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14일 금요일

부정시림국민한대 府政時臨國民韓大

부정시림국민한대 府政時臨國民韓大
PROVISIONAL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1919년 4월 13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3·1운동을 계기로 통일된 조직체로서의 정부 구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에 따라 1919년 9월 11일에 국내 한성정부의 법통과 연해주 대한국민의회의 정치체제 및 상하이 임시정부의 입지를 승계한 통합 임시정부가 탄생했다. 통합 과정에서 무장투쟁이 유리한 연해주 지역과 외교활동이 용이한 상하이 지역을 놓고 의견 대립이 나타나기도 하였으나, 복벽주의가 사라지고 자유와 평등, 삼권분립에 입각한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가 탄생한 것이다. 대통령에 이승만, 국무총리에 이동휘를 선출하여 지금의 대한민국 정부의 뿌리가 되고 있다.
대한민국임시정부는 일제의 총구를 피해 상하이(1919)에서 항저우(1932), 전장(1935), 난징(1937), 한커우, 창사, 헝양, 광저우(1938), 류저우(1938), 구이양(1939), 치장 등지를 거처 충칭(1940)에 최종 정착한다.


사진은 백범김구기념관에 전시된 충칭(重慶) 소재 마지막 임시정부 청사의 모형을 박은 것이다. 충칭 자체가 산악지대여서인지 충칭시 유중구 연화지 38호의 임시정부 청사도 경사지 입지에 세워졌다. 환국 직전인 1945년 11월 3일, 임정요인들이 연화지 청사의 돌계단에서 찍은 기념사진은 언제나 가슴 뭉클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의 건립 시기는 3·1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이다. 극우들이 추종해 마지않는 미국 역시 워싱턴(1732~1799)이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1789년이 아닌 1776년 7월 4일을 건국일로 삼아 기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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