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섣달 그믐밤의 서글픔,
그 까닭은 무엇인가?”
―광해군 8년(1616) 증광시 책문
시시비비
발언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게 발언되어야 하고, 할 말이 아무것도 없는 사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켜야 한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기”
2025년 12월 31일 수요일
2025년 12월 24일 수요일
성탄제(聖誕祭)
―― 흥! 너두 벨수가 없었던 모양이로구나? 그러게 내 뭐라던? ……내남직할 것 없이 입찬소리란 못하는 법이다……
흥! 하고 또 한 번 코웃음을 치고, 문득 고개를 들자, 그곳 머리맡 벽에 가 걸려 있는 십자가가 눈에 띈다. 영이는 입을 한 번 실룩거리고 중얼거렸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아멘. ……흥?”
이렇게 기도를 드려두면 순이도 꿈자리가 사납다거나 그런 일은 없을 게다……
―― 흥! (박태원, ‘성탄제(聖誕祭)’, 1937년 12월 「여성」 21호)
1930년대 식민지 경성, 남달리 사이가 나쁜 네 살 터울의 자매가 있다. 카페 여급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다가 사생아를 낳고 집안에 들어앉은 언니 영이와, 언니 덕에 여학교에 다니면서도 뭇 사내들에게 시달리며 웃음이나 파는 언니를 경멸하고 여배우가 되겠다며 학교를 자퇴하는 동생 순이의 딱한 이야기.
크리스마스라고 교회당에 간다며 초저녁에 나간 순이는 자정이 넘어 언젠가의 영이처럼 남자를 끌고 집에 들어왔다. 눈치를 챈 영이는 순이와 함께 쓰던 건넌방을 내주고 안방으로 들어가 드러누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부모는 지금 건넌방에서 순이의 몸 위에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알고 있겠지만 이미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인생이란 것이냐?” 영이는 동생마저 자기와 같은 신세로 전락하는 현실이 서러워 눈물을 흘렸다. 영이는 머리맡 십자가를 보며 기도한다. “이 거룩한 밤에 주여! 바라옵건대 길을 잃은 양들에게도 안식을 주옵소서, 아아멘” 이제 꿈자리가 사납지는 않을 터였다. 동생도, 자기도…
생존이 윤리를 내모는 궁핍한 시대, 가난한 사람들의 막막함에 몸이 으스스 추워진다. 성탄절날 밤이었다.
2025년 11월 27일 목요일
디엠지 가디언스
지난주에 「DMZ길라잡이학교」를 수료했다. 이영동 이사님을 비롯해 양성과정을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한데, 개근(皆勤)했다는 이유(?)로 뜻하지 않은 감투를 하나 쓰게 됐다. 勤은 ‘부지런하다’는 뜻이지만 ‘근심하다’란 뜻도 지니고 있다.
디데헌(DMZ Demon Hunters)이나 지디(Guardians of the DMZ)는 벅차지만(overflowing) 벅찬(hard) 슬로건일 것이다. ‘길라잡이’ 역할에 걸맞은 자세를 갖추고 전문성을 기르는 일에 힘쓰면서, 뭔가 2기만의 활동을 병행할 수 있을까. 세상일,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분단과 대결 구도를 유지하려는 세력과 어떻게든 변화를 주고 평화를 정착하려는 세력의 경쟁은 필연적이다.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은 독립운동과 맞닿아 있다. 피땀 흘려 위국헌신한 독립투사들이 그토록 염원하던 진정한 최후의 독립은 온전한 한 나라를 되찾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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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내기 DMZ길라잡이 28명 배출
이론강의×현장탐방 병행한 7개월 여정 마무리
https://www.kw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0050
DMZ길라잡이학교(교장 김창수)가 2기 길라잡이 양성과정을 마무리하고 수료생을 배출했다.
흥사단 민족통일운동본부(상임대표 양영두)와 DMZ평화네트워크(이사장 류종열)가 공동주관한 2025년 DMZ길라잡이학교는 19일(수) 저녁 흥사단 3층 강당에서 수료식을 열고, 1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성과를 공유했다.
