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5일 목요일

간토대학살 희생자들을 위한 넋전춤

간토대지진(關東大震災)… 1923년 9월 1일 11시 58분, 간토 전 지역과 시즈오카현·야마나시현의 일부에 리히터 규모 7.9의 대지진이 발생하여 사망자 및 행방불명자 14만 명, 가옥 소실 45만 채, 가옥 파괴 13만 채 등의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천재지변의 혼란 속에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방화를 하고 식량을 약탈하고 인명을 해치고,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유언비어가 삽시간에 유포되어 수많은 조선 유학생과 노동자들이 일본인이 조직한 ‘불령단 수색대’와 ‘자경단’에 의해 비참하게 학살당했다.
지진으로 집과 가족을 잃어 눈이 뒤집힌 사람들이 공산주의나 무정부주의에 선동되어 혁명이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염려된 일본정부와 계엄당국이 민중의 심리를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려고 조선 사람들에게 억울한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어서 잔혹한 학살은 방조되었다. 임정이 발행한 독립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때 희생된 조선인은 공식적으로만 6,661명에 달한다.


8월 20일(토) 오후 4시, 광화문 광장(북측)에서 1923년에 무고하게 학살당한 재일 조선인을 추도하는 행사가 민간 주도로 참사 93년만에 처음으로 열렸다.


가장 관심있게 지켜본 대목은 처음 접하는 넋전춤이었다. ‘전’은 문에 붙이면 “문전”, 돈을 오리면 “지전”, 복을 담으면 “복전”, 넋을 담으면 “넋전”이 된다. 넋전은 망자의 넋을 기리며 오려낸 종이인형이고, 넋전춤은 넋전을 작은 깃대에 달고 망자의 한과 억울함을 풀어내는 춤이다.


추도행사는 ‘관동 대학살 희생동포 위령’이라 적힌 만장을 앞세운 공주 봉현리 상여소리의 상여모심과 봉선화심기 가래질, 김석환의 행위예술, 천승현의 통기타 연주, 남천 심우성 선생과 양혜경(혜인 스님)의 넋전춤 연희 등으로 이어졌다.


식민지 조선인을 향한 무지막지한 제노사이드(Genocide)에 대해 일본정부는 늘 그렇듯 지금까지 어떠한 사죄도 없으며, 한국정부 역시 이에 대해 어떤 항의도 시도하지 않았다. 하기사 자국 내에서 벌어진 세월호나 백남기 농민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과에 인색한 아몰랑 박근혜 정권이 가해자인 일본측에 정당한 뭔가를 요구한다는 거 자체가 요원한 일이지.
천 개의 바람이 되었을 희생자들의 넋이 조금이나마 평안해졌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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