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6일 금요일

북한의 자연유산과 남북한 사회교류

6월18일(목) 북한문화재 바로알기 시민교육 3일차는 프란치스코회관 410호에서 진행됐다.
3일차 5차시 강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연구사의 ‘북한의 쳔연기념물과 명승 전통조경’이다.
이 학예사는 PPT 첫 사진으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년 6월 16일 14시 49분) 장면을 실었고, 첫 타이틀도 ‘가깝고도 먼 나라 북한’으로 뽑았다. ‘북한접촉신고서’와 ‘북한접촉결과보고서’ 양식을 보여주면서 국가보안법 위반은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함을 강조했다.

북한의 천연기념물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일제는 1933년 12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시행한다. 해방 후인 1946년 4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김일성 위원장 이름으로 ‘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과 시행규칙 등을 공포한다. 이후 1994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문화유물보호법’을, 1995년에 ‘명승지 천연기념물 보호법’을 제정했다. ‘문화유물보호법’을 2012년 11월 ‘문화유산보호법’으로 개정하고, 2015년 7월에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가 ‘민족유산보호법’(우리의 ‘문화재보호법’)을 새로 채택했다. 민족유산보호법은 세계유산을 포함하는 큰 개념(+자연유산)인데, 우리나라 법 체계와 유사하게 변형(2019년 수정·보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민족유산보호법은 물질유산(력사유적·력사유물), 비물질유산, 자연유산(명승지·천연기념물) 체계로 구성돼 있다. 2008년 기준으로 북한의 명승지는 223개소, 천연기념물은 469점으로 파악된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남한과 북한의 관점에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됐다.
남한은 1962년에 문화재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반공을 이유로 북한지역에 존재하는 천연기념물을 제외했지만, 북한은 남한지역에 분포하는 천연기념물을 그들의 문화재 지정목록에 남겨두고 있다. 남한은 명승(名勝)으로 부르지만, 북한은 명승지(名勝地)로 사용한다. 북한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카테고리 시스템(protected area categories)에 부합하지만, 남한은 일본의 틀을 그대로 지속해왔기에 국제규약에서 동떨어진 체계여서 세계자연유산이 1곳 뿐이다. 현재 남한도 문화재청을 중심으로 ‘자연유산법’ 제정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북한의 명승지는 옛8경에서 사회주의 선군8경이 새롭게 지정됐다. 군이 모든 것에 앞선다는 선군(先軍)시대의 8경은 지방의 유명한 산천 경개와 문물, 풍속세태에 최고 지도자(김일성·김정은)와의 관련성아 결합된 곳이다. 옛8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주체사상을 결합한 사회주의 선경에는 △백두산 해돋이 △다박솔초소 설경△철령 철쭉 △자강도 장자강의 불야경 △울림폭포 메아리 △한드레벌 지평선 △대홍단 감자꽃 바다 △범안리 선경이 있다.

북한 당국의 자연유산 보호를 위한 제도적 노력은 1986년 환경보호법 제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주체사상에 의한 자연유산 훼손 모습도 보인다. 데일리NK(2007.02.14) 기사를 인용하자면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기 위해 천연바위 곳곳에 우상화 글귀를 새겨 넣을 것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남승도(覽勝圖)는 우리나라의 명승지를 놀이판에 적어 놓고 주사위를 던져 나오는 숫자에 따라 유람하는 말놀이 보드게임으로, 명승유람도(名勝遊覽圖)의 준말이다. 조선후기(1820~1840)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청구남승도(靑邱覽勝圖)에는 조선시대 전국의 대표적 명승지 120곳이 총망라되어있는데, 현재 남한의 명승이 아닌 곳도 다수 보인다. 통일시 관광자원으로 코드化할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통일시대 한반도 명승의 활용

북한은 1999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원림법(原林法)을 채택한 이후 국토의 수림화·원림화정책을 강조해오고 있다. 수림화는 국토를 보호하기 위해 울창한 산림을 조성하는 것이고, 원림화는 도시와 마을의 공원, 유원지 등을 아름답게 꾸리고 위생문화적인 생활환경을 마련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한국에는 ‘정원술’이 보이지 않는다”는 구한말 외국선교사들의 기록은 우리의 정원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비롯한 편견일 뿐이다.

이원호 연구사는 “이상하게도 북한이 우리보다 거의 항상 먼저 관련법을 정비하는 발빠른 행보를 보여왔다”면서 “북한이 우리보다 좀더 ‘우리식’으로 하려는 노력(어찌보면 ‘선진적’)은 인정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관광객 100만 달성이나 한 해 외국인 방문자 수 10만명 등 북한 당국의 외화벌이 계획은 제재조치로 달성이 어려운 수치가 됐다.


3일차 6차시 강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조은경 학예연구관의 ‘개성 만월대 남북공동조사와 남북협력방안’이다. 조 학예관은 문화재청 남북문화재교류사업단 조사연구팀의 일원으로 개성 만월대 터 남북공동발굴조사에 참여한 바 있다.

