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9일 금요일

《나의 아내와 시어머니》 + 《오리와 토끼》

서사갈래에서 서술자는 작가를 대신하여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허구적 존재다. 서술자는 작품 안에 등장하거나(1인칭) 작품 밖에 존재하면서(3인칭) 특정 관점에 따라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이야기하는 역할을 한다. 이때 작품 속의 사건을 전달하는 서술자의 위치와 관점을 ‘시점’이라 한다.

성인문해 교과서 중학과정 국어 2단계 1단원의 두번째 중단원은 주요섭 작가의 《사랑손님과 어머니》를 공부한다. 단원 도입부에 심리학에서 고전과 같은 지위를 갖고 있는 착시 이미지 2개가 소개돼 있다.

보링의 인물(Boring Figure), 제스트로 환상(Jastrow illusion)

10쪽 첫번째 그림은 영국 만화가 윌리엄 엘리 힐의 《나의 아내와 시어머니》(1915)이다. 옆에서 보면 늙은 여성으로 뒤에서 보면 젋은 여성으로 보이는데, 늙은 여성의 큰 콧등은 젊은 여성의 갸름한 볼과 턱선이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플린더스 대학교의 두 심리학자가 18~68세의 393명에게 이 그림을 0.5초 동안 보여준 뒤 그림 속 인물의 나이와 성별을 물어보는 실험을 했는데, 보는 사람의 나이에 따라 답변이 갈리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젊은층은 젊은 여자를, 노인층은 노파를 먼저 발견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4월7일 보궐선거일에도 수업을 했다. 학기 초 진단평가와 병행하면서 학습자 분들께 뭐가 보이는지 질문을 드렸다. 투표를 마치고 국어수업에 참석한 일곱 분(60대 후반~80대 초반) 중 세 분에게는 젊은 여자, 네 분에게는 40~50대 중년 여성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ㅎㅎ이거 재밌다. 연구 결과로 보면 일곱 분 모두 노파가 보여야 하는데… 표본이 부족하긴 하지만, 적어도 이분들에겐 “자신의 연령대에 편향된 잠재의식이 이미지의 초기 해석에 미치는 영향 어쩌고저쩌고” 하는 연구팀의 또래편향 가설은 헛소리가 돼버린다.

비트겐슈타인이나 곰브리치 도형이라고 부른다는 두 번째 그림은 왼쪽 방향으로 보면 오리가 되고 오른쪽 방향으로 보면 토끼가 된다. 어머니들의 답변은 여섯 분이 오리(‘새’ 포함), 한 분만 토끼였다.

수업 PPT에 삽입하려고 핀터레스트를 뒤적이다가 오리와 토끼 실사 이미지를 발견했다. 2017년 4월7일(오묘하게도 날짜가 같다) 쿠리오시타스닷컴이라는 곳에서 내건 30장의 사진 중 하나다. 두 귀와 눈을 둘러싼 부위만 갈색인 토끼가 청바지 위에 엎드려 있는 모습을 90도 돌려놓으니 감쪽같이 오리로 보인다.

30 Photos that will Make you Look Twice (kuriositas.com)

하나의 현상을 편향적으로 받아들이는 문제를 철학자 노우드 러셀 핸슨은 ‘관찰의 이론의존성’으로 정의하고 사회일반과 과학 영역으로 확대 적용했다.

한 가지 진실, 두 가지 견해! 같은 시국, 같은 사회현상인데… 투표를 한 과반수의 유권자가 国民の力을 선택했다.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했던가. 참으로 대단한 집단적 인지착각(Cognitive illusions)이다. 우리가 서사갈래를 감상할 때 작가가 서술자를 설정한 의도와 효과 등을 파악해야 하는 것처럼, 정치 영역을 대할 때도 See와 Look, Watch를 구분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이 그림들엔 정답이 없지만, 선택적·차별적 정의는 정답이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4.7보궐선거가 끝난 지 이틀이 지났는데… 아직도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다. 길어질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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