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8일 목요일

Bloody child's shoes

12월 28일. 무죄한 어린이들의 순교 축일(Feast of the Holy Innocents, martyrs)이다.

테헤란의 하프테티르 광장(Haft-e Tir Square)에 늘어진, 가자에서 숨진 죄 없는 아이들의 사진과 신발이 애처롭다. 12월 말 기준으로 가자지구에서 최소 2만명이 넘는 사람이 숨졌다. 5만2천명이 부상당하고 7천명가량이 실종됐다. 죽은 사람의 70%는 어린이와 여성이다. 권좌를 놓지 않으려는 헤로데의 망령은 2천년을 넘어 지구 행성을 배회하고 있다.

어떤 자들은 한 줌 정의를 으스대며 그것을 구실로 온갖 불의를 행한다. 세계가 불의의 수렁에 빠져 죽게 된다. 사실 저들이 “난 정의롭다”고 말할 때, “나는 복수심에 차 있다”는 말로 들린다. -니체



2023년 12월 20일 수요일

달항아리 키링

백팩에 다는 #달항아리 키링.
높이 34㎜ 지름 31㎜ 두께 3㎜. 김명희 도예가의 실험적 작품.
현존하는 달항아리는 국내외 20점 안팎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담백하고 절제된 조형미가 숨을 멎게 한다. 고아하고 이지적인 순백의 원이 발산하는 무심한 아름다움이 키링으로 탄생했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빚어 이어 붙인 데서 나오는 비대칭성의 달항아리라면 더 좋겠다. 이 순박하고 은근한 내면의 빛을 애정한다.


2023년 12월 8일 금요일

자연스러운 문장

#샘플문제

5. 다음 중 어법에 맞고 자연스러운 문장은?

① 제가 이것을 잘 지휘하고 유치를 이끌어내지 못한 것은 대통령인 저의 부족의 소치라고 하겠습니다.

② T1 선수단 여러분, 7년 만에 롤드컵 우승이자, 네 번째 롤드컵 우승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③ 여가부 폐지라고 하는 것은 여성, 가족, 아동,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보호를 더 강화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④ 정보화 기반과 인권의 가치로 대한민국의 새 지평선을 여신 김대중 대통령님의 성찰과 가르침을 깊이 새기겠습니다.

⑤ 민주와 인권의 오월 정신 반듯이 세우겠습니다.

2023년 12월 6일 수요일

인생 후반 재도약 가능성을 높이는 학교 모델 소개

Data-Digital-Design으로 살펴보는 3차 서울미래학습포럼

‘미래 서울시민 인생을 디자인하는 학교 비전’ 소개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41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원장 직무대행 구종원, 이하 서평원)은 6일(수) 오후 2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랩 3층 디자인홀에서 서울시민의 미래 성장과 학습방향을 제안하는 ‘서울미래학습포럼(3차)’을 개최했다.


데이터(Data)를 키워드로 한 1차 포럼 ‘AI와 Age 혁명 시대의 미래 준비’, 디지털(Digital)을 키워드로 한 2차 포럼 ‘디지털이 여는 미래학습 혁신 방향’에 이은 이번 3차 포럼은 디자인(Design)을 키워드로 ‘미래 서울시민 인생을 디자인하는 새로운 학교 비전’을 제시했다.


기조발표에 따르면 조기퇴직,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4050 중장년의 재도약을 위한 재도약 지원정책이 필요하다.


첫 발표에 나선 서평원 김혜영 정책팀장은 4050세대(X-teen)의 특징으로 △표준의 실종 △중장년이기에 더 낯선 혼란 △새로운 시도에 대한 욕구 △발달한 트렌드 감각 △생애 서사의 핵심 관계망을 꼽았다. 그러면서 생애전환기에 필요한 라이프스킬과 실행력을 기르는 프로젝트 코스로 운영되는 중장년 지원체제의 총체로서 새로운 학교 모델을 소개했다.


▲6일 오후, 3차 서울미래학습포럼에서 김혜영 정책팀장(서평원)이 ‘미래 서울시민 인생을 디자인하는 학교 비전’을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 발표는 인생디자인학교 ‘파일럿 교육과정‘에 참여하여 인생에서 꼭 도전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추진한 네 사람의 도전 경험이 공유됐다. △김희정(‘해야 할 일’에서 ‘하고 싶은 일’로) △장기도(40대에게 필요했던 나에게 집중하고 연대하는 시간) △이승은(새로운 기술을 통해 나의 역량을 확장해 본 시간) △장한나(꿈꾸는 작가 ‘두손’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탄행시키는 과정) 참가자가 꿈을 현실화하는 인생디자인의 의미를 들려주었다.


▲6일 오후, 인생디자인학교 프로젝트 실험실에 참가한 김희정氏가 ‘생전 유품 정리’를 통해 경험한 인생디자인의 의미를 발표하고 있다.


이어서 서울시 평생학습의 정책과 비전을 함께 고민하는 싱크탱크위원회의 김희수 교수(중앙대), 황성현 대표(퀀텀인사이트)가 인생디자인학교에 대한 제언과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날 3차 서울미래학습포럼은 ‘생각하는 힘, 실행하는 힘’을 기르는 인생디자인학교를 통해 시민들이 더욱 힘차게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기를 기대하는 비전선포식으로 마무리됐다.


2023년 12월 3일 일요일

낭독…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

올해로 KBS 입사 42년 차의 서혜정 성우는 speech를 말을 구성하는 △sincerity △passion △emotion과 말하는 방법 △easy △cantabile △humorous로 풀어내더라. 요컨대 진정성과 열정, 감정을 쉽게 노래하듯이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낭독이야말로 말의 예술이자 쉼(pause)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폭스TV의 미드 「X파일」에서 “멀더, 어디예요? 멀더, 난 믿을 수가 없어요!”라고 말하는 지적인 스컬리 요원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낭독은 오감을 일으키는 독서법이다. 삶의 궤적이 저마다 다른 개성을 낭독으로 엮어간다. 문해교원은 때로 전기수에게 빙의해야 한다. 한 수 배웠다.

[좌]2023년 하반기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 포스터.  [우]‘술술 이야기 읽기’ 교재 3권 「서울이야기」 39쪽(전자북 p.45) 사진. 궁궐건축물에서 용두는 용마루 양쪽이나 내림마루 하단에 올려놓는다. 귀마루(추녀마루)에는 보통 어처구니가 늘어서 있는데, 용두가 앞에 오는 경우는 보지 못했다. 포스터 그림이 잘못된 듯하다. 역사문해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서평원에서 발간한 ‘술술 이야기 읽기’ 교재 3권(서울이야기)과 2권(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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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정 성우, 낭송·낭독 교육의 의미와 방법론 강연
2023년 하반기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 진행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39

서울특별시평생교육진흥원(원장 구종원, 이하 서평원)은 2일(토) 오후,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 4층 미래홀에서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70명을 대상으로 ‘2023년 하반기 보수교육’을 실시하였다.

이날 보수교육은 △성인 문해학습자를 위한 ‘술술 이야기 읽기’ 책 소개 △성인 문해학습자를 위한 낭독교육의 의미와 효과 등의 내용으로 진행됐다.

첫 순서에서 서평원 최믿음 주임(지역평생교육사업팀)은 “술술 읽고 줄줄 쓰고 싶다는 현장 문해학습자들의 소망을 담아 지난해 3종(시·옛이야기·서울이야기)에 이어 올해에도 서울형 성인 문해교육 읽기 교재 ‘술술 이야기 읽기’ 2종(동화·인물이야기)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5종 책자의 전자북을 내려받는 경로, 3종 오디오북(유튜브)의 접속 방법을 안내하였다.
2일 오후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서 진행된 ‘2023년 하반기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에서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최믿음 주임이 「술술 이야기 읽기」 교재(5종)를 소개하고 있다.

두 번째 순서에서는 인기 미드 「X파일」의 데이나 스컬리役으로 유명한 서혜정 성우가 ‘낭독의 의미와 효능’에 대해 들려주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판잣집에서 살았어요. 부모님이 일하러 나간 사이 천둥번개가 치면서 비가 내리는데 너무 무서워서 큰 소리로 책을 읽으면서 숙제를 했어요. 내 입으로 내는 소리가 내 귀로 들어오니까 두렵지 않고 위안이 되더라고요.”

서혜정 성우는 “낭독을 꾸준히 하면 발음이 좋아지고, 발성이 늘어나고 문해력까지 올라가는 ‘낭독혁명’을 누릴 수 있어요.”라면서 서혜정표 낭독의 6하원칙으로 △정확한 발음 △좋은 발성 △끊어읽기 △억양 △엑센트 △쉼을 꼽았다.

계속해서 “언젠가부터 독서는 낭독(朗讀)이 아닌 묵독(默讀)만 인정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면서 “문장을 읽고 듣는 순간순간 스스로 이해하고 끄덕끄덕하는 쉼(pause)이 필요해요.”라고 강조했다.

서 성우는 이번 보수교육 포스터에 삽인된 문장들을 톤을 정돈해서 읽는 음독(音讀)과 실제 상황에 맞추어 읽는 낭독(朗讀)으로 나누어 시연해 참가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2023년 하반기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에서 “눈이 마음의 창이라면 목소리는 영혼의 울림”이라고 강연하는 서혜정 성우.

“태어나서 한 갑자는 나를 위해 살았으니, 두 번째 한 갑자는 이타적으로 살아보려 해요.” 서 성우는 “2024년 새해에는 대한민국에 낭독의 바람을 불러일으켜 보려 해요. 낭독지도자 과정을 개설하고, 노래방처럼 오디오북 감상실을 만들어 확산하는 계획을 실현할 거예요.”라며 낭독을 낯설어하는 분위기, 옛날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을 바꾸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수업시간에 “책을 ‘읽어 보세요!’ 하는 대신 ‘낭독해 보세요!’라고 말하세요…” K-낭독을 꿈꾸는 KBS 공채(17기) 42년차 베테랑 성우의 조언이다.

2일 오후 서울시민대학 동남권캠퍼스에서 진행된 ‘2023년 하반기 서울특별시 문해교육 관계자 보수교육’에서 서혜정 성우가 “목소리가 비슷해도 감성은 다르다. 나쁜 목소리는 없다. 나쁜 습관이 있을 뿐이다.”라며 낭독의 긍정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서평원이 발간한 서울형 성인 문해교육 읽기 교재 ‘술술 이야기 읽기’는 현재 5권까지 나와 있다. △긴 글 읽기를 어려워하는 학습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시 40편(1권) △성인 문해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춰 어휘와 문장 표현을 다듬은 옛이야기 30편(2권) △서울의 지리와 역사를 주제로 한 서울이야기 19편(3권) △문해학습자의 정서와 공감을 고려하여 선별한 동화 12편(4권) △성인 문해교과서와 연계한 인물이야기 4편(5권)으로 구성돼 있다.