올해 DMZ길라잡이학교 프로그램은 4차례의 실내강의와 6차례의 현장탐방으로 꾸려졌다.
실내강의는 ▲DMZ 평화의 길을 가다(이인영 의원, 前통일부장관) ▲DMZ의 역사-한국전쟁과 남북 접경지역 형성(한모니까 교수,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분단과 한국전쟁(서주석 前국방부차관) ▲DMZ와 접경지역 안보(김도균 前수방사령관) 등 DMZ 전반을 개괄하는 이론강좌로 진행됐다.
현장탐방은 이영동 상임이사(DMZ평화네트워크)가 동해안부터 서해안까지 이어지는 248㎞의 비무장지대를 ▲고성 ▲철원 ▲연천 ▲양구·인제 ▲파주 ▲김포·강화 등 6개 지역으로 나누어 함께 답사하면서 풍부한 지식과 예리한 통찰이 담긴 해설을 들려주어 수강생들로 하여금 전쟁의 비극과 분단의 현실을 직시하고, 평화 정착과 재통합의 가능성을 모색해 보도록 이끌었다.
이날 수료식에는 35명의 수강생 중 개근 5명을 포함하여 모두 28명이 DMZ길라잡이 수료증을 받았다.
김창수 교장은 “실내강의와 현장답사를 통해 분단의 상처를 목도하면서도 접경지역의 자연이 주는 아름답고 신비로운 풍광에 심취한 여정이기도 했다. 함께해 준 참여자와 헌신해 준 스태프에 힘찬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DMZ평화네트워크는 2026년 첫 사업으로 내년 1월 중순께 1박2일로 ‘접경지역 철새 먹이주기 및 두루미 탐조 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19일 저녁, 흥사단 강당에서 열린 제2기 DMZ길라잡이학교 수료식에서 수료생과 운영진이 기념 촬영하고 있다.
2025년 11월 25일 화요일
딩동딩동 단추세상
2개 그룹으로 분반하여 상반기 20회차, 하반기 20회차 해서 모두 40회차의 디지털문해교육 프로그램을 종강했다. 과정 후반부엔 AI에 친숙해지면서 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집중했는데, 생소함 속에서도 끝까지 완주한 고령의 학습자분들이 참 고맙다.
AI라는 기술적 축복이 주어진 가운데, 미래는 ‘나’와 ‘나보다 인공지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의 경쟁이 될 것으로 안다. 계속해서 배우고 변화하는 유연함을 가져야 한다.
너무 빠른 AI시대를 ‘단추세상’으로 비유한 학습자분의 시화 작품을 가져왔다. 부디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이것저것 써보고 가지고 놀아보시기를 바란다.
“자식들이 보낸 용돈 찾으려 해도, 친구들과 점심 한 끼 먹으려 해도 단추를 눌러야 된단다. 온통 단추세상이다. 기계 눈치 보고, 사람 눈치 보고, 우물쭈물 머뭇머뭇 두렵고 부끄러웠다. 배워도 배워도 어렵지만 그래도 이제 조금은 안다. 새로운 세상 재미난다…”
2025년 11월 23일 일요일
출석부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을 줄을 긋는다.
수업료를 안 가져 온다고 꾸중당한 아이./ 교무실에 불려와 울던 아이.
한 달 전부터 소식이 없더니/ 오늘 아침엔 편지가 왔다.
“서울에는 피를 빼어가며/ 고학하는 학생이 많다는데,/ 피를 사줄 사람도 없으니……” 하고,
그래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출석부에 또 하나 붉은 줄을 긋는다.
7번/ 9번/ 12번/ 26번…
달마다 늘어가는 붉은 줄/ 어쩌자고 붉은 줄은 늘어만 가는 것이냐?/ 갈수록 삶은 고달픈 것이냐?
