 느꼈다. 그러던 1793년 2월, 영국이 프랑스에 선전포고를 했다. 자기 나라로 혁명의 불똥이 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은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이 동맹을 맺고 프랑스를 공격한 것이다.
프랑스에 살고 있던 영국인들은 스파이로 몰릴 위험에 빠졌다. 메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신변의 위험을 느낀 메리는 전부터 알고 지내던 미국인 사업가 길버트 임레이와 동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자 임레이는 등을 돌렸다. 메리는 템즈강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려 했다. 두 번에 걸친 메리의 자살 미수는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이윽고 메리는 영국으로 돌아와 옛 동료 고드윈과 결혼했다. 둘 다 기존 결혼 제도에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으므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동거하다가 메리가 임신을 하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그러나 메리는 딸을 낳은 지 열흘 만에 출산후유증으로 세상을 떴다. 그때 나이 서른여덟. 《여권옹호론》을 발표한 지 5년 만의 일이다.
이듬해 고드윈은 메리의 어린 시절 급진 서클 활동, 연애와 자살 미수, 자신과의 결혼 생활을 솔직하게 쓴 회고록을 출판했다. 그이의 회고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메리를 사생활 복잡한 자유분방한 여성으로 여기게 했다.
그때 신문은 메리를 가리켜 ‘철학적 바람둥이’라 했고, 여성으로서 훌륭한 행동은 하지 않고 그럴 듯한 주장만 앞세운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메리의 사상이 지닌 가치를 이해해 보려는 노력은 숨을 죽였다. 메리는 페미니즘과 도덕적 방종의 상관관계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었다. 메리가 선구자 같은 업적을 남겼는데도 뒤늦게야 인정받게 된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 세기 반이 지나서 메리의 사상은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금 우리가 메리를 잘 알지 못하는 건, 우리 사회에서 여성문제에 대한 인식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알게 해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여성 최고의 행복은?
여성에게 인생 최고의 행복은 뭘까? 메리는 대답한다. 남성에게 경제적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상태에서 벗어나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고 사회에 ‘쓸모 있는 시민’이 되어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사는 것이라고.
쓸모 있는 시민이란 사회에서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것을 말한다. 새로운 사회의 여성은 사회적으로 쓸모 있는 존재여야 한다는 것이 그이의 믿음이었다.
그이는 사회 참여의 한 방법으로 훌륭한 어머니가 되는 길을 제시했다. 자녀를 바르게 교육시키는 일은 하나의 당당한 ‘직업’이라고. 이 주장은 당시 영국 여성들에게 아주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특히 중산층 여성들에게.
메리의 생각은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정치 참여를 갈망하던 당시 영국 중산층, 부르주아 여성들을 대변하고 있다. 그이는 18세기 영국 중산층 여성들을 사회의 중요하고도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 당당히 복권시켜 놓았다. 혁명이 끝나고 유럽 사회를 이끈 새 세력이 부르주아라는 사실을 감안할 때, 메리가 부르주아 여성들이야말로 새로운 사회의 주역이 될 거라고 생각한 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메리는 온건한 중산층 여성운동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지닌 자연인임을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거나 체계 갖추어 설명해내지 못하던 그때, 여성에 대한 억압과 불평등의 원인을 분석하여 해결책을 제시하고 여성문제를 사회 개혁과 연결시켜 파악한 그이의 업적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메리의 딸들은 어찌 되었을까? 고드윈과의 사이에서 태어나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딸 메리는 시인 셸리와 결혼했으며 소설가가 되었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가 바로 딸 메리다.

2009년 7월 1일 수요일

[사람들] 캐롤 길리건



캐롤 길리건 Gilligan, Carol (1936 ~ )
미국 페미니스트, 발달 심리학자, 윤리학, 하버드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30년 이상 교수로 일했다. 1982년에 나온 그녀의 대표작 <<다른 목소리로>>는 하버드 대학신문에서 ‘혁명을 출발시킨 작은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84년에는 페미니즘 잡지 <미즈>가 뽑은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996년 <타임>지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명을 선정해 커버스토리로 다뤘는데 길리건은 앨 고어, 캘빈 클라인, 로버트 레드포드 등과 함께 뽑혔다. ‘단 한권의 책이 심리학의 법칙과 통설을 바꾸고 의학연구의 가설들을 수정하게 함은 물론 남성과 여성, 남아와 여아의 차이점에 대한 부모와 교사, 그리고 발달 관련 전문가들의 대화를 송두리째 바꿔버린 것’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길리건은 심리학 내부에 여성의 목소리를 가져옴으로써 심리학의 목소리를 바꾼 것이다.