5종의 ‘술술 이야기 읽기’ 책과 교사용 지도서 파일은 서평원 웹사이트 상단 [프로그램]-[문해교육센터]-[새소식]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1~3권의 오디오북은 서평원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11월 21일 화요일

그림이 신명이다

일요일(11.19) 오후, 남인사마당…

시민 한 분이 바닥에 앉더니 스케치북을 꺼내 슥~슥~ 펜을 놀린다.

관객과 연희자가 함께 어울리는 대동놀이의 신명이 그림 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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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강산국악예술단, 2023년 「전통을 잇다, 풍류가 있다」 공연 성료

풍물·타령, 단소·해금, 한국무용… 다채로운 우리가락 선봬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31


19일(日), 팔도강산국악예술단(대표단장 이춘화)이 2023년 종로구 ‘돈화문로 활성화 주민공모사업’ 「전통을 잇다, 풍류가 있다」를 마무리하는 4번째 거리 공연을 펼쳤다.


오후1시, 창덕궁 돈화문 앞에 도열한 취타대는 힘찬 출발과 함께 율곡로를 건너 돈화문로 왕의길을 행진했다. ‘아리랑’ ‘풍년가’ 곡조를 연주하는 대취타 행렬이 모습을 드러내자 길가의 시민과 관광객이 연신 셔터를 누르며 반갑게 맞아 주었다.


취타대는 종로3가 지하철역을 돌아 낙원악기상가 밑 삼일대로를 경유해 남인사마당 무대에 올라 연주를 이어갔다.


2부 첫 순서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예능보유자인 이생강 선생의 지도를 받은 단원들이 단소 곡조를 선보였다. 이어서 △풍물(앉은반) △만담(장소희·심일웅) △부채춤(이춘화·유연일·김지현·이정희·홍경옥) △해금(전미선) △한량무(전일남·한석원·이경호) △안성아리랑과 장기타령 등 민요메들리가 펼쳐졌다.


주말을 맞아 인사동을 찾은 시민들은 이어지는 △변검(신현철) △방아타령 △진도북 △겨울천사 선녀춤 △각설이타령 △평북농요를 관람하며 나들이 기분을 만끽했다.


종로구 운니동에 소재한 팔도강산국악예술단은 종로구의 ‘돈화문로 활성화 주민공모사업’에 2019년부터 4년 연속으로 선정되면서 관광지역인 돈화문로 일대에 볼거리를 제공하고,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전통국악교육에 힘써오고 있다.

※입회 및 교육 문의 : 팔도강산국악예술단 이춘화 대표단장 ☎010-2338-5711

2023년 11월 20일 월요일

낙척공자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개설한 종합16기 전수교육 과정을 마쳤다. 4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된 총 23회차 강의 중 19개를 들었는데, 마음에 흡족한 강의는 4개 정도로 꼽는다. 많이 아는 것은 물론 잘 전달하고 나누는 것도 좋은 강사의 요건일진대, 내부 강사진의 상당한 스킬업이 필요해 보인다.

대략 50명 정도의 출석인원이었는데, 다음주에 가보면 66명 전원이 출석체크되어 있곤 했다. 노후화된 장비, 부실한 교재, 불친절한 사무국에 세심한 배려 결여, 일부 수강생의 학습태도까지 전반적으로 만족도가 높지 않다. 종묘와 사직, 환구, 왕릉 제향과 관련한 내용들을 마스터해 볼 요량으로 등록하고 수료는 했지만, 본전 생각이 난다. 종강일엔 그 흔한 피드백 절차조차 없으니, 추후 개선의 여지가 있을지 의문이다.

그럼에도 파종회에서 활동하는 전준이씨 분들이라면 수강을 고려해 볼 만하다. 소속 파종회에서 40만원 수강료와 플러스알파까지 지원해 주더라. 외부에 비치는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내려면 종약원은 타성 사람에게도 신경쓸 필요가 있다. 8개월간 애써준 이민주 반장께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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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이씨대동종약원, 종합16기 전수교육 수료식 성료
8개월간 23강 운영… 1361명 수료생 전국 네트워크 구축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437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사장 이귀남)은 18일 오정, 종합16기 전수교육 수료식을 열고 8개월 교육과정을 마무리했다.

종로구 와룡동(돈화문로 89) 이화회관 지하강당에서 열린 수료식에는 대동종약원 이사진, 파종회장, 기수임원, 강사진 등이 참석해 64명 수료자를 축하했다.

수료식은 국민의례와 종묘의례, 이사장 축사, 수료증서 수여, 우수·모범 수료생 표창, 기념촬영 순으로 진행됐다.

이귀남 이사장은 이석동 부이사장이 대독한 축사를 통해 “긴 시간동안 열정을 불사른 노고를 치하하며, 전수교육 수료를 발판삼아 심도있는 연구에 매진하여 국가무형문화재 전승과 알림에 힘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수료생 중 이광진, 이세연, 이홍주, 이희창, 이민주氏가 우수·모범 표창을 받았고, 충주지씨 수료생 4인은 종약원 발전기금으로 100만원을 기부했다.

수강생 66명 중 64명(여성 4인 포함)이 수료한 16기 회원은 친목회(한울타리회)를 구성하고 본인의 희망에 따라 문화부, 전례부, 조직부, 청년부, 여성부 등 종약원 기구에 자원해 제향 관련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한편, 종친부는 고려 때 제군부(帝君府)를 세종 12년(1430)에 고친 이름이다. 국왕의 족보 관련 기록을 담당하며 어보와 영정을 받들고 왕가·종실·제군의 인사와 갈등 조정 등의 사무를 맡아보던 정1품 아문이다. 종친부(宗親府)―종정부(宗正府)―종정사(宗正司)―종정원(宗正院)―종부사(宗簿司)를 거쳐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이후 일제의 차관정치로 폐지되고, 1910년 경술국치 후 종약소(宗約所)로 재설립되었다. 1955년 전주이씨 대동화수회가 결성되어 1957년 ‘사단법인 전주이씨 대동종약원’으로 문교부장관 인가를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동종약원은 종묘제례 전수교육(2000), 사직대제 전수교육(2004), 전통예절교육(2012), 왕릉제향 전문과정(2014)을 병행하며 올해까지 23년간(종합16기) 전수교육을 운영해왔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18일 종합16기 전수교육 수료식을 열었다. 16기에는 66명 등록생 중 64명이 수료했다. 현재 1361명 수료생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2023년 11월 17일 금요일

수파희어로

11월17일은 을사늑약이 강제된 날(1905)이자 우당 이회영 선생 순국일(1932)이다.
2019년 여름, 군산 원도심의 장미동과 영화동을 답사했다. 구영7길의 ‘다호’ 게스트하우스 벽면에 윤봉길, 김구, 안중근의 얼굴과 함께 秀波喜語路(수파희어로) 다섯 글자가 선명했다.
빼어날 秀수, 물결 波파, 기쁠 喜희, 말씀 語어, 길 路로… 한인애국단원 윤봉길, 임정주석 김구, 대한의군참모중장 안중근… 이분들이야말로 진정한 슈퍼히어로Superhero로 손색없는 지사들이다. 흉상 철거니 독립영웅실 철수니 하면서 닛뽄 리쿠군시칸갓코 태릉캠퍼스 따위가 어찌해 볼 수 있는 분들이 아니란 말이다.

秀波喜語路 수파희어로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소설을 통해 이어진 종로와 작가

혜화동과 명륜동을 걸었다. 혜화동은 1914년에, 명륜동은 1936년에 일제가 생산한 동명이다. 흥덕동, 송동, 잣골, 흙다리골, 앵두나무골, 박우물골, 피맛골, 궁안골, 박석고개 같은 우리 지명은 잊혔다. 60여 년간 혜화동을 지켜온 문화이용원의 텅 빈 공간에 마음이 애잔하다.
북묘터에서 명성황후 민씨의 진령군, 엄귀비의 현령군, 박ㄹ혜의 최태민·최순실, 굥본부장의 天公을 떠올렸다. 어디까지가 믿을 수 있는 얘기인지는 잘 알지 못한다.
받들 대戴(18획 戈변), 실을 재載(13획 車변)… 무심히 읽어온 성균관 노복들의 공간은 재학당(載學堂)이 아니라 대학당(戴學堂)이다.

혜화동우체국 앞에서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청마의 「행복」을 읊조린다.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그러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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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이어진 종로 공간과 작가의 관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④ 한무숙 장편 「역사는 흐른다」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24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단풍의 향연이 한창인 계절의 일요일 오전, 추억의 밴드 동물원의 「혜화동」을 흥얼거리며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린다.
(협)마을대학종로가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마지막 4차시 탐방지는 혜화동과 명륜동 일부 지역이다.

덕수궁 옆 정동교회와 이화여고의 경계 보도에 ‘보구녀관(普救女館)’ 표석이 있다. 미국 감리교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가 이화학당 인근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을 세운 자리다(1887). 보구녀관의 로제타 홀(Rosetta S. Hall) 의사는 내외(內外)의 구별이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여성 환자의 진료를 전담하는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혜화동 아남아파트 자리에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마련했다(1928).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의학교육기관의 탄생이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우석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 등을 거쳐 발전하며 의료계를 이끌었다.
아남아파트 입구에 물이 많이 나서 바가지로 물을 푼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이곳 동네 이름을 박우물골, 박정동(朴井洞)이라 불렀다. 맞은편은 궁안우물골 궁내정동(宮內井洞)이라 불렀다. 조선 20대 경종(景宗)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의 친정에 큰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혜화동로터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관어당, 부인 이순경氏의 동양서림에 얽힌 내력을 알아보고 있다.

