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지우학 지우학 하기에 공자님의 나이관 중 하나인 志于學(志學·15세)으로 여겼더니만, 지우학은 넷플릭스 드라마 「지금 우리 학교는」이라는 K-좀비물을 줄여 부르는 이름이었다. 아무튼 메가 히트작 「오징어 게임」의 초반 기세를 넘어선다는 바이럴에 요약본으로 몰아봤는데… 1화 도입 부분이 의미심장했다.
빨간 테두리의 LED십자가가 클로즈업되고, 이어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공중 카메라 앵글이 대성헬스·목욕탕 건물 옥상에서 벌어지는 雨中 집단 괴롭힘(학교폭력) 장면을 비춘다. 그런데 이 몹쓸 학폭 상황 위에는 십자가(교회)가 곧추서있고, 옆에는 卍(사찰)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희망과 구원이 돼야 할 종교가 부조리를 외면하고 있다. 옥상 아래 김밥천국(↔불신지옥), 사회적 출세를 의미하는 大成까지 시작부터 강한 메시지를 주는 아이러니 미장센이다.
빌런 이병찬은 효산시 효산고등학교의 실력 있는 유학파 생명과학교사다. 아들 이진수가 당한 끔찍한 학폭 경위를 학폭위에 고발하지만, 은폐하기에 급급한 교장에 막혀 사건은 가해학생의 반성문 몇 장으로 종결된다.
학폭으로 몸과 마음이 망가진 아들을 보다 못한 이병찬은 자신의 과학지식을 이용해 ‘너무 두려운 나머지 이성을 잃고 고양이에게 달려든 쥐’의 호르몬을 추출하고 정제해 좀비 바이러스를 제조한 후 이를 아들 이진수에게 주입해 좀비로 만든다. 이병찬의 섬뜩한 대사 “인간으로 죽느니 괴물이 돼서라도 살아남으라고.”에서 国民の力 김재원이 내뱉은 말이 떠올랐다. “(대선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괴물이면 어떻고 악마면 어떻냐.” - https://segye.com/view/20210311514700
이병찬은 자신이 창조한 좀비 바이러스를 ‘요나스 바이러스’라 명명한다. 이는 「책임의 원칙」으로 유명한 생태주의 철학자이자 책임윤리의 창시자인 한스 요나스(Hans Jonas)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요나스는 이른바 공포의 발견술(Heuristik der Furcht)을 통해 과학기술이 초래할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미래 상황을 두려워하면서, 현재세대가 윤리적 공백을 채우고 미래세대 및 인간 외의 생명체와 자연까지도 생각하는 책임감(일방적·비호혜적·사전예방적·예견적·총체적·연속적·영속적) 있는 대안을 고려하자고 설파했다.
극 중 이병찬은 요나스의 주장을 오해석하여 자신과 아들·아내에게 불행을 야기한 폭력적인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치기 위해 요나스의 이름과 주장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惡의 인식이 善의 인식보다 무한하게 쉽기 때문에, 무엇을 보호하고 책임져야 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윤리학이 희망보다 공포를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요나스의 통찰은 타당한 것이 되겠다.
사회 전반의 구조적 모순에 개인의 뒤틀린 일탈과 폭주가 불을 붙여 터져버린 극 중 효산고의 비극은 2014년 현실세계 단원고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기성세대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재난으로 피해(살육-침몰)는 커져만 가는데, 수뇌부(교장-선장)는 은폐엄폐에 제 살길만 찾고 구조대(계엄군-해경)는 더디거나 심지어 눈앞의 아이들을 구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얘들아,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 죽지 마. 그리고 그 누구도 죽게 만들지 마…누군가를 죽음으로 내몰면,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게 돼.”라는 2학년 5반 담임 박선화의 당부는 “걱정하지 마. 너희들부터 나가고 선생님은 나중에 나갈게.”라며 희생한 단원고 선생님들의 殺身成仁을 떠오르게 만든다.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하늘나라 여행 중인 선생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재난에 맞선 미성년 아이들의 성장기가 애처롭고 대견한 사회비판 드라마다.
「지우학」의 세계관에서는 교회(╋)도 절(卍)도 김밥天國(θ)도 大成(사회적 성공)도 구원이 되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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