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30일 일요일

30돌 맞은 빈민사목위원회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설립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들어봐, 나의 ‘몫’소리”란 타이틀로 시작한 이원호 연구원의 발표는 인상적이었다. 지난 50년간 쌀값이 50배 오르는 동안 땅값은 무려 3000배나 인상돼 온 현실을 소개하면서 건물은 철거해도 삶은 철거할 수 없다는 슬로건과 인권으로서의 주거권을 강조하였다. 최은영 연구위원 역시 20년마다 개최되는 해비타트(Habitat)를 소개하며 최근 국제사회의 연구추세는 홈리스(homeless)라는 것, ‘적절한’ 주거인지와 ‘살만한’ 주거인지가 주거권의 쌍두마차임을 천명하였다.
두 발제자의 주장은 명확하다. 그나마 지난 민주정부 10년간 잘 만들어 법제화한 ‘최저주거기준’의 실효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확한 실태파악 후 현실성있는 실행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월세상한제 역시 보다 세심히 들여다봐야 하고, 주거를 둘러싼 세대간 갈등양상에도 주목해야 하며, 임대료 부담 문제와 예측을 벗어나는 주거복지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인정해야 한다.


발제 이후엔 유경촌(디모테오) 주교님 집전의 감사미사가 봉헌되었다. 현실에 비추어볼 때 역할은 거대하지만, 수효는 작은 선교본당은 교구 내에서 일종의 ‘섬’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는 강론 말씀이 기억난다. 선교본당 5개소, 평화의집 7개소를 전담신부 7명이 커버하고 있는 빈민사목 분과는 궁극적인 의미에서 사라져야 할 분과가 돼야 한다는 언급도 가슴에 와 닿는다.


기념미사 후에는 하와이문화교류협회의 하와이훌라, 타이피섬 춤이 공연됐고, 특히 삼양동선교본당 신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찔레꽃, 오동동 타령, 앵두나무 처녀가 큰 호응과 박수를 받았다.



70명으로 시작한 450석 규모의 꼬스트홀 기념행사는 끝무렵에 대략 130명 가량으로 늘었지만, 참석을 약속한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았다. 노쇼 짱이다. 텅텅 빈 좌석만큼이나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빈민사목위원회는 1987년 4월 28일 서울대교구장 자문기구로 탄생했다. 조세희의 난쏘공이 발표된 것이 1976년… 이에 비추어 보면 가톨릭교회의 빈민위는 사실 30년이 아니라 최소 40년은 됐어야 한다.
새로이 ‘빈민사목위원회 40년 의제’도 발표하고 공고한 다짐도 내보였지만, ‘가난의 영성’을 확대·실천하는 작업은 늘 그래왔듯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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