<<다른 목소리로>>에서 길리간은 당시 발달심리학의 정설로 여겨지고 있던 콜버그의 이론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콜버그는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 모든 사람들의 권리에 대한 평등과 상호성을 보장하는 정의의 원리를 자신의 도덕원리로 채택하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성숙한 행위자라는 ‘정의의 입장 justice perspective’을 취했다. 도덕적 성숙에 이르는 데는 6개의 발달단계가 있는데 마지막 6단계에서 도덕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정의의 원리를 자신의 최고 행위원리로 채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콜버그의 모델에 따라 연구결과를 살폈을 때 5단계나 6단계에 이른 경우는 대부분 남성들이었고 많은 여성들은 3단계(행위의 옳고 그름이 주위사람들의 평가에 달려있는 단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거나 그들을 만족시키는 행위가 옳은 행위다)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이런 결과는 여성의 도덕적 판단능력이 남성에 비해 열등하다는 통념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길리건이 착목한 것은 바로 그 지점이었다. 도덕적 성숙의 기준이 과연 정의의 원리 뿐인가. 지금까지 남성들은 권리의 개념을 강조해왔고 여성들은 보살핌의 행위를 중시해온 현실을 고려할 때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길리건은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러 연구들을 수행해 남성과는 다른 여성의 도덕적 성숙과정을 추론해냈다. 이 새로운 모델에서 발달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5단계로 구성되는데 마지막 5단계에서 행위자인 여성은 다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부당한 착취와 가해를 막아야 하고 자신도 보살핌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 보살핌의 원리를 ‘도덕적 판단의 보편적인 자기 선택적 원리’로 채택하게 된다. 정의의 입장과는 다른 ‘보살핌의 입장care perspective’을 제시한 것이다.

길리건은 자율성과 독립성이 사랑과 보살핌에 바탕한 상호의존성이나 친밀성보다 더 바람직하고 우위에 있다는 콜버그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와 함께 추상적인 정의의 원칙보다 구체적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중시하며, 정의의 개념조차 타인에 대한 배려에 종속시키면서 타협을 선호하는 여성들의 태도를 옹호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으로 열등한 행위가 여성의 입장에서는 도덕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정의의 원리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권리를 강조하면서 결국 서로 간에 벽을 쌓도록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문제도 거꾸로 제기될 수 있었다.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정의의 입장을 상대화시킨 것이다. 이와 함께 분리의 개념에 익숙한 채 사람들 간의 경계선을 만들고 유지하느라 바쁜(남성) 사회에서 인간관계, 사람들 간의 연결에 항상 유의하고 있는 여성의 존재가 가치있게 부각되기도 했다.

그러나 길리건이 새롭게 제시한 보살핌의 입장, 보살핌의 윤리는 왜 여성들이 그런 특성을 보이게 됐는지, 가부장제의 산물이 아닌지에 대한 고찰이 없으며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여성의 종속을 유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성차별적 본질주의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바로 그 때문에 사회의 갈채를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길리건이 전통적으로 무시돼 온 여성들의 도덕적 관점을 드러내고, 그것이 결코 열등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페미니즘 뿐 아니라 학문과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친 점만은 부인할 수 없다. <<도덕 영역의 지도그리기>>, <<연결하기>>, <<목소리와 침묵 사이에서>> 등의 책을 냈고 1992년에 출간한 <<교차로에서 만나기>>는 그해 뉴욕타임즈의 주목할 만한 책에 선정됐다. 의학박사인 제임스 길리건과 결혼해 아들 셋을 두었다.

- 출처: 김신명숙. 2007. <<김신명숙의 선택>>. 이프. pp. 33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