혜화동로터리 좌변으로 금문(金門), 블링크안경, 동양서림, 성진약국, 혜화동우체국이 연속하여 보인다. 동양서림은 지난해 102세로 작고한 이순경氏가 1953년 설립한 서울미래유산 인증 서점이다. 이氏는 식민사학의 태두로 알려진 두계 이병도의 맏딸로 1941년 일본 유학 중이던 장욱진과 혼례를 올렸다. 그림과 술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난 ‘업보’로 살림과 아이들 교육을 떠맡아야 했다. 학자 집안인 친정의 체면을 생각하여 고심 끝에 선택한 업종이 서점이었다. ‘동양서림’ 상호는 부친이 지어주었다.
생업을 책임진 아내 덕분에 장욱진 화백은 종로구 명륜동과 남양주 덕소, 충주 수안보, 용인 신갈을 오가며 화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여인상>과 <진진묘(眞眞妙)> 3점으로 담아냈다. 내년 2월(2024.2.12)까지 장욱진의 회화, 드로잉, 판화 등 25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으로 관람객과 만난다.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로 불리는 기농 정세권은 1920년대 익선동·가회동·혜화동 등 사대문 안쪽 좁은 땅에 방과 마루, 부엌, 마당과 화장실이 응집된 ㄱ자, ㄷ자, ㅁ자 형태의 근대 도시형 개량한옥을 선개발해 후분양했다. 1930년대에는 성북동·창신동·서대문 등 사대문 외곽지역, 1940년대에는 왕십리와 행당동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섰다.
혜화동에는 실내 공간을 넓히려 방의 벽이 담장 역할을 하면서 짧아진 처마에 함석을 덧대 햇빛을 확보하고 빗물을 방지한 정세권식 근대한옥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혜화동주민센터로 변모한 한소제의 한옥이나 향정한무숙기념관은 이러한 근대한옥의 호사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영산대학교를 설립한 부봉환·박용숙 부부의 옛집으로 추정되는 기와집과, ‘만우기념관’ 현판을 달고 있는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의 옛집은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성균관의 동북쪽 땅은 연꽃과 앵두꽃으로 유명한 한양도성 내 명승이었다. 상왕으로 물러난 이성계가 살던 집을 희사해서 지은 교종(敎宗)의 교종소(敎宗所) 흥덕사(興德寺)에서 흥덕동이란 동명이 생겼다. 연산군의 폐불정책으로 사라진 흥덕사 터에 회덕사람 송시열이 살면서 송동(宋洞)으로 회자됐다. 송시열은 바위에 曾朱壁立(증주벽립), 今古一般(금고일반) 글자를 새겼다. ‘증자와 주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벽을 세우겠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신념은) 한결같다’는 송자의 대의명분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1883년, 고종은 흥덕사터 송동에 북관왕묘를 지었다. 이는 임오군란(1882)으로 충주까지 피신한 왕후에게 환궁 시기를 예언해 준 이씨무녀(진령군)의 주청에 따른 것이다. 1884년 12월7일(음10월20일) 갑신정변 마지막날, 좌의정 홍영식은 고종 부처를 수행해 진령군이 거처하는 북묘까지 갔다가 청군에 피살됐다. 북묘터에 진령군 대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마비가 서 있다. 고종은 북묘의 내력을 북묘비(北廟碑)를 제작해 기록하고, 관왕을 관제로 높여 올렸다.
동묘에 합사된 북묘 자리에 1915년 불교계 중앙학림이 개교하여 3·1운동에 참여하고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로 학맥을 이었다. 1927년에 수송동에서 중앙학림의 동쪽으로 옮겨온 보성학교는 간송 전형필 가문이 운영을 맡았는데, 1989년 송파구 방이동으로 이전했다. 혜화동의 옛 보성중학교 자리에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보성고등학교 자리에 서울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우암 송시열의 증주벽립(曾朱壁立) 각자를 살펴보고 있다.

경술국치 이전인 1910년 1월25일에 개교한 숭정의숙은 경제력을 갖추고 신분상승을 꾀한 반민(泮民) 교육열의 산물이다. 조선의 최고학부 성균관의 다른 이름은 반궁(泮宮)이다. 천자국인 고대 주(周)나라의 국학 벽옹(辟雍)은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반면에 제후국의 학교 옆은 반쪽만 물이 흐르도록 하여 반수(泮水)라 불렀다. 소를 도축하여 성균관에 독점으로 납품하는 반인(泮人)층이 반촌(泮村)을 형성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사적 제143호)은 문선왕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자 교육기관이다.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를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의 서울문묘 은행나무들은 1519년(중종14)에 대사성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었다고 전한다. 대개 은행나무는 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의 교목도 은행나무고, 심볼마크도 은행잎을 형상화한 것이다. 남자 하인들이 거처하던 대학당(戴學堂) 앞 주목이 이채롭다.
성대 불문과 김귀정 학생이 1991년 5월 당시 노태우정권의 신공안정책에 반대하는 범국민대회(3차)에 나섰다가 충무로역 진양상가 부근에서 26세로 압사했다. 6월12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을 지날 수 없다는 유림의 반대에 부딪혀 장례행렬은 정문을 피해 도서관 옆문으로 교내로 들어가 유해를 빈소에 안치할 수 있었다.

성균관5길을 따라 걸으며 명륜동 우물터와 이가원(李家源) 가옥을 둘러보고, 동궐 후원의 옥류천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의 명륜동 빨래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봄을 모은다’는 뜻의 집춘문(集春門)은 임금이 창경궁을 나와 문묘나 성균관으로 거둥할 때 이용하던 전용문이었다. 집춘문 밖에는 개인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집터에서 나라 잃은 선비의 비장한 결의를 생각하며 머리를 숙였다.

(협)마을대학종로는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진행하면서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창작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김동인·박태원·박완서·한무숙)이 종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눈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을 보고 느끼며 결국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이러한 시각이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종로 공간과 우리의 현실 종로 공간을 교차 비교해보고 등장인물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고찰하면서 참여자 각자의 삶에 시사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3년 11월 11일 토요일

사비의 눈물

부소산 낙화암 아래 고란초(皐蘭草)의 부드러운 이슬과 바위틈에서 스며 나오는 고란정(皐蘭井) 약수물을 2잔 마셨다. 이로써 6년이 젊어진 셈인가.
고란사(皐蘭寺) 법당 뒤편 벽면에는 700년 백제의 마지막날이 그려져 있다. 그림멍… 한참을 바라다보았다. 오른편 소정방 침략군은 병장기를 번뜩이며 노도와 같이 쳐들어온다. 가운데 사비도성은 화염에 휩싸여 있다. 왼편 바위 위에는 애달픈 비빈 궁녀들이 서로 부둥켜안아 울면서 치마를 뒤집어 얼굴을 가리고 차디찬 백마강에 몸을 던지고 있다. 일연은 성이 함락되던 날 궁녀들이 왕포암(王浦巖)에 올라가 물로 뛰어들어 삶을 놓았다며 이 바위를 타사암(墮死巖)이라고 적었다.

660년 7월 12일… 남부여는 평제(平)당했다. 약탈자는 당군(굴기국)이자, 벨기에 레오파드2세이고, 일본제국, 아라사, 이스라엘, 천조국이다. 눌린 이는 백제이자, 손목 잃은 콩고인이고, 조선 민초, 우크라이나, 팔레스타인, 여윈 한반도와 다름아니다.

♬반월성 넘어 사자수 보니, 바람은 나불나불 물빛은 칠백 년. 물어보자 물어봐, 삼천홍(三千紅) 간 곳 어데냐. 옛 꿈은 바람결에 살랑거리고, 고란사 저문 날엔 물새만 운다. ♪


2023년 11월 6일 월요일

2023 종묘추향대제 참관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2023 종묘추향대제를 참관하면서 △환구 △종묘 △영녕전 △사직까지 올해의 모든 대사(大祀)를 현장에서 지켜본 셈이 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종묘(1995)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을 친견하는 것은 호화롭다.
조상의 신령이 생시에 듣던 향악으로 연주하고 춤추는 보태평(保太平)과 정대업(定大業)의 문무 조화가 이채롭다. 나는 문무(文舞)보다 무무(武舞)가 좋다. 이제야 비로소 제례의 진행순서인 홀기(笏記)나 이를 읽는 창홀(唱笏)이 귀에 들어온다.

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에서 종합16기 전수교육 수강생들이 이원 황사손(중앙)과 기념촬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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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종묘추향대제 봉행
영녕전(永寧殿)은 정전에서 옮겨온 신주를 모신 별묘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22

2023 종묘추향대제가 4일 오전 10시 종묘 영녕전에서 친향례로 봉행됐다.

영녕전(永寧殿, 보물 제821호)은 세종대인 1421년에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게 되어 정전 서쪽에 새로 지었다. 정전에 비해 전체적으로 규모만 작을 뿐 내부 구조와 외부 장식 등은 거의 비슷하다. 처음 건립된 중앙 4칸은 높게, 좌우 협실 6칸은 한단계 낮게 하였다. 동월랑은 삼면이 개방된 누각 형태로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이다. 서월랑은 창고 형태로 지어졌다.

영녕(永寧)은 ‘왕가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이다.
중앙 신실에는 태조의 4대조인 △목조(1실) △익조(2실) △도조(3실) △환조(4실) 순으로 모셨다. 서익실에는 5실부터 10실까지 △정종 △문종 △단종 △추존 덕종(의경태자) △예종 △인종을, 동익실에는 11실부터 16실에 △명종 △추존 원종(정원군) △경종 △추존 진종소황제(효장세자) △추존 장조의황제(장헌세자) △의민황태자 영왕을 모시면서 왕 16위와 왕비 18위 등 총 34위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왕국과 대한제국의 법통을 이은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의 친향례(親享禮)로 거행된 이날 종묘추향대제는 사회자 역할의 집례(執禮)와 안내자 역할의 찬의(贊儀)가 먼저 절하고 봉무 위치로 나아가는 취위(就位)를 시작으로 △신관례(晨祼禮) △궤식례(饋食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망료례(望僚禮) 순으로 진행됐다.

200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는 매년 5월 첫째주 일요일과 11월 첫째주 토요일에 모셔진다.

[상]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 신관례에서 상월대 등가 악원들이 조종(祖宗)의 문덕(文德)을 기리는 보태평(保太平)을 연주하는 동안 하월대 일무원이 문무(文舞)를 추고 있다.  [하]종묘추향대제 종헌례에서 하월대 헌가 악원들이 조상의 무공(武功)을 찬양하는 정대업(定大業)을 연주하는 동안 일무원이 무무(武舞)를 추고 있다.

4일 봉행된 종묘추향대제에서 이원 황사손이 폐백과 축문을 태우는 망료례를 행하고 있다.


2023년 11월 5일 일요일

‘친일 문인과 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

오늘(11.4)은 종묘추향대제를 참관하고 바로 서울글로벌센터로 이동해 ‘친일문인 기념문학상 비판’ 세미나에 참석했다.
다수의 작가가 동인문학상을 비판하면서도, 본인이 수상자로 선정되면 “김동인의 친일 행각과 작품성은 별개”라는 식으로 대개는 상을 받아왔다는 평가가 있다.
(협)마을대학종로는 올해 종로구 주민소통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진행하면서 한 꼭지
로 김동인 장편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장소들을 답사하며 지역의 변화상을 추체험했다.
국가의 운영을 위임받은 위정자들이 앞장서 친일을 두둔하고 있는 이때… 우리의 발걸음이 혹시나 이른바 ‘고상한 도시산책자’ 정도에 머무는 건 아닌지 돌아보고 성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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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 문인과 문학, 무엇이 문제인가’ 세미나 열려
마지막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동인문학상 비판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15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을 비판하는 세미나가 4일(토) 오후 1시, 서울글로벌센터 9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친일문인기념문학상 비판과 민족문학운동의 방향’을 주제로 열린 세미나는 최강민 교수(우석대)의 사회로 4시간가량 진행됐다.

임헌영 소장(민족문제연구소)은 격려사에서 “오랜 시간 줄기차게 노력해온 끝에 중앙일보의 미당문학상(서정주)과 한국일보의 팔봉비평문학상(김기진)을 중단시켰고, 이제 조선일보의 동인문학상(김동인) 하나만 남았다”면서 “친일 전력을 상세히 살피며 현미경 역할을 다한 1기 활동이 목표를 달성한 만큼 2기 운동은 민족사 전체를 조망하는 망원경 역할로 확대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권위상 연대활동위원장(한국작가회의)은 “차라리 ‘조선일보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꾸어달라는 요청에도 조선일보는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이제는 소설가들도 독자의 눈치를 보면서 동인문학상을 꺼리는 모양새가 보인다”고 전했다.

