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5월 24일 금요일

유형원, 토지개혁으로 백성을 구하라

사회·경제적인 발달에 따라 사회모순이 격화되는 17세기 조선후기… 기존의 성리학에 대해 비판적인 새로운 학문의 흐름을 실학이라고 한다.
가중되는 지주들의 농민수탈과 양난으로 국가재정이 위기에 처하자 토지에 관한 개혁안이 제안되기 시작하였다.

반계 유형원은 초기 실학의 대표자로 소북계 학통으로 분류되는데… 소작제에 의거한 노동이 토지의 자기소유에 비하여 노동생산성이 낮아진다는 결론 하에 북위ㆍ수ㆍ당나라 때의 균전제가 조선의 실정에 알맞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개혁안을 만들었다. 즉 공전 토지를 농민들에게 직접 나눠주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차등을 두자고 제기하여, 당시 착취당하던 농민들의 이해와 일치되는 점도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봉건사회의 제도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아서 그 울타리를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다.

또한 국가재정과 국민생활에 유익하다는 점에서 화폐가치를 중요시하였는데…
화폐주조의 국가관리, 화폐의 종류와 품질의 규격화, 화폐원료(동)의 수입, 수요를 감안한 주조, 국가수입지출의 화폐화, 상설점포의 설치·운용, 추포의 통용 금지 등 화폐의 유통·보급 방안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이밖에도 종래 과거제도의 폐단을 전면 청산하고 새로운 관리임용제도로써 공거제의 실행을 주장하였고, 양난에서의 참패를 교훈 삼아 국방 개혁안도 제시하였다.

반계의 주장을 요약하면… 자영농의 육성을 통해 부민·부국을 이룩하는 것이고, 그를 위하여 토지개혁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인보는 『담원국학산고』에서 “조선 근고의 학술사를 종계하여 보면 반계가 그 일조요, 성호가 이조요, 다산이 삼조라고 한 구절이 있다.”고 서술하였다.

반계의 한계성은 분명한 것이나 『반계수록』에서 드러나듯이 사회 전반적인 개혁안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실학의 선봉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 변종호 한국역사문화교육원 대표, “우리시대는 어떤 목민관을 원하는가” 제2강 요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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