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8일 일요일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유서(遺書)가 된 메모

국립4·19민주묘지에 다녀왔다. 1묘역 D-185에는 당시 한성여중(성북구 삼선동2가) 2학년이었던 진영숙(陳英淑, 1946.5.15~1960.4.19) 학생이 영면하고 있다. 마산에서 김주열의 시신이 떠올랐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공산당 나쁘다더니 공산당 같은 짓을 한다(동아일보 1975년 6월2일).”며 목놓아 울었다고 한다.

진영숙 학생은 19일 오후 4시 하교한 후 시위에 나가기에 앞서 홀어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집으로 갔다. 그러나 동대문시장에 옷장사하러 나간 어머니(김명옥)는 집에 없었다. 진영숙은 어머니께 보일 메모를 썼다. 그리곤 하얗게 풀이 빳빳한 새 교복깃으로 바꿔 달고 집을 나섰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어머님 뵙지 못하고 떠납니다. 끝까지 부정 선거 데모로 싸우겠습니다. 지금 저와 저의 모든 친구들 그리고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은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하여 피를 흘립니다.

어머니, 데모에 나간 저를 책하지 마시옵소서. 우리들이 아니면 누구가 데모를 하겠습니까. 저는 아직 철없는 줄 잘 압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어떻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의 모든 학우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나간 것입니다. 저는 생명을 바쳐 싸우려고 합니다.

데모하다가 죽어도 원이 없습니다. 어머닌, 저를 사랑하시는 마음으로 무척 비통하게 생각하시겠지만, 온 겨레의 앞날과 민족의 해방을 위하여 기뻐해 주세요. 이미 저의 마음은 거리로 나가 있습니다. 너무도 조급하여 손이 잘 놀려지지 않는군요.

부디 몸 건강히 계세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의 목숨은 이미 바치려고 결심하였습니다. 시간이 없는 관계상 이만 그치겠습니다.”

민주주의 수호라는 대의를 위해 불가불 시위에 나서면서도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씀씀이… 문득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 연상된다.


독재 막아내며 산화한 15살 소녀 진영숙의 묘비 내용 ― 1946년 5월15일 경기 수원 출생(여). 1960년 4월19일 미아리 고개에서 총상, 같은날 수도의대병원에서 사망. 모 김명옥

진영숙은 저녁 7시경 성북서앞 데모대에 합류하여 버스를 타고 이동中 차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어 구호를 외치다 북선파출소에서 날아온 총탄에 맞았고, 8시경 미아리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단장(斷腸)의 미아리 고개… 열다섯 꽃다운 소녀의 비장한 메모는 그대로 유서가 되었다. 생때같은 딸아이를 잃은 어머니의 심사는 또 어떠했을까. 차고 슬픈 것이 어린거려 섧게 울은 한평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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