이어서 강민숙 시인과 박이정 시인이 자작시 「우리는 붉은 혓바닥을 기억한다」 「문학의 권위와 작가의 위상을 위하여」를 직접 낭송하며 세미나의 분위기를 띄웠다.

첫 발제는 이성혁 문학평론가가 ‘김동인의 소설 「백마강」에 나타난 내선일체의 논리’에 대해 발표했다. 이 평론가는 “소설 「백마강」은 백제가 (고대) 일본의 문화개화를 도와주었고, 일본은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백제가 위험에 빠졌을 때 군사적으로 도와주었다(백강전투)는 상호호혜의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내선일체가 조선인과 일본인이 평등하게 합체되는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는 효과를 심어준다”고 진단했다.

지정토론에 나선 박수빈 시인은 △소설 「백마강」의 연재본과 단행본의 차이에 대한 분석 △소설의 1차 사료인 일본서기와 삼국사기의 비교 △이성(봉니수-소가) 간의 애정보다 여성인물(봉니수-오리메) 간의 우정을 부각하는 의외성 등을 거론했다.

두번째 발제자 노은희 소설가는 ‘한 급수 낮게, 스스로를 팔다’를 통해 “친일행적이 뚜렷한 문인을 기리는 ‘동인문학상’은 현역작가의 역량을 증명하는 주요 문학상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현실에 굴복한 ‘한 급수’ 낮은 김동인과 대비해 친일정신에 오염되지 않은 김영랑·이육사·윤동주 등 ‘1급수’의 시대정신을 계승하여 후대에 본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여국현 시인은 △친일문학에 동조하는 작가들의 이기적 행위의 속내 △김동인 수필 「감격과 긴장」의 해석문제 △발제문이 표명하는 주제의 명확성 등을 제언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한명환 문학평론가는 ‘근대 강박과 괴물 주인공들 ― 김동인 문학의 정체성’을 주제로 △김동인의 근대성 비판 △김동인 문예의 출발점 △여성주인공과 인형조종술 △강박적 근대 욕망과 파시즘적 경향 △김동인 소설이 남긴 폐단들을 정리하였다. 한 평론가는 “김동인이 펼치고자 했던 근대 문예 선구자로서의 모색은 인생의 실패에 대한 보상심리에서 시작된 문학의 근대 미에 대한 개념 착오와 그러한 근대 선구자적 강박이 빚어낸 비극의 경로”로 해석했다.

안상원 교수(이화여대)는 지정토론을 통해 △김동인이 출판 과정에서 독자들을 동원하는 방식 △환경결정론과 인형조종술의 어설픈 결합 △이광수를 강하게 의식한 김동인식 역사인물들의 유형화 실패 분석 등이 흥미로웠다고 언급했다.

맹문재 교수(안양대)가 마이크를 잡은 3부 종합토론은 앞선 발제와 토론에 대한 부가 내용으로 진행됐다.
이번 세미나를 주최한 민족문제연구소 민족문학연구회와 한국작가회의 연대활동위원회는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의 폐지를 위한 운동을 꾸준히 수행해오고 있다.

4일 오후, 서울글로벌센터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동인문학상 비판 세미나’에서 주제발표와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


2023년 10월 30일 월요일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10.29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미사 현장에 가지 못하고 유튜브 중계로 참례한다.
산산히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누구더냐. 너를 이토록 만든 자!
모든 것에 대해 중립을 Yuji하는 것은 실제로 악한 경향을 조장한다.

돌아간 이를 부르는 초혼招魂의 밤에…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주님, 연령을 구원하소서~
성 스테파노, 연령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Seoul Halloween crush: One year on

ITAEWON CROWD CRUSH: A LOOK BACK

First anniversary of South Korea's deadly Halloween crush approaches



2023년 10월 28일 토요일

♬끝내지 마. 공부해♩

국가문해교육센터에서 공모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신기한 노래자랑’ 예선은 기존에 발표된 대중가요를 개사해 문해교사 및 학습자가 직접 부른 노래 영상을 Youtube에 업로드한 뒤, 링크 주소를 전송하는 방식이었다.

우리 학교는 박군의 노래를 개사한 「공부해」로 응모했으나 본선 진출 6개 팀에 오르지 못했다. 마감 일주일 전에야 부랴부랴 노랫말을 넣고 가락을 맞추고 율동을 더하면서 우리 늦깎이들은 저마다의 다짐을 녹여 노래 불렀다. 병들고 약하고 망가지고 부서진 것들은 모두 비켜라! 이분들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하다.
♬어렵게 시작한 공부니까… 끝내지 마. 공부해♩

2023년 10월 18일 수요일

王을 낳은 後宮들

청와대 옆 궁정동에는 칠궁(七宮)이 있다. 무슨 궁궐 이름이 아니라 후궁 7人의 신주를 모셔놓은 사당이다. 수많은 후궁 중 王을 낳았기 때문에 특별히 모셔놓았다. 원래는 독립된 7개의 사당이 각기 다른 곳에 있었다. 그러다 융희 2년(1908)에 제사제도를 정비하면서 육상궁에 다른 5개의 사친묘를 합사하여 육궁(六宮)이라 하였는데, 1929년 덕안궁이 옮겨오면서 지금처럼 칠궁(七宮)이 되었다.

칠궁은 △경종의 어머니 희빈장씨의 대빈궁 △영조의 어머니 숙빈최씨의 육상궁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이씨의 선희궁 △순조의 어머니 수빈박씨의 경우궁 △영친왕의 어머니 엄귀비의 덕안궁 △영조의 후궁이자 진종의 어머니인 정빈이씨의 연호궁 △선조의 후궁이면서 원종의 어머니인 인빈김씨의 저경궁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들을 낳은 내명부 여성은 권력을 쥘 수 있었다. 하지만 순조의 모친인 수빈박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아들이 王이 되기 전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조선후기에는 후궁이 낳은 王이 늘어남에 따라 그 모친의 추존논쟁이 빈번해졌다.

최선경의 「왕을 낳은 후궁들」(2007·김영사)은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폐위된 연산군과 광해군의 모친인 폐비윤씨와 공빈김씨도 소개하고 있다. 아들의 성공을 통해서만 그 존재의미가 부여됐던 여성들의 삶을 시기 모함의 궁중암투로만 바라보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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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궁정동 칠궁에서 「2023 칠궁제」 봉행
매년 10월3째주 화요일에 2개 영역에서 동시 제향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10

「2023 칠궁제(七宮祭)」가 17일 오전 11시,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 칠궁에서 봉행되었다.

칠궁(사적 제149호)은 역대 왕이나 추존된 왕의 모후로서, 종묘에 부묘되지 못한 일곱 후궁(後宮)의 신위를 모신 곳으로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숙빈묘(淑嬪廟)에서 비롯했다. 육상묘(毓祥廟), 육상궁(毓祥宮)으로 개칭된 숙빈최씨의 사우(祠宇)에 1908년 저경궁, 대빈궁, 연호궁, 선희궁, 경우궁 등 5개의 묘당을 옮겨 육궁(六宮)이라 하였다. 1929년에는 덕안궁이 옮겨와서 지금처럼 칠궁(七宮)이라 부르게 되었다.

칠궁은 영역 좌측부터 ①저경궁(추존왕 원종의 생모 인빈김씨) ②대빈궁(경종의 생모 희빈장씨) ③선희궁(장조의 생모 영빈이씨) ④경우궁(순조의 생모 수빈박씨) ⑤덕안궁(영친왕의 생모 순헌귀비엄씨) ⑥육상궁(영조의 생모 숙빈최씨) ⑦연호궁(추존왕 진종의 생모 정빈이씨) 순으로 줄지어 있고 이에 따른 행랑과 2채의 재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날 제례는 제관들이 봉무할 자리로 나아가는 취위(就位)를 시작으로 △신관례(晨祼禮) △진조례(進俎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籩豆) △송신례(送神禮) 후 축문 불사르는 것을 확인하는 망료(望僚) 순으로 진행됐다.

칠궁은 공간 특성상 한 곳에서 제사를 모실 수 없기 때문에 저경궁 영역의 5개 궁(저경궁·대빈궁·선희궁·경우궁·덕안궁)과 육상궁 영역의 2개 궁(육상궁·연호궁)으로 나누어 동시에 제사를 거행한다. 제향일은 매년 10월 3째주 화요일이다.

「2023 칠궁제」


2023년 10월 16일 월요일

환구단 황궁우에서 2023 환구대제 봉행

용문사 가는 길 오른편의 양평 친환경농업박물관에 들렀더니 ‘우리 근·현대 농업사’ 연표에 대한제국의 시작을 떡하니 1896년으로 표기해 전시하더군. #잘좀하자

1896년 2월10일 아관파천했던 고종이 1897년 2월20일 경운궁으로 환궁했다. 고종은 을미사변 이후 미뤄왔던 왕후의 국장을 치르고, 8월17일 광무(光武) 연호를 채택했다. 10월2일 소공주동 남별궁 터에 건설을 지시했던 환구단이 열흘 만에 완공되자 10월12일 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에 나가 천신에 고하고 황제 위(位)에 올랐다.
일제가 환구단을 헐고 1914년 그 자리에 지은 경성철도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을 보면서 전준이씨 종친들은 무슨 생각을 해야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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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구 소공동 황궁우에서 「2023 환구대제」 봉행
황제만이 올릴 수 있는 천제(天祭) 재현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309

12일 오전 11시, 「2023 환구대제(圜丘大祭)」가 서울시 중구 소공동 환구단 황궁우에서 봉행되었다.
환구대제는 황제가 하늘에 제를 올리는 제천의례로 상고시대의 제천문화(祭天文化)에서 유래했다. 조선 초 중국 명나라의 압력으로 폐지된 것을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면서 재개했으나 일제에 의해 다시 폐지됐다.

126년 전인 1897년 10월12일(음력 9월17일), 고종은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환구단에 올라 황천상제(皇天上帝)께 천제(天祭)를 올리고 대한제국을 선포하며 황제로 등극했다. 이는 청, 러시아,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 세계 열강과 대등한 자주독립 국가임을 전 세계에 밝힌 역사적 사건이다.

이날 제례는 제관들이 배위에 나아가 사배하고 각각 봉무할 자리로 나아가는 취위(就位)를 시작으로 △영신례(迎神禮) △신관례(晨祼禮) △진조례(進俎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분헌례(分獻禮) △음복례(飮福禮) △철변두(撤변豆) △송신례(送神禮)후 황제가 축과 폐를 불사르는 것을 바라보는 망료(望僚) 순으로 진행됐다.
고종황제의 증손이며, 대한제국황실 5대 수장인 이원(李源) 황사손(皇嗣孫)이 황천상제·황지기(皇天上帝·皇地祇)와 태조고황제(太祖高皇帝)등 3위의 제주(祭主)를 맡아 제례를 올렸다.