첫 내용은 북한의 문화유산 보존관리 정책이다. 북한에서 민족문화유산은 ‘사회주의적 애국주의’를 고양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계급과 사상 + 조국과 민족)되며, 조국애와 민족애를 높일 수 있는 수단으로 지목돼 왔다. 1980년대 중반 ‘조선민족제일주의’가 대두하면서 구석기 기원이 100만년 전으로 상향됐다. 북한은 고조선-고구려-고려-북한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전통성을 강화하고 있다.

개성(開城)은 우리로 치면 파주 같은 접경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 당국은 고도(古都)로서 개성 전체를 역사문화지구로 발전시키기 위해 방향을 설정하고 직접 관리하고 있다.
개성옛성은 궁성(宮城)-황성(皇城)-외성(外城) 또는 나성(羅城)의 3중체계를 갖추고 있었다. 천자국을 지향한 고려의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다. 조선 초 내성(內城)이 추가로 축조되는데, 내성의 정문이 개성 남대문이다. 개성 남대문 문루에 1346년 주조된 연복사 종이 걸려있었다고 한다.

개성 성

919년(태조2) 철원에서 개경으로 천도한 후, 송악산 남쪽 기슭 구릉지대에 세워진 통일왕조 고려의 정궁 명칭은 그냥 ‘본궐(本闕)’이었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으로 궁궐 전각이 전소된 후에 조선이 들어서고 14~15세기 경 만월대(萬月臺)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추정한다. 보름달(만월)을 바라보는 정자(만월정)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황성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 이애리수가 노래한 황성옛터(荒城의跡)의 황성이 바로 개성 만월대다. 황성은 임금 황(皇)을 쓰는 황성(皇城)이 아니라 거칠 황(荒), 자취 적(跡)을 쓰는 황성(荒城)이다. 폐허가 된 성… 나라를 잃은 맥수지탄(麥秀之嘆)의 긴 한숨이 절로 나올 법한 이름이다.

개성 만월대(북한 국보유적 제122호)는 2007년부터 1차 발굴조사를 시작하여 2018년까지 8차례에 걸쳐 공동조사를 완료했다. 남북공동조사의 목적은 △고려궁성의 역사적 가치 조명 △남북 학술교류 활성화 기여 △ 개성역사지구 세계유산 등재 지원 △학술자료 축적 및 제공이었다.

공동조사의 가시적 성과는 2008년 반려됐던 개성역사유적지구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2013년 6월23일)로 나타났다. 개성역사유적지구는 고려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12개의 개별유산(만월대ㆍ개성첨성대ㆍ개성성벽ㆍ개성남대문ㆍ고려성균관ㆍ숭양서원ㆍ선죽교ㆍ표충비ㆍ태조현릉ㆍ칠릉떼ㆍ명릉떼ㆍ공민왕현릉)이다.
공동조사의 또다른 성과는 1950년대 북한이 단독으로 발굴한 금속활자 외에 만월대에서 새로 5점의 금속활자를 더 찾아낸 것이다. 서부건축군으로 이어지는 대형 계단을 확인한 점도 주요 성과다.

만월대는 한반도의 중세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핵심유적이다. 고려청자의 경우 생산지는 강진, 부안인데 주 수요지는 개성이다. 출토 유물의 가치 확인을 통해 고려시대 문화를 복원하고 재현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남북문화교류협력의 일환으로 남북문화재교류협력이 시작된 것인데, 개성만월대 공동발굴조사 사업은 가장 오랫동안 지속된 대표적인 문화재교류협력사업이다. 비록 서로 체제가 다르고, 문화재에 대한 조사·정리·해석 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같은 민족의 입장에서 민족적 가치가 담긴 문화유산에 대한 공동 조사와 연구를 통해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하는 의미있는 교류사업이 지속되기를 소망한다.

3일차 5차시 강의 후 쉬는 시간에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층에서 한컷

6월25일(목) 북한문화재 바로 알기 시민교육 4일차는 프란치스코회관 220호에서 속개됐다.
4일차 7차시 강의는 통일교육원 박계수 교수의 ‘남북 사회문화 교류 현황과 전망’이다.
박 교수는 독일 통일 30주년을 언급하며 통일 이후 독일 사회에 나타난 변화와 부작용 사례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을 짚어봐야 한다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이어서 △남북한의 차이를 인식하고 공통의 요소를 확보하여 국가 차원의 공동체 구축 △이해와 신뢰 형성 과정의 축적 측면에서 협력 촉진 △남북관계 발전과 교류의 제도화 △민주주의 확대와 평화문화의 수립이라는 사회문화의 발전적인 교류 기본 방향 4가지를 제시했다.

