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2월 21일 월요일

그의 언행 일체를 일절 신뢰하지 않습니다

1980년대 겨울, 도시 변두리 작은 동네(원미동 23통 5반)에 막 이사온 한 사내가 청과물 가게를 낸다. 대번에 위기를 감지한 형제슈퍼 김 반장은 경쟁관계인 경호네 김포슈퍼와 담합하여 결국 싱싱청과물을 폐업으로 내몬다. 문을 열었던 한 달 동안 치밀하지 못한 싱싱청과물 주인은 ‘부식 일절 가게 안에 있음’이란 종이쪽지를 붙여 놓고 파, 콩나물, 두부, 상추, 양파 따위 부식 ‘일절’이 아닌 ‘일체’를 팔았다. -양귀자 연작소설 「원미동 사람들」

七(일곱 칠)과 刀(칼 도)가 합쳐진 형성자 切은(는) 쓰임에 따라 ‘끊을 절’ 또는 ‘모두 체’로 읽는다. 일절(一切)은 (부정의 뜻으로) 아주, 도무지, 전혀, 절대로, never의 뜻으로 쓴다. ‘사생활에 일절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부당한 청탁은 일절 통하지 않는다’와 같이 사용한다. 반면, 일체(一切)는 모든 것, 전부, all의 의미로 쓴다. ‘재산 일체를 사회에 환원했다’ ‘필요한 스펙은 일체 갖추었다’와 같이 사용한다.

지난 주말 영월 북면에 갔더니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있기 전 번성하던 시절의 마차리(磨磋里) 일대 탄광촌 모습을 「탄광촌생활관」으로 복원해 놓았더라. 생활관 아래에 재현한 「마차집 식당」 간판에 쓰인 “주류일체 안주일절” 표기가 정겹게 느껴졌다.

5시 44분 영월발 청량리행 무궁화호 안에서 인터넷을 달군 윤본부장의 객석 위 구둣발 사진을 보았다. 오늘 후보 4인의 경제 분야 TV토론을 관전한 바 일절(一切)과 일체(一切)의 확실한 용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윤본부장의 언행 일체를 일절 신뢰하지 않는다”

강원도 영월군 북면 밤재로 351 「강원도탄광문화촌」 마차집, 마차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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