환구단(圜丘壇, 사적 제157호)은 고종이 황제로서 제천의례를 행하던 곳이다. 1897년 10월, 고종이 옛 남별궁 터에 환구단을 조성했으나, 일제는 1913년 단을 철거하고 1914년 경성철도호텔(현 조선호텔 전신)을 건축했다. 현재는 3층 팔각당인 황궁우(皇穹宇)와 석고(石鼓), 삼문 정도만 남아 있다.

황제만이 제천단(환구단)에 올라 하늘의 상제께 천제(환구대제)를 올릴 수 있으며, 왕은 종묘와 사직에서 제례를 올릴 수 있다. 사직대제와 종묘대제는 광복 후 복원됐고, 환구대제는 2008년에야 복원돼 매년 (사)전주이씨대동종약원에서 주관하여 봉행하고 있다.

12일, 조선시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국가 제례인 환구대제(圜丘大祭)가 서울 중구 환구단(圜丘壇)에서 봉행되고 있다.


2023년 9월 23일 토요일

봄을 기다린 나목(裸木), 박수근

(협)마을대학종로의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 탐방지로…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 자리, 동대문아파트, 유가협 한울삶, 창신동 봉제골목과 시장길을 걸으며
▲대한제국의 수사찰 원흥사지, 풍양조씨 조만영 별서지, 안동김씨 김좌근이 중창한 청룡사, 정순왕후의 정업원·동망봉, 숭인동 채석장절개지, 동관왕묘를 둘러보면서
▲미석 박수근, 백남준, 배호, 배정자(다야마 사다코), 김광석, 신정왕후 조씨, 전태일, 임종상, 이수광, 김좌근, 정순왕후 송씨, 한수정후 관우, 박완서의 페르소나 이경의 퇴근길을 고현(考現)했다.
공간이 사라지면 기록이 사라지고, 기록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적극적으로 감춰지는 망각의 시도나 의도적인 기억의 방치에 저항한다. 암담하고도 불안한 시기일지언정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취하지도, 놓지도, 포기하지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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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93

봄을 기다린 나목(裸木), 박수근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③ 박완서 성장소설 「나목」
창신동·숭인동 골목길에서 공간을 기억하다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 탐방지는 창신동과 숭인동이다. 주제소설은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1970)이다.

10일(日) 오전 10시30분. 첫 포스트는 6호선 동묘앞역 6번출구에서 직진 70m 지점이다. 이곳은 소설에서 화가로 등장하는 옥희도의 실제 모델인 박수근의 창신동 집터이다. 박수근은 6·25전쟁 동안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모은 돈으로 창신동에 방 둘, 마루 하나가 딸린 18평 한옥을 장만했다. 그리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1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대표작들을 구상했다. 집터 벽면 계량기 옆 홈통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박수근 화백 사시던 집’이라는 세로글씨가 보인다.

9월10일 오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6호선 동묘앞역 6번출구 앞에서 일정을 체크하고 있다.

경로를 거슬러 다시 6번출구 앞 시즌빌딩으로 이동한다. 복합플라자 시즌빌딩 자리는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아이스링크인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한 곳이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여름철에는 로라장(롤러스케이트장)이나 식용얼음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변신하며 운영하다가 199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시즌빌딩 오른편은 1967년 완공되어 현존하는 서울시 아파트 중 두 번째로 오래된 동대문아파트다. 방 2개에 욕실 1개가 딸린 9평짜리 좁은 아파트지만 한때 이주일, 백일섭 등 연예인들이 거주해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지하 1층, 지상 6층에 중정(中庭)이 있는 ㅁ자형 건물배치가 특이하다.

동묘앞역 7번출구에서 8번출구 방면으로 길을 건너 백남준기념관으로 향한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살았던 3천평 규모의 대규모 저택은 오래전에 헐렸지만, 쪼개진 필지 중 하나에 주민공동체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각각 카페와 기념관을 운영하며 공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직물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부친 백낙승에 대해 백남준은 ‘친일파’와 ‘외화획득’이라는 양가감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Goethe Institut)가 비독일인 예술인사의 공로를 인정하는 괴테메달을 수상했다. 명성과는 별개로 유창한 일어에 비해 어눌한 우리말, 18세에 유학을 나가면서 6·25전쟁을 회피했다는 비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창신동 두산아파트를 지나면 지봉로5길 낙산냉면 앞이다. 1946년부터 1955년까지 가수 배호가 살던 집터다. 배호는 1942년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한국광복군 출신이다.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로 스타덤에 올랐으나 지병인 신장염이 도져 1971년 29세로 숨을 거뒀다.

9월10일 오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창신동 백남준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은 내탕금을 내 조선 전체의 사찰을 총괄하는 수사찰로 대본산원흥사(大本山元興寺)를 창건했다. 1912년에 불교의 중심이 4대문 안 각황사(현 조계사의 전신)로 옮겨가면서 1916년 원흥사 자리에 창신공립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1970년 당시 창신국민학교는 무려 122학급 1만166명의 학생수를 기록했다. 가수 배호, 이장희, 김광석과 이종찬 광복회장(23대)이 창신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창신초 교문에서 왼편 골목길을 따라 걸어 창신동장난감도서관을 지나니 바로 안양암(安養庵) 대문이 나타난다. 대웅전의 주불은 아미타불이고 덧집 형태의 관음전에는 높이 3.53m의 마애관음보살을 모셔두었다. 안양암 대문 좌측의 철제문 안쪽 공간에는 5개의 비석이 있다. 이 중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음각된 비석의 왼쪽 면에 삼화부인회 고문 裵貞子(배정자)의 이름이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알려진 배정자(다야마 사다코, 1870~1952)는 그 악질적인 친일 밀정활동으로 광복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다. 딸 현송자가 좌옹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오(중추원 부찬의)의 셋째 부인이다.

안양암에서 얕은 비탈의 창신5길을 오르면 대구에서 상경한 가객 김광석이 15년간 거주(1975~1990)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 작은 집이 나온다. 좌측 계단과 붙어 있는 이 집은 집터를 알리는 세모꼴 동판이 철거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국가유공자의 집 김수영’이란 부친의 문패로 겨우 확인할 수 있다.

창신5길을 200여m 내려오다가 창신길과 만나는 시 사거리에서 가마치통닭(창신점)까지 창신골목시장을 이동한다. 이곳 창신길 651번지 일대는 효명세자빈 신정왕후 조대비의 친정 별장이 있어서 ‘조만영 별서지’로 기억되는 곳이다. 조대비는 철종 사후 흥선군의 차남 이명복을 남편 익종(문조)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으로 봉해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하다가 흥선대원군에게 국정을 넘긴 인물이다. 지난 6월25일 진행한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1차시의 주제소설 「운현궁의 봄」의 주요인물인데 또 이렇게 연결된다.

창신2길 방면 U자로 길을 돌면 ‘한울삶’(한 울타리의 삶) 현판을 단 한옥에 다다른다. 1986년 8월12일에 발족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족들이 사무공간 겸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 간 130여 열사의 영정이 함께하고 있다. ‘전정권’에서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한울삶을 방문해 “지난 검찰의 잘못된 부분에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유가협 어머님, 아버님들은 지금도 양심수 석방과 민주유공자법 제정촉구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울삶 북쪽 50m 전방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고자 자기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의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9월10일 오전, (협)마을대학종로가 진행하는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유가협의 터전 ‘한울삶’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이들을 고현하고 있다.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해있는 창신동 647번지 일대는 노찾사 2집의 「사계」 노랫말처럼 드르륵드르륵 “미싱은 잘도 돌아”가고 샘플과 완제품을 운반하는 오토바이가 종횡한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으로 2018년 문을 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5년 만인 2023년 2월말 운영이 종료됐다. 국내 최초 봉제역사관이 문을 닫은 이유는 그동안 서울시 예산으로 위탁업체가 운영해왔는데 초기 예상과 달리 이용객 수가 적어 서울시의 민간위탁 종합성과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계약이 연장되지 못해 폐관의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봉제골목 위쪽 창신동 641번지 공영주차장 인근에는 일제와 영합해 고리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임종상의 호화저택이 있었다. 전쟁과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서울 달동네로 밀려든 가난한 사람들이 정착해 판자촌을 형성했던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탐방단은 낙산성곽길 아래 창신동 골목길을 800여m 걸어 ‘비를 가리는 집’ 비우당(庇雨堂)에 이르렀다.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은 낙산 동쪽 상산의 한 줄기인 지봉(芝峯) 아래에 외가쪽 5대조 할아버지인 하정 류관의 낡은 집을 고쳐 살며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저술했다. 단출한 비우당 삼간집 뒤로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명주를 담갔더니 자주색 물이 들었다고 전하는 ‘자주동샘’이 있다.

원각사와 명신초등학교를 경유해 낙산길을 돌아 동망산길 골목으로 내려오면 청룡사(靑龍寺)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청 없는 우화루(雨花樓)는 열일곱 군부인 송씨가 영월(寧越)로 유배 가는 열여섯 노산군과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전각이다. 하염없이 ‘비꽃(雨花)이 내리는 누각’이란 이름이 ‘편안히(寧) 넘어가(越)’지 못하고 꺾여버린 두 사람의 삶을 예고하는 것 같아 애련하다. 청룡사 옆 정업원(淨業院)은 왕가나 사대부가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사찰로 전해진다. 단종비 송씨가 깨끗하게 불도를 닦으며(淨業) 동망(東望)했던 서러움의 구기(舊基, 옛 자취가 남아 있는 빈터) 승방이다.

숭인동 좁은 계단의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와 6호선 라인의 이면도로인 지봉로12가길을 걷는다. 채석장 절개지 아래로 대한불교 법화종 법왕사(法旺寺)의 불사 등 공사가 한창이다. 영조 47년(1771)에 임금이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라는 글자를 써서 바위에 새기게 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근처 지역이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바위가 깨어져 나가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창신동에 살았던 박수근은 이 채석장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화강암 질감과도 같은 그의 유채화 덧칠 기법을 고안했는지도 모른다.

답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시간 30분이 넘어 1시 가까이 되었다. 상춘원(귀족회관) 터와 강경대기념관 터는 다음 기회에 둘러보기로 하고, 동묘앞 3번출구 황학동 벼룩시장 길로 들어섰다.

숭인동 채석장 절개지 위쪽이 동망봉 자리이다. 2015년 12월 수립된 채석장 명소화 사업계획은 2023년 4월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동관왕묘(보물 제142호)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우의 묘(사당)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임진왜란 이후인 1599년, 명나라 신종 만력제가 현액(縣額)과 비용을 보내와 조선 조정에서 1601년(선조34)에 완성했다. 동묘 정전은 정(丁)자와 일(一)자가 합쳐진 공(工)자의 앞뒤로 긴 직사각형 형태이다. 내부는 앞쪽이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쪽이 관우와 부장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라고 쓰인 현판이 2개인데, 오른쪽 것은 1908년(융희2) 북묘가 동묘에 합사되면서 가져온 현판으로 추정된다. 정전은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이 벽돌로 둘린 퓨전한 양식을 하고 있다.

