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14일 목요일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

요사이 디지털역량강화 교육을 나가는 운니동 팔도강산국악예술단에는 재미있는 국악기와 국악소품이 많다. 오늘은 목화솜 달린 보부상 패랭이가 눈에 들어왔다.

예전엔 생선·소금·나무그릇·질그릇·무쇠 등 부피가 크고 값싼 일용품을 지게에 지고 다니면서 판매하는 상인을 부상(負商) 또는 등짐장수라 하고, 비단·명주·모시·면화·가죽 등 부피가 작고 값나가는 품목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판매하는 상인을 보상(褓商) 또는 봇짐장수라 했던바… 보부상(褓負商) 혹은 부보상(負褓商)은 봇짐장수(보상)와 등짐장수(부상)를 통틀어 이르는 명칭이다.

그런데 보부상이 등장하는 역사물을 보면 패랭이 양쪽에 목화솜뭉치 2개가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기원썰을 살펴보면…

고려말 도순찰사 이성계가 전라도 황산(荒山)에서 아기발도(阿只拔都)가 지휘하는 왜구와 교전 중 왼쪽 다리에 화살을 맞았는데, 종군하던 백달원의 수하 중 면화상이 지참한 면화로 응급처치를 했다. 나중에 새 왕조를 연 이성계는 이를 기념하여 패랭이 왼쪽에 목화송이를 달도록 했다.

또한, 병자호란을 당한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신 중 상처를 입어 출혈이 생겼을 때 보부상 중 솜장수가 가지고 있던 솜으로 지혈을 했다고 한다. 호란 이후 인조가 태조 대의 일을 상기하여 패랭이 우편에 목화송이 하나를 더 달도록 하여 좌우에 목화송이가 부착된 패랭이가 탄생했다는 것이다.

1866년(고종3) 흥선대원군이 8도의 부상단과 보상단을 통합 관장하는 보부청(褓負廳)을 설치하고, 1883년(고종20)엔 개항 이후 외국상인의 침투와 상업의 자유화에 밀려 위협을 받게 된 보부상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국아문(軍國衙門)의 관할 아래 혜상공국(惠商工局)을 설치한다.

하지만 보부상단은 국가의 비호를 받다보니 자연스레 어용화 하기도 했다. 1894년(고종31) 동학농민운동 때 관군과 일본군의 길잡이가 되어 동학군을 진압하는데 일조하고, 1898년(광무2) 황국협회로 이속된 이후엔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를 습격하여 독립협회와 함께 해산되었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팔도강산국악예술단 원장님이 위드 코로나로 가게 되는 11월 야외공연 때 패랭이 쓰고 함께해보자 권유하시는데, 여건이 된다면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왕들의 목숨을 두 번이나 구해주며 특별한 패랭이를 얻게 된 보부상. 패랭이 양쪽의 목화송이는 보부상의 상징이다. 목화솜 달린 패랭이의 하얀끈을 턱 아래쪽으로 묶어 고정하기가 쉽지 않다. 몇년 전 KBS 2TV 수목드라마 「장사의 神―객주 2015」는 폐문한 천가객주의 후계자가 시장의 밑바닥 여리꾼(삐끼)으로 시작해 상단의 행수와 대객주를 거쳐 보부상들의 우두머리에 오르는 성공스토리를 다뤘다. 국운까지 내다보며 진력하는 도접장 천봉삼(장혁 扮)과 같은 진정한 화천대유(火天大有), 천화동인(天火同人)하는 기업인이 요원하게 느껴진다.


2021년 10월 11일 월요일

왕뚜껑과 수박바

손가락만 씻은 왼손바닥엔 네임펜으로 임금王자 그려 넣고, 오른손으론 왕뚜껑이나 휘휘 저어 편의점 도시락과 함께 아점으로 흡입...

