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14일 일요일

한울환경교육사 과정 2일차, 방정환의 자연교육

경운동 수운회관 907호 회의실, 어제(6월13일)는 하루종일 한울환경교육지도사 2일차 과정에 출석했다.

2일차 1차시는 ‘최시형의 생명사상’을 공부하는 시간이다. 한울연대 이미애 상임대표가 천도교의 강령주문과 본주문을 소개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어려운 한자가 아니어서 오의(奧義)는 모르겠으나 대체로 무난하게 직역할 수 있었다.

至氣今至願爲大降 (지기금지 원위대강)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萬事知 (시천주 조화정 영세물망 만사지)
지극한 기가 지금 이르러 크게 내리기를 원합니다.
천주를 모시면 조화가 정해지고 길이 잊지 않으면 만사를 알게 됩니다.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대신사는 모두가 한울을 모시고 있다는 시천주(侍天主)를,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 신사는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는 사인여천(事人如天)을, 3세 교조인 의암 손병희 성사는 사람이 한울이라는 인내천(人乃天)을 설파했다.

해월신사의 법설 몇 가지를 공부했다. 천지부모(天地父母) 사상에서는 범신론적 성격이 읽히지만, 레오폴드(A. Leopold)의 대지윤리와 통하는 부분도 느껴졌다.
사람이 바로 한울이니 사람 섬기기를 한울같이 하라는 대인접물(待人接物) 설교에 정현종의 시 <방문객>이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천으로 천을 먹으라’는 이천식천(以天食天) 가르침은 사람이 한울의 일부인 음식을 먹는 것, 즉 ‘한울로써 한울을 먹는’ 한울의 기화작용으로 설명됐다. 내 머리 속에선 프란치스코 교종이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제시한 통합생태론이 연상됐다.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같은 인사말과 어떤 일을 할 때 먼저 내 안의 한울님께 아뢴다는 심고(心告)라는 천도교 용어를 익혔다. 타종교에 대한 이해를 돋우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2일차 2차시의 주제는 방정환의 어린이운동과 자연지향적 교육사상이다. 장정희 방정환연구소장이 강의에 나섰다. 장정희 소장에 따르면 최초 어린이날 제정 때부터 어린이 자연보호 운동이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22년 5월1일 천도교소년회의 첫 어린이날에 배포된 소년용 인쇄물에는 7가지의 소년에게 주는 말 가운데, 6번째 조항에 “꽃이나 풀을 사랑하고 동물을 잘 보호하십시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같은날 매일신보에 보도된 최초의 어린이날 기사 ‘朝鮮 初有의 少年日’에도 “연극장 같은 구경을 마음대로 가게 하되 동물원 식물원 같은 자연을 찾게 해 주지도 않았고” 조선은 소년을 매우 등한시 여겼다고 쓰고 있다.

1923년 5월1일 어린이날 첫 돌을 맞아 배포된 ‘어린 동무들에게’ 선전문에서는 일곱 중 첫째로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반드시 보기로 합시다.”가 들어왔고, 다섯째에 “꽃이나 풀을 꺾지 말고 동물을 사랑하기로 합시다.” 항목이 있어 좀더 발전한 면모를 보여준다. 해를 보자는 문구는 잡지 <어린이> 9권 1호(1931.1)에 실린 방정환의 권두언 ‘해를 배우자’에도 다시 등장한다.
여기서 ‘해’는 약속을 지키고 공명정대하며 변개(變改)하지 않는 이미지를 상징하며, 천도교소년회의 구호였던 ‘씩씩하고 참된’ 소년상을 비유한다. 그래서 방정환은 아침부터 “해보다 먼저 일어날 것”(돋는 해)을 결심하자고 청하고, 저녁에 “부끄러운 일은 없는가”(지는 해)를 생각해 보자고 한 것이다.

1931년 7월10일자 천도교 기관지 <당성(黨聲)>에 서술된 ‘여름방학 중에 소년회에서 할 일 2,3’에서 방정환은 △소년들 자체의 심신발육 △남과 일반을 위한 노력을 제시하며 자연과 친해지기 위한 여름방학을 상정하고 있다. 1920년대 영국의 A. S. 닐이 설립한 대안학교 서머힐스쿨(Summerhill School)이 연상되는 대목이다.

어린이의 모습을 자연에 빗대어 표현한 방정환의 자연교육 사상은 꽃놀이, 가을놀이 등 잡지 <어린이>에서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1923년 7월23일 방정환은 전선소년지도자대회를 개최한다. <어린이> 1권 8호(1923.9)에는 이 대회에 참여한 이병두의 ‘자연의대학교’와 이용순의 ‘씩씩한 소년이 되십시요’가 실려 있다.

장정희 소장은 소파 방정환의 자연교육사상에 대한 강의는 아마 오늘 이곳에서 처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한다며 앞으로 더욱 세밀하게 자료를 찾고 연구해 나가겠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소년회 활동을 통한 방정환의 자연지향적 교육사상은 천도교 청년들이 주축이 된 방정환한울어린이집, 방정환텃밭책놀이터로 이어지고 있다.