숙종이 능행 후 귀궁하면서 동묘에 들른 것이 선례가 된 이래 역대 임금이 배알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한수정후(漢守亭候) 관우 운장은 400여 년 전 조선땅에 들어와 군신으로 관왕으로 관제로 올려지며 왕실과 민간의 추앙을 받았다. 지금도 중국집에 가면 관우의 그림이나 조각상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동묘 인근 서울다솜관광고등학교 자리는 노비로 강등된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낙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먹을거리를 건네주는 등 금남의 채소시장을 열어 정순왕후를 돌보았던 여인시장(女人市場)이 있던 곳이다. 여기서 종로58길 남단 청계천변은 정순왕후가 단종을 떠나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별을 한 ‘영영 건넌 다리’ 영도교(永渡橋)로 이어진다.

9월10일 오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탐방단이 숭인동 동관왕묘를 둘러본 후 펼침막을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부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에서 머리글자를 조합해 숭인동(崇仁洞)을, 가운데 글자를 합성해 창신동(昌信洞)이라는 엉뚱한 지명을 만들었다. 이름이 사라지면 공간이 사라지고, 공간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특정 사건을 만들거나 사건에 휩쓸린 공간을 기억하기 위한 걸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제소설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은 동화백화점 미군PX에서 중앙우체국을 지나 을지로입구로 해서 종로네거리 화신백화점 있던 종각 쪽을 거쳐 계동집으로 퇴근하는 동선을 보여준다. 이 코스는 소설가 구보가 이동했던 길로 지난 2차시(7월23일)에서 우리가 이미 한 차례 고현(考現)을 거쳤다. 그래서 오늘은 창신동과 숭인동 골목을 걸었다. 말라서 죽어버린 고목(枯木)이 아니라, 다만 잎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한 나목(裸木)은 새봄의 찬란함을 예고할 수 있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마지막 4차시는 10월22일, 혜화동과 명륜동을 탐방한다.


2023년 9월 20일 수요일

조선의 범들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1878~1908) 향년 30세
만주벌 호랑이 김동삼(1878~1937) 향년 58세
백두산 호랑이 홍범도(1868~1943) 향년 75세

「작은 땅의 야수들」… Beasts of a Little Land
@BNCORTEMADERA


2023년 9월 5일 화요일

간토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반천황제 투쟁

지난 금요일(9월1일) 문경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 일정에 동행했다. 주최 격인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소위 윗분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이날로 100주기를 맞은 간토학살이 논의의 중요한 축임에도 행사에서는 학살희생자를 위한 묵념이나 애국가 제창이 식순에서 제외돼 의식있는 일반 참가자들의 반감과 항의를 불러왔다. 기념관에 전시된 자료에도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표기하고 있어 일반의 오해를 사고 대중에 대한 확장성을 스스로 막아서고 있다.

유토피아(utopia)의 u가 ‘없다’인 것처럼 아나키(anarchy)의 a 역시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각각 ‘장소가 없다’, ‘지배가 없다’는 의미가 된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왜곡된 번역 ‘무정부주의’가 아닌 진정한 자유와 평등의 연대와 공동체를 지향하는 ‘무권력주의’ ‘무강권주의’로 보아야 자연스럽다.

재해로 죽었는데도 ‘학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이상하다며 사과를 거부하는 日本정부나 세월호, 이태원, 오송, 내성천 등지의 일은 ‘사고’일 뿐이라며 책임을 부정하는 韩国정부나 피차일반 도긴개긴. 우리 시대의 불령한인(不逞韓人)으로 살아야 하는 걸까. 함께하며 바른 소리를 내어주신 모든 분께 고마운 마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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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89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 열려
간토대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반천황제 투쟁 짚어


박열의사기념사업회(이사장 박인원)는 1일(금), 간토학살 100주기를 맞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을 주제로 한·일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프로그램은 오전에 문경시 마성면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 여사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일정을 시작했다.

가네코 후미코는 남편 박열과 함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여 일본 제국주의를 부정하고, 아나키즘(무강권주의) 사상을 전파하였다. 그러던 중 1923년 간토대지진 직후 체포되어 1924년 2월15일 ‘천황폭살’, 이른바 ‘대역사건’으로 기소되었다. 재판과정에서 가네코는 일제의 탄압정책을 비판하고 조선 독립운동을 옹호하였다. 1926년 사형선고를 받고 바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지만 1926년 7월23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2018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수여되었다.

헌화를 마친 참가자들은 기념공원 내 박열의사기념관을 찾아 일제 사법부의 갖은 협박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은 박열-가네코 후미코 부부의 투쟁정신을 살펴보고 박열의사생가지를 돌아봤다.

9월1일(금) 오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6명(앞줄)이 가네코 후미코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9월1일(금) 오전,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일본인 6명(앞줄)이 가네코 후미코 묘소에서 참배하고 있다.

오후 1시30분부터 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열린 학술회의는 박인권 이사장의 개회사와 이용수 경북북부보훈지청장, 이종찬 광복회장(영상), 이문창 선생의 축사를 시작으로 총 3부로 나눠 이어졌다.

우성민 학예연구사의 사회로 진행된 주제발표 순서에는 한·일 양국에서 각각 2명의 발표자가 동시대에 일어난 ‘조선인 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대역사건’ 간 관계를 조명했다.

첫 발표에 나선 성주현 교수(청암대학교)는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 언론에 비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을 주제로 관동대지진 직후의 조선인 학살과 관련 재판, 진상규명에 대한 언론보도를 살폈다. 성 교수는 ‘조선인 폭동설’ 등의 유언비어 전파와 자경단의 학살 양상을 유추할 수 있는 보도 사례도 제시하였다.

이어진 발표에서 김명섭 교수(단국대학교)는 ‘1923년 간토 조선인대학살과 박열사건’을 고찰했다. 대지진으로 인한 공포와 혼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당국의 재일한인 학살과 검속 와중에 검거된 박열-가네코 후미코는 폭탄투척계획이 누설돼 대역죄를 적용받았으나, 이를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반천황제 투쟁을 벌여나갔음을 강조했다.

세 번째 주제발표에선 가메다 히로시(일본사회문학회)가 ‘1922년 시나노가와 조선인 학살사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 일제에 대한 투쟁의 시작’에서 천황을 정점으로 한 폭력장치가 피지배민과 피지배지역을 억압했다고 지적하며, 박열-가네코 후미코의 삶은 지금도 계속되는 ‘편견과 차별’에 항거하는 생활양식으로 우뚝 서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 주제발표에 나선 구리하라 야스시(도호쿠예술공과대학)는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의 역사적 배경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상’을 통해 한국병합(1910)과 러시아출병(1918)의 경험이 홉스적 세계관을 현실화하면서 학살의 배경을 형성했다고 진단했다. 이에 대해 가네코 후미코는 아나키즘과 니힐리즘, 센티멘탈리즘을 뿌리 삼아 다시 없는 ‘지금’을 사는 것으로 대항한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1일 오후, 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에 참석한 발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이양희, 김창덕, 강정훈, 김병기, 성주현, 김명섭, 가메다 히로시, 구리하라 야스시氏

주제발표에 이어진 종합토론은 김병기 편찬위원장(대한독립투쟁총사)이 좌장을 맡아 진행하였고, 세 명의 패널이 차례로 토론에 나섰다.

먼저 강정훈 교수(경상국립대학교)가 1923년 조선인 학살 당시 유언비어가 생성·유포되어 선동·살육으로 이어지는 정황들을 확보·발굴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김창덕 이사(국민문화연구소)가 박열 의사의 폭탄 반입 성공 여부를 질문했다. 마지막으로 이양희 교수(충남대학교)는 조선인학살의 역사적 배경 간 연계와 확장을 언급하면서 재향군인회 중심의 자경단에 대한 일본군의 영향을 질의했다.

이날 학술회의에는 국민문화연구소 회원, 한터역사문화연구소 회원, 일본인 연구자 등 60여 명이 함께했다. 박열의사기념관 우성민 학예연구사는 “이번 학술회의는 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학살과 박열-가네코 후미코 대역사건에 대해 한일 양국 시민이 서로 의견을 밝히고 공유하며 향후 교류 방안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컸다.”고 전했다.

9월1일(금) 오후, 문경관광호텔 무궁화홀에서 열린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과 대역사건」 학술회의 참석자들이 단체촬영을 하고 있다.


2023년 8월 22일 화요일

런던의정서 위반

지난달 치른 성인문해 중학과정 사회(2학년 1학기) 기말시험에 교육과정에 따라 ‘국제환경협약’ 관련 문제를 출제했다. 공지한 대로 런던협약(1972년 체결)을 포함했다. 런던협약에 대한 1996년 개정의정서는 종전의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에 더하여 저준위 방사성 물질을 포함한 모든 방사성 폐기물의 해양투기 금지를 명시하여 강화했다.

결국, 일본이 다시 한번 파국의 범죄를 저지르기로 작정한 모양새다.

#日本人が地球の井戸に毒を入れた。 일본인이 지구의 우물에 독을 넣었다. The Japanese poisoned the earth's well. #Fukushima


2023년 8월 13일 일요일

제국의 비애

지난주에는 하계 창의체험 활동으로 대한제국의 흔적을 쫓아보았다. 경운궁은 월산대군의 사저로 시작하여, 환도한 선조의 시어소(정릉동행궁), 인목왕후의 유폐지(서궁), 인조의 즉위지(즉조당)를 거쳐 고종이 자주 독립국임을 대외에 선포하면서 제국의 정궁이 되었던 곳이다.

인화문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중화문을 바라보며…

단청 없는 2층집 석어당의 소박함과 다양한 동식물 문양으로 꾸며 놓은 정관헌의 이국적 풍광 사이로 야영지에 있어야 할 외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지나다녔다. 덕홍전, 정관헌, 석조전의 오얏꽃문양을 확인하면서 조동탁의 「봉황수」 시구를 떠올리는데 망국의 설움이 전이되어 절로 한숨이 나온다. 광장 건너 Westin Josun호텔의 정원 조경물쯤으로 전락한 환구단 터를 걷다 보니 목은 선생이 부벽루에 올라 돌계단에 기대어 휘파람 불던 심정을 헤아릴 것도 같다.

1946년 석조전에서 열렸던 미소공동위원회와 남북분단의 고착화를 되새겨보았다.

이러매도 중립외교, 국권침탈, 자주독립 주제어 학습에 열중했다. 제국의 법궁인 경운궁은 1904년의 대화재와 일제의 의도적인 훼철로 뭔가 많이 허전하고 텅 빈 느낌이 든다. 태풍 카눈이 몰고 온 장대비 속에서도 공부에 대한 열정을 실천한 고령의 어머님들이 참 고맙다. 이번주 창체수업엔 명동성당과 명동일대를 답사한다. 

광무황제는 1899년 환구단의 북쪽에 3층 팔각정 황궁우(皇穹宇)를 건립하였다.


