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0일 수요일

[영화] 최종병기 활

중3 아이들 몇몇과 오전에 영화 한편 관람. 조조는 근 20년만에 처음이군.
최종병기 활(Final Weapon Bow). 오늘이 개봉일이다. 10시 상영작이라 조조할인으로 5천원.
악당에게 납치당한 딸을 구출해내는 용감무쌍한 아빠라든가, 비명해 간 부모의 유언을 지켜 동생을 보호하는 큰형·큰오빠의 얘기는 미국 영화에 흔히 나오는 뻔한 줄거리지만, 17세기 초중반 조선이라는 배경을 입히고 나니 새롭게 느껴지더군.

늘 그렇듯이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다면 더욱 흥미있게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부왕 선조로부터 세자로 봉해진 광해군은 무난하게 분조를 이끌어낸다. 그러나 중종의 서자였던 선조는 32살 연하의 인목왕후와 재혼하여 뒤늦게 얻은 늦둥이 적자 영창대군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는 것으로 방계 승통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임란 후 서인은 국정에서 배제되고 동인이 정권을 잡게 되는데, 동인에게 해꼬지했던 서인들을 처벌하는 문제로 온건파 남인(유성룡)과 강경파 북인(이산해)으로 대립한다.
먼저 집권했던 서인과 남인은 왜란의 발발과 초반 패배에 책임이 있던 반면, 상대적으로 북인은 의병활동으로 공을 세워 명분을 가져하게 된다. 이처럼 북인은 임란 중의 정책 실패와 왜군과의 화의가 정유재란의 원인이 되었다는 점을 들어 유성룡 중심의 남인정권을 퇴진시키고 집권하지만, 선조의 후계 문제로 인하여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정인홍)과 영창대군을 받드는 소북(유연경)으로 갈라선다.
우여곡절 끝에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고 대북이 중심이 된 북인정권은 지지부진하던 양전을 실시하고, 대동법을 시행하는 등 전후 복구사업을 주도해간다.

임진왜란 이후 중국 대륙에서는 무리한 조선 출병으로 국력이 쇠퇴한 명과 그 틈을 타 부족을 통일하고 후금을 건국한 여진족(만주족)이 대립하고 있었는데, 후금의 공세에 고전하던 명은 조선에 원군을 요청해온다. 이에 조선은 명의 요청을 받아들였을 때 후금과의 전쟁을 불사해야 하는 부담과, 임란 때 조선에 출병했던 명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입장 사이에서 곤란에 빠진다. 결국 광해군은 새롭게 성장하는 후금과 적대 관계를 가지는 것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강홍립으로 하여금 출병한 후 정세를 보아 향배를 결정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조·명 연합군이 후금군에 패하자 강홍립은 후금에 항복하였다.
이와 같이 광해군은 쇠퇴해가는 명과 강성해지는 후금 사이에서 중립적인 실리외교 정책을 전개하여 후금의 외침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의리와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서인들은 이를 명에 대한 배신행위로 간주하고, 여기에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는 광해군의 도덕성 문제까지 얹어, 인조반정을 일으켜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북인정권을 몰아내었다.
이쯤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아마도 광해군을 지지했던 대북파였을 아버지가 서인 세력에게 역적으로 몰려 죽음을 맞이하는 처참한 상황을 목격한 남이(박해일 분)와 자인(문채원 분) 오누이는 구사일생으로 탈출에 성공하여 아버지의 절친(이경영 분)에게 서러운 삶을 의탁하게 된다.
다시 역사로 돌아가서…

1623년 인조반정을 주도한 서인은 광해군의 중립외교 정책을 비판하고,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여 후금을 자극하여 1627년 호란을 초래하고 만다. 이때에는 형제관계의 화의를 맺고 돌아갔지만, 이후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바꾼 청태종은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1636년 재차 침입해 왔다.
여기가 바로 ‘최종병기 활’의 두번째 시대 배경이다.

역적의 자손이기에 문과나 무과를 통한 입신양명은 꿈도 꾸지 못하는 남이는 무공도 보잘 것 없고 사냥이나 다니면서 세월을 죽이고 있다. 남이의 유일한 삶의 목적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하나뿐인 누이인 자인을 지켜내는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하필이면 혼례일에 호란을 당하여 청으로 끌려가는 여동생을 구하기 위해 청나라 정예 나루들을 하나씩 처치해 가면서 운명의 대결을 시작한다. 남이의 활솜씨를 알아챈 쥬신타(류승룡 분)는 조카인 왕자를 지키기 위해 남이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신궁… 주몽 동명성왕, 궁복 장보고, 그리고 ‘최종병기 활’의 남이… ‘반지의 제왕’의 활쏘는 요정 레골라스 그린리프처럼 허황되지도 않다. ‘나니아 연대기’의 수잔 여왕처럼 어설프지도 않다. ‘원티드’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구사한 곡사와도 다르다. 남이의 활은 휘어 날아가 상대방에게 예측 불가능한 일격이 되지만, 죽이기 위한 활이 아니다.
결국 자신의 죽음으로써 여동생의 삶을 지켜낸 남이는 안도한 얼굴이다. 오빠의 헌식적인 돌봄으로 삶의 기회를 얻게 된 자인은 역경이 없지는 않겠으나 오빠 몫까지 열심히 살아나갈 것이다.

“두려움은 그저 직시하면 그 뿐”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멋진 대사도 나온다. 백두산 호랑이도 등장한다.

남이와 쥬신타의 긴장감있는 대결과 만주어나 활에 대한 나름의 고증, 뜨거운 가족애 모두 볼 만한 요소지만 단 하나,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지배층의 작태에는 신물이 난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은 광해군의 등거리 외교를 폐기시켜 버린 당시 조선의 서인 집권층이 자초한 국난이었으며, 대륙의 침입에 분연히 맞선 것은 임금도 국가도 아닌 일반 백성들이었다.


영화 관람 후…
아이들에게 극장의 조조할인은 1학기 때 배운 ‘시간에 따른 가격변동’에 해당한다는 것과, 1575년 동서분당 이후 조선의 상황 및 두 차례의 전란에 대해 다시한번 얘기해 주었다. 중국과 일본의 동북공정과 독도 침탈에 대한 야욕이 갈수록 노골화되고 있는 이 때, 대한민국 중·고생들의 일람을 권하고 싶은 영화다.

댓글 2개:

  1. 배경 지식이 철철 넘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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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끄럽습니다. 설 연휴 때 케이블에서 많이들 방영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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