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8일 일요일

비운의 황실 묘역

2015년 한포(한가람 역사문화연구소 포럼) 4월 답사지는 남양주 금곡 땅…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의친왕묘(義親王墓).
의친왕 이강(1877∼1955)은 귀인 장씨의 소생으로 고종의 5남이다. 1877년(고종14)에 태어나 1891년(고종28)에 의화군(義化君)에 봉해졌다. 1899년(광무3) 미국에 유학했고, 이듬해인 1900년(광무4)에 의친왕(義親王)으로 진봉되었다. 1906년 귀국 후 대한제국 육군 부장, 대한적십자사 4대 총재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비밀리에 독립운동을 지원하는 등 국권회복에 힘썼다. 1919년 11월 대동단 단원들과 함께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을 시도하였으나 단동역(丹東驛)에서 일경에 체포되어 경성으로 송환되었고, 1930년에는 작위까지 박탈당했으나, 1940년 일제의 창씨개명령도 거부하였다. 광복 후 평민 신분으로 살았으며, 6·25전쟁 때에는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였다. 1955년에 안국동 사동궁에서 79세로 세상을 떠난 후에는 양주 화양리(현 성동구 화양동)를 거쳐 서삼릉 권역으로 묘소가 옮겨졌다.
1964년 궁정동 칠궁에서 85세로 작고한 의친왕비 김수덕의 묘가 홍유릉 권역 밖(현 외재실 근처)에 조성되었는데, 1996년에 서삼릉 권역의 의친왕묘와 홍유릉 권역 밖의 의친왕비묘를 이장하여 덕혜옹주묘 동쪽 땅에 합장하였다.


봉분 앞쪽에 상석·향로석이 있고, 오르내리는 다람쥐(세호)가 부조된 망주석 사이에 장명등이 세워져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비석 조차 없는 허술한 모양새를 하고 있다.
황족 중 가장 항일정신이 투철하였던 의친왕의 생애를 돌아다 볼 때, 전주이씨종약원 측에 보다 꼼꼼하고 실질적인 일처리를 요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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