2023년 8월 8일 화요일

하는 말

…말은 그럴듯하게 들렸다. …말은 크고 높았다. …말은 기름진 뱀과 같았고, 흐린 날의 산맥과 같았다. …말은…똬리 틈새로 대가리를 치켜들어 혀를 내밀었다. 혀(=말)들은 맹렬한 불꽃으로 편전의 밤을 밝혔다. …말들은…보이지 않는 산맥으로 치솟아 시야를 가로막고 출렁거렸다.

오랜만에 「남한산성」을 펼쳐 보았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를 잇는 역사소설의 첫 단락 처음 6개 문장의 주어가 ‘말’이다. 가히 「말의 노래」라 할 만하다. 작가는 ‘하는 말’을 통해 “말로써 정의를 다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나는 아무 편도 아니다. 나는 다만 고통 받는 자들의 편이다.”라고 적었다. “말들이 창궐해서 주린 성에 넘”친다.


2023년 8월 1일 화요일

한 개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독한 산책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8월1일… 구보(仇甫)의 날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나오는 레오폴드 블룸이 1904년 6월16일 하루동안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 시내를 거닐었던 블룸스 데이(Bloom’s Day)가 원형이다. 30년 뒤인 1934년 8월1일 유학파 고학력 실업자 구보는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을 배회하며 당대의 세태를 포착했다.

지난 주말… 이른바 도시 산책자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속 종로네거리와 청계천변, 황금정, 남대문통, 장곡천길, 태평통을 답사하며 관찰하고 기록하고 촬영하는 고현학(考現學)을 수행했다. 용산과 이태원, 양평, 오송, 서초, 평택을 돌아보고 탐구하고 기억하는 것도 우리 시대의 모더놀로지(modernology)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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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독한 산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② 박태원 고현학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http://www.jongno-mn.com/news/articleView.html?idxno=3333

“마치 사우론(Sauron)의 거대한 눈이 떠있는 탑처럼 보인다.” 한 참가자의 말이다. 듣고 보니 정면에서 바라보는 종로타워는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한 것처럼 고층부의 스카이라운지를 세 개의 탑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1999년 종로타워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이 영업하던 곳이다. 1931년 화신상회의 경영권을 장악한 유통왕 박흥식은 20평짜리 ‘문화주택’을 경품으로 거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였다. 1932년 바로 옆에 들어선 동아백화점을 인수합병하여 동관으로 부르고 기존 화신 건물은 서관으로 삼아 육교로 연결했다. 초창기부터 두 개의 탑이었던 셈이다.

구보는 화신백화점 승강기 앞에서 너댓 살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식당으로 올라가는 젊은 내외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발 가는 대로 전찻길 안전지대 위에서 머엉하니 서있다가 동대문행 전차에 뛰어오른다. 그러나 89년 전 구보의 행적을 쫓는 16인의 추적자는 동선을 변경해 SC제일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경성종로경찰서가 있던 곳이다. 서편의 주상복합건물 그랑서울이 건축된 자리에 제비다방이 있었다. 박태원은 제비가 조선광무소 건물 1층에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상은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들어갔다. 각혈을 다스리기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하러 갔다가 운명의 여인 금홍을 만났다. 이듬해인 1933년 이상은 백부의 유산으로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금홍을 불러올려 마담으로 앉히고 동거를 시작했다. 이상은 거리쪽 벽면을 전면 유리로 꾸미고 실내 공간은 흰색으로 칠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방’이라 부르던 골방에 구인회 멤버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 1934년 이상은 조선중앙일보에 난해시 「오감도·烏瞰圖」를 연재하면서 비슷한 시기 같은 신문에 연재된 박태원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하융’이란 이름으로 삽화를 그렸다.

녹두장군이 갇혔던 전옥서 터를 돌아 광교를 건너 인제서야 소설의 출발지에 다다른다.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앞쪽 다옥정 7번지는 부친(박용환)의 공애당약방과 숙부(박용남)의 공애의원이 좌우에 자리한 2층 구조의 한옥상가로 작가 박태원의 실제 집이자 소설 속 산책자 구보의 집이다. 1934년 무렵에는 박태원을 비롯해 어머니와 가업을 이은 형(박진원)·형수, 동생(박문원), 안잠자기, 약방아이 등 적어도 10명가량이 기거했다. 복개와 도로확장 이전에는 남쪽천변의 약방 사환 창수와 북쪽천변의 이발소 아이 재봉이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눌 정도로 천폭이 좁았다.

어려서부터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은 ‘몹쓸 체력’의 박태원은 어깨 너머로 습득한 의학지식을 발휘해 급우·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당시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구보(久保) 교수의 이름을 따와 박태원을 호명하는 구보(仇甫)로 삼았다.

7월23일(일) 오전, 세찬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청계천 광교 남쪽 옛 다옥정 7번지 앞에서 구보씨의 흔적을 쫓고 있다.

1934년 8월1일 수요일 오정, “일즉어니 들어오너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뒤로 하고 다옥정 집을 나서는 스물여섯의 미혼 룸펜(Lumpen)1) 구보의 차림새를 상상해 본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갓빠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썼다. 노타이셔츠와 신사바지에 구두를 신고 단장과 대학노트를 들었다. 시계를 차거나 모자를 쓰거나 우산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은 종로네거리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구보가 동대문에서 한강행 전차를 갈아타고 지나갔을 남대문 1정목·2정목을 걷는다. 노구치 시타가후가 건축한 반도호텔(1938·롯데호텔), 고리대출로 배를 불린 민간총독부 조선식산은행(1918·롯데백화점 본점), 조지야백화점(롯데영플라자) 등을 거쳐 조선은행(1912·화폐박물관) 앞까지 빗길을 주유했다.
한국은행 앞 교차로는 당시 조선은행, 경성우편국(1915·서울중앙우체국), 미쓰코시 경성지점(1930·신세계백화점)이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센긴마에 히로바(鮮銀前 廣場)’로 불렸다. 여기서부터 황금정에 이르는 좌우 지역은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제국주의 경제침략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광복 후 이충무공의 동상은 광화문이 아니라 이곳에 세웠어야 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머릿돌 글씨 ‘定礎(정초)’를 확인하고 11시 방향으로 경성치의전 터, 경성부립도서관 터를 지나며 장곡천길(소공로)을 따라 오른다. 구보가 조선일보 사회부에서 근무하는 친구 김기림에게 전화하려고 들어간 양복점(본전양복점)이 있었음 직한 곳 인근에 제이제이안토니(JJ.ANTONY) 소공점이 보인다.
세종대로18길 건너 북쪽에는 구보가 꼽추화가 구본웅을 만나려고 들른 골동점(우고당) 터다. 구본웅의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은 구본웅의 친구 이상과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더플라자호텔 뒤편길을 돌아나오면 스타벅스(소공동점) 맞은편에 낙랑파라 자리가 있다. 1931년 도쿄 유학파 이순석 화가가 고대국가 ‘낙랑’에 응접실을 뜻하는 ‘파라’(parlour의 일본식 표기)를 합성해 카페 이름을 지었다. 소설에서 구보는 세 번에 걸쳐 낙랑파라에 출입한다.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틈에 끼어 가배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율리시즈」를 논하는 김기림의 탁설을 듣는다.


우리는 지하도를 이용하여 건너편 환구단 터에 올랐다. 일제가 일한병합 후 환구단을 허물고 철도국 직영의 경성철도호텔(1914)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환구단 정문과 3개의 석고, 황궁우와 황궁우 정문·협문만 남아 있다. 호텔은 이승만 때 조선호텔로 이름이 바뀌고, 2021년에는 영문 철자도 CHOSUN에서 JOSUN으로 변경되었다.
환구단 터를 내려와 89년 전 구보가 그랬던 것처럼 경성부청(서울도서관) 앞에 서서 태평통 건너 대한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500년 왕조의 찬란한 위엄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2차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참가자들이 환구단 황궁우 앞에서 고현촬영을 하고 있다.

경성토박이 유학파 엘리트 구보는 1934년 8월1일 낮 12시부터 8월2일 새벽 2시까지 14시간 동안 도보 9.6㎞, 전차 5.7㎞를 이동하며 행복과 기쁨을 찾아 경성의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소설 말미에서 구보는 생활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결혼도 할 것을 다짐한다. 실제로 박태원은 연재를 마친 직후 보통학교 훈도 김정애와 다옥정 7번지 본가에서 혼례(1934.10.27)를 치르고, 이후 수준급 모더니즘 작품도 창작했다. 우리는 따라가는 이의 시선으로 동선을 변형하여 2시간여 동안 3㎞를 거닐며 우중 모데르놀로지2)를 수행했다.

1930년대 경성을 이해하기 위해 1936년작 「천변풍경」(박태원), 「날개」(이상)를 읽어보고 그 소설 속 배경을 따라 걸어도 좋을 것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는 9월10일, 창신동에서 박수근과 백남준을 고현(考現)한다.

1)룸펜(Lumpen) :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많이 배웠음에도 그 지식을 쓸 데가 없는 슬픈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던 말이다.

2)모데르놀로지(modernology, 고현학·考現學) : 현대의 풍속과 세태를 조사·기록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이 방법론을 문학 쪽에 적용한 것이 세태소설이다.

2023년 7월 2일 일요일

흥선대원군의 권토중래기 「운현궁의 봄」

흥선대원군의 권토중래기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① 김동인 장편 「운현궁의 봄」


일요일 오전 3호선 안국역은 한산하다. 3번 출구로 나가 현대사옥 내 관천대를 뒤로 하고 창덕궁 매표소에 이른다. (협)마을대학종로가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개시한다. 첫 탐방 대상은 김동인의 장편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장소들이다.

2020년 복원된 돈화문 월대 위에 서서 좌우를 둘러본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제국은 창덕궁과 경복궁을 잇는 길을 대로로 확장했다. 순종 사후에는 영친왕을 압박해 1932년 종묘관통선을 개통하여 종묘를 창덕궁·창경궁에서 떼어냈다. 1966년 이 신작로에는 ‘율곡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율곡로 종묘 구간은 2009년 지하화 공사에 들어가 2022년 끊어진 지 90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남쪽 도심을 바라본다. 종로까지 뻗어 주작대로 역할을 하던 돈화문 앞 王의 길은 일제가 월대를 덮고 남산 왜성대에 위치한 조선총독부까지 직선 도로화하여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당하관이 드나들던 창덕궁 금호문(金虎門) 앞은 1926년 4월 순종 승하 때 송학선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척살하려 뛰어든 곳이다. 「운현궁의 봄」 4장에서 흥선군이 대제학 김병학의 사인남여를 빌어 타고 승후관 조성하를 배행하여 내전으로 조 대비를 안견하러 출입한 문이 금호문이다.