신불산 천공(진정)스승 같은 시대의 멘토도 사사하지 못하고 항문침을 맞을 수도 없으니 이렇게라도 히죽거려볼밖에…

경선 결과에 불복하는 표리부동(表裏不同), 면종복배(面從腹背) 더민주 수박들을 씹으며 롯데 수박바로 시원하게 입가심~ 



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우중심우(雨中尋牛)길

 혜화문(惠化門)을 출발하여 구 서울시장공관, 경신중·고등학교, 최순우(崔 淳雨) 옛집, 이종석(李鍾奭) 별장, 심우장을 거쳐 북정(北井)마을까지 우중심우(雨中尋牛)길…


1879년 충남 홍성 출생의 한유천(韓裕穿)은 법명(法名)이 용운(龍雲), 법호가 만해(萬海)다.

심우장(尋牛莊)은 만해선사가 1933년부터 1944년까지 만년을 보내다가 입적한 정면4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 한옥이다. 서재 겸 침실로 사용한 왼쪽 1칸 온돌방에는 일창 유치웅(一滄 兪致雄, 1901~1998)이 쓴 尋牛莊 현판이 걸려 있다. 가운데 2칸은 본래 대청마루인데 지금은 온돌방처럼 꾸며 놓았다. 만해선사와 관련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오른쪽 1칸 부엌이 뒤로 돌출해 있어 전체적으로 ㄴ자형 공간배치를 이루고 있다. 온돌방과 대청은 반자(盤子)틀 천장, 부엌은 서까래를 노출시킨 연등(椽背) 천장을 하고 있다.

심우장은 물론 아랫집 윗집 모두 북향(北向)집이다.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것이 심우(尋牛)다.

①소를 찾는 심우(尋牛) 이후엔 ②소의 흔적을 보는 견적(見跡), ③소를 보는 견우(見牛), ④소를 얻는 득우(得牛), ⑤소를 기르는 목우(牧牛), ⑥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기우귀가(騎牛歸家), ⑦소는 잊고 사람만 있는 망우재인(忘牛在人), ⑧사람과 소를 함께 잊는 인우구망(人牛俱忘), ⑨근원으로 되돌아가는 반본환원(返本還源), ⑩손을 드리우고 저자에 들어가는 입전수수(入廛垂手)의 단계를 밟게 된다.


소(牛)로 상징되는 ‘참 나’를 찾아가는 여정은 발심(發心)에서 출발한다. 부처와 조국과 여인… 스님의 소(牛)는 무엇이었을까? 나의 검은소와 흰소는? 탐함, 노여움, 어리석음… 탐진치(貪瞋痴)의 무명(無明) 밝혀 진여(眞如) 깨치게 하소서.

2021년 10월 8일 금요일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 나눔

지난 9월말에 미얀마 민주화운동 연대배지를 무료 배포한다는 공지글을 접하고 문자로 20개를 신청했는데… 오늘 우체국택배로 수령했다.

붉은 바탕의 원형 배지에는 어김없이 세 손가락이 그려져 있다. 세 손가락 경례는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독재국가 판엠(Panem)의 억압받는 시민들을 이끌고 독재권력에 대항하는 소녀 캣니스 에버딘으로 분(扮)하여 열연한 영화 헝거게임(The Hunger Games)에서 △감사 △존경 △사랑하는 이와의 작별을 상징하는 것으로 묘사됐다. 동명의 원작소설과 영화에서 비롯한 세 손가락 경례는 2014년 태국과 홍콩을 거쳐 2021년 현재는 미얀마에서 독재자의 총칼에 굴하지 않는 저항정신의 상징이 되었다. 요컨대 전체주의에 맞서는 결연한 인사법이 곧추세운 세 손가락인 것이다.


80년 5월의 빛고을 총성을 떠올린다. 미얀마 군부쿠데타에 단호히 반대하고 미얀마 국민들의 피땀 어린 저항을 지지하며 응원한다.