2차시 마무리 활동으로 교육 참가자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다들 멈칫거리는 분위기에서 내가 첫 번째 발표자로 지목됐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예사말로 친구와 대화하듯이 얘기해야 했다.
고려 후기 몽골에 공녀(貢女)로 끌려간 아리따운 고려소녀 ‘찔레’가 천신만고 끝에 고향땅에 돌아왔지만 이미 소식조차 알 길이 없는 부모형제를 찾아 실성한 듯 이곳저곳 헤매다가 크게 울부짖으며 죽어간 자리에 소녀 ‘찔레’의 한(恨)이 하얀 꽃으로 피어나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사람들이 그 하얀 꽃을 ‘찔레꽃’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
이어서 다른 분들도 며느리밥풀꽃, 물망초 설화와 결코 피울 수 없는 꽃을 꽃피운 소년의 이야기를 더해갔다. 어릴 적 맨드라미 화전 이야기, 호박꽃에 얽힌 일찍 떠난 동생의 실화가 뭉클함을 주었다.

점심 후 속개된 3~4차시는 수원시 기후변화체험 교육관 조성화 관장의 환경교육론과 환경교육철학 강의가 이어졌다.

조성화 관장은 환경교육(EE)에 있어서 초보자에게는 ‘환경’이 중요하지만, 전문가에게는 ‘교육’이 더 중요함을 강조했다. 교수(무엇을 가르쳤는가)와 학습(무엇을 배웠는가)에 있어서도 같은 이치로 초보자에게는 ‘교육’이 중요하지만, 전문가에겐 ‘학습’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 보다 중요함을 강조했다.
교육학개론서에 다 나오는 얘기지만 새삼 고개가 끄덕여진다. ‘환경전문가’와 ‘환경교육전문가’는 분명 다를 터이다.

정규 학교교육의 커리큘럼(curriculum), 평생교육 영역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program) 용어…
program에서 접두사 pro는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말이고, 접사 gram은 ‘쓰다, 적다, 그리다’는 뜻이다. 때문에 program은 ‘모두가 볼 수 있게 앞에다 써 붙여놓는다’는 의미가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짜는 것과 TV방송 편성표도 같은 범주다.
gram의 용례는 kilogram(킬로그램), diagram(도형·도표), epigram(경구·풍자시), telegram(전보·전신)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요사이 인기 있는 하얀색 LG노트북 그램도 떠오른다.
조 관장은 “gram에는 ‘(돌에) 새기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느슨함 없이 견고하게 program을 설계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맞는 얘기다. 수업계획과 실행을 위한 3P(people, purpose, place)를 파악·분석하고 한 차시에 해당하는 수업지도안을 개발하고 시연(가족·동료강사)해 봄으로써 환경교육 전문가로서 품어야 할 교수 역량을 갖춰야 할 것이다.
교수-학습 활동은 하나의 예술활동이라는 조 관장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2일차 4차시는 인터레그넘(interregnum)이라는 묵직한 화두로 시작됐다.
폴란드 출신의 영국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이 현 세계의 모습을 한 단어로 표현해 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은 개념이라고 한다. inter(사이)와 regnum(왕국)이 합쳐진 말로 왕좌 공위기간, 군주 부재기, 정치권력의 공백기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주로 왕정시대에 왕이 사망한 후 새 왕이 즉위하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하는데, 교황이 서거하고 새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의 기간도 인터레그넘에 해당한다. 우리나라도 2017년 3월10일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탄핵을 인용한 후 문재인이 취임하는 5월 10일까지의 기간이 인터레그넘이랄 수 있겠다.

2000년 제55차 유엔총회에서는 새천년개발목표, 밀레니엄선언으로 불리는 8개의 MDGs(Millennium Development Goals, 2000~2015)를 책택했다. 그러나 획일적, 분절적, 표면적이라는 한계점을 노출하였다. 2015년 제70차 유엔총회에서는 2015년 만료된 MDGs의 뒤를 잇는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2016~2030)를 2030년까지 이행하기로 결의했다.
개발도상국에 초점이 맞추어진 MDGs에 비해 SDGs는 선진국, 개발도상국, 저개발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면서도 각 국가의 상황에 따른 유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차이가 있다.
sustainable은 동사 sustain(살아가게 하다, 지탱하게 하다, 계속시키다)과 형용사 able(할 수 있는, 능력있는)이 결합된 말이다. SD(sustainable development)는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합의 번역됐다. 의미상으로는 ‘지탱가능한 발전’이 보다 원의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조 관장은 스마트폰을 사례로 들어 논의를 이어나갔다.
초창기의 핸드폰은 가격, 디자인, 기능을 모두 만족시키는 제품이 나오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은 이 3마리 토끼를 어느 정도 잡아주는 스마트폰이 출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노래만 잘 하는 가수가 아니라, 춤도 잘 추는 가수, 얼굴이 따라주는 가수, 거기에 의미있는 사회적 메시지까지 던지며 팬덤과 소통하는 스타덤을 보여주는 BTS를 보며 열광하는 선순환 구조…

요컨대 환경, 경제, 사회 부문을 총괄하고 섭렵하는 SD라야 하며 또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속가능발전교육(ESD)을 환경교육(EE)으로만 생각하는 잘못된 통념에서 벗어나, 환경적·경제적·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통합적으로 생각하는 교육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조성화 관장은 강의에 있어 “시간 초과는 금물”이라는 자신의 신조를 지켜 공언했던 시간에 강의를 마무리했다. 프로다웠다. 마치 한 권의 수업설계론 교재를 요약하여 읽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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