지난 체육 대회 날/ 거리에서 나를 만나 얼굴 돌리고/ 땅을 보며 걸어가던 아이
함께 다니던 동무들을 피해/ 뒷골목을 들어가던 아이/ 그 아이는 9번이었다.
수업료를 장만하기 위해 자주 결석하고,/ 일요일이면 수리공사장에 나가/ 짐을 진다던 아이는 32번이었다.
찬바람 불어오는 어느 아침/ 흙덩이를 져 나르다가 엎어져 가슴을 다치고/ 병원에 갔다 하더니/ 기어코 퇴학하고 말았다.
명년 가을에는 군대에 간 형님이 돌아올 것이고/ 그러면 형편이 풀릴 것이니/ 한 해만 휴학해 달라던 아이는/ 그 한 해가 다 가도 다시 오지 않고
이제 먼 산에 바람이 얼어붙고/ 들마다 마을마다 눈이 내려 쌓이는데,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그 아이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손을 호호 불어가며 지게를 지고 산을 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엔 따스한 죽이라도 배불리 먹었을까?
붉은 줄이 자꾸 늘어가는 출석부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누우런 얼굴, 때 묻은 손발, 힘없는 걸음걸이…/ 똑같은 모습들이
둘이요, 셋이요, 넷, 열, 스물, 백, 천, 만…
아아, 수없이 나타나 나를 바라보고…
이제 시업(첫 수업시간)종이 치는데, 종소리가 울려오는데,
출석부를 들고 교실에 들어가면/ 나는 또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가?
(1955.11.23. 경북 군북중학교 국어교사)
―故 이오덕(1925~2003) 선생의 「출석부」
2025년 11월 15일 토요일
제25회 명동 詩낭송 콘서트 「명동은 흐른다」
“명동은 흐른다” 시낭송 콘서트 열려
문화예술의 거리 명동의 가치 되새기는 10년 세월 기념
한국여성문예원(원장 김도경)이 14일 오후 5시, 서울YWCA회관 4층 강당에서 ‘제25회 명동 詩낭송 콘서트’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시낭송 10주년을 기념하며 지난 10년간의 여정을 돌아보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이어서 지난날 명동시낭송콘서트와 함께한 명사들이 화면으로 축사를 전했다. 최불암 원로배우는 “명동은 대한민국의 문화 정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명동이 살아야 서울이 산다.”면서 문화예술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김훈 작가는 “먹자골목과 쇼핑천국이 대세인 명동거리에서 10년을 버텨온 시낭송이 참으로 대단하다. 옛 명동이 가졌던 생명력을 환기해 젊은 세대에게 전수해주길 바란다.”고 전하면서 세대 간 단절을 극복하는 역할에 충실해 줄 것을 주문했다.
도종환 시인은 현장 무대에 올라 ‘명동의 추억’을 주제로 이야기를 꺼냈다. “근대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넘어가는 시간은 명동이 주는 힘으로 가능했음”을 언급한 그는 명동의 문학은 지금도 살아있는 문학이라고 강조했다. 도 시인은 박인환, 이진섭, 나애심, 이봉구, 임만섭이 함께 했던 1956년 3월 밤의 일화를 들려주며 「세월이 가면」의 몇 소절을 즉석 해서 불러 청중의 박수를 받았다.
명동에 관한 시 낭송 순서에는 이옥희, 정선근, 이주은 낭송가가 각각 △흐르는 명동(정해종) △명동의 달(김동리) △목마와 숙녀(박인환)를 낭송하여 시낭송 콘서트의 낭만 감성을 띄웠다.
▲제25회 명동 시낭송 콘서트에서 도종환 시인이 ‘명동의 추억’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김도경 원장은 “2015년 이래 10년에 걸쳐 명동에 대한 재발견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문학의 힘으로 흐르기에 명동이 더욱 가치가 있는 듯하다. 저 혼자가 아니라 많은 분들과 함께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날 축하공연은 식전, 식간, 식후로 나누어 임장순과 친구들, 소프라노 강태은, 포크듀오 해바라기가 출연해 객석 분위기를 돋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