첫번째 사회문화교류 사례로 음악교류가 언급됐다. 서울시향의 2012년 남북 합동공연은 2012년 당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정명훈(2000~2015)이 서울시향과 북측의 은하수관현악단을 프랑스로 초청하여 성사됐다. 그러나 이와 같은 남북의 음악교류는 단발성 이벤트로 끝난 아쉬움이 있다.
어느 정도 지속성을 내포한 문화유산교류 사례는 <겨레말 큰사전 남북공동편찬> 사업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19개 한글 자음의 순서는 남한(ㄱㄲㄴㄷㄸㄹㅁㅂㅃㅅㅆㅇㅈㅉㅊㅋㅌㅍㅎ)과 북한(ㄱㄴㄷㄹㅁㅂㅅㅈㅊㅋㅌㅍㅎㄲㄸㅃㅆㅉㅇ)이 서로 다르다. 2008년 10월31일 겨레말큰사전 공동편찬위원회 제15차 회의(개성)를 통해 남북이 서로 한발씩 양보하여 공동사전에 배열되는 자음은 ㄱㄴㄷㄹㅁㅂㅅㅇㅈㅊㅋㅌㅍㅎㄲㄸㅃㅆㅉ 순서로 타결을 보았다.

<개성 만월대 공동발굴조사> 사업도 인용됐다. 발굴 당시 개성 고려박물관 북측 해설 강사가 남측 조사단원들을 어떤 건물로 이끌고 가서 다들 긴장하는 순간 “남측 역사학자 선생들을 만나기 위해 국보 태조 왕건상이 평양에서 왔습니다!”라고 말해 모두의 탄성을 자아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소개됐다.
북측 조사단이 데려온 강아지 2마리(송악이와 만월이)가 발굴 현장의 분위기를 돈독하게 하는 마스코트 역할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유네스코 관련해서는 2001년부터 문화재청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신탁기금을 공여하고 이를 센터가 북한에 지원함으로서 고구려 고분군의 벽화고분 보존처리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씨름의 경우 2014년 남한이 씨름등재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남북공동등재 의사를 타진했다. 그러나 북한은 2015년에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신청서를 단독 제출했고 결국 등재되지 못했다. 이후 남북한의 협업 속에 2018년 11월26일 공동등재 결과를 발표하게 된다.

‘북측 근로자, 개성공단의 24시간’이라는 영상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박 교수의 바람처럼 남북교류와 문화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하고 정례화·일상화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경제협력 등 민족 전체의 안녕과 평화 같은 폭넓은 분야로 확대되길 기대해본다.

4일차 8차시 강의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정승호 학예연구사의 ‘북한의 지질과 자연유산’이다. 6주간의 연속강좌에서 지질에 대한 얘기는 처음이다.

프로이센의 알렉산더 폰 훔볼트(Aiexander von Humboldt, 1769~1859) 남작이 베네수엘라 북부의 쓰루메토라는 마을을 지나다가 엄청난 크기의 자귀나무(Albizzia) 노거수(老巨樹)를 보고 그 장엄함에 감명을 받고 귀국한 후 기념비적인 자연물이란 뜻의 ‘천연기념물(Naturdenkmal, Monuments de la nature)’이란 말을 처음 붙여 사용했다. 이렇게 독일에서 시작한 천연기념물제도는 일본이 선진제도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도입하여 운영해 온 문화재 제도이다.

일제강점기 나카이 다케노신(中井猛之進, 1882~1952)이 한반도 전역의 식물을 조사하고 조선식물(1914), 조선삼림식물편(1915~39)을 간행했다. 현재 북한의 식물 종수는 6,710종, 동물 종수는 9,767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1976년 △자연보호구 6개소 △식물보호구 14개소 △동물보호구 14개소 △바다새번식보호구 6개소 △수산자원보호구 4개소를 설정했다.

유네스코는 1971년 설립된 인간과 생물권(MAB, Man and the Biosphere) 프로그램으로 생물권보전지역을 관리하고 있다. 북한에서는 △백두산(1989) △구월산(2004) △묘향산(2009) △칠보산(2014) △금강산(2018)이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돼 있다.

북한은 1994년 유네스코 생물다양성 협약국에 정식 가입하고 1995년 동북아 생물권보전지역 네트워크에 참여했다. 또한 국토면적의 5.67%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설정하고, 2003년엔 7.3%로 확장(약 300곳)했다. 그러나 개간과 벌목으로 북한 산림 면적의 18%(163㏊)가 황폐화되어 있다.


유네스코가 국제지질연맹(IUGS)과 공동으로 지원하는 국제지구과학프로그램(IGCP) 세계지질공원은 △보호, 교육, 지속 가능한 개발, 국제적 지질학적 중요성을 지닌 장소, 풍경 △기후변화 완화, 자연재해 위험 등 자연과 문화유산 연계/지질유산 활용 △지역 정체성, 관광 수입원, 교육 활성화,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 등의 특성을 갖는다.
북한은 백두산의 세계지질공원 등재를 추진하고 있다. 백두산 지질공원은 북한을 찾는 관광객들의 첫번째 목적지라 할 것이다. 백두산 일대는 자연적 스펙터클과 인간적 풍광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또한 동북아 지역의 화산-고산지대를 대표하며 화산분출과 빙하기의 지질학적 증거가 된다. 특히 삼지연 지구 개발과 연계하여 역점사업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북한의 세계자연유산 잠정목록에는 △묘향산과 주변 역사 유적 △평양역사유적지구 △금강산과 주변 역사 유적 △칠보산 △구장지역 동굴이 올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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