‘미얀마의 전두환’으로 악명 높은 도살자 민아웅흘라잉(Min Aung Hlaing)은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만족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오늘 수업에 참여한 학습자 분들에게 배지를 분양하고, 하나는 내 배낭에 부착했다. 배지를 나눔해주신 미얀마투데이 최진배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후원: 농협 355-0077-2701-63 (미얀마 투데이)


#SaveMyanmar #standwithMyanmar #StopCoup #JusticeinMyanmar



2021년 10월 4일 월요일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소설가 이무영, 염상섭 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오래전에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에 부모님을 모셨다. 이번에 동생과 추석성묘를 갔다가 예년에 주차하던 곳에서 조금더 올라가 보았는데 이무영, 염상섭… 문인 두 사람의 묘표(墓表)를 발견했다.

경주이씨 이갑용(李甲龍, 1908~1960)은 충북 음성 태생으로 아명은 이용구(李龍九)다. 필명으로 무영(無影), 탄금대인(彈琴臺人), 이산(李山)을 사용했다. 휘문고등보통학교에 다니다가 중퇴하고 도일하여 일본인 소설가 집에서 숙식하며 4년 동안 작가수업을 받고, 1926년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으로 등단했다. 1929년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 1931년 극예술연구회, 1933년 九人會 동인으로 활동했다.

1939년 경기도 시흥에 정착, 농사를 지으면서 귀농지식인 김수택을 주인공으로 1930년대 농촌 현실을 묘사한 단편 「제1과 제1장」과 속편 「흙의 노예」로 유명해졌다.

흔히 농민문학의 대표작가로 회자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2009.11)와 친일인명사전(2009.11)에 일제 침략전쟁과 전사자 찬양, 지원병 징병 선전선동, 침략전쟁 수행을 위한 조선인의 협력독려 등 일제의 전시식민정책에 적극 협력한 그의 친일활동상과 친일문학의 구체적 내용이 적시돼 있다. 4·19혁명 이틀 후인 1960년 4월21일 뇌일혈로 숨졌다(52세).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부인 고일신(高日新)의 영향으로 세례를 받은 것으로 추정한다.


파주염씨 염상섭(廉尙燮, 1897~1963)은 종로구 체부동 출신이다. 보성고등보통학교를 중퇴하고 1912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게이오(慶應)대학 사학과에서 수학 중 병으로 자퇴했다. 1919년 3월19일 직접 작성한 재오사카 한국인노동자대표 명의의 독립선언서를 발표하려다가 거사 하루 전에 발각, 피체돼 3개월간 복역했다. 이 사건이 이슈가 되어 귀국 후 1기 특채로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에 채용됐다. 1920년 폐허 동인으로 문학활동을 시작하고 1921년 개벽紙에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주의 소설로 평가받는 단편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발표했다. 천주교 세례명은 바오로. 늘 술에 취해 갈지자로 걸었기에 횡보(橫步)란 별호를 얻게 됐다는 썰이 그럴듯하다.

여로형 중편소설 「만세전」(1922)에는 봉건적 무지함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일제에 굴종하면서 살아가는 전혀 희망이 없는 듯이 보이는 식민지 조선인의 모습과 어떠한 저항도 못하며 처참함을 느끼는 1인칭 주인공 이인화가 ‘무덤이다. 구더기가 끓는 무덤이다’와 같은 격한 표현을 내뱉는다. 그래서인지 3·1만세운동 직전의 비참한 조선사회를 보여주는 제목 「萬歲前」(시대일보)의 원제는 「묘지(墓地)」(신생활)이다.

장편 세태소설 「三代」는 조의관, 조상훈, 조덕기로 이어지는 1930년대 경성의 보수적인 중산층 가족사를 중심으로 재산상속 문제와 세대갈등을 통해 식민지 조선의 자화상을 그려냈다. 그나마 새로운 세대에 시대적 과제 해결의 희망을 걸고 있는 점이 위안이 된다.