금천교를 건너 마주하는 진선문(進善門) 우측에는 대한제국의 궁내부를 형식적으로 계승한 이왕직(李王職) 청사가 있었다. 인정문 용마루에 3개, 인정전 용마루에 5개가 새겨진 오얏꽃 문양을 통해 조선왕조를 일개 가문의 정권으로 낮추려는 일제의 사특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소설 25장에는 갑자년(1864) 고종의 즉위식과 함께 국태공의 섭정 취임식 장면이 나온다. 살아있는 대원군 직위에 오른 흥선은 인정전 월대에 올라 발아래 늘어선 대소백관을 향해 “전 책임을 내가 지고 전 의무를 내가 갖겠다”고 선언하며 사직의 만세태평을 예견했다. 그러나 채 반세기가 되지 못한 1910년 9월에 손자인 순종 융희제는 인정전에서 메이지 덴노가 보낸 창덕궁이왕(昌德宮李王) 책봉 칙사를 맞닥뜨리게 된다.

선을 즐기고(낙선재·樂善齋) 복을 아끼고(석복헌·錫福軒) 건강하게 장수한다(수강재·壽康齋)는 헌종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희정당(효명세자), 중희당(헌종), 대조전(철종), 흥복헌(순종)… 소설에 등장하는 군왕들이 승하한 전각과 터를 둘러본다. 임종에 처한 지존이 평상시 입던 웃옷을 든 내시가 지붕에 올라 상위복(上位復)을 3번 외쳤을 것이다. “윗사람(임금)이여, 돌아오소서”라는 뜻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운현궁 노안당을 탐방하고 있다.

원점 회귀. 돈화문을 나와 운현궁으로 향한다. 흥선대원군이 궁궐을 출입할 때 이용한 공근문(恭勤門)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운현궁은 흥선군의 낙척과 섭정, 실각과 납치, 유폐와 운명을 모두 지켜본 역사적인 곳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한창때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소설 1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쓰러져가는 아래채, 거미줄 천지의 추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종 즉위 이후 잠저(潛邸)인 ‘경운동 흥선댁’은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대원위 대감이 거처한 사랑채 노안당(老安堂)은 처마 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달고 주춧돌 사이를 벽돌로 막아 놓은 독특한 누마루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현판 왼쪽에 ‘서위 석파선생 노완’(書爲 石坡先生 老阮: 늙은 완당이 석파 선생에게 써준다)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노락당(老樂堂)은 민치록의 외동딸 민자영이 삼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리고 침소로 사용한 이후 가족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소설 6장에서 명성황후는 삼청동에서 오막살이하는 ‘얽으망태 소녀’로 등장한다. 친정이 단출한 것이 마음에 들었던 흥선대원군이 며느리로 낙점했지만, 훗날 정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1866년(고종3) 병인년 3월에 15살 이재황은 노락당에서 16살 민자영과 친영례(親迎禮)를 거행했다. 병인년 정월에 병인박해가 시작됐고, 그 반동으로 11월에 병인양요가 발생했다. 같은 해 7월에는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號가 소각됐다. 노락당 동편으로 양관(洋館) 함석지붕이 보인다.<

이로당(二老堂)은 안채 용도로 신축한 건물이다. 바깥 남자들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중정(中庭)이 있는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현판의 두 이(二)자가 위쪽으로 올라가 있는데 대원군과 부대부인을 높이는 의미라 한다. 석조 수조인 운하연지(雲下硯池), 해시계를 올려놓았던 일영대(日影臺)를 볼 수 있다. 동편 마당에는 빙고 앞쪽에 난을 올려놓았던 무승대(茂承臺), 고종이 어릴 때 오르내리며 놀던 정2품 대부송(大夫松)을 기리는 경송비(慶松碑)가 서 있다.

「운현궁의 봄」은 경신년(1860)부터 신유년(1861), 임술년(1862), 계해년(1863), 갑자년(1864)에 이르기까지 5년에 걸친 상갓집 개 흥선군 이하응의 권토중래를 다뤘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 (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25장).”

소설의 이해를 더하기 위해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별서, 남양주 문안산 기슭의 국태공원소(國太公園所)를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2차시는 7월23일, 1930년대 경성부 구보氏의 하루 여정을 따라간다.

2023년 6월 11일 일요일

그대 너무 서러워마요

어제 이 시간 명동성당 꼬스트홀… 홀로아리랑(35플러스 합창단), 그날이 오면(한선희), 늙은 군인의 노래(박준), 한 입의 아우성으로(꽃다지),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 함께가자 우리 이길을, 광야에서를 따라 불렀다. 이 뜨거운 노래들을 이렇게나 한꺼번에 불러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장을 지낸 기춘氏는 1985년에 광주학살 비디오테이프를 서울시내에서는 처음으로 이곳 문화관(현 꼬스트홀)에서 상영하여 신자·시민들의 폭발적인 관심과 참여를 불러왔다고 회상했다. 가민연 옛친구 순이누나의 추모편지에 울컥, 눈물을 훔쳤다.

미친 세상, 모진 바람 안고 그대는 다시 못 올 곳으로 푸른 계절에 떠났지. 조찬배 아버님의 바람대로 그의 쇠붙이, 그의 학생증, 그의 사진첩을 온전히 회수해 소장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상식 신부(예수성심전교수도회)의 말처럼 지금 잠들어있는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다시 깨달음의 불을 지를 수 있기를… 야만으로 뒷걸음치는 안녕하지 못한 시대. 부끄럽지 않도록 추하지 않게 잘 늙어가자… 

가톨릭평화공동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한 통일열사 故조성만(요셉) 35주기 추모공연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콘서트」

1988년 5월15일, 통일열사 故조성만(요셉) 형제가 투신 산화한 명동성당 교육관은 기억하고 있다. 그대 너무 서러워 마요.

손잡고 가보자 같이 가보자.


2023년 6월 5일 월요일

생활밀착형 문화 콘텐츠로 나주식 통일운동을

6월2일(금) KTX 타고 처음 가본 남도 羅州. 나주의샛골나이, 나주소반, 율정점, 영산포 황포돛배, 나주연가(차효린唱), 어디 숨었냐 사십마넌(정윤천詩), 사철가(장진규唱)… 휘영청 달밤에 듣는 판소리 적벽가, 고향역 주인장의 찰진 리액션, 아침 영산강변의 진흙밟기, 보리순 홍어애탕, 생경한 어휘와 풍경, 낯설지만 낯익은 만남…

고려시대 개경과 서경 이외 지역에서 유일하게 팔관회가 개최된 곳, 전봉준의 동학군이 유일하게 집강소를 설치하지 못한 곳이 바로 나주였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됐다. 북콘서트에서 구입한 「명동 다다이스트」(지승룡著)는 찬찬히 읽으며 경험과 기억과의 화해를 시도해 볼 테다.

지역을 살피고 다듬고 엮어내는 여정이 쉽지 않다. 발상과 출발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이번 남도행에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고 귀한 인연에 감사한 마음 전한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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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6.05 18:06
http://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9261

나주학교, 나주고성포럼 개최
천년고도 나주, 인문학으로 디자인하라!


나주학교(교장 홍양현)는 2일(금) 오후 4시, 복합문화공간 나주정미소에서 ‘천년도시 나주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를 주제로 나주고성포럼을 개최했다. 나주 지역의 문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 현 상태의 이상적 상태로의 전환을 추구하기 위한 포럼이다.

첫 발제에 나선 정연진 상임대표(AOK한국)는 10년 전 나주향교에서 본인의 국내 첫 지역강연이 이루어진 인연을 돌아보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정 대표는 “후삼국이라는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통합의 정신과 새시대에 대한 비전을 이미 천년 전에 나주가 보여주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천년고도 나주가 지닌 역사·문화적 자산을 초석으로 실행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며 통일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나주로 탈바꿈시켜 보자”고 힘주어 말했다.

2일 오후, 나주고성포럼에서 AOK(액션원코리아) 한국 정연진 상임대표가 발제를 통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운동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이어진 발제는 80년대 초반 독일로 건너가 40년간 활동하다가 최근 나주로 들어온 「검은비(碑)」의 정영창 작가가 맡았다. 정 작가는 라인강이 관통하며 흐르는 뒤셀도르프와 영산강이 가로지르는 나주를 교차 비교하며 “나주가 뒤셀도르프처럼 강이라는 요소의 장점을 십분 살려 과거의 문화유산을 지혜롭게 담아내 고급스러운 현대도시로 변화를 추구하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세번째 발제자인 신정일 이사장(우리땅걷기)은 “2004년 봄, 조선시대 9대로 중 나주를 지나는 제7호 간선도로인 삼남대로를 걸었다”고 소개했다. 신 이사장은 고려 태조와 장화왕후의 만남, 정도전 유배, 황진이와 임제의 흔적, 정약전·정약용 형제의 이별, 나주목사 민종렬과 전봉준, 1929년 호남선 통학열차의 조선학생들 등 나주 관련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벌어진 장소를 촘촘히 엮어내는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일 과원길 나주정미소에서 진행된 나주고성포럼 발제자들. ②정영창 작가 ③신정일 문화사학자 ④지승룡 소장 ⑤이상준 교수

지승룡 소장(도시문화연구소)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지 소장은 “요즘 가장 각광을 받는 개신교단은 구세군이다”라고 운을 떼며 성리학 이념을 현실정치에 구현하려 애쓴 정도전의 제민철학을 소환했다. “1천년 역사도시라고 자부한다면 자기 것을 공유하고 나누는 정신이 필요하다. 아시아의 지중해 중심도시가 돼야겠다는 신념으로 구세군처럼 온정을 나누고 정도전의 복지도시를 지향한다면 나주는 세계에 내놓을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내다봤다.

마지막 발제에 나선 이상준 교수(동신대)는 문순태 대하소설 「타오르는 강」에 나타난 공간현황과 활용방안을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188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나주 영산강 일대의 지리, 방언, 신분제, 토지수탈과 그에 대한 저항 등 근대 사회·문화적 콘텐츠가 녹아난 스토리를 다양하게 변용, 확장하는 연구에 지역 사람들이 더 디테일하게 다가가야 한다”며 역할론을 부각했다.

나주고성포럼이 열린 나주정미소 천장엔 청사초롱이 걸리고, 벽면엔 박정자 단청장(국가무형문화재 제48호)의 불화가 전시돼 고풍스런 풍치를 더했다.

20여 명이 함께한 나주고성포럼은 천년도시 나주의 새로운 천년도약을 바라는 참가자들의 단체촬영으로 마무리됐다. 참가자들은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함께 저녁을 나누며, 나주를 브랜딩하고 지방 지역부터 새롭게 시작해 문화를 공유, 확산하는 일에 이바지하자는 결의를 다졌다.

한편, 이날 포럼이 열린 나주정미소는 1920년대에 나주시 성북동에 호남권 최초로 세워진 정미소로, 미곡 수탈의 아픔과 나주학생항일운동의 주역들이 모여 회의를 했던 항일의 역사를 모두 지니고 있다. 1980년대 이후 화재로 인해 버려졌던 정미소(精米所) 건물은 나주읍성권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100년이 넘은 붉은 벽돌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구조물을 보강해 2022년 ‘정과 맛을 간직한 웃음’이라는 의미의 새로운 정미소(情味笑)로 재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