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일 일요일

묵안리 조세희 생가터

오늘은 겹치는 일정이 무려 6개다. 고심 끝에 趙世熙라는 이름 석자가 주는 울림을 따라 이곳(양주조씨 집성촌) 가평군 설악면 묵안리의 조세희 생가터로 왔다.

연작소설집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8)에 등장하는 다섯 식구는 고단한 삶에 지친 하층민을 대변한다. 언년이, 쇠돌이와 같이 ‘이, 그’ 어조사(伊)로 대충 호명되는 것에 저항(不伊)하던 김불이氏는 종국엔 공장굴뚝에 올라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떨어져 생을 마감한다. 조선조 노비의 후손 김불이의 자랑이었던 큰아들 영수는 노동운동에 투신하다가 기득권의 벽 앞에 법대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절감하고 고용주 측을 살해, 처형되고 만다. 비극의 뫼비우스 띠에서 벗어나지 못한 부자와 가족의 불행한 삶에 투영한 독자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혁명이 필요할 때 우리는 혁명을 겪지 못했어. 그래서 우리는 자라지 못하고 있어. 제3세계의 많은 나라가 경험한 그대로, 우리 땅에서도 혁명은 구체제의 작은 후퇴, 그리고 조그마한 개선들에 의해 저지되었지. 우리는 그것의 목격자야. 우리 세대들은 실패하고 말았어.” 송경동 시인이 전하는 故조세희 선생의 말이다.

묵안정(黙安亭) 마당에는 대리석 표지판이 생가터임을 알려 주는데, 난쏘공 도입부의 일부를 새겨놓았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우리가 저마다 꿈꾸는 ‘작은 공’은 발사되고, 희망하는 바 달나라에 도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