백릉 채만식이 윤용구(선친)-윤두섭(향교 직원)-윤창식(주사)·윤태식(서자)-윤종수·윤종학(동경유학)-윤경손(증손자)으로 이어지는 윤씨 5대를 다룬 가족사 소설 「태평천하(太平天下)」와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혜화동성당은 세 곳(포천, 방학동, 도봉동)의 묘원이 있다. 이중 혜화동성당 방학동묘지 안에는…

시인 효공(曉空) 박지수(朴智帥) 묘 ― 국가유공자 최형억(崔亨億) 묘 ― 기업인 홍순모(洪淳摸) 묘 ― 소설가 횡보 염상섭 묘 ― 박준규(쌍칼)의 부친 영화배우 박노식(朴魯植) 가족묘 ― 한의사 두암(斗庵) 한동석(韓東錫) 묘 ― 시인 다묵(多黙) 강운회(姜雲會) 묘 ― 한국 및 전 일본 빤담급 참피온 권투선수 고봉아(高峰兒) 묘 ― 소설가 이무영 묘 ― 바이올리니스트 김형량(金亨亮)과 부인 소프라노 정훈모(鄭勳謨) 가족묘 ― 독립유공자 강순남(姜順南) 묘 ― 「인생극장」(영화 「장군의 아들」 원작)을 쓴 소설가 백파(伯坡) 홍성유(洪性裕) 묘가 있다. 인근의 정의공주 묘, 연산군 묘와 함께 날 좋은 날 탐방을 해도 괜찮을 듯.







2021년 9월 30일 목요일

TV쇼 진품명품 「님의 침묵」 초간본

지난 일요일(2021.9.26) 오랜만에 TV쇼 진품명품(1292회)을 시청했다. 소개된 작품 중 마지막 3번째 의뢰품인 만해 한용운(1879~1944)의 「님의 沈默」 초간본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날 등장한 의뢰품은 1926년 회동서관에서 출간한 초판본이었다. 1933년 조선어학회가 제정한 한글맞춤법통일안 이전에 나온 초판본에서는 긔룬(그리운), 숭(흉), 새암(샘) 같은 고향 충청도 방언과 ‘알ㅅ수업서요’와 같은 한용운 특유의 시어를 확인할 수 있다. 1934년에 발행된 재판본부터는 한글맞춤법통일안에 맞춰 방언이나 개인적인 시어들이 수정되었기에 초간본 어조의 참맛은 많이 잃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초판본 시집은 당시 300부 정도 제작됐는데 지금은 10~20권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돼 희소성을 더하고 있다(최종 감정가 8천만원).

시집은 창작동기를 밝힌 ‘군말’로 시작하여 후기격인 ‘讀者에게’로 끝맺고 있다. 첫 시는 ‘님의 침묵’이고 마지막 시는 ‘사랑의 끝판’이다. 특히, 처음 접하는 ‘군말’의 내용이 새로웠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화의 님이 봄비라면 마치니의 님은 이태리다. 너에게도 님이 있느냐, 있다면 님이 아니라 너의 그림자니라. 나는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긔루어서 이 시를 쓴다.”

김영복 서예·고서 감정위원은 작품 해설 중에 한용운 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11년을 살았던 성북동 심우장(尋牛莊)이 남향을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 보게 되는 까닭에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는 일화를 소개했는데… 실상 심우장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지형 자체가 북사면이어서 남향으로 집을 짓기가 여의치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스님의 불굴의 의지와 지사적 풍모가 훼손될 일은 없다.

레이첼 카슨은 봄의 침묵을, 폴 사이먼은 소리의 침묵을, 토머스 해리스는 양들의 침묵을, 폴 데이비스는 우주의 침묵을, 엔도 슈샤쿠는 하느님의 침묵을 그리고 한용운은 님의 침묵을…

스님은 종교적인 절대자로, 일제에 빼앗긴 조국으로, 사랑하는 여인으로 님을 형상화했다. 님의 부재 상황과 그로 인한 슬픔은 해방 70년이 훌쩍 넘도록 해소되지 않고 있다. 허나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붓는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몫이다.


일제강점기에 간행된 붉은색 표지의 「님의 침묵」 초판본(大正15년 5월15일)